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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구해준 리치가 조상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aburridor
작품등록일 :
2023.11.10 20:41
최근연재일 :
2023.11.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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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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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3.

DUMMY

“으흠, 흠흠.”


노인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헛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이해가 잘 안 될 정도였지만 도저히 참기가 어려웠다.

물론 어디 불편한 구석이나 지병이 있는 건 아니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잔병치레는커녕 한참 어린 젊은 것들보다 건강엔 훨씬 더 자신이 있었다.


물론 마음 속 깊은 곳엔 지금 행동에 대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억지로 외면할 뿐이었다.

온몸을 휘감는 긴장과 불안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원인은 앞으로 자신이 마주할지도 모를 엄청난 고난과 위기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고.


지금 있는 곳은 그다지 넓지 않은 크기의 방 안이었다. 그럼에도 내부에 별다른 가구나 물건이 보이지 않았기에 휑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있는 거라곤 사람 서너 명이 둘러앉을 만한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 이 방이 어느 건물에 있는지를 감안한다면 믿기지 않을 삭막함이었다.


거대한 제국의 재정 전반을 관할하는 재무경의 저택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세상의 모든 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람의 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인물이 가진 대저택에 있다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공간. 그렇기에 이 방 안에 앉아 있는 것부터가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숱하게 와 본 적이 있는 평소의 접객실이 아니었다. 설령 다른 장소에서 논의를 한다 해도 기껏해야 집 주인의 서재나 회의실 정도가 전부였다.

평상시였다면 굳이 이런 곳으로 자신을 데려오진 않았을 터. 이는 이번에 논의할 사안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였기에 자연히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인은 자신만이 인정하지 않는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을 외면하려 애썼다.

비록 스스로가 봐도 한심한 꼴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곧 억지로라도 지워버렸다. 본인의 이름 앞에 붙은 지위가 그만큼이나 크고 가치 있다 믿었기 때문이었다.


콘실리움, 즉 마법사 평의회의 의장인 마티아스 뮐러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자기가 모든 마법사들의 수장이며 그들 모두를 대표한다는 신념이었다.

따라서 자신이 흔들리면 모든 마법사들이 흔들리는 것과 같았다. 또한 자신이 수모를 당한다면 그 역시 모든 마법사가 수모를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마티아스는 자신이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존중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개인의 자존심 같은 사소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가 받는 것은 곧 마법사 전체가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콘실리움 의장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 이 건물 밖에서나 통할 만한 이야기. 노인에게 이 대저택의 주인 앞에서까지 그 원칙을 고집할 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만큼 제국의 재무경이 가진 힘은 막강했다. 직책에서 나오는 것만 해도 감당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더 무서운 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가문이었다.


제아무리 모든 마법사들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상대. 평소에도 은연중에 나뉘는 지위의 차이를 여러 번 느꼈던 바였다.

그나마 이쪽에 명분이나 구실이 있었다면 한결 나았을 터. 허나 이번은 책임 소지를 따진다면 어디까지나 평의회에 잘못을 돌릴 만한 상황이었다.


“···그 태생부터 천하고 더러운 것들이 끝끝내 이 사달을 내는군.”


마티아스는 씹어 내뱉듯 분노가 잔뜩 서린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이 갑자기 이곳으로 불려와 불안감에 떨도록 만든 원흉이 떠올라서였다.

미노르 쪽의 얼간이들이 꽤나 큰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재무경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들이 주시하고 있던 어느 은행의 행장을 습격했다고 한다.


자세한 앞뒤 사정이야 전해진 게 없었으나 윗선의 분노만큼은 선명하게 전해졌다. 콘실리움의 의장을 단번에 여기로 불러들일 정도의 격노였다.

소환 명령에 토씨 하나 대들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 마법사들의 대표마저도 입을 닫고 시키는 대로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을 수준이었다.


미노르에 속한 자들은 마티아스의 권한 밖에 있는 존재였다. 물론 이는 저들이 평의회 의장의 명령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란 의미는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이쪽 입장에선 아예 마법사로 인정하기도 싫은 것들이라 개입도 없었던 쪽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주류 마법사들의 파벌인 마이오들은 미노르들을 마치 남 대하듯 했다. 겉포장을 걷어내고 말한다면 아예 평범한 일반인 취급한다는 게 맞았다.

그러니 그 무리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큰 사고만 없다면야 자기네들끼리 뭘 하든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대형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콘실리움의 의장이 직접 소환되어 질책을 받을 만큼의 엄청난 대 사건을 터뜨린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티아스를 비롯한 평의회는 무슨 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제 와서 저것들에게 앞뒤의 경과를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평소에도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경멸하던 작자들이었다. 그런 무리들이 큰 사고까지 저지른 마당이니 더더욱 관여하고 싶지가 않았다.

거기다 어차피 미노르 패거리들 역시 반대파인 이쪽을 싫어하긴 마찬가지. 설령 물어본다고 해서 대답을 해 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가당치도 않은 놈 같으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런 짓을 해···.”


과거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 노인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 되었다. 자신을 향해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던 누군가가 생각이 난 것이다.


“천한 놈들의 우두머리니 하는 짓도 가장 천박한 게지.”


꽤 오래 전 일이었음에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미노르의 수장인 코르넬리오가 한 짓은 마티아스에겐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온갖 욕설과 함께 자신을 노려보던 그자의 눈빛이 선명했다. 그때 당장 마법으로 불태워 죽이지 못한 걸 지금까지 후회할 만큼.


그 일로 인해 느낀 치욕과 수모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놈은 물론이고 그 떨거지들 모두와는 어떤 방식으로든 엮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불필요한 무리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을 지경. 지금까지 그것들을 놔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사고까지 저질렀으니 존재 자체가 해악인 패거리였다. 그렇기에 차라리 이번 일을 계기로 그것들을 모두 없애 버리는 게 더 나을지 몰랐다.

평의회의 힘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그게 아니라도 제국의 힘이 있었다. 재무경을 비롯한 고위층들의 분노가 향하는 방향만 돌릴 수 있다면 불가능하진 않을 터.


하지만 노인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그 과정이 몹시도 성가시고 너저분하게 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이쪽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들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태생만큼이나 하는 짓거리도 상스러운 놈들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마티아스의 입장에서야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나온 약간의 불찰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한 그런 미미한 과오일 뿐인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절하기 그지없는 미노르들은 그걸 무기 삼아 협박을 일삼았다. 코르넬리오가 난장을 쳤을 때도 그 증거들을 들먹였었다.


그러니 만약 그 천박한 놈들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놈들은 분명 그걸 공개할 터였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것들의 바람과 달리 이쪽은 굳건히 버텨낼 게 분명했지만.

다만 꽤나 큰 타격이 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엄청난 오명을 뒤집어 쓸 게 확실했고. 진정 성가시고 너저분한 일이 될 게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노인은 이번에도 저 무리에게 자비를 베풀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벌레 몇을 잡자고 집안 전체를 불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불쾌한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딱 하나 도움 되는 게 있었다. 미노르들을 생각하며 분노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줄어든 것이다.


“나 원 참, 허허.”


더 이상 이유 모를 헛기침도 없었고 그 원인이던 가슴속 초조함도 줄었다. 생각하기조차 불쾌한 자들을 떠올리며 열을 낸 덕분인 모양.

참으로 황당한 이 상황에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무리들에 대한 분노는 조금도 변한 게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번 불안함을 떨쳐내자 언제 그런 감정이 들었나 싶은 심정이었다. 이번 일도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원흉은 당연하게도 미노르의 천박한 것들에게 있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잘 밝히고 설명하면 모든 게 잘 풀릴 듯한 예감까지 들 지경.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분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었다. 현실에선 그렇게까지 일이 술술 풀리진 않을 거란 걸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페르디난트의 질책에 대응할 방법을 찾았다는 정도가 정확할 터. 그래도 이미 불안을 떨쳐버린 지금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러나 그런 희망에 찬 기대는 그저 희망과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안스부르크 백작이자 제국 재무경인 페르디난트의 말 한마디에 깨져 나갈 수준에 불과했다.

방금 전까지의 평온함은 온데간데없이 당혹감을 어쩌지 못하는 표정이 되었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야기가 상대방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들으셨으니 적잖이 당혹스러우실 겁니다. 의장님께도 미리미리 말씀을 드려야 했겠습니다만, 아시지 않습니까? 이 일은 저희들끼리도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안이니까요.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건네는 어투는 무척이나 공손했으나 얼굴은 그렇지가 않았다. 얼핏 보면 평온한 것 같았지만 눈빛에서부터 상대를 책망하는 의사가 선명했다.

표정 관리 하나 못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으니 이는 다분히 의도적일 터. 방금 건넨 이야기와 달리 이쪽의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한껏 당황한 마티아스였지만 이 정도 속내를 눈치 못 챌 상태는 아니었다. 가뜩이나 치솟는 당혹감을 어쩌지 못하는 와중에 더 큰 부담이 더해졌다.

덕분에 노인은 마주앉은 청년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손자뻘이라고 해도 좋을 나이 차이에 직급 역시 모자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무 일도 없을 때조차 마주하기 무척이나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유서 깊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만큼의 엄청난 명문가 출신이었으니까.

평민 출신인 자신으로선 거의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신분의 격차였다. 평의회의 의장이라는 직함을 가졌음에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평범한 귀족들이야 콘실리움의 이름으로 찍어 눌렀지만 저 집안은 아니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부터 듣던 어마어마한 위명에 눌려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 가문의 지역과 마티아스의 고향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 이름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될 만큼의 대단한 벌족이었다.


“그··· 그렇지요. 이 모임의 목적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아야 하니까 말입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기다 지금 문제가 된 이 조직엔 페르디난트와 버금가는 집안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되지 않았다면 평생 마주칠 일도 없었을 정도의 가문들.

그런 무지막지한 이름값의 귀족들에게 눌리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썼었다. 허나 이번에도 그런 몸부림은 실패로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평의회의 사정을 저희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 미노르라는 무리가 의장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멋대로 활동하는 자들인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이번의 일은 다른 일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예언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저희들이 왜 이런 모임을 가지는지 아신다면, 이 일에 각자의 사정을 감안해 드릴 수 없다는 걸 의장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


이번에는 말투에서까지 온화함이 사라지고 말았다. 전신을 엄습하는 감춰지지 않는 냉정함에 마티아스는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오싹함이 느껴졌다.

조직의 목적과 관련된 일이 되었으니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그저 높은 분들의 비위를 거스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의장이 되고서도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조직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평의회라는 이름값만으로는 저들에게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했던 모양.

그만큼이나 이 단체가 감추고 있는 비밀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거웠다. 한데 그토록 심각한 사안에 자신이 휘말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따라서 의장님께 말씀드리기는 조금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지금 당장이라도 그 소수 파벌에 있는 마법사들을 좀 진정시켜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난리를 피워대면 좋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쌓여온 문제와 분쟁이 많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고요.”


들리는 대로만 보자면 충분히 공손한 부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티아스는 그 공손함 뒤에 가려진 본뜻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재무경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 늙은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의회의 의장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마법사들의 수장이라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미노르와 마이오의 분쟁은 언제 시작됐는지 아무도 기억 못할 만큼 오래되었다. 그 긴 세월을 이어온 다툼의 결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당연히 이제 와서 우두머리랍시고 명령을 내려도 전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는 건 힘을 통해 억지로라도 따르게 만드는 것.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마법사들이 동의를 할 것인가에 있었다. 지금 갑자기 미노르들과의 전쟁을 시작한다는 걸 이해해 줄 만한 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테니까.


“흠, 제가 아마 말씀을 좀 잘못 드린 모양입니다.”


그러나 노인의 변명은 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끊기고 말았다. 한층 더 냉정해진 표정의 페르디난트가 말허리를 끊고 들어온 것이다.


“하아···. 이런 말씀까지 드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가 없군요. 상황이 상황이라 이러는 것이니 설령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시더라도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긴 한숨마저 더해지자 분위기는 급속히 싸늘하게 바뀌어 갔다. 이미 한껏 움츠러든 상태였던 마티아스는 숨이 멎을 듯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아까 제가 드린 말씀은 부탁이 아닙니다. 의장님이 지금 당장,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명령입니다.”


불길한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가장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었다. 눈앞의 젊은 귀족은 이제 겉보기로 차리는 공손함마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는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회의를 통해 우리 전체가 내린 결의지요. 저를 비롯한 모임의 중요한 분들은 이미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큰 무례를 감수하고 의장님께 이런 억지스런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한결 싸늘함이 가신 말투였지만 듣는 쪽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분위기는 이전과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

거기다 조직이 내린 결정이고 명령이라는 말이 주는 위압감이 너무도 컸다. 이를 들은 마티아스는 머릿속이 공황 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저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는 의장님의 능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평의회의 힘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비록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만, 큰 무리 없이 잘 해결하실 수 있으리라 믿고 있고요. 따라서 얼마 있지 않아 좋은 소식을 들려주시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엉망진창이 된 생각을 다시금 마구 헤집는 한마디였다. 이쪽에서 알아서,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일을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만약에,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면 말입니다.”


어떻게 봐도 좋은 뜻일 리 없는 말머리였다. 당연히 듣는 입장에선 온몸에 소름이 돋고 터져 나오는 긴장과 불안에 입안이 바싹 마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로서는 다른 분들께 우리가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전달해야만 하겠지요. 뭐, 말씀드렸다시피 그럴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너무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의장님, 그러니까 대마법사 마티아스 뮐러 님이 나서시는 일이니 말입니다. 하하.”


이제는 완연히 평소의 온화한 분위기로 돌아간 페르디난트였다. 그러나 지금 노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공포와 절망감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말 끝머리에 덧붙은 웃음소리마저도 자신의 파멸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방금 한 말의 내용은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그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누가 들어도 그 안에 담긴 뜻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자신에게 묻겠다는 통보였다.

불가피한 선택이란 건 분명 콘실리움의 의장을 바꾸겠다는 의미. 제아무리 평의회라도 저들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진 자들에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마티아스는 몰아닥치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저들이 작심한다면 자기를 몰아내고 새 의장을 세우는 건 가능하고도 남는 일.

일평생의 업적이자 삶의 목표이며 살아나가는 이유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더 두렵고 심각한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만약 이번 일에 실패하여 의장직에서 쫓겨난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조직의 사람들은 반드시 쫓겨난 자신을 없애려 들 게 분명할 터였다.

저들에게 조직의 비밀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그 비밀은 같은 구성원만이 알아야 하며 만약 외부인이 안다면 처리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티아스는 평의회 의장의 자격으로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의장 자리를 상실한다면 자연히 외부인, 그것도 비밀을 아는 외부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의장직을 잃는다면 곧바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라도 홀로 제국 전체나 다름없는 저들과 싸울 수는 없으니.


이제 이번 문제는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어설프거나 느슨한 대처를 한다면 그 대가는 목숨으로 치러야할 판.

콘실리움의 의장이자 대마법사의 칭호를 가진 마티아스 뮐러의 머릿속엔 이제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아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일단 살고 봐야 할 일이니 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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