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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관하여


[인간에 관하여] 어느 한 소년

어느 한 소년

 

늦은 시간.

교도소를 방불케 하는 학교라는 이름의 건물에서 

동등한 복장을 갖춘 다른 인격을 지닌 아이들이 몰려나온다.

 

모두 동일한 모양의 교복,

마치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처럼 획일화되어 있다.

그러나 동일한 선생에게 동일한 수업을 받아도 차이가 드러나듯,

바지를 줄인 학생, 상의를 길게 늘어뜨린 학생, 상의 단추를 여러 개 푼 모습까지도

교복을 입은 모양새는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그 속에 감춘 아이들의 개성 역시 천차만별이다.

 

게 중 무난하게 교복을 입은 학생은 오늘 굳은 결심을 했다.

 

고층의 아파트.

평소라면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을 소년,

오늘따라 유독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문득 소년의 눈이 옥상을 향한다.

 

엘리베이터 앞,

한참을 머뭇거리던 소년은 오지 않을 내일을 떠올렸다.

 

끝이 없는 괴롭힘, 그 지리한 시간 속에 소년의 인격은 망가진 지 오래였다.

아직 7월의 중순,

내년 3월이 되어야 겨우 끝날 이 고통.

아직 반년이나 남았다는 생각이 소년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세상은 그런 소년의 마음을 모르는 듯, 

야속하기만 하다.

늘 그렇듯 아이들의 시간은 더디게만 흐른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소년은 옥상 아래의 화단을 바라본다.

다시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시 올 내일을 기약할 자신이 없었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악마와도 같이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들,

그놈들 앞에서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나는 그 녀석들과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점점 

바람 소리가 빨라진다.

 

친하게 지내던 나의 친구들,

이제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그들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흩어진다.

 

점점

화단이 가까워진다.

 

그와 동시에

소년의 뇌세포는 격렬하게 춤을 추고

소년의 짧은 인생은 더욱 빠르게 역행한다.

 

몸조차 가누지 못해 짐승에 가까웠던 어린 시절,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순간조차 살아 있지 못할 그 시절,

 

나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크게 기뻐하던 부모님,

세상의 빛을 처음 본 그 순간, 작은 나를 껴안고 감격스러워 하던 부모님,

부모님,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했었습니다.


전하지 못할 말을 가슴에 담은 채

소년의 몸은 낙하한다.

 

식어버린 자신의 몸뚱이를 껴안고 오열할 그 모습에

소년의 얼굴에서 물기가 번져 떨어진다. 

그러나 후회를 하기엔 이미 늦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단은 온몸으로 소년을 받아들였다.

격심한 고통, 소년의 모든 시간은 고요 속에 멈춰있다.

 

소년아,

네 부모의 피와 살을 삼키며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넌 무엇을 보았느냐.

죽음을 향해 내밀 용기는 있었으면서 삶을 향해 내밀 용기는 없었느냐.

 

소년아,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느냐.

네 생명과 그 녀석들의 피와 살을 맞바꿀 자신은 없었느냐.

네 부모의 가슴 속 응어리는 어찌 풀란 말이냐. 

네 부모가 쏟아낼 피눈물을 어찌 보란 말이냐. 

 

세상아,

왜 동등한 인격을 지녔으면서

누군가는 아파해야 하고 누군가는 슬퍼해야 한단 말인가.

 

신이여,

누굴 위한 뜻입니까. 

누굴 위한 세상입니까.

이것이 정녕 신의 뜻입니까.

다른 이의 인격을 모독하는 자들은 뻔뻔하게 살아가고

그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자들은 스스로 삶을 포기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더는 당신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나 스스로 인간을 타락시켜 

인간들로 하여금 당신을 잊게 만들겠습니다.


이제 악마는 다시는 신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 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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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일
» 인간에 관하여 | 어느 한 소년 13-07-21
1 인간에 관하여 | 어느 한 여인 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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