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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손 님의 서재

빌런의 제국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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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손
작품등록일 :
2024.02.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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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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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선전

DUMMY

심리전(心理戰).

아군과 적군의 심리를 유도하여 이익을 취하는 전술.


‘아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적군의 멘탈을 흔들어서 전투 의지를 소멸시킨다.’


나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현재 경성은 무정부 상태.

종로서가 폭파되고, 만세의 함성이 천지를 울리며, 사방에서 약탈과 복수가 자행되고 있다.


‘방송을 들은 일본 군경과 민간인들의 심리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탈출은 지능순.

어차피 대세는 기울었다. 조선에 있다간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군경과 재력가는 정보에 가장 민감하다.


‘로스케가 38선 이북에서 저지르는 만행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자세히 알진 못할 거다.’


일본군은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었고 싸울 의사도 없이 숨만 쉬고 있는 상태니까.


“용진아, 나가서 아무 기자나 좀 불러와라.”


나는 적들에게 자세히 알려줄 생각이다.

리스베트가 필요한 타이밍.


“소련의 북한 점령에 관한 보고서를 찾아봐.”


나는 필요한 내용을 알려주고 다시 마이크를 켰다. 그리고 수첩을 펼치고 숫자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7750(매우 긴급). 11,33,0017(경). 17,32,0018(성). 16,30,0018(방). 17,34,0018(송). 11,36,0011(국).”


지켜보던 일본인 직원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우리말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방금 읽은 건 ‘W-K 한글 암호표’.

독수리 작전에 대비해서 광복군 김우진이 개발한 무전통신용 특수암호였다.


‘아군이 얼마나 호응해줄진 미지수다.’


공식적으로 조선에 상륙한 광복군은 내가 유일하니까.


하지만.


‘내가 아는 임정이라면 예비책을 세워두었을 거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에 대비하라.

앞으로 할 일은 민간인이 감당하기 어렵다.


‘가능하면 이용진의 손엔 피를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



CIA 공작원 시절.

나는 특수활동부(Special Activities Center) 소속이었다.


주 임무는, 군사적 ‘흑색 작전’(Black Ops).

국제법상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비공식 작전을 뜻한다.


특수전 임무 자체가 국가 1급기밀.

흑색 작전은 이 중에서도 전모가 밝혀질 경우 전쟁까지 벌어질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암살, 민간인 납치, 포로 고문, 학살, 산업 스파이, 기밀 무기 탈취. 중요 회의 도청 등등.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만 이 정도다.


SAC는 가장 비밀이 많은 조직 중 하나.

작전관들은 특수전사령부(JSOC) 산하의 요원들보다 높은 자율성과 재량권을 갖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이런 거다.

임무를 완수하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해도 돼.

단, 들키지만 마. 절대로!


‘종로서 가스 학살은 폭파로 덮었다. 앞으로 할 일도 영원히 묻힐 것이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략을 점검하고 있는데.


-찾았어요!


리스베트가 유레카를 외쳤다.


-도쿄에 있던 영국 육군 사령관이 전쟁부로 발송한 보고서예요.


[러시아의 북한점령(Russian Occupation of Northern Korea)]


작성자의 목격담에 겹쳐지는 “왓 더 퍽!” 소리를 들으며 내용을 숙지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이용진이 기자를 열댓명이나 데려왔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아까 연설을 듣는데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기자이기 이전에 조선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주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독자들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대문서 일경을 쏴죽이고 트럭에 올라 떠들어댄 보람이 있다.


“반갑소. 미국과 총독부의 합의에 따라 애국치안대를 이끌고 있는 강중건이오.”


나는 그들과 통성명을 하고 공작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토씨 하나 빼지 말고 적으시오.”


심리전 2단계.


“소련 군인들은 따발총으로 무장하고, 북한인과 일본인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공포를 몇 발 발사한 다음 찾아낸 여자들, 특히 대부분 어린 소녀들을 끌어냈다.”


삐라.


나는 심리전 전단지용 멘트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리고는 그들 전부를 눈에 띄는 대로 빼앗은 물건, 가구와 함께 트럭에 실은 다음 자신들의 막사로 끌고 갔다. 하루이틀 뒤 여자들을 길에 내팽개쳤다.”


기자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손이 바빠졌다.

가족들이 같은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빨갱이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특종에 목숨 거는 투철한 기자 정신의 발로다.

녹음기도 없으니 한 자라도 더 적는 놈이 이긴다.


-보고자는 소련군이 소녀들을 데려다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굳이 쓰지 않았어요.


그게 더 무서운 거다.

심리적으로 인간이 공포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공포를 상상하기 때문’이거든.


“소련 군인들은 만주 국경부터 흥남과 함흥 산업단지 아래까지의 지역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을 상대로 강간과 재산 약탈을 저지르고 있다.”


로스께가 땅끄를 몰고 내려온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내일이면 서울에 당도하고 시민들은 ‘해방군’으로 환영한다.’


광복의 숨겨진 진실.

물론 미국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개입으로 역사는 바뀔 것이고.


“그들은 주로 밤에 약탈을 했다. 만일 누군가 그들의 행동을 방해하면 그 자리에서 쏴죽였다······.”


삐라가 퍼지면 적들은 밤을 두려워하게 될 거다.


“일단 여기까지만 합시다.”


설명이 끝나자 기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겠습니까?”


“그럽시다.”


나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기꺼이 프로파간다용 포즈를 취했다.


권총과 태극기를 들고서,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독립운동가의 표상.


찰칵! 찰칵! 찰칵!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사진.

내일이면 경성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

광복군이 상륙하자마자 경성의 치안을 장악했다는 것을.

독수리 작전은 실패했지만 흑색 작전은 성공시킨다.

반드시!


“형님!”


촬영이 막 끝났을 때 이용진이 희소식을 갖고 왔다.


“방금 작업을 끝냈답니다.”



***



‘이제 총독부와 군경은 고립됐다.’


조선전화주식회사의 기술자들은 데드라인을 3분 남기고 임무를 완수했다.


‘이로써 애국치안대가 정보전과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본격적인 흑색 작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걸로 탁주라도 한 사발씩들 하시오.”


나는 팬심을 보여준 기자들에게 격려금을 쥐어주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일본인 감독을 불러 두 가지를 지시했다.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녹음본을 반복해서 트시오.”


방송 장악은 심리전의 기본.

가짜 뉴스로 적의 멘탈을 가루로 만든다. 반대로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말은 개소리다.


‘총보다 강한 건 방송이지.’


다리 병신이 없었다면 칫솔 수염은 절대 퓌러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물고기가 물을 필요로 한 듯 베를린은 센세이션(사건)을 필요로 한다.]


1910년 이래, 경성에서 오늘 같은 사건은 없었다.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


경성의 거리는 애국치안대가 접수했다. 대중은 치안대에 열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흑색 작전의 선전술은 다리 병신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단순화 + 반복.

쉬운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해서 대중을 세뇌시킨다.

2.적대감 조성.

쪽바리/빨갱이를 희생양으로 지목해서 대중의 증오심에 불을 지핀다.

3.대중 매체 활용.

라디오, 신문, 삐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선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 유리해지는 게임. 미군이 상륙하려면 아직 3주나 남았다.

그 안에 경성의 모든 것을 장악해야 한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전리품을 챙기자고요.


리스베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득템의 시간.

방송국은 무기고 못지않은 보물섬이다.


“뭐부터 챙길까?”

-경성방송국은 유·무선 방송을 병행해요.

“그래서?”

-힌트를 줄게요. 교환수를 거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무선방송은 무전기를 통해 프로그램을 전파하고, 유선방송은 전화선을 통해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방식.


-모든 종류의 무전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요.

“······!!!”


순간 아찔해졌다.

전화선이 끊기면 무선통신을 쓰면 된다.


‘방송국에 있는 장비가 총독부, 군경에 없을 리가 없다.’


정보전의 우위가 사라졌다. 니시히로가 발포 명령을 내리면 끝장이다.

리스베트에 따지려는데 문득 기시감이 엄습했다.


‘이렇게 중요한 걸 놓칠 리가 없는데······. 설마?’


아니나 다를까, 말괄량이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히히. 방금 식겁했죠? 진정해요. 전파방해기를 쓰면 되니까.

“······.”


리스베트의 악취미다.

내가 당황하는 걸 즐긴다.

가끔씩 놀라게 해줘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면서.

어쨌거나 고민은 해결됐다.


“용진아, 방송부장 시켜서 무전기 접수하고 전파방해기 작동시키라고 해.”

“예, 형님.”


방송국에 전파방해기가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제가 식민 지배의 도구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제만 그런 건 아니고 모든 국가가 같은 짓을 했다.

적국의 전파를 방해해서 정보를 통제하고, 자체 방송신호 강화하고, 특정 지역의 방송을 차단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용도로.


지금쯤 니시히로는 알았을 거다.

총독부는 더 이상 지휘부가 될 수 없고,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니시히로가 발광하는 걸 못 봐서 아쉽군.”

-나도요. 그나저나 단파방송 사건 기억해요?

“그건 죽어도 못 잊지.”


단파방송 밀청사건.

1940년부터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승만이 방송하는 ‘미국의 소리(VOA)’와 중경의 임시정부에서 보낸 단파 방송을 청취해서.

전황을 비밀리에 전파하다가 많은 사람이 체포당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경성방송국에서만 아나운서·편성원·기술계직원 등 약 40명이 체포됐다.

각 지방 방송국까지 합치면 150명 가까운 방송인들이 검거되어 고초를 겪었다.

정객과 민간인까지 합치면 300여 명이 관련되어 수난을 당했고 일부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할아버지도 임정에서 방송 제작에 참여했었다.

임정의 활동과 정책을 소개하는 대본을 쓰고, 전황을 알리는 아나운서 역할까지 담당했다.


-관련자들 중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일본을 직원을 시켜 관련자 전원을 회의실에 모이게 했다.



***



잠시 후.

나는 영문도 모르고 불려온 10여 명의 직원들과 마주 앉았다.

여성 아나운서도 2명이나 있었고 다들 젊었다. 간부급들은 사건 때 퇴출당한 거다.


“꼭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강중건입니다.”


내가 이름을 밝히자 직원들의 눈빛이 감격으로 차올랐다. 방송으로만 듣다가 실물을 처음 본 거다.

고초를 겪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표정들.


“목소리 듣자마자 알아봤소. 정말 반갑소!”

“우리도 꼭 한 번 보고 싶었소!”

“방금 내보낸 방송도 들었어요.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세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허나 해방이 됐다고 안심해선 안 됩니다. 일본 군경은 동포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곧 소련군이 경성까지 밀고 내려올 겁니다. 아직도 일제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동포들도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미군이 상륙할 때까지 방송국은 24시간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다리 병신의 전략을 설명했다.

단순화 + 반복. 적대감 조성.

국뽕에 고무된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마이크를 놓지 않겠소.”

“다들 선전방송이라면 눈 감고도 할 실력은 갖췄소.”

“도쿄 로즈보다 잘 할 자신도 있어요.”


이 정도 각오면 충분하다.


“여러분 중에 가장 상급자가 누굽니까?”

“접니다.”


이덕근이란 사내였다.

조선인 최초의 방송기자로 훗날 방송계의 거물이 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를 따로 불러 몇 가지 팁을 주고 거리로 나왔다.


‘냄새 한 번 지독하군.’


구름 한 점 없는 태양 아래 매케한 연기가 코를 파고들었다.


“죽여! 죽여버려!”

“왜놈 씨를 말려버리자!”

“낫으로 모가지를 확 따버려!”


피맛을 본 시위대는 폭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치지 못한 일본인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일본인 상점은 약탈당하고 불태워졌다.

장담건대, 니시히로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형님, 어디로 모실까요?”


이용진이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경무국으로 가자.”


본부를 먼저 치고, 가까운 경찰서부터 박살낸다.



***

W-K KOREAN CODE TABLE (B).jpg


작가의말

독립운동가 김우전 선생께서 일주일만에 개발하신 암호표를 첨부합니다.

선생은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미군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에 참여하였으며, 광복군의 무전통신을 위한 한글 암호를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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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축제 +8 24.04.02 6,123 16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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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폭동 +4 24.03.18 7,242 177 12쪽
7 파괴 +13 24.03.15 7,496 180 12쪽
6 응징 +7 24.03.12 7,839 176 12쪽
5 잠입 +8 24.03.10 8,164 181 12쪽
4 해방 +7 24.03.06 9,107 182 11쪽
3 상륙 +20 24.03.03 10,167 206 12쪽
2 귀환 +12 24.02.29 13,254 237 13쪽
1 프롤로그_복수 +17 24.02.25 17,587 24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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