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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글

쉬는 동안 써봤던 글 쪼가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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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글
작품등록일 :
2020.05.29 14:49
최근연재일 :
2020.06.15 08:45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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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4
글자수 :
13,003

작성
20.05.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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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
추천
17
글자
12쪽

재미로 써본 성기사물 프롤로그

DUMMY

- 신이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눈이 뽑힌 어미가 차갑게 식은 아이의 시체를 안은 채로 신을 찾으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 기도는 너무나도 허무한 것이었다. 어둠은 진작에 밀어닥쳤고, 빛이 들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이었다.

일말의 희망도 없이 어미의 가슴에 인골로 빚어놓은 창대가 틀어박혔고, 이내 피눈물을 흘리는 머리가 녹슨 칼날에 잘려서 날아가고 만다.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인간의 마음이 없어 연민도, 동정도, 자비도 없었다. 그들은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활보하며 인간을 해쳤다.

움직이는 시체가 술에 취한 동네 주정뱅이를 물어뜯고, 유황 속에서 솟아난 점액질의 인간이 아이들을 갈가리 찢어놓으며, 그림자밖에 없는 군인들이 주민을 살육한다.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이들은 악취 나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사냥개들에게 덮쳐진다.

해봐야 농사나 작은 들짐승 사냥 정도밖에 할 줄 모르던 마을 사람들이 대항을 해보기에는 놈들은 지나치게 어둡고 사악했다.

순식간에 평화로운 마을 하나가 불길한 죽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죽음의 기운이 묻어나는 길 한가운데를 한 남자가 걸었다.

남자의 행색은 특이했다. 절대 기도해서는 안 되는 음울한 문양을 새겨넣은 새까만 사제복을 입은 채로, 어깨에는 커다란 관이 달린 사슬을 맨 채 끌고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장정 두셋이 붙어도 옮기기가 쉽지 않은 관을 손쉽게.

도무지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 그는 주위의 끔찍한 참상에 관심도 없는 듯, 조용한 걸음걸이로 피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며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로다. 모셔야 할 자를 잘못 선택한 불신자들의 운명이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말하는 괴상한 남자의 등 뒤로 어둠의 사생아들이 몰려들었다. 추악한 것들이 부모를 따르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횃불로 생겨난 그의 그림자를 따랐다. 검은 신복을 입은 남자는 그 괴이한 것들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놈들에게 잘 새겨들으라는 투로 엄숙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헛된 것은 아닐지니. 불신자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오늘 새로운 형제자매를 맞이하였노라."


그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살육하던 그림자뿐인 군인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무릎을 꿇는다. 움직이는 망자들이 입으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뿜는다. 점액질의 괴인들은 수차례 절을 하다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더러운 진흙으로 된 사냥개들은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그렇게 모든 잔학하고 부패한 존재들이 누군가를 경배했다.

그들을 돌아본 남자가 사슬을 손으로 당겨 관을 당겨오며,


"과거 어떤 이교의 성자가 세상에 나타났던 것과 같이, 그분께서 아끼시고 중히 여기시는 마지막 사도가 가장 보잘것없는 마을의 그 작은 신전에서부터 임하게 될 것이니."


라고 말하더니 마을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신전을 가리켰다.


"역겨운 이교의 앞잡이들이 당도하기 전에 사도가 강림하기에 마땅히 어울리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 가거라. 나의 아이들아. 가서 그릇되고 하얀 전당을 짓밟아라. 잘못된 신을 섬기는 사제들의 두 눈을 뽑고, 귀를 자른 뒤, 코를 도려내거라. 단, 하나만 명심해라. 헛된 구원을 외치다가 절망을 내뱉을 혀만은 남겨두어야 한다."


남자가 명령을 내리자 추악한 어둠의 권속들이 기쁨의 괴성을 지르며 손가락 끝이 가리킨 신전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킨 일이 큰 영광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앞을 다투었다. 심지어 제 편인데도 물어뜯거나 녹슨 검으로 찔러 버리기까지 하며 쇄도해 갔다.

하얀 신복을 입은 사제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기겁하여 살아 도망쳐 오는 몇몇 마을 사람들을 남겨둔 채 급히 신전의 문을 걸어 잠그고 말았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그 불쌍한 사람들은 문을 두드리다가 비참하게 갈기갈기 찢어져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그리도 냉정하게 닫힌 신전의 문은 미세한 빛의 권능으로 아주 잠시동안 몰려든 어둠의 자식들을 막아내긴 했지만, 관을 끌던 남자가 품에서 새까만 성경을 꺼내자 그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첫 번째 사도인 예모엘이 말하기를, 너희가 섬기는 이는 불신으로 가득한 신이라 끝없이 인간을 시험하나니. 그 믿음을 얻기 위한 여정은 천 길 낭떠러지에서 걷는 것과 같아 한 번의 실수라도 용서받지 못한다 하였다. 그리하여 묻노니. 과연 너희는 발을 아직 잘못 내딛지 아니하였다 여기느냐?"


남자가 성경의 구절을 암송하자 작게 빛나던 신전의 문이 검은 무언가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먼발치에서 그것을 확인하고는 성경을 덮으며 한 번 더 읊었다.


"너희의 성경에서는 구원을 원하는 이를 외면하고 방조한 죄를 무엇이라 칭하느냐? 우리는 그것을 배덕이라 부른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작은 신의 자비로나마 남아서 버티고 있던 신전의 문이 그저 평범한 나무판자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뼈 창과 녹슨 장검이 무자비하게 그를 뚫고 신전 안으로 불결한 족속들이 침입했다. 새하얀 신전이 피로 물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들은 몇 남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참살하여 시신을 토막 내고, 사제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충실하게도 사제들의 두 눈을 뽑고 코와 귀를 도려내었다.

비명과 고통에 차서 신을 찾는 사제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어느새 관을 끌고 온 사내가 부서진 신전의 문 앞에 서서 그 참상을 보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슬픈 일이로다. 진실을 깨닫고 개종하였다면 너희는 이 고통을 겪지 아니하였을 것이거늘.."


그 순간이었다. 살아있지 않은 자들의 악랄한 손길을 피해 예배당의 의자 밑에 숨어 있던 사제 하나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심지에 불이 붙은 화승총을 그 남자에게 겨누었다.


- 타앙


총성과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얇디얇은 총신을 거쳐 튀어나온 탄환이 그의 왼쪽 가슴에 적중했다. 검은 사제복을 뚫고 심장마저 관통하여 뒤로 빠져나가며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젊은 사제가 떨리는 손으로 겨누었던 총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타락한 자의 사도여.. 돌아가라."


본디 인간이란 심장이 파괴되면 오래 살지 못하는 법이니. 그렇기에 젊은 사제는 아마도 이 악몽이 끝났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바닥에 흥건히 고인 검은 피는 다시 검은 사제복 남자의 발밑으로 모여들더니 그에게로 다시 빨려 들어갔고, 상처는 다시 아물어서 다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만약 옷마저도 원 상태로 돌아갔다면 누군가 그에게 총을 쐈다는 증거는 그 무엇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부활한 그는 자신을 쓴 사제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이 예배당의 한가운데에 거룩하게 세워져 있는 새하얀 상징물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또한 운명이다. 개종하지 아니하였기에 계시의 날에 마지막 사도가 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사제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주위에 있던 추잡한 권속들이 그 손짓에 따라 사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젊은 사제는 총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막아 보려 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붙잡힌 사제는 공포와 분노라는 어찌 보면 상반되는 감정이 모두 담긴 얼굴을 지으며 소리쳤다.


"이.. 부정한 존재들아. 너희는 신이 무섭지 않으냐?"


그 말에 남자는 관을 끌고 예배당의 중앙으로 걸어와서 답했다.


"나의 신이 나를 가호하건대 무엇이 두렵겠느냐? 기도를 올리면 그분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려주시니 그 은총이 내가 불구덩이 속에서도 시원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는 양팔을 벌리며 믿음이 가득한 얼굴을 지어 보이다가 돌연 표정이 다시 무표정하게 변했다.


"위선의 신을 등에 업은 사제여. 네가 나에게 물은 것과 같이 나 또한 네게 묻겠다. 너희가 경배하며 따르는 신은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는가?"

"그분은 언제나 위에서 귀 기울이시고 길을 잃은 자에게 방향을 알려주신다. 타락한 자의 사도!"

"그러하다면 네 믿음을 증명해 볼 기회를 주리라."


그러더니 남자는 굳건한 목소리로 신앙을 말하는 젊은 사제에게 다가가서 손바닥을 들어 그 얼굴에 대었다.

선뜻 별거 아닌 행동으로 보였지만 그 결과는 지독히도 참혹했다. 손바닥이 닿는 부위가 문둥병에 걸린 것처럼 썩어 문드러지며 살이 녹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고름이 주룩주룩 새어나왔다.

젊은 사제는 비명과 함께 신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구슬피 믿음으로 외쳐보아도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피부가 다 녹아서 근육이 보이고, 그 근육마저 괴사해서 뼈가 보이는 순간까지도 빛이 어둠을 밝혀주지 못했다.

이윽고 젊은 사제의 목소리가 신념에서 의심으로 뒤바뀌었다.


"아, 어째서 구원하지 않으시나이까? 이 고통에서 해방해 주지 않으시나이까?"

"네가 믿는 신은 네가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너를 시험 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너무 잔혹하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불구덩이 지옥의 악마들보다도 더 고통받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소리치던 사제는 다시 절망하였다. 신을 의심하는 사제의 귀에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보아라. 신이 네 기도를 진실로 들어준 적이 있었는가? 네가 믿는 신은 사람을 낫게 하는 작은 재주로 너의 이목을 흐리게 하여 맹목적인 추종만 받았을 뿐, 진실하게 너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아.. 정녕 그런 것입니까? 정말로 그러하였던 것입니까..?"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면 당장 네게 닥친 고통을 보아라. 그가 너의 아픔을 불쌍하게 여겨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하였던가? 네가 애타게 찾는 이는 너에게 관심이 없다. 너의 신에게 너는 사랑하는 자식이 아니라 그저 믿음을 바치는 작은 일개미에 불과한 것이다."

"아아아.. 저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말하라. 마저 입에서 꺼내어라."

"그러하다면.. 나는 당신을 저버리겠습니다. 당신께 귀의한 저를 보호하지 아니하고, 아껴주지 아니한 당신을 저 또한 버리겠습니다.."

"좋다. 그러하다면 그분의 일곱 번째 사도로서 행하여 너를 신자로 임명할 터이니 듣고 답하라. 네가 영원히 깜깜한 오솔길을 걸어 빛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겠다면, 그분의 이름을 세 번 외쳐 너의 뜻을 밝혀야 한다."


아주 조금이나마 아픔이 누그러진 젊은 사제는 작게 신음하며 물었다.


"..새로운 믿음의 길 앞에 서 계신 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에 남자는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분의 이름은 예모제레. 네가 모시는 신의 둘째 아들이자 처음으로 추락하여 빛을 몰아낼 분이시다."

"아아, 예모제레.. 예모제레.."

"새로운 신자여. 한 번 더 외치고 네 바람을 빌라."


남자가 손을 떼며 한걸음 물러서서 말하자 사제는 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새로운 신에게 빌었다.


"예모제레이시여.. 저를 이 고통에서 구원해주소서!"


그것으로 타락은 이루어졌다.

썩어서 흘러내리는 살이 수복되어 사제의 얼굴에 다시 들러붙었고, 새하얀 백의는 새까맣게 물들었다. 가슴팍 한쪽에 수놓아진 빛의 표식은 기도해서는 안 될 음울한 어둠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생살이 썩어가는 고통은 이미 한없이 큰 희열로 변하여 새로운 신자가 된 사제의 멀쩡해진 얼굴이 황홀경에 물들었다.


"아아.. 구원을 느낍니다."


바로 그때 신전에 내리 앉은 불길한 어둠을 뚫고 한 줄기의 빛이 당도 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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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전에 써본 판타지 - 1 +1 20.06.15 534 7 17쪽
» 재미로 써본 성기사물 프롤로그 +9 20.05.29 805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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