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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한김 님의 서재입니다.

나무패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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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한김
작품등록일 :
2019.04.01 21:51
최근연재일 :
2019.04.30 07:0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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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8,926

작성
19.04.0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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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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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화

.




DUMMY

일정한 걸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차디찬 회색 벽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가구라 부를 수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있다.

언제부터 사용됐을지 모를 정도로 누렇게 변한 시트와 조금만 뒤척거려도 앓는 소리를 내는 나무 침대는 일 인실로 된 이 방이 적어도 귀한 사람을 대접하는 곳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또각, 또각.'


점점 내게로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쇠창살로 된 문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같이 발걸음의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와중에 잠시 눈을 감아, 어릴 적 헥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킨, 너 그거 알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면, 눈을 감은 채로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대!'


이 말을 듣고 '역시 헥스는 아는 것이 많구나' 하며 감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수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헥스...... 그건 상대가 누구든 간에 걸음 소리를 자주 듣다 보면 패턴이나 소리의 크기로 알 수 있는 거야.'


이미 신체와 목소리 등 이런저런 것들이 어린 시절과는 멀어진 나는 기억 속 헥스에게 쓴웃음을 보낸다.

계속해서 들리던 걸음 소리가 멈추고 쇠창살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린다.


"뭘 그리 혼자 실실 쪼개고 있어? 미쳤냐?"


항상 쇠창살을 발로 차고 난 뒤 말을 거는 것은 그의 버릇이다.


"내 사랑 조니 왔어? 걸음 소리만 듣고도 당신인 줄 이미 알고 있었지."


"씨~발! 미쳐도 하필 그런 쪽으로 미친 건가. 난 호모라면 질색이라고."


나를 혐오하는 눈빛과 함께 조니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다.


"장난이었어."


조니는 내 말을 무시하듯 손에 든 열쇠로 쇠창살 문을 열었다.


"일곱 걸음 뒤에서 따라와. 호모 검투사."


조니는 평소보다 배는 먼 거리로 나에게 따라오라 말하고, 먼저 앞장서 걸어나갔다.


"이봐, 조니."


그가 말한 거리만큼 떨어져 뒤따라 갔지만, 그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조니 워커. 투기장에 종사한지 20년이 넘어가는 수다쟁이 남자다. 이런 그가 내가 호모라는 소문을 퍼트리는 날에는 수많은 관중들이 나를 호모 검투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기에.

나는 가지고 있던 은화 한 개를 오른손 엄지로 적당한 높이로 튕겼다. 그리고 떨어지는 은화를 그대로 다시 오른손으로 받았다. 그러자 동전 튕기는 소리에 조니가 뒤를 돌아 보았고, 이때다 싶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은화를 조니에게 던져주었다.


"장난 한 번에 은화 한 개라니 너무한거 아니야?"


"이 정도면 여기서는 싼 편이라고."


조니는 한 손으로 은화를 받아 들고는 씩 웃었다.


조니의 뒤를 따라 회색 벽과 쇠창살들로 이루어진 복도를 걸어갔다.

지하 3층이라 햇빛이 들지 않는 대신 벽에는 새의 형상이 날개로 마법구를 받치고 있는 모양의 램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있다. 시세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로 이 투기장의 주인이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복도에는 벽과 램프 외에도 쇠창살들이 있고, 그 안에는 나와 같은 검투사들이 있다. 그들은 노예부터 범죄자, 스스로 자처해서 온 하층민들까지 있으며, 이 복도에는 없지만 소위 마물이라 불리는 것들까지 이 투기장엔 존재한다.


"이봐! 킨 네가 죽는다에 내 은화 1개를 걸지."


"나도 죽는다에 은화 3개 남은 전 재산이라고."


"죽는다에 걸어봤자 얼마 못 벌어 나는 산다에 동화 50개."


"어이, 구로! 돈 버릴 거면, 차라리 나한테 줘. 동화 50개면 술이 몇 병이야."


나와 조니가 복도 앞을 지나가자, 각 방안에 있는 검투사들이 얼마를 걸지 이야기 하며 웃으며 떠든다.


'알고 있다. 승산이 없는 것 정도는. 당신들 보다 내가 더.'


검투사들에겐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된다. 경기에 나가서 승리할 시 일정한 돈도 지급받고, 그 돈을 어떻게 쓰는가도 자유다. 물론 대부분의 검투사들은 창촌과 술에 받은 돈을 다 쓰지만, 이렇게 다른 검투사의 시합에 돈을 거는 것도 가능하다.


"시끄러! 다들 조용히해!"


조니는 지나가다 가까운 쪽의 쇠창살을 걷어차며 말했다.


긴 복도가 끝나고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도 마찬가지로 회색 벽과 마법 램프로 이루어져 있으나 한가지 차이점은 계단에는 쇠창살로 된 방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걸었어?"


조니에게 물었다. 조니는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네가 이긴다에 은화 100개."


나는 놀라서 계단을 올라가던 발을 멈췄다.


"조금 전에 나보고 미쳤냐고 물은 주제에, 미쳤어?"


은화 100개면, 조니가 투기장 경비병으로 삼 년은 일해야 받는 돈이 아닌가.

조니도 올라가던 계단을 멈추고 뒤돌아서며 말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네 아버지뻘인데 말하는 꼬라지 봐라."


"됐으니까, 은화 100개부터 설명해. 나도 죽을 생각 같은 건 없지만, 은화 100개라니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야."


조니가 평소에도 크게 배팅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나도 다시 한 번 더 묻지 않았겠지만, 승리가 확실한 판에도 은화 5개 이상은 쓰지 않던 조니다. 그런 조니가 은화 100개라니 내 귀를 자꾸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니는 고개를 들어 눈을 한번 감더니, 숨을 살짝 내쉬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봐, 킨. 이 바닥에 20년 가까이 있으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 말이지.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은퇴하고 나면 작은 영지 하나 사서 부인하고 딸을 데리고 귀족처럼 떵떵거리며 사는 게 꿈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다달이 주는 급료 가지고 영지를 산다? 택도 없는 소리지, 하지만 말이야. 여기서 한탕 크게 따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꿈이라는 거야. 내가 왜 이때까지 돈을 아껴가며 배팅한 줄 아냐 킨? 그건 바로 이런 때에 크게 한탕 하려고 그래왔던 거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나?"


순간 말문이 막혔다. 조니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나름 친절히 대해주던 아저씨였지만, 이 정도로 나에게 큰돈을 걸 줄은 몰랐다. 물론 조니의 말대로 나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20년간 투기장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의 감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설명이 부족했다.

나는 아직도 의심이 지워지지 않은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감이라고 해봤자 믿지 않는 건가, 굳이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킨, 네놈 허리춤 달고 있는 그 나무패 그게 또 하나의 이유다."


조니는 내 허리춤에 있는 나무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뒤돌아서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한 손으로 나무패를 쥐고 고개를 숙여 자세히 보았다.

나무패에는 고대 언어로 글이 쓰여있다. 고대 언어를 배운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허리춤에 차고 있는 나무패에 쓰여있는 고대어 만큼은 유일하게 알고 있다.


"뭐해, 이러다가 늦겠어!"


나무패를 보던 시선은 다시 계단 위로 향했고, 금방 조니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다. 지하 1층 이곳에서 검투사들은 장비를 갖춘다.

하지만 장비라고 해봤자, 가죽 갑옷과 투구뿐이며, 무기류와 방패는 경기장 바닥에 몇 종류가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서 쓰는 방식이다.


나를 여기까지 안내해준 조니는 돌아서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이겨! 은화 100개! "


라고 내게 말하며 관중석으로 갔다.

졸지에 이름이 은화 100개가 되었다.


'뭐, 호모 검투사보단 나은가.'


갑옷과 투구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투기장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의 끝에는 커다란 아치형 문이 있고, 문에 있는 쇠창살들 사이로 바깥의 빛이 들어온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은 마치 나에게 그곳까지 오라는 듯이 속삭였다.

빛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이제는 빛과 함께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진다.

허리춤의 나무패가 가볍게 바람에 흔들렸다.

문 앞의 경비병에게 눈짓을 보내자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한걸음 밖으로 나가자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적당한 긴장감과 떨림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작은 흥분 속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눈빛은 상대방을 향해있고, 온 신경을 거기에 쏟아붓고 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상대방에게 달려들었다.

한 쌍의 나비 날개와 같이, 2개의 검은 같은 궤적을 그렸고, 서로의 눈앞에서 맞부딪쳤다.


"깨나 늘었잖아. 킨."


서로 간의 합을 몇 번 겨룬 뒤, 뒤로 살짝 물러나며 헥스가 말했다.


"나에게 걸린 돈이 있어서 말이지."


나도 뒤로 살짝 물러난 상태로 말했다.


"이거이거. 이제 완전 검투사 다됐잖아!"


헥스는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들어 왔다.

헥스의 가로 베기를 몸을 크게 숙여 피한 뒤 헥스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하지만 헥스도 상체를 살짝 비틀어 찌르기를 피함과 동시에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려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했다.

한쪽 팔로 방어하려고 했지만 예상외의 공격이라 제시간에 방어하지 못했고, 그대로 머리를 맞은 나는 몸의 밸런스를 잃고 시야가 흔들렸다.


승기를 잡은 헥스는 곧바로 자세를 갖춰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 했으나, 순간 눈앞에 모래가 뿌려져 한쪽 팔로 눈을 보호했다.

팔을 내리고 나니 헥스의 시야에는 다시금 서서 자세를 잡고 있는 킨이 있었다. 헥스의 입가에는 미소가 올라왔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전혀."


헥스에게 한 방 맞은 나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저 녀석이 여유롭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열이 확 올라왔다.

나는 이 뜨거움 그대로 헥스에게 돌진했다.


한 합, 두 합, 세 합 계속해서 검과 검이 맞부딪친다. 이대로 이어나가면 상대가 먼저 체력이 바닥나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헥스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검을 막는 것에 치중했다. 상대의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히 보이고, 헥스가 이제 공격으로 전환하려는 찰나

헥스는 왼쪽 발의 균형을 잃었다.


무리하게 연속 공격을 했던 것은 함정이었다.

일부러 흥분한 듯이 연속 공격을 한 뒤 헥스가 방심한 순간을 노리고 그대로 왼쪽 다리를 걷어차서 넘어뜨린 것이다.

헥스와는 반대로 몸의 밸런스가 잡혀있는 나는 그대로 검을 내리쳤으나, 그걸 예상한 듯 헥스는 빠르게 굴러서 회피하고 일어나 자세를 갖췄다.

나는 숨이 가파 오는 와중에 미소를 내보내며 말했다.


"이제 1대1인가?"


"그렇네."


이제 서로 간에 여유 같은 건 없어졌다. 숨은 거칠 대로 거칠어져있고, 아마 다음의 몇 합으로 승부가 결정될 것이다.

나는 헥스를 향해 돌진했고 우리의 검은 격돌했다.


1격이 막히고 2격을 준비하려는 찰나, 헥스는 자신의 검으로 내 검을 휘감아 날려버렸다. 지칠 대로 지쳐 악력이 약해진 내 손에서 검은 터무니없이 날아갔고, 당황한 나를 놓치지 않고 헥스는 나를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헥스 녀석 이런 기술은 또 어디서 배운 거람. 내 검을 날려버린 기술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역시 헥스는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배울 점이 많은 친구이다.


'이번 만큼은 이기고 싶었는데......'


경기 시작 전부터 충분히 나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 정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과 검이 맞붙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그저 헥스를 이기는 나 자신을 그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헥스에게 한방 먹였을 때는 이젠 헥스와 동등한 위치에 섰다고 생각했으나

곧바로 한발 앞서 나가버린 헥스였다.


누구보다 헥스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분하다는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속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런 나의 감정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운명은 무자비하게 내게로 다가왔다.

이제 완전 무방비가 되어 쓰러진 나에게 헥스의

검이 내리쳤다.




.


작가의말

밖으로 내보내는 첫 작품입니다.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상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만, 부디 재미있게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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