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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르송 님의 서재입니다.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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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갸르송
작품등록일 :
2019.04.01 23:19
최근연재일 :
2019.04.11 00:11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939
추천수 :
20
글자수 :
68,595

작성
19.04.04 23:48
조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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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7화

DUMMY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숨 가쁜 점심시간이 끝났다.

손님이 빠져나간 테이블은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고, 주방에는 설거짓거리가 산더미다.


"오빠. 오늘은 왜 이렇게 힘이 없으세요?"


최보름이 임도윤의 상태를 걱정했다. 이틀 연속으로 술자리를 가진 탓에, 집에서 제대로 쉬지 못한 임도윤의 눈 아래에 그늘이 져 있었다.


"오늘은 좀 피곤하네."

"몸이 어디 안 좋으세요?"

"그런 건 아니야."

"안 되겠다. 오빠 앉아서 좀 쉬세요. 마무리는 제가 할게요."

"괜찮아. 고마워."


최보름을 도와주기 위해 홀에 나와 있던 임도윤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최보름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연신 보내고 있었다.


'좀 부담스럽네.'


출근할 때부터 최보름은 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일하는 중에도 틈만 나면 다가와 괜찮냐고 묻곤 했다.

임도윤이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걱정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체력이 방전돼서 비틀거리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름아. 뭐 먹을래?"

"아, 어, 저 아무거나 괜찮아요."


매일 반복되던 질문이었지만 최보름은 오늘따라 말을 더듬었다. 메뉴를 확실하게 말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다.


"음.. 뭐하지."

"아, 오빠! 오늘은 제가 해드릴게요. 오빠는 쉬세요."

"요리할 줄 알아?"

"몇 번 해봤어요. 맡겨두세요!"


최보름이 주방으로 들어와 임도윤의 등을 밀었다. 임도윤은 어거지로 주방에서 쫓겨났다.


"메뉴는 제가 선택할게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거든요."

"알겠어.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혼자 할 수 있어요. 앉아 계세요."


최보름은 소매를 걷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임도윤은 테이블에 식사할 준비를 해두고 멀찍이서 최보름을 지켜봤다.


"앉아 있으라니까요!"

"하하. 알겠어."


임도윤은 마지못해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벽에 등을 붙이고 있으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최보름은 요리를 끝내고 음식을 옮기기 위해 홀로 나왔다. 임도윤이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게 보였다.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릇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나머지 음식을 가지고 올 때도 살금살금 움직였다.


음식을 모두 내놓았을 때도 임도윤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보름은 반대편에 앉아서 임도윤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기만 했다.


"어음.. 아, 미안. 깜빡 잠들었네."


임도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최보름의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들이 보였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솜씨 발휘를 좀 했죠. 히히."


테이블에는 해물탕, 달걀찜, 시금치 무침 등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간단한 음식들이지만 이 많은 걸 혼자서 했다는 걸 떠올리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 나 오래 잤어?"

"아뇨. 저도 조금 전에 끝났어요."


해물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깨우지 그랬어."

"깨우려고 했는데 오빠가 일어나더라구요. 이제 먹어요! 배고프다."

"고마워. 잘 먹을게."

"네! 많이 드세요."


임도윤이 해물탕의 국물을 떠먹었다.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숙취를 해소하기에는 딱 맞았다. 숙취를 느낄 만큼 술을 많이 먹지는 않았었지만, 없던 숙취를 만들어 줄 정도로 맛있었다.


"맛 어때요?"


최보름이 물었다. 자신은 한 숟갈도 먹지 않고, 임도윤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진짜 맛있다. 요리 배운 거야?"

"아뇨. 집에서 한 번씩 하는 정도에요. 부모님 어깨너머로 배운 거죠."


임도윤에게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최보름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훨씬 나은데?"


실제로 그랬다. 임도윤은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레시피에 따른 요리밖에 하지 못한다. 요리가 아닌 조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오빠는 요리에 센스가 있잖아요."

"딱히 그렇지는 않은 거 같은데."

"딱 보면 알아요. 저희 부모님이 요리사거든요."


어쩐지 최보름의 요리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을 연상케 하는 맛이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주방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부모님이 요리하는 걸 자주 봐서 그런지, 요리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래도 아깝다. 실력이."


임도윤이 음식을 골고루 집어 먹으며 말했다. 최보름은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임도윤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도 그냥 요리할까요?"

"실력이 아깝긴 한데,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지."

"싫은 건 아니에요. 오빠랑 음식점 차리려면 저도 요리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어?"


임도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번에 장난삼아서 했던 농담이 진심이었던 건지 헷갈렸다.


"저랑 같이 음식점 하기로 약속했었잖아요. 기억 안 나요?"

"아니.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닌데.. 진심이었어?"

"당연하죠! 농담인 줄 알았어요? 섭섭해지려고 그러네."


최보름이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임도윤은 이것도 진심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었다. 최보름이 정말로 섭섭해한다고 치더라도, 임도윤이 더 당황하고 있었다.


임도윤 역시 자신의 음식점을 가졌다고 떠올렸을 때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기는 했었지만, 막연한 상상이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쉽게 정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몰라요. 저는 그렇게 정했어요. 약속했으니까 어기면 안 돼요."


최보름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임도윤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장난이겠지?'


최보름은 삐진 척을 하거나 울먹이는 표정을 짓는 등 장난을 많이 쳤었다. 임도윤은 지금 최보름의 행동도 장난일 거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미래를 한마디 말로 쉽게 정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들끼리 동업을 약속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빠. 저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아.. 하하.. 그래."


최보름의 날카로운 말에 임도윤이 뜨끔했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거 같았다.

최보름의 시선은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마주치던 최보름의 태도가 바뀌자 임도윤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음식점 차리는 게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어렵지 않을까?"

"저 어제 적금 통장 만들었어요."

"그래도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인데.."

"십 년이 걸리든 이십 년이 걸리든 상관없어요.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최보름의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여전히 임도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임도윤은 머릿속이 복잡해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풉. 오빠, 장난이에요. 밥 제대로 먹어요."

"그, 그래? 그럼 그렇지. 고마워, 보름아."


임도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를 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 게 고마웠다. 힘든 시련을 겪고 나서 먹는 밥은 더욱 달게 느껴졌다.


"오빠가 제 이름 불러준 거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랬나? 그런 것도 신경 쓰고 있었어?"

"그냥 그렇다구요."


최보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었다. 임도윤도 편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오빠. 그런데 적금 통장 만든 건 진짜예요."


임도윤이 젓가락질을 멈췄다. 등골이 오싹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반응해요. 제가 필요해서 만든 거예요. 아하하."


최보름이 호탕하게 웃었다. 임도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었다.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대놓고 놀림을 당한 것인데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빠. 그런데 왜 연락 안 했어요?"

"무슨 연락?"

"이틀 전에요. 보통은 같이 있다가 헤어지면 잘 들어갔는지 물어보지 않나? 이건 진짜로 섭섭해요."


최보름이 볼에 바람을 불어 넣고 삐진 척을 했다. 정말로 삐진 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상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너도 연락 안 했잖아."

"오빠가 연락하나 안 하나 일부러 기다린 거에요!"

"내가 왜 연락을 안 했을까?"

"이 오빠 봐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보나 마나 신경도 안 쓰고 있었겠지. 진짜 무뚝뚝해."


최보름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홱 돌렸다. 태연한 임도윤의 반응에 진심으로 섭섭해 질려고 했다.


"섭섭해하지마."

"싫거든요?"

"번호를 알아야 내가 연락하지. 나한테는 니 번호가 없잖아."

"앗!"


최보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오매불망 휴대폰만 바라보던 자신이 떠올랐다.


"번호 알았으면 연락했을 거예요?"

"어, 어. 당연하지."


임도윤은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번호를 알고 있었어도 연락을 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연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지만, 굳이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최보름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참고 있었다.


"제가 번호 물어봤을 때 오빠도 저한테 번호를 물어보셨어야 했어요. 맞죠?"


무안했던 최보름이 임도윤에게 화살을 돌렸다.

임도윤은 싱긋 웃었다.


"그래. 미안해."


최보름이 테이블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으로 손을 옮기다가 멈췄다.


"휴대폰 봐도 되죠?"

"어. 상관없어."


임도윤이 휴대폰을 슬쩍 밀어서 건넸다. 최보름은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제자리로 내려놓았다.


"이제 연락처 아니까 연락해야 해요."

"알겠어."

"일주일에 몇 번?"

"그런 것도 정해야 해?"

"안 그러면 연락 안 할 거 같거든요."


최보름이 임도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임도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글쎄. 몇 번이 좋을까."

"어려우면 제가 정해드릴까요?"

"그래."

"일주일에 네 번. 어때요?"


일주일에 한 번만 연락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 중에 하루만 빼고 매일 보는 사이인데 굳이 연락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남아있었다.


"네 번은 좀 많은 거 같은데.."

"아이, 정말. 그러면 세 번으로 정해요. 더 이상은 양보 못 해."

"알겠어."


임도윤은 이런 흥정을 왜 하고 있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모든 게 최보름의 의도대로 되었다.


"그런데 연락하면 무슨 말 해야 돼?"

"그런 거까지 일일이 가르쳐줘야 해요?"

"그야 어차피 매일 보니까.. 딱히 할 말이 없을 거 같은데."

"일단 먼저 연락만 해요. 그러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휴, 답답해."

"..알겠어."


임도윤이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최보름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자. 약속해요."


최보름이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약속은 꼭 지켜야 되는 거예요. 알죠?"


임도윤은 이틀 전에 했던 약속이 떠올랐지만, 그 화두를 꺼내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했다.


"알겠어."


임도윤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 순간, 음식점의 문이 열렸다.


"뭐해. 둘이?"


음식점의 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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