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진짜 경비원? 4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저저··· 입꼬리 슬며시 올리며 고개 돌리는 것 보게?
그래. 내가 순영 씨랑 가까워질 수 있기는 했다.
호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연하지 않을까?
42살의 나이, 사실상 노총각, 모태 솔로는 아닌데 솔로 기간이 너무 길어서 모태 솔로에 가까운 노총각이··· 20대 중반의 아리따운 여성을 만났다.
차가운 표정을 연기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인상도 아름답고 차가워 보이는 여성이라고는 하지만··· 왜 그 있지? 그거 굉장히 매력적인 인상이잖아? 여성의 외모로 말이야.
그런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만 솔직히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각자가 처한 직업상의 입장 차도 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덜컥 결혼 당했다고 – 분명히 당한 것 맞다! 흑··· - 이렇게까지 나를 원망할 줄은 몰랐거든?
그렇다고 우리가 사귀기를 했냐? 그런 관계는 전혀 없는데 말이야···
“당신 세계의 순영은 얘기하지 않을 테니 대신 전하겠습니다. 고백할 시간도 주지 않은 대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내가 일부러 그랬나···”
환장할 노릇이네. 진짜로.
“당분간만 계시면 됩니다. 사실 경비원이 필요한 곳은 아닙니다만··· 최근 묘족 아이들이 좀 말썽을 많이 부린다고 합니다. 아티펙트도 가지고 계시니···”
“네. 뭐 보모 노릇이나 하죠. 뭐.”
별수 있나.
나도 여기에 있는 이상은 내 역할을 해야겠지.
그냥 놀고먹으면서 신세만 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 두두두두두두두두두
- 휙! 휘휘휘휘휙!
“으응···? 으익!?”
내 벨트!! 바지가 벗겨졌어!!!
“내 모자!!! 이놈들이!!!!”
바지부터 추켜올리고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순영 씨가 슬그머니 한마디를 던지고 도망친다.
“아이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크흠···”
“그냥 차라리 웃지!! 응!?”
“크흐흡···.”
짜증 난다. 진짜··· 아우!!!!
* * *
“삼춘! 시간이 뭐야?”
“으응···? 글쎄···?”
시간이라? 나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느닷없이 철학 혹은 과학을 논해야 하는 거냐?
이 꼬맹이 월랑족 참···
이 아이는 우리 세계에서는 보지 못했다.
월랑족 꼬마 아이 중 하나라고는 하는데 뭐 특별하다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월랑족 아이이다.
물론 월랑족이니 인간보다는 특별하긴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고···
그런데 참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느닷없이 내 옆에 와서는 시간이 뭐냐고 물어보다니···
“흠··· 내가 생각하기에 시간은 흐름 같은데? 그 흐름을 구분하려고 나눈 것이 시간인 것 같아.”
“그럼 말야. 삼춘. 시간이 멈췄다는 건 세상이 멈췄다는 거야?”
“응? 아··· 그렇겠지?”
시간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아니다. 그게 아니라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 자체가 세상이 흘러가는 흐름이 고정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 흐름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으니까 시간이 고정되었다고 말을 하는 거다.
1지구를 제외한 모든 차원의 시간, 즉 움직임과 흐름이 모두 멈춰버린 상태. 이것은 다시 말하면··· 시간이 멈춘 것이지만···
“아··· 멈춘 세계들은 시간이 아니라 흐름만 고정되어 있는 거구나.”
“시간이라는 건 그런 거 아냐? 세상이 움직이지 않아도 흐르는 거잖아?”
“그러네. 똑똑하네? 우리 꼬맹이?”
“에헤헤. 정령들이 가르쳐줘. 그래서 나 똑똑하다?”
“오호라··· 정령들이랑 친해?”
“응. 히힛.”
주술사가 될 아이로구나.
월랑족에는 주술사가 있다고 들었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처럼 자연의 흐름을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령을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월랑족 주술사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중 하나.
그래서 이 아이가 나에게 시간을 물어본 것이구나.
“고마워. 꼬맹아. 덕분에 좋은 것을 깨달았다.”
“아냐. 정령이 알려주랬거든. 그래서 그대로 한 거야. 삼춘 또봐!!”
- 슈확!!
와··· 사라지다시피 날아가는구나.
그나저나 시간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만 멈췄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 세계 하나만 봤을 때 그런 거다.
평행 차원 하나만 놓고 보면 흐름이 멈춘 것은 시간이 멈춘 것이겠지만 전체 차원에서는 시간 자체는 그대로고 그 세계의 흐름만 멈춘 것이다.
차원을 넘어서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 자체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차원 안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이 맞고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원 안에 존재하는 이들의 기준과 감각에 의해서 정해지는 상대적 흐름 시간이다.
“절대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시간의 뒤틀림이 발생하지. 그림자 위상으로 넘어가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 마스터는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해결을 그곳에서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해결하려거든 여기서, 아니면 모든 평행 차원에서 해야 할 것 같아.”
아니면 서둘러서 관리국으로 넘어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침공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지금 저들이 노리는 것이 어쩌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1지구의 오리지널 '나'를 노리고 있겠지.”
- 그렇게 생각됩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
나도 나고 그도 나다.
어차피 각자가 각자의 존재인데 1지구의 나를 건드리면 뭐가 달라져서?
“1지구의 나는 뭐야? 설마 우리의 근본이야?”
- 그건 아닙니다. 그가 우리의 중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은 아닙니다.
“중심이라면··· 그를 무너트리면 우리가 전부 무너지나?”
-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중심인물. 우리는 그의 파편 혹은 조각 같은 파생 차원의 존재.
그를 노리면 다른 차원의 나를 무너트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노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지금 대부분의 파생 차원의 '나'를 건드려서 무너트리고 지배하려고 한 것이 사실이니까.
그나마도 제대로 안 돼서 그들이 우리와의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면 무엇을 노리는 걸까?
“설마 차원 통합?”
차원의 규칙 때문에 평행 차원이 생성되고 계속 늘어난다.
그 차원을 모두 무너트려서 강제로 통합하려면?
지금처럼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차원이 스스로 봉쇄할만한 규칙 침입이 발생하게 해서 차원과 차원 사이의 뒤틀림을 만들고 그로 인해 평행 차원 사이의 균열이 고의로 벌어져서 닫히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나뉜 평행 차원을 강제로 합치면서 공간을 무너트린다.
“그 키워드로 쓰는 것이 특정 인물.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있는 인물.”
그래서 선택된 것이··· 나. 이주영이라는 인물.
내가 뭘 가지고 있길래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나를 건드려서 14지구의 시간을 멈추고 봉쇄를 끌어냈다.
이주영의 영혼 탈취와 강제 지배는 그냥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한 일인 것이다.
“사탄 일가의 뒤에 누가 있든··· 이건 최초의 인간계인 제1 인간계를 완전히 소멸시키려는 계략이라고 봐야겠네.”
과연··· 사탄 일가의 뒤에 있는 존재가 한 일일까?
사탄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일까?
과연 그럴까?
* * *
“위치 확인됐나요?”
“부산 쪽에 균열 조짐이 발견되었습니다.”
“탭. 흐름 고정.”
- 상대적 시간 흐름을 고정합니다.
결국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이 몬스터 균열이 아니라 평행 차원과의 차원 겹침 흐름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나마 우리는 흐르지만 상대는 흐르지 않는 상대적 시간의 흐름 차 때문에 균열이 열린 지역은 공간의 일그러짐과 겹침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떤 피해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
그게 다행이라면 천만 다행한 일이다.
“균열 폐쇄까지 얼마나 남았지?”
- 차원이 균열 폐쇄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규칙 조정 중. 규칙 조율이 완료되었습니다. 연결된 두 세계 사이의 시간 고정이 절대 시간으로 24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그 정도면 됐네. 드론 준비할게,”
- 통제 대기 중.
첫 번째 시도다.
시간 뒤틀림 때문에 연결되어 버린 균열을 통해 저쪽 차원으로 넘어간다.
왜 하필 부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림자 이동 술법을 이용해서 단거리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잔머리를 좀 굴려서 아주 짧은 근거리를 계속 이동하는 방법으로 정신력 소모를 극단적으로 줄인 거다.
대신 부산까지 가는데 1시간을 이동해야 해서 멀미가 좀 심하지만··· 그래도 정신력 소모가 생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니까.
“드론 띄운다.”
- 드론 5기 확인. 마스터 주변 5킬로미터 거리에서 정찰합니다.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서 드론들은 그 거리의 바깥에서 나를 둘러싸고 정찰을 한다.
사물과 위치 확인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육신이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거지.
내가 해야 할 것은 육신의 상태 확인,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영혼을 되돌리든 뭘 어쩌든 해서 그놈의 육체에 걸린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멈춰버린 시간 흐름이 풀릴 테니까.
물론 이 균열을 통해 넘어넘어 원래 세계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거니까.
솔직히 그건 좀 그렇고.
- 균열 발생. 그림자 위상의 침입으로 추정됩니다.
“얼마나 걸려?”
- 차원 봉쇄 돌파까지 4시간 전.
“그 정도면 충분해.”
파주 문산 일대에서 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떻게 된 게 사는 곳이 다 똑같아···.
슬프다··· 어디 하나 성공한 곳이 없냐?
어째 결혼한 놈도 하나 없는 게 참···.
이번에도 육신이 멈춰 있는데··· 이 에너지는···
“여긴 또 차원 에너지랑 혼돈 에너지가 섞여 있네. 이거 어찌 처리하냐?”
- 프로톤 팩에 차원 필터 디스크를 넣으십시오.
차원 필터 디스크? 아 이건가?
묘한 이미지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뭔가 차단한 것 같은 이미지. 금지 표시 같기도 하고···.
뭘 차단한 거야? 흐름 차단이냐?
“이거 맞아?”
- 맞습니다. 강을 금지하는 것 같은 그 이상한 디자인이 유미 박사님의 디자인입니다.
“이거 꽂고 뭐해?”
- 그걸 꽂고 프로톤 팩을 사용해서 혼돈 에너지를 정화하시면 됩니다. 절대로 직접 손대시면 안 됩니다.
이걸로 에너지만 정화하라는 얘기구나
이 오염이 시간을 멈추게 한 원인이니까?
내가 장비하고 있는 프로톤 팩은 벨트 주머니처럼 차고 팔찌장갑처럼 생긴 발사 장치와 무선으로 연결되는 신형 장비다.
그래서 다들 이게 프로톤 팩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엄연히 프로톤 팩.
여러 가지로 참 유용한 장비다.
마법진을 얼마나 연구하셨는지 웬만한 마법진은 전부 소형 디스크로 다 만들어 놨다.
그래서··· 뭐가 있는지 나는 하나도 모른다.
그냥 탭이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꺼내 쓸 뿐이지.
“정화 끝.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 차원 규칙 확인 중. 고정된 흐름은 풀렸습니다. 마스터께서 돌아가시면 흐름을 풀고 시간이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면 몬스터는?”
- 이미 차단되었습니다. 흐름이 재생되는 대로 관리국에서 육체를 수거해서 보존할 것입니다.
“그래. 돌아가자.”
돌아가서 다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
- 균열이 닫히고 있습니다. 폐쇄까지 30분.
“으익!!”
재빠르게 이동했다. 정말 재빠르게.
순식간에 이동했거든.
“크힉··· 어지러···”
비척비척 기어서 간신히 균열을 넘었다.
- 차원 균열이 닫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간 흐름이 재생되려고 합니다.
“잠시만··· 한 번만 더 가자···. 쿠억···.”
결국 오바이트··· 명학산 지하 아파트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또 기절해야 하나?
“재생··· 해줘···”
- 시간 재생 시작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그래. 주영. 조금만 잘게.
* * *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정문 초소의 숙소 안이었다.
사실 초소까지 전부 똑같이 옮기듯이 만들어 놔서 잘못하면 착각하기 쉽게 생겼다.
그래도 공간이 차원의 경계가 아닌 일반 세계다 보니 기운의 느낌과 흐름도 다르고 아파트의 주요 건물과 시설이 평범하다.
그 덕분에 확실히 구분되니 다행이랄까?
“와··· 이걸 앞으로 몇 번을 해야 하냐···?”
정말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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