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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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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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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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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화

DUMMY

이안은 베르세르크 자작가의 셋째 아들로 환생했다.

말이 좋아서 자작가지, 그냥 변방의 작은 영지를 가지고 있는 몰락할 대로 몰락해 버린 귀족.


밖으로 나간다면 어디 가서 제대로 귀족 취급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안은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워낙 굶주리고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가난한 자의 삶을 직접 목도해왔다. 소작농의 힘들고 고된 삶을 보면 지금의 삶에 감사함 마저 느꼈다.


남의 불행을 보고 삶에 안도를 느끼는 태도에 양심이 찔렸으나 소작농의 거친 일상과 허름한 행색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행한 그들을 보고서도 가끔 현대의 삶이 그리웠다.

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생맥주에 단골집 음식을 시켜 먹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처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


몰락한 귀족의 셋째 자식이지만 귀족가에서 태어났다는 것부터 이 세상에서는 커다란 이점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디 가서 쉽게 무시당하지 않는다.


귀족들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사소한 예법, 심지어 말투와 억양마저 달랐다.


귀족으로 태어나서 자라난 사람들만 보고 알 수 있는 사소한 요소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신분을 구별하는 하나의 역할을 했다.


그렇게 너무 깊은 생각에 빠졌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쓸데없는 잡념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어이, 이안. 또 사냥하러 나가냐?”


장남인 하른 베르세르크가 이안을 향해 껄렁거리며 걸어오며 질문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차가웠다.


감정을 숨길 것이면 제대로 숨길 것이지. 너무 티가 난다. 어리숙하긴.


공국은 장자 계승의 원칙을 따른다. 장남인 하른이 다음 가문을 이어받을 놈이다.


뱀같이 번쩍이는 샐쭉한 눈동자는 언제든지 틈만 나면 약점을 찾아다닌다. 그런 모습이 우스울 뿐이다.


지난 삶의 경험과 근육으로 잘 단련된 신체. 작고 별 볼일 없는 하른과 비교가 되었다.


“네. 하른 형님. 제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겠습니까? 나중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용병이라도 되려면 열심히 산이라도 타며 체력을 길러야죠.”

“그래? 그게 너에게 딱 어울리는 직업이긴 하겠구나.”


용병이 되겠다는 말은 반쯤은 진심이었다. 어차피 가문을 이어받는 자는 장남. 그 아래는 은화 한 닢조차 받아 가지 못한다.


부유한 가문이라면 장남이 관례로 재산을 조금씩 나눠주거나, 영지에서 괜찮은 자리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방의 작은 영지에서 무엇을 받아 가겠는가. 거기에 하른 베르세르크는 혹시나 이안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까 견제했다.


물론 이런 영지는 줘도 안 받을 것이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 가문에서 아주 대단한 용병이 하나 나오겠어. 하하하!”


비꼬듯이 하른은 말하면서 이안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과거에 이죽거리다가 이안에게 대차게 얻어맞은 뒤로는 저런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힘도 안 되는 놈이 까불거리기는.


하른의 말이 너무 같잖아서 반응해 주지 않았다. 자신의 입만 아플 뿐.

그저 한 귀로 흘리는 것이 마음 편했다.


한편으로 하른은 누군가에게 영지를 뺏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없는 건가. 지금 당장 도적들이 무리 지어 침입해도 막을 힘이 없었다.


영지를 지킬 수 있는 기사는커녕 병사라고는 해봤자 사실상 농민으로 이루어진 집단일 뿐이었다.


모아둔 돈도 없고 비축한 곡물조차 없었다.

심각한 흉년이 찾아오거나, 전염병이 퍼지거나 혹은 강력한 몬스터 무리라도 근방에 나타난다면 이곳은 그냥 망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 한편으로 이런 별 볼 일 없는 영지라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운이 따르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하른의 세대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하른을 무시하고 장비를 챙겨입었다.


오래전 가문의 창고 구석에 박혀있던 먼지 가득 묻어있던 가죽 갑옷을 찾아냈다. 그 위에 사슬 갑옷을 덧입었다.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껏 사냥한 동물들의 가죽을 다 팔고서야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허리띠에 찬 숏소드는 관리를 해서 날이 상하지 않고 예리했으나 손잡이는 낡아 오래된 흔적이 남아있다.


"쯧."


그런 모습이 꼴 보기 싫다는 듯 하른이 뒤돌아서 걸어 나갔다.


하른 저 자식. 사실 겁을 먹은 게 확실했다.



* * *



귀족 출생으로 밖으로 나와 거친 용병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못해도 다른 귀족 가문의 소속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고 각종 교육을 받았으니까. 다른 이들에 비한다면 귀족 출신의 사람들은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괜찮은 일을 찾으려면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일찍이 기사로 훈련을 받은 이들은 다른 가문으로 가서 훈련하면서 자신을 받아줄 귀족 가문과 교류하기도 했다.


가끔 용병으로 영지 전에 참여하는 기사들이 간혹 있기는 했으나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지. 용병을 업으로 삼는 이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까지 기사가 되는 훈련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가르쳐줄 만한 기사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하지만 어지간한 기사라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단순히 커진 근육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이안에게 한가지 비밀이 있다.


어릴 적 사냥하면서 알게 되었다. 토끼를 활로 잡고 기뻐했을 때.

처음으로 몸 안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와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힘이 온몸에 뿜어져 나와 몸 주변을 감싸는 기운.

아직도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을 선사했다.


생명체를 죽이면 힘을 얻어 강해진다는 것. 어디서 말하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 딱 좋은 이야기.


그렇기에 누구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것은 누구에게 선망의 대상이라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니까.


하른은 어린 시절부터 매번 언젠가는 밖으로 나갈 놈이라면서 나가서 뭐 하고 살 것이냐며 놀려댔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해야 했다.


매일 검을 휘두르고 현대의 지식으로 가진 각종 근력 훈련을 병행했다.


거기다 불행 중 다행인지 초대 가주가 가진 베르세르크 가문의 오러 연공법이 남아있었다.


분명 연공법이라면 매우 귀한 것일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의 서재 한구석에 박혀있었다. 도저히 이 가문은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지 경영을 놓아버려서 이 꼴로 바뀌는 시작이었겠지.


꾸준히 수련해 왔지만, 지금이 어느 정도의 경지며 얼마만큼 강한지 자신도 잘 몰랐다.

이런 변방에서 얻을 정보란 많지 않았고 서재에 남은 서적들도 다 옛것이라 쓸만한 게 없었다.



***



밖으로 나와서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앉은 상태로 자연의 기운을 들이마시려 노력했다.


연공법을 통해 익힌 마나가 몸속에 형성한 회로를 따라서 순환한다.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지만 연공법을 어느 정도까지 익힐 수 있었던 것은 책 아래에 첨부된 각종 주석이 큰 도움이 됐다.


어느새 몰입 상태에 눈을 뜬 이안은 심장 부위에 마나가 가득 찬 것을 느꼈다.


순간 벌떡 일어나서 몸을 살펴보았다.

몸 주변에 오러가 일렁인다.


비록 검과 같은 다른 물체에 오러를 옮기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나.


몸 주위에서 순환하는 오러로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책에서 본 소드유저의 경지.


다음은 다른 물체에 기운을 넣을 수 있는 익스펙트의 경지다.


베르세르크 연공법을 뒤늦게 접한 상태에서 이안은 이것이 빠른 성취라는 것을 몰랐다.


다만 드디어 오러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울 뿐이다.



***



하인이 달려와서 이안에게 말을 전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부르신다니. 그와 대화를 나눠본 적도 몇 번 없었다.


그런데 직접 부른다는 소리에 정신이 멍해졌다. 정말로 아버지가?


집무실 안으로 노크하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안이 태어난 후 그는 영지 전에서 한쪽 팔을 잃고 아내마저 잃었다.


그는 삶의 의욕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있는 것은 변방의 작은 영지 하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 놓은 채로 폐인처럼 살아갔다.


집무실 안에서도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자,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부르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이제 저는 떠납니다. 어쩌면 이번이 보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요.”


이안의 말에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나가겠습니다.”

“······이걸 가지고 가거라.”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쉰 목소리.


이안은 고개를 들어서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못 본 사이에 어느새 더 늙어 주름지고 눈동자는 어두웠다. 퀭한 얼굴. 그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 같다.


그는 방에 걸려있는 대검을 한쪽 팔로 들어 올렸다. 덜덜 떨리는 빈약한 손으로 간신히 탁자 위에 올려다 놓았다.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드는 순간만큼은 아버지의 눈빛이 잠깐이나마 맑아졌다.


“대대로 내려오던 검이다. 우리 가문의 초대 가주님께서 쓰시던 물건이지. 그 뒤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누구도 감히 휘두르지 못한 검이다. 어쩌면 너라면 쓸 수 있을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란 사람과 이야기를 해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식이 떠날 때가 되니까 어떤 마음의 변화라도 찾아온 것일까.


집어 든 묵직한 검이 손에 착 달라붙었다. 검을 왜 휘두르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으로 만든지 모르는 대검.


크기만큼 엄청난 무게를 자랑했다. 사냥하면서 강해진 이안 조차 깜짝 놀랄 무게.


도대체 초대 가주라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보통 사람은 들어올리기도 힘들 것이고 오러 연공법을 제대로 익힌 숙련된 기사 정도가 되어야 쉽게 휘두를 수 있는 무게의 검이다.


특별한 능력으로 강해지지 않았다면, 감히 이걸 휘두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



처음에 베르세르크 가문의 아이가 찾아왔을 때는 웨이스는 당황스러웠다. 마을 어른들도 무서워서 감히 못 들어가는 숲에서 사냥꾼의 기술을 배우겠다니.


비록 몰락했지만, 귀족 집안의 아이였다. 함부로 안된다고 거절하기 힘들었다.


빨려들 것 같은 푸른 눈동자로 바라보던 아이.


진지한 얼굴을 보자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그때 조심스럽게 왜 배우려는지 묻자, 이안이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도대체 왜 공자님께서 천한 사냥꾼에게 사냥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살아남고 싶으니까.”


이내 웨이스는 다가오는 이안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어렸을 때 귀여웠던 꼬마는 어디 가고 어느새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근육질의 사내가 서 있다.


몸은 달라졌지만,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어렸을 때와 같았다.


"웨이스 오늘도 잘 부탁해."

"하하하. 이제는 제가 공자님께 배워야죠.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웨이스트를 보더니 이안은 아쉽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사냥이 될 것 같아."


웨이스는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억지로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

“하하하. 잘됐습니다. 이안 님이 이런 촌구석에 마을에서 머무를 분이 아니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럼 가보자고."


사냥꾼으로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올라가면서 땅에 남겨진 발자국이나 각종 흔적을 살피는 것.


짐승들이 다니는 길은 일반인으로는 구별이 안 되지만, 숙련된 사냥꾼들에게는 보인다.


숲 한쪽에 미세하게 꺾인 가지들과 그들이 지나가면서 생긴 희미한 흔적들.


사냥꾼이란 동물과 정면으로 대결해서 잡는 존재가 아니다. 안전이 우선이다.


덫이나 올무를 이용해 꼼짝 못 하게 한 다음 잡는 것이 기본이었다.


만약 운 없게 거대한 멧돼지나 늑대 같은 맹수를 마주치게 된다면 함부로 뒤를 보이면 안 되었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며 짐승이 먼저 포기하고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최선.


하지만 짐승이 공격해 온다면 온 힘을 다해 무기로 대항해야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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