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무적 신의 아카데미아
프롤로그
자정 무렵.
도심 한복판에 신이 서 있었다.
신의 앞에는 왕복 12차로 널찍한 도로가 뻗어 있었고, 도로 양 옆에는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도로와 이어진 도개교가 강 위를 가로 지르고 있었다.
거리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차량 한 대조차 없았다.
신은 도로의 중앙선 위에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그는 명상을 하듯 규칙적으로 심호흡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고 하면 피할 수 있기는 한 건가?
아니다.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다.
어떤 놈이든, 몇이 됐건 간에 피하지 않는다.
잠시 후, 앞쪽 교차로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신은 천천히 눈을 뜨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련하게 들리던 소리는 조금씩 커지면서 선명해졌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무언가를 씹는 소리, 토하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한 데 뒤섞인 소리 같았다.
이윽고 교차로의 오른쪽 모퉁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붕대를 감은 그것은 교차로 가운데에서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미이라.
도심 한복판에 미이라가 돌아다니고 있다.
신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사이, 모퉁이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나왔다.
하나는 온몸이 잿빛 털로 뒤덮인 늑대인간이었고, 또 하나는 피범벅에 찢겨진 옷을 걸친 좀비였다.
그 중 늑대인간은 달려나오다 미이라와 부딪쳤고,
도로 위에서 한바탕 나뒹굴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이라. 늑대인간. 좀비.
······ 가 함께 있었다.
같은 호러라도 얘네들은 서로 노는 바닥이 다르지 않나?
미이라와 늑대인간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사이,
신을 발견한 좀비가 손으로 가리키며 괴음을 내질렀다.
그러자 모퉁이에서 한 무더기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눈앞의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고, 떼 지어 나타난 괴물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신의 눈에 들어왔다.
검은 망토를 두른 뱀파이어. 빗자루를 든 마녀.
관자놀이에 나사를 박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양 손에 식칼을 든 푸줏간 괴물.
피칠갑을 한 광대.
파란 도포 차림을 한 강시.
이마에 뿔이 난 외눈박이 도깨비.
무서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온갖 괴물들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
지금까지 제법 많은 마물(魔物)들을 보아온 신이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種)이 한 데 모여있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좀비가 다른 괴물들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이 신을 가리키며 연신 괴성을 내질렀다.
신은 이런 좀비를 노려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지 마, 이 자식아.
하지 말라고!
신의 바람과 달리 괴물들은 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일제히 주변의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 한 괴성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도망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 낫겠어.
신은 조금 전 피하지 않겠다고 했던 자신의 결심을 접으며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신의 뒤쪽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강 위에 놓여 있던 도개교가 위로 올라가며 서서히 접히고 있었다.
이 놈의 인간들!
내가 달아나지 못하게 길을 끊을 셈이야!
신은 거대한 성벽처럼 몸을 일으키는 도개교를 넋이 나간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사이 모퉁이에서는 더욱 많은 수의 괴물들이 몰려나왔다.
신은 난처한 표정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신은 주먹을 들어 가드 자세를 취하며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열렬한 눈빛을 보내는 팬들을 향해 외쳤다.
“전부 덤벼!”
신의 외침을 신호 삼아 괴물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신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웅장한 교향악 음악과 함께 소프라노 톤의 아리아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게임 속 보스와 대결을 벌일 때 나올 법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얼씨구, BGM 죽이고.
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괴물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무리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좀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신의 주먹과 좀비의 썩어 문드러진 얼굴 사이에서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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