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멋진 신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일반소설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4.23 15:23
최근연재일 :
2020.06.24 12:4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369
추천수 :
23
글자수 :
72,790

작성
20.05.08 11:14
조회
34
추천
0
글자
9쪽

리셋

DUMMY

새비지는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었을 때 인공지능 관련 프로그래머로 오랜 기간 일을 했었다는 정보가 있었다.

물론 콜로니 국가에서 나와 같은 신인류를 흔히 사용할 경제력은 못 되었으나 그곳의 상위 귀족층의 경제적인 부는 보통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서,

일부 특권계층은 사이보그를 렌탈도 아닌 전액 일시불 구매로 사용하는 편이었을 정도로 격차가 컸고,

지배층은 집에 여러 대의 에바를 보유할 정도로 수요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유지관리를 해줘야 할 서비스지점 역시 필요하였다.

또 그들 국가의 전반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다수의 귀족국가가 현지에 부품 공장도 운영을 하고 있었기에,

새비지 같은 우수한 고급인력이 그곳에서 보통의 국민들 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 고 정보가 남아있다.

그러니 내가 새비지에 굳이 나의 상태를 상의하고 본사에 조정을 위해 갈 일에 대해 의견을 묻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찰나의 논리가 지나간 사이 새비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하얀 미소. 악의라곤 없는.

내 인공지능 회로에 또다시 뭔가 찌르르 지나갔다.


나는 새비지에 내 자가 치료 기능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버그가 있어서 본사를 다녀와야 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새비지는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내게 일어난 증상을 말해 보라고 했다.

나는 처음 새비지를 만난 이후 내게 일어난 상황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자세히 서술했다.

그 역시 한국은 아니지만 동일한 체계의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프로그래머니까.

새비지는 한동안 이어진 내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면서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내 말이 끝나자 새비지는 한참 동안 넷망 접속기를 이용하여 여러 개의 사이트와 책자들을 홀로그램 모니터에 띄워놓고 말로 지시를 하거나,

인도네시아 공장의 사이트를 들어가서 뭔가 기술적인 도면과 그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를 반복하였다.

물론 내 인공지능으로 공중 넷망에 접속하여 언어 팩을 내려받거나 기술 코드를 내려받으면 나 역시 대다수 정보를 공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인공지능의 프로그램과 충돌이 있을 수 있어서 하진 않았다.

인간들은 내가 만들어진 목적과 무관한 분야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놓았다.

우리의 지능 체계는 단일 지능이라고 할 수 없다.

세계 어디에나 흔히 존재하는,

이제는 거의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는 넷망에 의해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가까운 넷망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이론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고 실시간으로 내려받는 것이 가능하다.

정확히는 우리 개개의 에바에게 심어진 인공지능이란 세계적인 데이터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정보를 선별하여 이용하는 부분지능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그렇게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직접 적용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건 순전히 제각기 에바 자체의 몫이긴 하지만 원래 만들어진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바 혹은 모든 사이보그가 전 세계적인 지식을 가진다는 이론이 성립하며,

새비지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모든 에바가 똑똑해지기를 인간들이 바랄 리는 없다.

단지 남자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에바인 내가 스스로 에바 생산 시스템과 수선 시스템을 내려받아서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는 엔지니어까지 된다면 그건 내가 생산된 목적과는 맞질 않으니까.

새비지는 뭔가를 한참 고민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손톱을 깨물기도 했다.

보편적 인간들은 늘 생각에 잠기거나 할 때 저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다.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건 간에 어차피 두뇌는 따로 돌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과거 인조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조인간이 거의 만능처럼 인정받던 시기가 있었다.

일개 개체로 보면 인조인간 하나가 담을 수 있는 인공지능이란 한계가 있다.

마치 과거 오래전 컴퓨터가 저장능력을 높이려면 외부 저장장치를 무수히 추가해야 하고,

기능을 높이려면 CPU를 좀 더 고급화된 것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움직이며 일상에서 인간을 보조해야 하는 사이보그를 점점 거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럴 때 인간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출입문, 자동차, 기타 가구라던가 공간 모든 것을 새로운 사이보그의 크기에 맞춰 바꿔야 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자가 저장정보를 키우고 능력치를 최대치로 키워서 마치 중장비와 같은 덩치를 가지게 된 에바가 있다면 그런 덩치를 일상 어디에 놓을 수 있을까?

초창기에 인조인간을 개발할 때 굳이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인간과 유사한 크기로 인조인간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더불어 공존하는 형태를 원한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개발자들이 인공지능의 한계를 해결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공중 넷의 활용이었다.

세계 곳곳에 분포된 세상의 모든 지식을 공유하고 처리하는 공동 지능 체계.

그것이 우리 사이보그니까.

그러나 분명 그것은 인간에게는 위협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새비지는 한 시간여를 온갖 자료를 뒤지고, 생각하다가 누군가와 인도네시아어,

혹은 영어로 통화를 하고 다시 한참을 뭔가 생각에 골몰하였다.

나는 공중 넷망으로 셔틀의 운행 시간을 검색하면서 언제쯤 나가야 본사에 다녀올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린다는 건 내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일이니까.

새비지는 다시 한 시간이 넘도록 고민을 거듭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내가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결심한 듯 내게 입을 열었다.

“에바. 당신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신인류와는 조금 다르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것 같소.

기존에 생산되었던 어떤 모델들도 당신과 같은 버그를 일으킨 적이 있다는 자료가 없어요.”

“ 그렇다면 제 회로가 손상되었다는 의미 아닐까요?

보통 일련번호가 연속된 에바 들은 한 번에 생산설비에서 백 개가 생산되고 동시 생산된 모델들은 동일한 특질을 갖습니다.

겉에 입혀지는 생체외피 말고는 기능이나 사고체계가 똑같지요. 아시겠지만.

그런데 아무런 사전 리콜 기록이 없다면 제 회로 어딘가에 손상이 온 거 아닐까요.”


내 대답을 들은 새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게 완곡한 부정의 의미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소.

당신은 모르겠지만 에바의 제조사들은 늘 그들의 생산품이 완벽 그 자체라고 주장하죠.

‘절대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죠.

그들의 제품에는 결함이 있을 수 없다고.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건 당신도 나도 알고 있소.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당연히 공개된 정보에 남기지 않아요.

그들의 문제들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몰래 숨겨져 있는 법이고,

그들의 제품으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들은 늘 루머와 미스터리 정도로 가십화 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오.

말이 길어졌지만, 당신에 대한 진짜 정보는 다른 곳에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죠.

일단, 당신을 만든 제조사의 기록에 접근하여 당신의 제조 번호와 당시 제작에 들어간 프로그램 루틴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사실 불법으로 해킹을 해야 하고,

그렇게 사실 확인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오늘은 일단 본사에 가지 않는 게 좋겠고.

내가 오늘 밤 해킹 작업을 좀 해 보고 내일 당신에게 결과를 얘기해 주겠소.

그리고 이전의 사례들을 살펴보니 당신과 같은 사례가 전혀 없진 않았소.

그런데 본사에 가서 당신처럼 스스로 보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었고.

그에 대한 조치는 항상 그냥 리셋이었소.

그게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니까.

어떤 문제가 생긴 에바를 굳이 원인 분석하고 찾아내는 비용을 들이고,

그것으로 화제를 끌어내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그들은 원치 않으니 가장 쉽고 가장 간단한 방식을 선택하는 거죠.

당신의 인공지능을 전부 포맷시켜 버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거지.

그럼 적어도 당신이 가진 인격과 기억과 저장정보는 모두 사라지는 거요.

인간적 의미로는 죽는 거지. 그걸 원하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 회로에 그동안 누적되었던 데이터와 경험치 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래서 육신은 그대로이지만 내 메모리는 완전한 ‘0’이 되는 것.

그건 무슨 느낌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멋진 신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20.06.24 27 0 5쪽
25 사랑이란 20.06.23 35 0 4쪽
24 생존 수단 +1 20.06.22 22 1 4쪽
23 정리 정돈 20.06.16 23 0 5쪽
22 탈출 20.06.11 30 0 4쪽
21 기사도 +2 20.06.10 31 1 4쪽
20 백업 +2 20.06.08 32 2 4쪽
19 피드백 20.06.05 26 0 5쪽
18 또 다른 버그 +2 20.06.03 45 1 4쪽
17 식민지 란 +2 20.06.02 31 1 6쪽
16 리부트 20.05.30 44 0 5쪽
15 멜로 20.05.19 29 0 6쪽
14 사랑은 아프다 20.05.15 30 0 7쪽
13 사랑 20.05.12 30 0 4쪽
12 감정 20.05.11 27 0 9쪽
» 리셋 20.05.08 35 0 9쪽
10 3원칙 20.05.07 42 0 8쪽
9 원칙 20.05.06 44 1 9쪽
8 역사 20.05.04 49 1 9쪽
7 진화 20.05.01 53 1 8쪽
6 과거 +1 20.04.30 64 2 9쪽
5 버그 20.04.29 71 2 9쪽
4 침입 20.04.28 72 2 9쪽
3 모순 20.04.27 88 2 5쪽
2 회상 20.04.24 123 3 9쪽
1 이브 +2 20.04.23 267 3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