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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단편] 애견 쏘울 마스터 박 씨의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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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19.03.01 14:51
최근연재일 :
2019.03.04 15:21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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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추천수 :
13
글자수 :
16,406

작성
19.03.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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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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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4 (완결)

DUMMY

거실의 한 구석 방.


“저게 우리 보스 개요.”


중간보스쯤 되어 보이는 배바지의 남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묶여있었다.


나름 견종(犬種)에 대해 해박하다고 자부하던 박 씨였으나, 눈앞에 보이는 개는 좀 생소했다. 몸집은 도사견처럼 우락부락한데 얼굴은 요크셔테리어를 연상시켰다.


‘교배종인가?’


직접 물어본다면 어렵사리 부드러워진 분위기가 다시 차갑게 얼어붙을지도 모른다. 박 씨는 그냥 그렇게 혼자 추측하는 것으로 궁금증을 눌렀다.


“공원 쪽으로 나가는 문은 저기,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 이름은 ‘뽀빠이’니까··· 에이, 아니다. 그냥 나처럼 생긴 사람이 보일 거야!”


왠지 할 말을 다 시원하게 하지 못한 것 같은 배바지의 남자는 개 목줄을 풀어 박 씨에게 내밀었다. 남자의 손목 아래에 ‘英雄本色’이라고 새겨진 문신이 보였다.


그가 ‘영웅’처럼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박 씨 자신보다는 찌질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박 씨는 목줄을 받아 쥐고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새벽 2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개를 끌고 나가면서 박 씨는 생각했다. 이런 시간에 그렇게 큰돈을 줘가면서 산책을 시켜야만 하는 개라면 성질이 더러운 걸까? 주인이 목줄로도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그게 아니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곤란한 병이나 장애라도 있는 걸까?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게 주인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비록 살벌한 조폭 보스라도 하나의 인간이기에 측은지심은 있는 법. 여기저기 썰고 쑤시고 다니면서 다하지 못한 인간의 도리를 이 개를 돌봄으로써 만회하려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개는 멀쩡했다. 외상도 없고, 장애도 없어 보이고, 아파 보이지도 않았다. 우락부락한 체구에 비해 순해 보이고 사람을 잘 따르기까지 하니, 박 씨가 보기에는 영 이상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공원 산책 트랙에 들어선 후 한 1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멀쩡하게 잘 걷던 녀석이 갑자기 뒤뚱거리면서 낑낑대기 시작했다.


“야, 너 갑자기 왜 이래?”


놀란 박 씨는 흐릿한 가로등 아래에서 개를 세우고는 이곳저곳을 살폈다. 어디를 다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똥오줌이 마려운 표정도 분명 아니었다.


갑자기 산책을 나와서 힘이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박 씨는 개를 가까운 벤치 옆 잔디에 앉혀서 숨을 고르게 했다.


색색거리던 숨은 거칠어지다가 잦아들다가를 반복했다. 불편한 모습의 개를 지켜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박 씨가 서 있는 곳은 이제 겨우 공원 트랙의 3분의 1 정도를 지난 지점이었다.


개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서 일으켜서 나머지 트랙을 돌고 싶었다. 트랙이 끝나는 지점에는 공원 후문이 있고, 거기에는 일억 원이 기다리고 있다.


박 씨는 마라톤 선수가 마지막 결승지점을 통과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극한의 고통을 견뎌낸 진정한 승자만이 느끼는 희열. 그것을 인생에서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박 씨는 그 마라톤 선수가 자신이라고 감정이입을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두 팔을 하늘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한여름이지만 밤의 공기는 신선했다. 짜릿한 흥분으로 몸이 달아오르자 땀이 솟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앉아있는 개를 내려다보았다.


“야, 안 되겠다. 빨리 좀 가자!”


박 씨는 두 손을 가슴 쪽으로 모아서 양 겨드랑이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처럼 열정적이고도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겨드랑이가 슬슬 젖어 들자, 박 씨는 다시 트랙 쪽으로 걸어 나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개는 어느새 몸을 일으킨 채로 혀를 내밀고 있었다.


박 씨는 트랙을 걷다가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마라톤 선수의 자세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경쾌한 반복이 트랙 위에서 이어졌다. 밤의 상쾌한 공기가 얼굴에 붙은 땀을 날려주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개는 침을 흘리면서 박 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좀 전의 불편한 표정과 몸짓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박 씨와 개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그 한 곳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50m··· 40m··· 30m··· 20m··· 10m···.


골인-!


박 씨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뒤따라오는 개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환희! 이 희열! 지금의 이 감정은 평생에 한 번 느껴볼까 말까 한 것이다.


저만치 앞에서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 저 사람이 바로··· 뽀빠이-!’


박 씨는 개의 목줄을 쥐고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승전을 알리는 의기양양함에 개선장군의 당당한 걸음걸이까지. 박 씨의 인생 앞에는 이제 그 어떤 것도 거칠 것이 없으리라!


그에게 목 노아 외치고 싶었다. 나 이렇게 여기까지 왔노라고!


“뽀빠이 맞으시죠?”


번쩍-!


그렇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박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주변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고, 그 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저 새끼 맞나보다. 빨리 덮쳐!”


여기저기서 사람이 뛰어드는 소리, 사이렌 소리, 무전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팔이 뒤로 꺾였고, 머리채가 잡힌 채로 얼굴이 어딘가에 세게 부딪쳤던 것도 같았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얼굴이 부딪치면서 한쪽 귀에서 삐이- 하는 소리를 울렸고, 그 틈으로 아주 작게 기계음 같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뽀빠이도 잡았지?”

“네-!”

“빨리 수갑 채우고··· 저기 저 개는 뭐야?”

“모르겠습니다. 같이 왔는데요.”

“혹시 모르니까 끌고 가!”

“네-!”


박 씨는 이 모든 게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아니,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경계에서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





경찰서 안 취조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제법 어두웠고, 상당히 더웠고, 매우 무서웠다.


박 씨는 아직도 정신이 들지 않는지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수갑을 찬 자신의 두 손에 머물렀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문이 열리면서 담배를 문 형사 하나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희미한 조명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배바지의 건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탕-!


서류철을 책상 위에 거칠게 던지면서 앉는 움직임까지도.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박 씨는 마른침을 삼켰다.


“뽀빠이를 만나라고 시킨 게 누구야?”

“네?”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다 불어! 가중처벌 받기 싫으면.”

“저는 그냥 제 고객님 요청으로 개 산책을···.”


최대한 침착하려 했으나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선 누구라도 이성이 마비되기 마련 아닌가?


“개 항문에서 필로폰이 나왔어!”

“네에?”

“한 일억 원어치 되겠던데?”

“그, 그게 무슨?”


형사의 입에서 일억 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소름이 끼치는 걸까? 환희와 희열의 감정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박 씨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당신이 연결책인가?”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피, 필로폰이라니요···.”

“당신 메신저 가방에서 고객리스트가 나왔는데.”

“그건 제 방문 고객··· 제 직업이 애견 쏘울 마스터라서···.”

“애견 뭐라고?”

“애, 애견··· 애견···.”

“아! 같이 따라온 그 개! 그 개는 당신 입고 있던 핑크 가운 냄새를 맡고는 침을 흘리면서 쓰러지던데···. 거기에 필로폰 흘린 거 아니야?”

“그, 그게··· 저는 애견··· 쏘울···.”

“자꾸 거짓말할 거야?”


탕-!


다시 책상을 거세게 내려치는 형사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은 칼자국의 보스보다도 더 살벌했다.


박 씨의 몸에서 땀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긴장과 공포로 턱도 떨리고 있었다. 애처로운 얼굴이었지만 간절함도 가득했다.


박 씨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를 썼다. 숨을 크게 들이켜면서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가능성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 가능성은···.


“제가 개로몬을 발산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그걸 아이템으로 잡아서 사업을 시작했지요.”

“뭐라고?”


형사의 얼굴은 점점 더 험악해져 갔지만, 박 씨는 개의치 않았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서 박 씨도 이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렇게 겨드랑이를 마구 흔들어 대면···.”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박 씨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 속에서 꿋꿋이 버텨낸 것처럼, 500만 원으로 사업 기회를 잡아낸 것처럼, 또 위험을 무릅쓰고 범서방파의 소굴로 들어간 것처럼.


박 씨는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양 겨드랑이를 펄럭였다. 분명히 아버지가 자신을 도와주실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야···.”


형사가 코를 쥐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박 씨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어느새 박 씨의 양 겨드랑이는 시커멓게 젖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음영, 그 어느 때보다 농익은 향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가만히 안 있어? 이거 왜 이래?”


박 씨의 이마에 고여 있던 땀이 눈썹을 넘어 얼굴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금세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박 씨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필살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애견 쏘울 마스터’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때, 취조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젊은 형사 하나가 들이닥쳤다.


“저, 큰일 났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왜?”


코를 막고 있던 형사가 돌아보며 물었다.


“자···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인데?”

“바깥에···.”

“바깥에··· 뭐가?”


두 형사는 취조실 문을 열어둔 채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웅성대는 소리, 때로는 비명, 급히 문을 닫는 움직임, 그리고 또 아우성···.


경찰서 안은 무슨 사고라도 난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박 씨를 취조하던 형사는 경찰서 유리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300마리는 족히 넘을 만한 개떼들이 경찰서를 완전 포위하고 있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사색이 된 형사는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뭐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취조실 안에서는 박 씨가 여전히 양 겨드랑이를 펄럭이고 있었다.



- 끝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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