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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룡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군웅천하전

 

시작되는 역사

 

 

()문제 양견 5. 통치 이전 3세기 반 동안의 대륙은 분열과 일시적인 통일이 반복되었지만 그것은 대분열기 초기의 일시적인 봉합에 지나지 않았다. 민초는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환란을 견뎌내면서도 영원한 태평성대를 보장받고자 했으나 대륙의 기질과 분열은 그러한 바람을 거두지 못했다.

 

수나라가 들어서기 전 대륙은 45개 왕조 235명의 군주가 시대를 명멸하고 있었다. 거기에 역사가 들춰내지 못한 6개 왕조와 30여 명의 군주가 있었으니 이는 대륙의 땅덩이만큼이나 넘쳐나는 쇄국적인 통치형태 때문이었다. 아울러 흉노며 선비, 심지어는 티베트까지 왕족을 세워 할거하였으니 그야말로 사분오열로 점철된 대륙이었다.

 

수 황제는 밖으로는 강력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통일왕국을 견고하게 다지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진나라를 함락시키고 이제 나라를 일으킨 지 약 5. 수나라는 아직 강성대국에 태평천국이라 칭할 수는 없었다.

 

황제는 두 손가락을 이마에 짚은 채 깊은 시름에 잠겼다.

 

황후마마가 행차를 알리옵니다.”

 

인수궁(仁寿宫)에 요양 차 쉬러 와서는 오히려 시름만 얻은 거 같아 심신이 퇴모하고 있던 찰나, 황후의 빙문(聘問)소식이 들리자 양견은 어린아이처럼 덜렁거리며 행각을 뛰쳐나왔다.

 

황후 어인 일이시오.”

 

짐짓 위엄을 갖추고자 노력했으나 정실부인 문헌(문헌황후 독고씨, 독고황후로도 불린다) 앞에서는 정작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황제였다. 그만큼 내조에 충실하며, 정사에 있어서도 양견과 뜻을 같이 하거나 길을 일러주는 현명한 부인이었다.

 

황제의 안색이 좋지 아니한데, 어찌 꽃을 감상하며 홀로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아니오, 아니오. 내 걱정일랑 태산 같은 정사 때문이 아니겠소. 어떤 황제가 이러한 걱정을 덜어

둔단 말이오. 황제가 되었으니, 황제가 해야 할 일로 고심하는 것이니 문헌은 심려치 마시오.”

 

황제.”

 

왜 그러시오. 할 말이 있다면 해 보시오.”

 

황제는 소후를 어찌 생각하옵니까?”

 

난데없이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이오?”

 

그저 아내이자 여자로 보이는지 여쭤 뵙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 말에 비로소 양견은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는지 골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의 지기이기도 하오.”

 

황후는 기다리지 않고 명쾌하게 말을 이었다.

 

지기에게도 나누지 못한 정사가 있다 하니 소후는 물러남이 옳은지요?”

 

그제야 양견은 뒷짐을 지며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의 입가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있었다.

 

황후, 오르시오. 내 긴히 할 말이 있소이다.”

 

황후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양견의 발자국을 따랐다. 인수궁 처소에 마련된 빈실로 들어서자 간소한 주안상과 몇몇 요리가 가지런히 놓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윽고 마주 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주제를 비켜서 그저 주거니 받거니 잔을 나누던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한 동안 그렇게 있었다.

 

어느 정도의 취기가 올라와서일까. 황제 양견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아니 한 수염을 두어 번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내 즉위한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소.”

 

태평하옵니다.”

 

짐의 생각은 그렇지 않소. 시야에 옮겨온 백성은 웃고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어둡다오. 견디다 못해 타락에 젖어가는 민초들의 삶이 내 근심을 옥죄고 있소.”

 

황제가 고민하는 정사는 군사입니까? 백성이옵니까?”


경중을 논할 수 없소.”

 

소후의 생각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어쩌면 그 대답을 바라고 어정쩡한 말을 던진 것일지도 몰랐다.

 

경청하겠소.”

 

그저 저자거리의 풍문 정도로 웃어 들어주신다면 편히 말을 나누겠습니다.”

 

해 보시오.”

 

소후의 미천한 생각으로 군사에 대한 욕심은 버리심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세상엔 완전무결함이 없듯이 충만한 군사 역시 보이지 않는 욕심입니다. 그리하다보면 덩달아 걱정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비단, 저 뿐만이 아닌 국사에 임하는 모든 고하관직들은 수나라 군사에 대항할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적은 기실 백성이 아닐는지요. 군사 역시 군사 이전에 백성이거늘, 백성을 천대하면 곧 군사를 천대하는 것이오, 그것은 곧 군사로 하여금 황실의 권위를 내어주고 전란을 획책하게끔 동기를 쥐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허니, 군사보다는 백성을 돌보는데 우선은 주력하심이 옳은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양견은 황후의 시원한 대답에 명쾌한 눈빛이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의 심사를 깨지 못하고 있었다.

 

내 어찌 그리 생각하지 않았겠소. 허나 백성에 주력하고 군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군주로서 도리를 망각하는 일이 아니겠소.”

 

둘을 아우르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하하, 황후. 말이 다르지 않소. 방금 전에는 백성에 주력하라 하면서 이번에는 또 군사와 백성을 아우르라니.”

 

외람된 말이오나, 폐하는 분명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옵니다. 그러나 현생에서는 제약된 육체로 태어나시었으니 저희 인간과 무릇 다르지 않사옵니다.”

 

그만, 천하가 그리 칭하는 것은 일국을 유지하고자 지어낸 말일 터, 어찌 짐을 신이라고 할 수 있겠소. 짐과 지기가 되고자 한다면 황후 역시 겉치레는 삼가도록 하시오.”

 

황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신이 아니어도, 제게는 신, 아니 하늘 그 이상이거늘, 어찌 지아비를 섬기는 자로써 거짓을 아뢰겠사옵니까. 너그러이 진심을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황후의 달변에 이겨낼 재간이 없었는지 양견은 어색한 웃음으로 순간을 넘겼다.

 

그 사이 황후가 말을 이었다.

 

군사는 백성이오나 나라의 초석이옵니다. 폐하께서도 말씀하시듯 백성과 군사는 그 경중을 논할 수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묻겠사옵니다. 폐하는 만백성을 굽어 살필 시간이나 여력이 되시는지요. 혹은, 만백성이 폐하의 곁을 출주하고 있는지요?”

 

양견이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것이오! 살피고 보듬고자 하는 내 생각이 뜻대로만 된다면야 어찌 좋지 아니하겠소. 허나 작금은 그러하지 않으니 개탄할 노릇이오, 해답이 없음에 또 한 번 개탄하고 있질 않소.”

 

그렇다면 군사는 어떠하옵니까?”

 

공부시랑(工部侍郞)부터 응양랑장(膺揚郞將) 밑으로 효기교위(驍騎校尉)까지 아우른다면 걱정할 것이 없소.”

 

허면 폐하는 군사를 부리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는 뜻인지요?”

 

지금껏 해 온 일이 그러할 터, 어찌 두 말을 하겠소.”

 

그럼 이미 답은 명백하지 않겠사옵니까?”

 

답이라… …. 후궁이 그리 말해도 짐은 영…….”

 

백성을 아우르는 자를 찾으시지요. 정히 찾지 못한다면 아우르는 자를 만드시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군사와 마찬가지로 백성 또한 폐하의 시야에서 멀지 않을 것이옵니다.”

 

허허허! 명쾌하도다. 내 황후의 현명함을 따를 재간이 없소이다.”

 

모순이옵니다. 일개 아녀자가 어찌 하늘같은 황제폐하와 명재[明才]를 논하겠습니까? 말씀을 거둬주시옵소서.”

 

양견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황후는 복안이라도 있는 게요? 하하하, 아니지아니지. 교묘하기로는 누구도 당해내지 못할 양견의 처가 복안이 없다하면 그 또한 어불성설이지. 아무렴!”

 

체통을 지키시지요.”

 

어허, 우리 둘 뿐인데 무슨 체통이란 말이오. 침소에서마저 체통을 유지하라고 하면 이 양견은 어딜 가서 응석을 부린단 말이오.”

 

 

그 말에 황후의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 양견과는 두 살 터울에 아직 혈기가 남아있던 부부였다. 게다가 역사에 남아있는 그 어느 황제들보다 금슬이 좋기로 유명해서 훗날 두 분의 성인이라고까지 일컬어졌으니 분명히 여느 황제들과는 다른 부부애를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살짝 오른 취기와 명쾌하고 현명한 대답 덕인지 양견은 황후에게 더 없는 성욕이 일었다. 대답할 것도 없이 그는 곧바로 황후를 안았다. 싫지는 않은 듯 황후 역시 그의 품을 살포시 밀어내면서도 끌어안는 형국을 취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침실로 몸을 옮겼다.

 

후끈 달아오른 양견이 앞 뒤 볼 것 없이 황후의 홍포를 벗기려고 안간 힘을 썼다. 조신함을 잃지 않던 황후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정녕 뒤가 궁금하지 않단 말이지요?”

 

뒤라니, 게 무슨 말이오?”

 

양견은 이미 황후의 묘혹에 빠져있었다. 도무지 고혹적인 자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황제이기에 앞서 사람인 양견도 여자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양귀비 못지 않은 그녀의 미모를 이겨낸다는 것은 불승이 아니고서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이리라.

 

그런 양견을 밀어낸 건 황후였다. 그녀는 풀어진 속곳을 고쳐 입으며 자세를 바로했다.

 

저는 죽는 그 날까지 폐하의 것이옵니다.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폐하는 언제든지 저를 얻을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나라는 한 번 잃으면 되찾기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를 탐하겠습니까, 아니면 나라에 관한 얘기를 들으시겠습니까?”

 

과연 양견은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동물처럼 으르렁대면 달려들던 방금 전의 일을 짐짓 모른다는 듯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비스듬히 누웠다.

 

말해 보시오.”

 

황후가 자신의 매무새를 고치며 인자한 미소를 흘렸다. 그것은 양견의 무안함을 감춰주기 위한 배려였다. 아울러 그녀의 한 손은 누워있는 양견의 머리를 어린아이 쓰다듬듯이 어루만졌다.

이 같은 무릉도원이 있을까. 양견은 이제 지체하지 않고 그녀의 의견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백성과는 가깝지만 군사를 멀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란 말이오?”

바로 강호인이옵니다.”

 

강호 인이라…….”

 

강호 인을 직접 대해보지 않은 이들은 그들의 능력을 비사(肥辭) 쯤으로 여기지요. 허나, 소후가 소녀시절, 서위에 나갔다가 우연찮게도 한 불승의 선보하는 모습을 보았지요. 저는 그때 현실 속의 창해일속을 느꼈습니다. 이 세상엔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소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경탄을 멈출 수 없을 때 또 한명의 검객의 출연을 목격하였습니다. 그 역시 불승을 도와 백성을 핍박하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무리들을 소탕하였는데 단 두 사람이서 이 십 여명의 장정들을 해치우는데 불과 일각을 넘기지 않았답니다.”

 

가만히 누워 황후의 말을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고 싶었는데 양견의 귀로는 황후의 얘기가 의미심장한 재미거리로 다가왔다. 그가 몸을 일으킨 건 바로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래, 다음은 어찌되었소?”

 

행상에게 물었지요. 인간이라면 삼장의 높이를 오를 수 있느냐고?”

 

그래, 행상은 무어라 답하였소?”

 

부끄럽게도 절 빤히 보며 한껏 웃었사옵니다.”

 

양견은 마치 그 현장에 있던 사람마냥 벌컥 화를 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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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상 | 군웅천하전 1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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