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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최근연재일 :
2018.10.29 22:36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1,935
추천수 :
501
글자수 :
209,488

작성
18.09.0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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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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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2쪽

003.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 (3)

DUMMY

003.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 (3)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에서 나갔다. 걱정이 많은 엄마는 1인실에 나를 입원시켰었고, 생각보다 많은 돈이 나왔다. 물론 엄마가 미리 정산했기에 내가 낼 필요는 없었으나,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게 사정도 안 좋으면서 괜히 무리해서······.


어쩐지 울적한 마음을 느끼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엄마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방은 무척이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내가 더럽게 사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로 깨끗하게 살지는 않았다. 분명 엄마가 다녀간 솜씨였다. 그 증거로 며칠째 텅 비어있던 냉장고 안이, 여러 가지 식재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듯한 기분으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뭘 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엄마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병실에서 꼭 하라고 강조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옆집 여자가 생명의 은인이야. 꼭 감사 인사해라.’


···그래,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도 옆에서 시끄럽게 쿵쾅거리는 노래를 틀어 놓은 사람에게, 생명을 구해준 데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음악 소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이놈의 자취방은 방음이 그리 잘 되는 편이 아니어서, 조금만 볼륨을 높여도 벽을 뚫고 소리가 침범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옆집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근처 방을 잡은 사람은 둘 뿐이었고, 나는 워낙 조용히 살아서 소음이 날 일도 없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김에, 옆집 여자에게 소음에 대한 사실도 알려줘야겠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서, 롤케이크 하나를 샀다. 사는데 줄을 서야 했던 터라 조금 오래 걸렸지만, 다행히 너무 늦기 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집으로 찾아간 나는 힘차게 방문을 두드렸다.


쿵쾅거리는 드럼 비트, 둥둥거리는 베이스 그리고 날카로운 일렉기타 소리가 방문에서 스멀스멀 새워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들으니까 그렇게 큰 소음도 아니었다. 역시 원인은, 방과 방 사이의 벽이 너무 얇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건 락인가? 음악에 그리 관심이 없어서 정확한 장르는 잘 모르겠지만, 꽤 흥겨운 음악이었다.


“저기요, 옆 방에 사는 사람인데요.”


몇 번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분명히 안에 있는 게 분명한데 왜 나오질 않는 걸까. 나는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저 옆집 사는 남잔데요!”


뚝.


시끄럽게 울리던 음악 소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무서운 정적. 뭐야 이거. 갑자기 조용해지니 좀 무섭다.


벌컥!


“으헉!”


문이 열렸다. 급히 물러나지 않았으면, 문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옆방에서 튀어나온 여자를 살폈다.


긴 검은색의 생머리, 순한 얼굴의 미인이었다. 나이는 내 또래 정도. 가끔 얼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청순하고 예쁘게 생겼다.


“아, 안녕하세요? 저, 저기 무슨 일이시죠?”


여자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겁을 먹은 건가? 아니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정말이지 이미지가 안 맞는 여자였다.


듣는 음악은 언제나 시끄러운 락이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그런 종류의 음악은 가죽 재킷을 입고, 목에는 초커를 한 문신투성이의 사람이나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이런 청순 미인이라니.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집 사는 남잔데요. 엊그제, 저, 제 목숨을 살려주셨다고 해서요. 답례를 좀 드리러 왔어요.”


내가 말을 거니, 여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왜 붉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아뇨! 아뇨! 답례라니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뭘. 그리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신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무런 후유증도 없이 바로 퇴원할 수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도 기적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에요. 그런데 어쩌다가 벼락에······?”


어쩌다가 벼락이라.


“그냥, 뭐··· 이유랄 게 있나요. 그냥 재수가······.”

“아아, 재수가···재수 없는 분이셨군요.”


···아니, 그날 재수가 없긴 했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재수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재수 없는 분’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여자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차,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를······.”

“아니, 뭐 괜찮아요. 제가 먼저 꺼낸 말인걸요. 그리고 실제로도 재수 없는 사람 맞잖아요? 길 가다가 벼락이나 맞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여기. 이거는 답례품인데요, 근처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그 롤케이크에요. 혹시, 단 거 싫어하시지는 않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롤케이크 박스를 여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자는 롤케이크라는 내 말에, 조금 굳어있던 표정이 말도 안 되게 정도로 밝아졌다.


“단 거요? 완전 좋아하죠! 이야,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이런 귀한 것을 주시다니. 게다가 이거 줄 서서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먹을까요? 잠깐 들어와 보실래요?”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초대였다. 아마 게임이었다면,


-여자가 집에 초대하셨습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이런 메시지가 떴을 것만 같았다. 아니, 날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다가 초대하는 걸까. 무방비해도 너무 무방비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을 거절하자고 생각했다. 물론, 중간에 유혹에 흔들리려는 마음을 뿌리치는 어려움이 있기는 했다.


“아뇨, 그건···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가는 건 좀······.”

“에이, 그런 말이 어딨어요. 음식은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 먹으면 별로라구요. 게다가, 이건 줄까지 사야 겨우 살 수 있는 케이크이니까······.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속으로 짧게 읊조렸다. 내 속마음과 달리 솔직한 발은 내 몸을 조금씩 안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방 안은 생각만큼 여성스럽지는 않았다. 벽에는 온통 포스터로 가득했는데, 하나 같이 알지 못하는 밴드들이었다. 나는 밴드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고, 또 포스터에 붙어 있는 밴드는 대부분 외국 밴드였으니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여자의 안내에 따라 좁은 원룸에 한구석에 앉았다. 여자는 내가 사 온 롤케이크를 접시에 예쁘게 담더니, 우유 한 잔과 함께 내왔다. 나는 꿈틀꿈틀 기어오르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몸부림을 쳤다.


“자, 다 됐습니다. 옆 방 남자분! 아니, 옆 방 남자분이라고 부르니까 되게 어색하네. 저희 통성명이나 좀 할까요?”


여자가 포크를 건네며 말했다. 마치 토크쇼를 진행하는 MC처럼. 포크는 마이크라도 된 듯, 내 턱 아래에 척! 하고 붙어 있었다. 음······. 이런 장난도 치고. 아무래도 이 여자는 나보다 어색함이 빨리 사라진 모양이었다.


“아, 저는 옆 방 살구요. 23살이고 이름은 최지식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안 됐구요. 복학이 조금 꼬이는 바람에, 요 앞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나는 턱 아래에 붙어 있던 포크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름을 말할 때는 조금 부끄러웠다. 분명히 말없이 비웃거나, 대놓고 놀리거나 둘 중 하나의 반응이겠지.


그렇지만,


“복학이 꼬여서 아르바이트 중이었구나······. 난 또 나처럼 대학을 안 간 줄 알았네.”


그러나 여자는 내가 예상했던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반응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이런 사람은 또 오랜만이었다. 아마 ‘지식’이라는 말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내 소개가 끝나자, 이번에는 그녀의 차례였다.


“저는 박하령이구요. 나이는 지식 씨랑 동갑인 23살이고, 지금은 섬머벨이라는 인디밴드에서 보컬을 하고 있어요.”


인디밴드 보컬이라······. 어쩐지 음악을 좋아하더라니. 나는 그제야 옆방의 비밀을 조금 파악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동갑인데, 말 놓을까? 괜찮지?”

“어, 응. 상관없어.”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놓을 수 있는 동갑내기 여자는 오랜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중 남고에 최근에는 군대까지. 여자 인맥은 이미 씨까지 멸종한 상태였다.


“사실, 상경한 지 얼마 안 됐거든. 섬머벨이라는 밴드도 최근에 만든 거야. 밴드 하겠다고 무작정 상경했는데, 조금 외롭더라고.”


와, 대단한걸.


나는 하령의 말에 조금 감탄했다. 밴드를 하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혈혈단신으로 상경하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무언가를 위해 나를 내던지는 짓.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밴드라면 무슨 밴드? 나는 잘 모르지만, 밴드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 락이라던가 뭐 그런 거.”

“그냥 어쿠스틱 인디밴드. 음악 장르는 다양하게 좋아하는데, 일단 하는 건 그거야. 사실 나는 The Used 같은 밴드를 하고 싶었는데, 내 목소리에는 영 안 맞아서. The Used 알아?”


단언컨대, 나는 음악에 관심이 없다. 아이돌 엉덩이 흔드는 거나 볼 줄 알았지, 밴드에는 단 1g의 관심도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모른다고 하면, 또 지독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겨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조금 전처럼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시야의 가장 아래쪽에서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가 반짝거렸다. 눌러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벼락을 다시 한번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 잘 모르면 어때. 나한테는 위즈위키가 있는데.


“그럼, 나도 알고 있지.”


짐짓 너스레를 떨고, 나는 위즈위키를 시야에 띄운 채, The Used를 검색했다. 정보가 좌르륵 뜬다. 심지어 동영상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동영상도 재생이 되나?


병실에서 버튼을 눌렀던 것처럼, 그 요령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나는 동영상이 재생되라고 강하게 떠올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영상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움직이고, 밴드가 머릿속에서 직접 연주하는 듯 음악이 또렷하게 들렸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걔들 그거 아니야? the Taste of ink 부른 애들. 다다 단다다 다 다다 다단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나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멜로디를 그대로 읊었다. 노래하는 것에는 조예가 없었지만,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읊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와,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르는 밴든데, 밴드는 잘 모른다더니, 실은 꽤 잘 아는구나?”


하령이는 상당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조금 양심이 찔렸다. 이 모든 것은 다 위즈위키 덕분이었으니까.


“그냥, 우연히 알고 있을 뿐이야.”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모르는 게 나올 때마다 위즈위키에 검색을 했고, 마치 다 아는 내용처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백과사전 하나를 넣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별의별 내용이 다 있는 백과사전. 심지어 동영상도 재생되는 신기한 백과사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 이거 꽤 쓸 만했다.


작가의말

쓸모를 찾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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