이 첨언은 결코 텍스트에 대한 확정된 해석이 아니며, 따라야 할 독해 방식도 아님을 알린 뒤 사족을 보탭니다.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에서 쓴 문장을 인용하자면 “텍스트는 신과 같은 저자의 전언인, 단 하나의 신학적 의미만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채신머리없이 뱀 발 몇 가닥을 스물스물 덧붙이는 일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필연적으로 모든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는 글쓴이 자신입니다. PC 통신 시절에 입문하여 대여점 시대를 거쳐 문피아로 넘어오는 내내 장르 소설을 즐겨 읽어온 독자로서, 첫 이야기라면 우선 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내용을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는 주인공과 세계가 불화하길 바랐고, 그가 얻은 것은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하는 유익이며, 신과 인간의 대립 가운데 맞이한 결말이 인간의 완전하고도 순전한 승리만은 아니기를 원했습니다.
살만 루시디가 1996년 바드 칼리지 졸업식 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신에게 도전한 인간이 패배하는 사건은 결코 비참하기만 한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신화에 도달하여 영원히 기억되는 방법의 하나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런 의도가 저면에 있었다 해서 반드시 쓴 사람의 의도대로 글이 독해되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주의 주장을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텍스트, 명확한 학술적 근거와 주석이 필요한 글이 아니라 상상해낸 이야기의 모음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초심자가 처음 쓰는 장편 소설이었기에 이러한, 자신(만)이 보고 싶은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일을 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여러 해 전 일이 됩니다만 담당 편집자님과의 첫 미팅에서 완결까지의 전체 에피소드와 각 편의 전개를 정리한 스프레드 시트를 보여드렸을 때, 장르의 보편적 경향을 약간 벗어난 후반부 전개를 인지하시고도 흔쾌히 상업화를 결정해주셔서 지금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끝에서 되돌아보면, 전개의 8할 정도는 본래 계획한 방향대로 이끌어 간 것 같고, 나머지 2할은 계획하지 않은 화학 작용의 결과인 듯하군요. 293만 자에 달하는 긴 이야기가 가진 무시무시한 압력에 압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마지막을 최초의 계획대로 끝낼 수 있어 뿌듯합니다.
고백건대 장편 웹소설을 연재한다는 게 이토록 지난한 일인 줄 제대로 알았다면 애초에 시작도 못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참으로 이게 뭔지 몰라서, 정말로 아무것도 몰라서 저지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 몇 년간은 새벽녘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글을 쓰고, 저녁엔 또 직장에서 예정에 없는 야근이라도 할까 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던 스릴의 나날이었지 뭡니까.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많은 스릴은 필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재 중반 즈음 작은 사고를 당해 몸에 미세하지만 영구적인 불편이 생긴 탓에 소설 쓰기가 물리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컨디션이 한창 나쁠 때 작성한 일부 구간은 음성 입력과 가족의 타이핑 봉사까지 동원해야 했습니다. 가족과 서재에 마주 앉아 ‘콰콰쾅, 엠대시, 한 줄 띄우고’ 같은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하다 보면 정말이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싶어 민망한 마음이 가득 찼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왔습니다.
아무튼, 늘 무작스럽게 웹소설을 읽어대기만 하다가 스스로 연재라는 걸 해 보고 나니 얻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상당한 양의 흰머리와 그리고 모든 연재 작가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이 이야기가 탄생하던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헌신적인 편집자이자 교정자, 개요의 청자이자 아이디어 제공자, 독자이자 타이프라이터로 조력을 아끼지 않았던 나의 가족 T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유용한 참고 자료를 추천하시며 참된 조언을 주신 B님, 외국어 해석이 막힐 때마다 긴요한 도움을 준 다언어 능력자 E, 끝 모르는 추가 수정 릴레이에도 언짢은 기색 한 번 내비치지 않고 컴맹인 저를 대신하여 수 없는 가외 업무를 다 책임지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던 담당 편집자 C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모두에게 프로스페로의 박수를 요청드린다면 너무 뻔뻔스런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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