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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

습작


[습작] 궁상

달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세상이 모두 잠에 빠진 것인지 조그마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반기지 않는 새벽을 알리는 빗소리

부산하게, 내 귀를 간지럽힌다.

눈이 채 녹지 않은 거리를 엉망으로 더럽힌다.

마치 내 마음처럼

 

우울함을 참지 못하고 옥상에 올라온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괜히 기분만 더 심란해져 뭐라 해야 할지 모른 감상에 빠져 궁상스럽게 비를 맞고 있다.

 

연인과 이별을 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와 사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실패하여 좌절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감정에 취해 미친 사람 마냥 옥상에서 비를 맞고 있다.

그것도 한 겨울에,

기온은 영하 때로 떨어졌고 50년 만의 강추위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날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궁상을 떨리 없다.

 

가끔 주체되지 않는 감성적인 마음이 문제라고 곱씹으며 몸을 움츠린다.

집에 들어가면 그만이련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밤늦게 새벽 순찰을 도시던 경비 할아버지가 나를 보지 못하고 문을 잠근 듯하다.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 묻겠지만 옥상 문은 이중구조라 하나는 안에서 하나는 밖에서 잠그는 아주 요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혼자의 감상에 취해 빗소리를 들으며 감성에 빠져 문이 잠기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중증이다.

한심스럽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것이라 옷은 집에서 입던 추리닝을 걸치고 나온게 전부

제기랄, 패딩이라도 걸치고 나올 걸.

 

싸구려 감성은 이미 열기가 식어 몸은 점점 얼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몸을 적시는 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성의 늪에 빠져있을 땐 그리도 아름다웠던 비건만

물에 빠진 생쥐꼴로 나는 뭘하고 있는 걸까?

 

문을 열리길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흔한 휴대전화조차 집에 그대로 놓아둔 채 나왔기에

 

현재 시간 새벽 4시

경비아저씨가 옥상 문을 여는 시간은 새벽 6시경

얼어죽지 않을래나?

 

눈앞이 깜깜하다.

물론 밤인 탓도 있겠지만

하아 이 이상 생각을 이어가다간 우울함에 다이빙 할지도 모르겠어

 

나는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생각으로 옥상에 올라온 걸까?

 

“하아아아-.”

 

길게 이어지는 한숨소리,

나는 무심코 옆을 돌아봤다.

 

뭐랄까?

비에 젖은 생쥐 한 마리

처량한 신세가 마치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 새하얀 원피스,  우산

하, 나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었군.

 

나는 생각을 멈추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한 겨울에 달랑 원피스 하나를 걸치고 나오다니!

거기다 비 때문에

젠장, 나는 못 본거다.

 

“어?”

 

그녀도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자신의 궁상스러운 모습을 들킨게 부끄러운 모양이다.

 

하긴 나도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그런데 나도 같은 상황이잖아?

 

한심하군.

 

동지애를 느낄 새도 없이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시선을 멀리한다.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이 열리려면 2시간이나 남았다.

 

망했다.

 

나는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산을 들고 쭈그려 앉고서 화단의 식물들을 살피고 있다.

꽃은 피지 않았는데 무엇을 감상하고 있는 걸까?

 

그녀가 다시 나를 돌아본다.

재빨리 시선을 피해버렸다.

곁눈질로 그녀를 보자

그녀는 말없이 미소 짓는다.

 

뺨이 달아오른다.

무엇 때문에?

 

다시 그녀를 돌아본다.

그녀는 여전히 식물을 보고 있다.

 

그녀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

꽃도 피지 않은 이름 모를 풀잎들을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를 띠운다.

 

다시금 나의 불안정한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러한 미묘한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의 미소에 추위는 눈녹듯 사라졌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건만 어째선지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나를 돌아본다.

배시시 짓는 미소에

 

심장이 멎어버릴거 같아

 

그녀가 다가온다.

빗소리에 맞춰

 

한 방울

 

두 방울

 

 

나는 그 자리에 굳어진 채로

그녀가 다가오길 기다린다.

 

그녀가 내민 우산,

가볍게 미소 짓는 그녀,

 

나는 그녀의 미소를 건내 받는다.

 

그녀는 말없이 돌아선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는 내 신세가

처량해 보였기 때문일까?

 

한심하네

 

그녀는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식물을 돌아보고 있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녀에게 우산을 내민다.

 

우산이 필요 없는건

 

그녀도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뒤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나에게 우산을

찾아가길 기다렸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자리를 지킨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마냥

 

하지만 시간은

어느새 흘러 있었다.


댓글 4

  • 001. Lv.5 Row

    12.12.11 11:55

    궁상맞게 피방에서 끄작인 글

  • 002. Personacon 이설理雪

    12.12.11 21:32

    진짜 궁상스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003. Lv.5 Row

    12.12.11 21:55

    궁상!

  • 004. Personacon 윈드윙

    13.02.10 11:37

    생동감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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