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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

습작


[습작] 기적

어김없이 밝아 온 새해 첫날,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의 잔소리가 나를 깨웠다. 방학도 됐겠다. 원 없이 자고 싶었으나 엄만 내가 늘어지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커튼을 걷어냈다. 아침 햇살이 눈을 찌른다. 해는 어느덧 중천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잔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 나뒹굴고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별일이다. 평소엔 오지도 않는 카톡이 수십통 쌓여있었다. 이상한 것은 부재중통화는 한통도 오지 않았다는 것.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부재중 메시지를 천천히 확인했다. 실상 메시지는 별 내용 없는 것들이었다.

한 놈은 새차를 뽑았다며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연식이 어쩌네, 연비가 어쩌네, 옵션이 뭐네 평소에 차에 별관심이 없는 나에겐 별 흥미 없는 이야기였다. 차야 중고차를 뽑든 새차를 뽑든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별 문제 없는 것 아닌가? 나는 그의 자랑에 모음 하나를 날리고 채팅창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다른 하난…….

“나와서 밥 안 먹냐!!”

“하아……. 나가요!”

뭐, 그다지 급한 내용은 아닐 테지. 나는 폰을 주머니에 찔러 놓고 방을 나왔다.

아침밥은 최악이었다. 오징어 채, 오징어 국, 오징어 링, 오징어……. 무슨 놈의 반찬이 오징어 밖에 없냔 말이야! 짜증이나 엄마에게 뭐라 따지려하자 엄마는 미간을 찡그리며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 아빠는 그런 엄마의 압박에 아무런 말없이 밥을 먹었고 있었다. 하긴 이 모든 건 아빠 때문이니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 말로는 퇴근길 지하철에 한 할머니가 처량하게 오징어를 팔고 있어 도저히 가만 볼 수 없다고 말했지만, 어떤 사람이 말린 오징어도 아니고 생 오징어를 지하철에서 판단 말인가! 그냥 한껏 취한 아빠가 뭣도 모르고 한가득 사오신거겠지.

그리니까 이 사태는 다시 말해 엄마가 아빠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는 아빠 본인도 잘 알고 계시리라.

“그런데 하필이면 사와도 오징어냐…….”

“왜 이 녀석아! 이게 얼마나 좋은 놈인데!”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짝을 때리신다. 맞을만했지. 그냥 조용히 식사나 하시지 괜히 입을 여셔서…….

“너도 군말 말고 먹어! 네 아빠가 연말 보너스를 이렇게 날리셨는데 기대에 부응해줘야지 않겠냐?”

“여보, 그건 그러니까 말이야. 어제 밤에 그러니까…….”

“됐고! 밥이나 먹어요!”

말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텐데 왜 저러시나 몰라.

식사를 마친 나는 씻고 나와 시계를 보았다. 9시 27분, 늦잠을 자긴 했구나. 나는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볼만한 거 없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자 아빠가 리모컨을 빼앗아 뉴스로 채널로 돌리신다. 뉴스는 무슨 재미로 보는 걸까? 뉴스를 보며 하는 말은 아파트 값이 또 오르네,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어둡네, 어쩌네 하며 화내실 거면서 언제나 뉴스를 보신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티비를 뺏긴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내방으로 돌아갔다. 옷장을 열고서 외출 준비를 했다. 괜히 집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고 기껏해야 하는 일이라곤 컴퓨터 앞에서 소환사의 협곡을 찾겠지. 새해 첫날부터 잉여가 되고 싶진 않으니 적당한 처지의 녀석을 불러 영화나 볼 생각이었다. 옷을 갖춰 입은 나는 폰을 꺼내다 문득 아침에 확인하지 못한 카톡이 생각났다.

[자주 놀던 놀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오전 8:17

모르는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애초에 본명이 아닌 이상한 닉네임이 적혀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번호 또한 저장되어 있지 않을 걸보니 고등학교, 대학교 녀석은 아닐 거다. 더구나 그 시절 녀석들을 기억하지 못 할리도 없고 녀석들이랑 놀이터에서 놀 일이 뭐가 있겠는가? 놀이터를 언급하는 걸 보아 상당히 어린 시절에 같이 놀던 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프로필을 클릭해 올려놓은 사진을 넘겨보았다. 프로필에 뜬 사진은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멋스런 풍경 사진이었다. 정체를 유추하기에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 이후로 보낸 메시지는 한통도 없다. 현재 시간 9시 40분, 한참을 넘긴 시간. 창밖을 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에 눈까지 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다리는 미련한 사람은 아니리라 생각했지만 곧 이어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 이제야 확인했네? 여기 너무 춥다 빨리 나와] 오전 9시 41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로군. 연락도 되겠다. 그냥 적당히 카페에 들어가 카페라떼라도 홀짝거리고 있으면 어디가 덧나냔 말이야. 그렇다고 무작정 나가기도 뭣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른다고 나가는 건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내가 아무리 남자여도 요즘 세상은 무섭단 말이다!

- 누구세요?

가장 기본적인 멘트를 보냈다. 이제 적당히 자신의 정체를…….

[ㅋㅋ 누굴거 같아?]

안 밝히는 구나. 지가 무슨 신비주의냐? 어디로 나오라고 해놓고 반응이 왜 이래?

- 누구신지 알아야 만나러 나가죠.

까칠까칠한 분이시로구만. 아니면 친구들이 나를 낚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자주 놀던 놀이터를 언급하는 걸로 보아 내가 일전에 이야기했던 그 아이를 미끼로 쓰는 걸지도……. 잠깐? 그 아이?

[ㅋㅋ 흠... 기억 못하는 건가? 뭐 무리도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바로 못 나오는 거야?]

장난이라면 상당히 악질적인 장난이다. 남의 추억으로 장난을 치니. 그런 놈이라면 단박에 절교해주리라! 지금 나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기대감, 불안감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무슨 답장을 보내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 나갈 수는 있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른다고 나가는 것도 우스운 거 아닌가요?

고민 끝에 보낸 답장, 만약 그녀라면 서운할지도 모를 답장이다.

[흠... 그런데 내가 이름을 알려줘도 모를테고]

하긴 그렇긴 하다. 난 그 아이의 이름도, 사는 곳도, 무엇하나 알고 있는 게 없었다. 그저 그 아이는 긴 머리를 묶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혼자 놀고 있었던 게 기억의 전부였다.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자주 놀았는데 이름조차 모르다니. 참 한심하다. 난 그녀의 답장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장난을 칠만한 녀석들에게 메시지를 돌리며 장난치지 말라고 화를 냈지만 녀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뭐 같은 놈 새해 첫날부터 뭔 짓이냐’부터 시작해. ‘이런 관심병 종자 새해 첫날부터 잉여롭구나. 형아가 자비를 베풀어 영화 보러 가주마’라는 둥 ‘이 자식보소. 내가 너처럼 잉여로운 줄 아냐?’라는 둥 애초에 예상한 반응이었다. 자기들이 했다고 해서 그렇다고 불 녀석들도 아니니까.

젠장, 더 모르게 됐다.

[안 올거야?]

제기랄, 밑져야 본전이다.

- 자주 놀던 놀이터 어디를 말하는 건가요?

[OO공원 놀이터]

- 기다리세요.

일단 가보는 거다.

일단 말한데로 놀이터로 나오긴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설마 정말 낚시인건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머릿속에 시치미를 때던 녀석들의 반응을 떠올리자 조그맣던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부터 줄초상을 치러 주리라!

순간 누군가 내 눈을 가리며 조그맣게 속삭여왔다.

“누구게?”

안 그래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나에게 이런 장난은 독이 되었다. 나는 눈을 가린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돌아섰다. 깜짝 놀란 눈으로 조그만 입을 벌리고선 긴 머리의 여성, 어딘가 낯이 익었다. 까치발로 섰던 그녀는 당황하며 손을 뒤로 숨긴다. 이런 일냈군.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행동이 어째서인지 낯이 익었다. 무슨 일이건 내 눈치를 살피며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던 그 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거리다 튀어나온 말은…….

“죄…… 죄송합니다. 친구 녀석이 장난친 건 줄 알고…….”

별거 있겠냐. 나같이 소심한 사람이 대뜸 어? 너는 나의 추억의 그녀!! 라고 할 배짱도 용기도 없는 놈이니.

“아, 저야 말로 죄송해요. 아는 사람인줄 알고 무심코…… 실례했습니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엉겁결에 나도 그녀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말았다. 나는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녀가 그 아이를 많이 닮기는 했으나 그녀는 내가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뜬금없이 나에게 누구냐는 장난을 칠 리 없다. 게다가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녀는 숫기가 없는 여린 소녀였다. 저렇게 당돌한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아직이야?]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 도착했는데요?

누군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돌아보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볼이 누군가의 손에 닿기 전까진.

“풉.”

이건 아니었다. 물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의 재회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이건 아니잖아!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내 멍해진 표정이 상당히 재밌는 모양이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연신 웃음을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키만 컸지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러는 넌 많이 변했네. 울면서 구석에 혼자 놀던 애가 장난을 다치고.”

“아, 그런가?”

그녀가 또다시 미소 짓는다. 말로 표현하기 뭐한 감정이 올라온다. 왠지 멋쩍어진 나는 볼을 긁적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사라져버린 거야?”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어린 시절 흔한 일이잖아? 집안 사정으로 이사 갔었어.”

“말 한마디 해주고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미안, 그 전에도 말하려고 했는데. 뭐랄까 용기가 없어서…….”

하긴 당시의 그녀는 지금과 달리 말조차 제대로 못 붙이는 아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를 어떻게 찾은 거야?”

“우연이야. 내 친구 중에 네 이름을 알던 애가 있더라고 혹시나 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네가 자주 이야기한다는 그 애가 꼭 난거 같아서 혹시나 하고.”

우연이라 그래 살다보면 기적 같은 우연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녀는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잊어버렸어? 네가 가르쳐줬잖아.”

“응?”

뭐지? 나는 그녀 이름도 모르는데 나는 이름을 알려줬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네가 나한테 손 내밀면서 이름을 알려줬잖아?”

“그럼, 네 이름을 난 왜 모르는 거지?”

“부끄러워서 차마 말 못했는데 네가 이름 같은 건 별로 상관없다고 말해줬잖아? 그때 너 진짜 애들 같지 않던 말을 하더라? 이름 같은 건 필요 없이 자기가 나란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면 이름 같은 건 상관없다고 그랬던가?”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나도 참 어렸을 때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상한 말을 했군!

“잠깐, 대학 친구라니 지금 여기 사는 거야?”

“응, 작년에 기숙사 생활하다 이번에 자취하기 시작했어.”

“그럼 무식하게 2시간이나 밖에서 기다리거나 하진 않았겠네?”

“풋, 이 근처가 집인데 그럴 리 없잖아?”

그렇다면 다행이군. 난 또 몇 시간씩이나 여기서 기다린거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아직도 안 궁금해? 내 이름?”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안 가르쳐주지! 내가 널 찾은 것처럼 너도 열심히 내 이름을 알아내봐!”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내 이름을 알고 그때 추억까지 알고 있는 아이라면 나와는 절친한 사이라는 뜻이니 그 중에서 나의 과거를 묻고 연락처를 알아간 이를 찾는 건 그녀가 나를 찾은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 정도야. 알아내주지 뭐.”

그녀의 장난을 받아주는 것도 좋겠지.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녀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새해 첫날, 그토록 염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졌다. 어쩌면 기적은 정말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열반문 과제로 쓴 어휘 연상 글쓰기.

실제로 쓰고 싶던 내용은 어머니를 잃고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용으로 쓰고 싶었지만

막상 써내려가다보니 볼래 생각했던 것 하고 너무 다른 요상한 내용이 나와버림

순발력 있게 글을 써야하는데 난 이놈은 4시간 가까이 썼지...

에이 이런 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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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일
» 습작 | 기적 13-01-12
1 습작 | 궁상 *4 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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