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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님의 서재입니다.

백야 일상


[백야 일상] 단어, 맞춤법에 대한 단상

1.

글을 쓰다 보면 잘못된 단어나 틀린 단어의 사용을 두고 갈등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애당초 용법을 틀린 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없는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경우에는 맞춤법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내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선택해서 사용합니다. 시나 글을 쓰는 자는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자라고 배워왔으니까요.

2.
물론 맞춤법이라고 해서 어의가 없다, 어이가 없다.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기름과 물을 썩는다, 섞는다는 식의 맞춤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거죠.

그는 소매춤에 암기를 숨겼다. 그는 소매 속에 암기를 숨겼다.
그런 인간 말종은 처음 봤어. 그런 인간 망종은 처음 봤어.

전자의 것들이 틀린 단어, 후자의 단어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틀린 단어인지 알면서 이걸 써야 분위기가 산다, 혹은 이걸 써야 내 뜻을 온전하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부분에서는 과감하게 전자의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그럴 때마다 출판사 교정팀에서 제동이 걸려옵니다. 매번 그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

3.
포옹이나 들러리 같은 경우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저 단어들을 외래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꽤 많아요. 그래서 포옹을 쓸 때는 한자 병행하기도 하고, 들러리나 멜빵 같은 단어는 매우 신중하게 씁니다. 
또 무협을 쓰기 때문에 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적지 않은 부담감도 느낍니다.
다들 잘 알고 있을 시나브로, 나르샤, 혹은 솔래솔래, 윷진아비 등등의 단어들이나 속담 같은 건 마땅히 사용해야할 순간에도 머뭇거리게 됩니다. 무협을 쓰지 않았다면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죠.

4.
글을 쓰면서 늘 독자를 생각합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면 독자가 제대로 알아볼까, 이해할까, 내 의중을 파악해줄까, 아니면 맞춤법도 모른다고 욕할까, 등등에 대해서 고민도 합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무협에서 포옹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그거 영어 아닌가? 이 작가 바보다.
라는 글을 올리는 독자가 있으면 놀랍게도 열에 여덟은 그 말에 동조하는 댓글을 답니다. ㄷㄷ
나머지 한두 명이, 바보. 포옹은 한자란 말이다. 라고 알려주면 또 놀랍게도 애당초 무협에서 포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잘못이야. 라는 반론글이 쫘르륵 올라옵니다.
이걸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고집이 세다고 여겨야 할지...

5.
그래서 탄환이니 용수철이니 하는 단어들은 정말 고민하고 씁니다.
또 소파 대신 목탑木榻이나 장등자長凳子 같은 단어를 찾아서(이거 찾느라 걸린 시간이... ㅜㅜ) 사용합니다. 
(사실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는 또 문제가 되는 것이, 그 단어들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들어가야한다는 겁니다. ㅡㅡ;;)
도시 대신, 굳이 성시, 성읍, 등의 단어를 쓰는 것도 위의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대충 쓰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찾아서 쓰는 단어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까는 글을 올릴 때, 작가가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시기를. ^^

6.
물론 실수도 많이 합니다.
무심코 요녕반도라는 단어를 쓴다든지...
(당시에는 요동, 요서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제가 한때 요녕반도의 대련에 살다 보니까 입에 익숙한 나머지 그렇게 썼다가 독자에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혹은 호광성을 호남 호북으로 나눠 쓴다든지 하는 실수가 없는 건 아닙니다. 
또 중국 지명을 쓸 경우에는 현재 사용하는 도시의 명칭을 사용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당시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제 개인적으로는 독자들의 가독성과 편의성을 생각해서 현재 사용하는 지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7.
모 처에서 작가의 맞춤법에 대한 독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잠시 자괴감이 들어서 쓰는 글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저와 사뭇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저의는 그거죠. 무협 따위를 쓰는 작가가 온전한 맞춤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없다. 그러니 틀린 맞춤법은 모두 몰라서 틀린 거다... 라는 것 말입니다. 
뭐, 맞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가끔은 알면서도 일부러 틀린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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