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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장례지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papapa.
작품등록일 :
2022.12.01 14:19
최근연재일 :
2023.01.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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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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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재회의 속삭임 (3)

DUMMY

그래, 낯선 공간에 불러낸 사람이 갑자기 무릎 꿇고 매달려서 살려달라는데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영혼 잃은 사일리카 정도면 또 모를까 에레씨는 엄연한 인간이 아닌가. 꽤 오래 살긴 하셨지만 말이다.


나는 차근차근 내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에 관한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패스, 이어서 우리와 나, 어머니 사이에 일어난 현 상황을 타파할 사람이 에레씨밖에 존재하지 않음을 강력히 피력,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에레씨는 이해력이 참 뛰어난 분이셨다.


“으음, 그러니까 여기가 장의사님이 사는 세계라는 말이죠?”

“넵.”

“되게 번잡하네요.”


에레씨는 아직도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계셨다.

다행히 뒷골목이라 오가는 사람은 없지만 서울의 빼곡한 빌딩 숲 정도는 에레씨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래, 인구 밀집도면 전 세계 어딜 가도 밀리지 않는 도시의 풍경을 보는데 신기하지 않은 게 이상할 터다.


“어머니 대행이라···.”


톡톡 에레씨가 검지로 뺨을 두드리셨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어려운 일 같진 않네요. 그리고··· 음, 아니에요.”


천사인가. 아니, 생각해보면 진짜 천사가 맞긴 하다. 굳이 따져보자면 에레씨는 창조주의 대리자니까.

히야, 웃는 얼굴도 예술이시다. 저게 성모 마리아고 예수지.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이, 일단 옷차림부터 어떻게 해볼까요? 에레씨 전에 했던 옷바꾸는 마술 또 하실 수 있나요?!”

“네. 쉬운 일이죠.”


나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디 보자··· 하이스펙 커리어우먼에 어울리는 복장 하면 역시 정장이다.

에레씨는 비율도 좋으니 옷태가 살아나는 형태의 정장을 보여드리면 될 터다.

바로 여성용 정장을 검색, 개중 튀지 않으면서도 고급진 인상을 주는 정장을 클릭해 보여드렸다.


“이, 이게 뭔가요?! 이렇게 작은 상자에 이런 그림이···!”


에레씨가 토끼 눈을 뜨셨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신다.

아차차, 에레씨는 스마트폰도 모르시는구나.


“나중에 차근차근 설명해드릴게요. 그보다 이 복장 가능하시겠어요?”

“가, 가능은 한데···.”


라고 말한 에레씨가 지팡이로 바닥을 콕! 찍자 에레씨의 의상이 순식간에 정장으로 바뀌었다. 지팡이도 손목시계로 둔갑했다.


“아, 머리랑 눈 색도 바꿔주실 수 있나요? 저랑 같은 색으로요.”

“네.”


톡, 에레씨가 관자놀이를 검지로 친 순간이었다.

나는 심장이 덜컥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됐나요?”

“어···.”


미친, 뭐야. 왜 이렇게 예뻐.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단정함과 고급스러움을 한 번에 잡은 정장까지 입은 에레씨는 단언컨대 내가 살아생전 봐온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정신이 멍해졌다.


“장의사님?”

“아, 네, 넵!”


이 군기든 대답은 뭐냐. 우석아, 왜 이렇게 병신같이 굴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괴감이 엄습하는데 풀 길이 없어 마른세수로 겨우 안색을 되돌렸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조, 좋아요. 대략적인 설명은 올라가면서 해요. 아마 말을 할 일은 많지 않을 거예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네.”


웃지 말아주세요.

얼굴이 너무 뜨거워져요.

나는 전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




방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이놈아! 전화하러 간다는 놈이 뭐 이렇게 늦···!”


뚝, 나와 함께 들어온 에레씨를 보자 성질을 내던 어머니가 멍해지셨다.

나와 똑같은 반응, 내가 어머니 아들이 맞긴 한가보다.


“···어.”

“엄마, 이 사람이에요.”


어머니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다.

시선이 나와 에레씨를 오간다.

응, 그래. 엄마가 봐도 참 미인이지? 이런 사람이 왜 나랑 결혼했나 싶지? 걱정마. 결혼한 거 아니야.


“그으···.”


어머니가 말을 줄줄 흘리신다.

아직 들이닥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시는 듯하다.

그 순간이었다.


“으랴!”

“아, 우리야.”


에레씨를 본 우리가 환하게 웃으며 도도도 달려와 에레씨에게 안겼다.

에레씨가 웃으며 우리를 안아 들었다.

사이 좋은 모녀의 모습이다. 그림이 아주 좋단 말이다.

우리야! 잘했어!


“엄마 인사해요. 이쪽은 그··· 예, 예리씨! 내 아, 아내···!”


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흘긋 눈을 굴려봤는데 에레씨도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닌지 뺨을 붉히고 계셨다.

죄송해요. 에레씨!


“예, 예리···.”


어머니가 중얼거리셨다.

그러고 난 이후에나 조금 정신이 돌아오신 걸까, 뒤늦게 “큼! 크흠!” 헛기침하며 무게를 잡으셨다.

그리고 외치셨다.


“그, 그래! 일단 이리로 오셔요!”


근데 엄마, 그거 존댓말이야.

에레씨가 웃으며 거실로 들어오셨다.




*




에레는 참 낯선 기분을 느꼈다.

홀로 사막을 걷던 중 돌연 풍경이 바뀌어 도착한 곳은 회색의 탑이 빼곡이 세워진 기이한 세계. 눈앞에 있는 것은 우석.

당황스럽고 또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게 싫으냐 하면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가 어버이께 닿은 걸까, 헤어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와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에레는 가장 먼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고, 이어 반가움과 떨림을 느꼈다.

뿐만 아니었다. 조금 주책맞은 감정이긴 했지만 우석이 우리의 어머니 역할을 해달라고 말한 순간엔 기쁨도 느꼈다.

그가 자신을 그만큼 신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다.


‘장의사님의 어머니라···.’


막상 올라와 만난 우석의 어머니는 우석과 참 닮은 점이 많은 여인이었다.

조금 허술한 면도 그렇고, 어투나 행동도 그렇고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확실히 느껴지는 게 그랬다.


“이, 일단 이거라도 마셔요.”


어머니가 기이하게 생긴 잔에 기포가 올라오는 물을 따라 주셨다.


“사, 사이다네?”


우석이 말하면서 눈짓한다.

사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곳의 차 중 한 종류가 아닐까.

목이 마를까 이런 것까지 챙겨주시는구나.

괜히 기쁜 마음이 들어 에레는 잔을 들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라고 말한 순간, 에레는 순간적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떠올렸다.


‘아, 앗차아···!’


말이 이상하다.

지금 자신은 손님이 아닌 집주인, 어머니 쪽이 손님이다.

집주인이 손님처럼 행동하는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단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말은 내뱉은 시점, 고치긴 글렀으니 차라리 말을 덧붙이자.


“죄송해요. 제가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무안함에 잔을 꼭 쥐며 말하자 어머니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당황하신 듯 움찔대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우. 그냥 드쇼.”


어찌 이리 배려심이 있으신 걸까.

에레는 감동하며 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한 모금, 사이다라는 것을 먹는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이, 이게 뭐야?!’


혀끝에 액체가 닿는 순간 간질간질, 목으로 넘기는 순간 목이 콩콩, 그럼에도 그게 아프게 느껴지지 않고 묘한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그뿐만 아니라 사이다에선 에레가 살면서 먹어본 것 중 가장 진한 단맛이 났다. 에레의 눈이 번뜩 뜨였다.


“와! 정말 맛있네요!”


뺨에 홍조까지 띄워내며 외친 말.

그것에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 그래···?”


‘앗! 이번에도 집주인이 하면 안 될 행동을!’


에레는 낭패 어린 심정을 띄워 올렸다.

에레는 심장이 쿵쾅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선 수습의 말이 찰나에도 수십 개씩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다행인 일이 있었다. 그 묘한 분위기를 우리가 깨주었다.


“샤댜!”

“으, 응?”

“샤댜! 샤댜!”


우리가 잔을 향해 손을 뻗는다. 눈이 부릅 뜨여있는 게 이 차를 이미 알고 있는 데다 꽤 좋아하는 듯하다.

어머니의 성의를 거절하는 건 죄송스럽지만 이리 차를 마시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거절을 말하기도 뭣해, 에레는 곧장 우리에게 잔을 넘겨줬다.


“천천히 먹어야 한다? 급하게 먹으면 목이 따가워질 거야.”

“꺄아!”


우리가 혀를 쭉 내밀고 핥짝핥짝 사이다 표면을 핥기 시작했다. 그리할수록 눈은 가늘어지고 뺨은 말갛게 타올랐다.

아, 저렇게 먹으면 목이 따가울 일이 없겠구나.

에레는 깨달음을 얻었다.




*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우리 어머니, 상당한 얼빠다.

그게 아니라면 에레씨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내내 당황하며 사족을 못 쓰시는 게 설명이 안 된다.


···아무튼 좋다면 좋은 일일까.

나는 뜻밖의 돌파구를 찾아내 곧장 어머니를 몰아붙였다.


“어, 엄마. 얘기 못한 건 죄송해요! 내가 처음에 바로 말하려고 했는데 시기를 놓치니까 계속 미루게 돼서 여기까지 와버렸어요!”

“어, 어어···.”

“예리씨랑은 잘살고 있어요. 우, 우리도 착하게 자라고 있고··· 그래! 우리 이름이 나랑 예리씨 이름에서 한글자씩 따서 지은 거거든요! 우석의 ‘우’자랑 예리의 ‘리’자요!”


생존본능에 의거한 거짓말이 청산유수로 터져 나온다.

어머니의 얼굴에 조금씩 납득이 깃들기 시작한다. 아니, 그냥 에레씨 얼굴에 충격을 받고 계신 건가.

아무튼.


“이번 명절에는 꼭 같이 인사드리러 갈게! 내가 불효 저질러서 너무 미안해요!”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번 역시 같은 말을 내뱉으셨다.


“어어···.”


음, 어머니는 지금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안 들어오시는 듯했다.


“우, 우석아.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엄마는··· 그래, 네 아빠 밥차려주러 가야겠다.”

“버, 벌써 가시게요?”

“으응, 네 아빠 혼자서는 라면도 못 끓이잖니.”

“밥이라도 같이 먹고 가시지···.”


아쉬운 듯 말하는 중에도 속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위기의 순간이 끝맺는다는 생각에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어머니가 주섬주섬 짐을 싸서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우리가 어머니를 보더니 벌떡 일어난다.


“하뮤?”


아장아장 걸어가 어머니 바지를 붙잡고 올려다본다.


“하뮤!”


우리야, 그러지마. 어머니가 집에 가셔야 한다잖니. 왜 붙잡는 거야.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그, 그래 아가. 명절에 오면 할미가 맛난 거 많이 해줄게?”


‘맛난 거’라는 말은 또 귀신같이 알아듣고 우리가 눈을 빛냈다.

그것보다도 어머니가 우리를 손녀로 인정하신 것 같다.

낭보가 이어진다.


“아··· 가시는 건가요?”


에레씨가 아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신다.

어머니가 또 뜨끔하신다. 에레씨를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하시는 게 어지간히 얼굴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으, 으응··· 우리 다음에 얘기합디다.”


아까부터 말투가 참 이상해지시네.

에레씨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네! 다음에 또 뵈어요! 꼭이요!”


에레씨가 강조하자 어머니가 닌자처럼 스스스 빠져나와 내게 다가오셨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 현관 앞으로 끌고 가셨다.


“어, 엄마?”


라고 말하자 어머니가 내 귀에 속삭이신다.


“얘, 아들. 진짜 저 아가씨가 네 마누라 맞니?”

“그, 그럼요.”

“이상하잖니! 저, 저런 아가씨가 뭐가 아쉬워서 널 만나?”


가슴에 푹 비수가 박히는 기분이다.


“부, 분명 속셈이 있을 게야! 아들! 자고로 이쁜 여자가 접근할 땐 항상 조심해야 해! 저런 아가씨가 너처럼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애를 만날 이유가 없단 말이야! 알겠니?”


문득, 에레씨를 보기 전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딴 건 몰라도 얼굴 하나는 반반하게 잘 나오지 않았니. 걔가 널 입맛대로 굴리려고 친정에 아가를 숨긴 겔 수도 있는 게야!


아무래도 어머니의 머릿속에선 나와 에레씨의 급이 이미 극명하게 갈려버리신 듯하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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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나, 너, 우리 (2) +6 22.12.29 1,169 6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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