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藍淚人 님의 서재입니다.

락 樂 Fun


[락 樂 Fun] 오래전에 썼던 게임 팬픽

우연히 모 사이트에서 발굴(?)하여 올립니다.


WIZARDS TALE - 봅의 여행기(Travelogue of Bob)

어느 젊은 마법사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모험 이야기..

Knowledge 1 : 사고뭉치는 매로 다스려선 안 된다.

제 1편  도입

"스승님의 오래되고 비밀스런 선반에는 갖가지 진귀한 시약들과 로즈 마리를 말려서 만든 허브차, 박하사탕,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관절염에 잘 듣는 약 등이 서로 아무렇게나 섞여 있었다.
스승님은 박하로 만든 건 무엇이든 좋아하시는 편이라 어린 제자들에게 빼앗길까봐 위험천만한 물건들 속에 곧잘 숨겨두시곤 했다. 나의 어린 도제 시절, 스승님이 숨겨둔 박하사탕을 먹기 위해서 몰래 찬장 속의 물건을 찾다가 시약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간혹 엉뚱한 시약 통을 건드려서 선반을 통제로 날려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늙은 스승은 어린 나를 쫓아내거나 벌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박하사탕 한 꾸러미를 나의 품에 안겨주시고 이빨이 다 빠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어린 나를 달래셨다. 지금은 알비온의 아카데미의 명예의 전당에 낡은 초상화 한 장 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노스승의 모습이 너무 그립다."

"보프~ 보프!"

오늘도 스승님은 나를 '보프'라고 부르며(참고로 나의 이름은 봅이다..) 찾고 계셨다. 아무래도 안경을 또 어디다 두시고 나보고 찾아오라고 하시는 거 같았다. 나의 아침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하이버니아에서 구한 귀한 마법석으로 만든 이 진귀한 '안경'이라는 물건은 늙게되어 눈이 잘 안보일 때 잘 보이게 해 주는 신비한 물건이란다. 내가 보기에는 눈을 더 나쁘게 하는 물건 같았다. 내가 쓰면 이상하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스승님의 안경은 언제나처럼 시약 선반 위에 반쯤 열린 사탕그릇과 함께 놓여있었다.
이 아침밥 보다 사탕을 몹시 좋아하는 노인네는 또 사탕을 먹다가 깜박하고 안경을 내버려 둔 채 낮잠에 빠진 거 같았다.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언제나 이가 아프다고 이 아플 때 먹는 약을 만들면서도 사탕은 끊을 수 없는 가 보다. 많은 유명한 마법사들이 대부분 담배 중독이지만 이 마법사 중에서도 상늙은이는 사탕 중독이라니!
사탕그릇에서 사탕을 한 움큼 몰래 꺼내서 소매주머니에 몰래 넣고 그릇을 조심스레 닫은 다음 안경이라는 물건을 들고 서재로 올라갔다.
낡은 서재로 올라가는 계단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아직 잠이 덜 깬 노 마법사를 깨웠다.
노스승은 서재의 책 더미 위에서 이제 막 낮잠에서 깨어나 길고 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보프..(봅이라니깐..) 으음.. 눈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구나. 안경은 찾았니?"
"시약 선반 위에 올려놓으셨더군요. 여기 있어요."

내가 안경을 건네주자 스승은 안경을 쓰더니 언제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윙크했다.
나 보다 훨씬 이 노인은 아직도 소년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책장에 꽂아둔 두꺼운 서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면서 뭔가 생각나는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음.. 봅. 또 내가 널 세워놓고 깜박하고 책만 읽었구나. 나의 어린 제자야. 오늘은 잠깐 프라이드웬 킵에 다녀와야겠다."
"프라이드웬 킵이요? 스승님?"
"그래. 시약병 하나 들고 말이야. 선반에 보면 녹색 빛나는 투명한 병 있지? 오늘 구스타프가 나한테 줄 선물이 있다 더구나. 너한테 새 친구를 소개 시켜 준다더군."
"친구 말인가요?"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노스승을 바라보았다. 혹시 나한테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의심되기도 했지만 노스승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은 버릇처럼 검지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건드리더니 또 이렇게 말했다.

"작고 교활한 녀석이지만 그렇게 지혜롭지는 못하지. 네 마법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거다. 훌륭한 라이벌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나의 새로운 조수이기도 하고. 잘해보려무나."
이 노인의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미소를 볼 때 이 심부름에는 뭔가 큰 함정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스승은 늘 이런 식으로 나에게 "현장학습"이라는 것을 시키곤 했다.
배움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게 스승님의 철학이니까.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스승님의 심부름이기에 나는 갈 수밖에 없었다.
가기가 꺼려서 서 몇 번을 뒤로 돌아 보았지만 스승님은 다 빠진 이를 드러내며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서재 아래로 내려가 선반에 놓여있는 녹색 시약병을 들었다. 어제 스승님이 만들던 것 같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시약이라 용도가 뭘까 궁금해서 뚜껑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기침소리가 들려와서 얼른 자루에 담고 문간에 둔 지팡일 들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오래된 낡은 오두막을 빠져나와 사방을 둘러보자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스승님이랑 함께 웨스트 다운즈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3년째이다.
며칠동안 비가 내리는 바람에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었는데 오늘 날씨는 몹시 맑았다.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는지 개구리 소리도 이따금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푸른 초원을 피해 얼른 큰길로 달려갔다. 가끔 초원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브라우니라는 못된 나무 도깨비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아직 나의 마법 실력은 어설픈 수준이라서 자칫하면 브라우니 때문에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예전에도 한번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큰길은 기사들이 순찰을 하기 때문에 브라우니들이 덤벼들지 않았다. 위험하면 기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브라우니들을 쫓아내 주었다.

나는 소매주머니에 몰래 숨겨둔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콧노래를 부르며 솔즈베리 다리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달콤한 박하향 덕분인지 스승님이 시킨 심부름의 내막(?)에 대한 두려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순찰을 돌던 기사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미소지었다.
코츠월드 근처에 사는 놉은 '네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기사들이 너한테 그렇게 잘 대해 주기 않을 걸~' 이라며 질투를 하기는 하지만 뭐 어떠냐. 나도 곳 스승님처럼 위대한 위저드가 될텐데..
물론 사탕에 미친 마법사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기는 하지만.

"봅. 탈로스 선생님은 여전히 건강하시냐?"
"네. 아주 건강하십니다. 걱정해주신 덕분에. 보내주신 박하는 감사히 받았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맘에 드셨다니 다행이구나. 그런데 스승님 심부름 가는 길이냐?"
"네. 프라이드웬 킵에 구스타프 선생한테 받을게 있다며 다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두꺼운 투구의 틈 사이로 비친 기사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기사는 한숨을 푹 쉬며(너 또 고생하겠구나 하는 눈빛이다. 우리 스승님은 별난 심부름을 시키는 걸로 유명하다) 잘해보라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웨스트 다운즈 쪽으로 사라졌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기사는 큰 걸음으로 멀찌감치 사라져 버렸다.

**후일 이것은 '탈로스 선생의 19번째 심부름 사건'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더 읽어보면 알 것이다. 그 사건의 후유증은 정말로 컸다...**

가을의 썩은 낙엽 색깔(.. 스승님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의 솔즈베리 다리가 보였다. 다리는 아발론 마쉬로 가는 사람들의 행렬과 주변의 도적들을 사냥하는 풋내기 모험가, 수련을 위해 온 마법사들로 북적였다.
온통 화려한 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뽐내는 돈 많은 기사의 종자(從者)부터 그를 따르는 사라센 하인까지 언제나처럼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구석에는 구걸을 하는 거지도 보였다.
시장 바닥 같은 이 곳을 시약병과 지팡일 움켜지고서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이따금 소매치기가 여행자들의 돈을 훔치기 때문이었다. 내가 소매치기 당한 것들이라곤 사탕이나 작은 동전, 유리 구슬 따위였다.
하지만 이따금 스승님의 심부름으로 가지고 가는 물건을 노리는 못된 녀석들이 있어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보울더링들이 있는 언덕을 조심스레 피해 길을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가서 농장을 끼고 있는 삼거리가 보일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가벼운 장화를 신어서인지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뒤로 살짝 돌아보자 낡은 옷차림에 지저분한 얼굴을 비쩍 마른 사내 두 명이 살금살금 따라오고 있었다.
카멜롯 힐즈에서 출몰하고 있다는 산적들이었다.
그들은 돈뿐만 아니라 홀로 여행하는 여행객이나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빼앗거나 잡아다가 노예로 판다고 들었다.

'크..큰일이다. 시약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나는 얼른 달아나려고 했지만 쉽사리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내 발은 마치 아교(阿膠)로 붙인 거처럼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시약을 부둥켜 앉고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 무서워서 이럴 때 쓸 주문조차 깜빡 잊어먹고 말았다. 눈물이 핑돌았다.

"아악! 오지마! 오지마!"

난 바보 같게도(아직도 기억난다;;) 앉은 채로 눈을 꽉 감고 허공에 내 짧은 지팡이를 마구 휘둘러 대었다.
산적들도 그런 내 모습이 우스운지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으악!"

산적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눈을 반쯤 뜨자 산적 한 명이 가슴에 화살이 꽂힌 채 꼬꾸라져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동료를 부르려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머리를 뚫어버려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꼬꾸라져 고통스러운 신음 소릴 내던 산적도 곳 조용해 졌다.
끔찍한 광경..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멍하게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버린 산적들을..
그때 언덕의 나무 뒤에 몰래 은신하고 있던 녹색 옷차림의 사라센 소녀가 보였다.
나보다 다섯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을 한 소녀는 또 다른 산적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고 산적의 시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왼팔에는 소녀의 키만큼이나 큰 활이 쥐여 있었고 허리춤에 꽂아둔 단검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그 소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바라보았다.
사라센 소녀는 시체로 다가가더니 머리채를 잡는 것이었다. 응? 응?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헉?!"

끔찍하게도 그 소녀는 산적들의 단검으로 귀를 잘라 자루에 담고 있었다.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현상금 사냥꾼들이 산적을 잡으면 그 귀를 잘라서 돈과 바꾼다는 소리를 들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열여덟 살 정도 밖에 안 돼 보이는 소녀가.. 스승님 오두막 옆에서 점화(點火)용 시약으로  바실리스크를 구워먹던 용병들을 본 이래로 가장 두려운 모습이었다.
사라센 소녀는 이쪽을 눈치 챘는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귀를 쥔 채!

"아냐! 아냐! 아니란 말이야! 난 산적이 아니야!"

난 순간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귀를 가린 채 달아나 버렸다.
사라센 소녀가 쫓아올까 봐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한참을 숨이 차서 도저히 못 뛸 때까지 달렸다.
이럴 때 민스트럴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 빨리 달릴텐데!
뛰다가 이런 상상을 또 하는 바람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달렸다.
프라이드웬 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길옆 바위 위에 앉아서 쉬면서 귀가 무사한지 만져 보았다. 휴.. 다행이다. 다행이 귀는 무사하구나.
그런데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자루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자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건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 사탕은 무사했다. 응? 사탕 따위가 문제가 아니지!

"아뿔싸! 큰일났네.. 놀라서 달아난다고 시약을 놓고 왔잖아! 이를 어떻게 하지?"

나는 지금까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까 해서 돌아봤지만 왠지 또 그 사라센 소녀를 만날 것 같아서 포기했다.
뭐 야단 또 맞으면 되지 머. 어디 한두 번 있는 일인가.
나는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으로 프라이드웬 킵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도 양쪽 귀를 가린 채로..

2편에서 계속..

제 2편 : 구스타프 선생님.

프라이드웬 킵 정문을 지키고 있던 퀘이트경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는 지친 발을 질질 끌면서 성안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구스타프 선생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상인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은색의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가 자신의 갑옷에 칠할 염색약 가격을 상인과 흥정을 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농부가 대장간에서 쟁기를 고치고 있었다.
좁은 시장 골목을 지나자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푸주간 옆에 새워진 검은 벽돌건물이 보였다.
보통 마법사들은 조용하고 외진 시골에서 연구를 하는 것을 즐기지만 구스타프 선생님은 이렇게 사람이 많고 붐비는 곳을 좋아했다. 하지만 카발리스트(골렘 같은 무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조종하는 마법을 다루는 자)의 특성상 보통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구스타프 선생님은 사람들을 좋아해서 이렇게 시끄러운 시장 바닥에 연구실을 차려놓고 계신다. 하지만 듣기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하이버니아나 미드가드에 몰래 여행을 하고 그들의 마법을 연구하는데 보낸다고 들었다.
나는 벽돌색보다 더 검은 색을 띄는 떡갈나무로 된 나무문을 조심스레 지팡이로 두드렸다.
한참을 기다리자 문이 천천히 열리고 회색 빛의 작은 골렘 한 마리가 밖을 내다보았다. 마치 성난 듯한 표정을 한 골렘의 얼굴을 보자 나는 주눅이 들었지만 골렘에게서 들려오는 구스타프 선생님의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내 기분을 안정시켜주었다.

"호우! 호우! 봅이구나. 탈로스 선생께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어린 마법사야. 어서 들어오렴. 무서워하지 말고."

구스타프 선생님의 익살스러운 말투 덕분인지 골렘의 표정도 한결 좋게 보였다. 조심스레 어두운 연구소로 들어가자 기묘한 약초냄새와 고기 요리를 할 때 넣는 향신료 냄새, 그리고 홍차 향이 뒤섞여서 방안의 공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자 하얀 안개처럼 담배연기가 조그마한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느 마법사들의 도제들이라면 이런 환경에 당연히(?) 익숙하겠지만 사탕과 허브 냄새로 가득찬 우리 스승님의 오두막에서 살아온 나는 지독한 담배연기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콜록콜록.. 구스타프 선생님..너무 독해요.."
"허허.. 마법사라면 이 정도 담배는 피워줘야 되는데 얼간이 탈로스는 얼마나 오래 살려고 담배를 안 피우는 거냐.
덕분에 네가 고생하는 구나. 앞으로 다른 마법사들이랑 만나려면 담배연기의 바다를 건너야될지도 모르는데. 덕분에 너 만나면 사탕 얻어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지만. 하하"

나는 허공에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해치며 구스타프 선생님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다.
안개 속에서는 스승님 것과 똑같은 '안경'을 끼고 곱슬곱슬한 회색 수염에 훤히 까진 이마를 들어내고 검은색의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신 담배연기를 불어 고리를 만드는 재주를 부리고 있는 구스타프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내가 들어온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의자에 기대어 어려운 문자로 쓰여진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연신 이상한 미소를 짓거나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넘기면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나는 담배연기를 팔을 흔들어서 날려보내려 애썼지만 이내 포기하고 옆에 둔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약에 대한 변명을 하려고 입을 조심히 열었다.

"저.. 구스타프 선생님..."
"아..참참.. 내 정신 좀 보게. 손님을 모셔 놓고 이게 뭔 짓이람. 이제 나도 네 스승 닮아 가는 구나. 이제 노망기가 다 생기니 원. 젊을 땐 그래도 탈로스는 똑똑한 준수한 청년이었는데. 늙고 나니깐 사탕만 빨고.. 흐흐
봅 홍차 좋아하냐? 하이버니아의 하우스에서 몰래 구해온 찻잎이 있는데? 알비온 귀족들도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이지"
"아.. 저 그게.."
"후음. 봅은 올해로 13살이지? 그럼 이제 술도 할 때가 됐구나. 마침 미드가드에서 몰래 구한 술이 있는데 맛이 기가 막히지. 한잔쯤은 괜찮겠지? 내가 두 잔 마시고 뻗었으니까. 소문에는 이거 마시고 죽은 사람도 있다 더구나.
그래도 하이랜더 주당들은 이거 찾으려고 눈에 불을 킨다더군. 하하"
"아..아.."
"응? 뭐냐.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냐? 그렇지. 네 또래라면 가만히 있기 힘들지. 이놈에 시장 바닥의 꼬마들은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원. 하지만 마법사들은 과묵함이 필요한 거야.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너희 스승처럼 죽은 필리드 시체처럼 아무 말 없이 사탕만 우물거리지 말고. 너희 스승 같은 사람에겐 루리킨 같은 하인 하나 있다면 지겹진 않을 거다. 그 녀석들은 관 뚜껑 닫히기 전에는 말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수다쟁이니까.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떠들어서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 물론 개중에는 허풍쟁이가 상당히 많지만 말이야"

쉴새없이 떠드는 구스타프 선생님의 말에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축 늘어진 채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통 마법사들처럼 책장에 책이 가득 차 있는 대신 본적 없는 기이한 기구들과 수정으로 된 플라스크가 널려 있었다. 구석에는 골렘을 만들기 위한 장치인지 화덕도 놓여 있었고 갓 만든 아무런 마법도 걸려있지 않는 붉은 색의 골렘도 화덕 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하이버니아와 미드가드의 것으로 보이는 지도가 보였다.
하이버니아어로 된 지도는 온통 녹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 곳 글씨인지 마치 나무 덩굴 모양을 본따서 만든 듯한 독특한 녹색 글씨가 써 있었다. 그리고 미드가드의 지도는 온통 흰색과 검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검은 숲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고 무시무시한 불을 뿜는 산의 모습도 보였다. 글씨는 거칠고 강인한 느낌의 룬 문자였다. 스승님이 룬 문자를 조금 가르쳐 주시는 덕분에 조금 읽어 볼 수는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이외에도 그 곳 주민들의 모습인 듯 본적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에 뾰족한 귀를 가진 종족과 흙빛의 거인이 함께 그려져 있고 구석에는 조그마한 아이 같은 체구의 난쟁이가 그려져 있었다. 머리는 커다란데 몸이 무척 가냘파서 혹시 그리는 사람이 잘못 그리거나 장난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바윗돌 같이 생긴 미드가드의 트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였다.
구스타프 선생님은 콧노래를 부르면서(여전히 곰방대를 입에 물고...) 기묘한 찻잔에 홍차를 따르고 계셨다.
아직 방안은 담배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었지만 향긋한 홍차 냄새에 이내 기분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입에 물고있던 곰방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조심스레 찻잔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곤 나에게 윙크하시며,

"차 맛이 기가 막힐 거다. 햄버튼의 고지대에서 나는 거랑은 비교도 안될 거야."
"고맙습니다."

조심스레 찻잔에 입을 대자 향긋한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지금 까지 맛 본 차 중에서도 가장 좋은 향기였다.
향긋한 차 내음 덕분인지 불안하던 마음도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구스타프 선생님도 의자를 내 쪽으로 끌어 당겨서 앉으시고는 찻잔에 입을 대시곤 허공에 뭐라고 중얼거리셨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차 맛이 기가 막히지? 너 같은 꼬마 애의 입을 콱 다물게 할 정도로 말이다. 너희 스승의 오두막에서 마시는 허브차는 이것에 비하면 차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지. 내가 한 석 달치는 구해 놨으니까 너한테도 조금 나눠주마.
너 혼자 몰래 마시지는 말고. 충치로 고생할 너희 스승에게도 맛보이게는 해 주렴. 이러다가 사탕에서 차로 기호를 바꿀지도 모르지. 하하!"
"참.. 선생님.. 저 스승님의 심부..."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네가 여기 왜 왔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심부름이 있었지. 참. 너한테 맡길 것도 있고."
"아.. 저.. 그게 말이죠. 선생님. 제가 그만 시약을.."
"아참..참 내가 또 깜박했구나. 네 스승에게 전하렴. 시약은 필요 없게 됐다고 말이야. 시약까진 필요 없을 거 같구나."
"에?"
"네 새 친구를 소개하지. 자일! 자일!"

구스타프 선생님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뒷문이 열리면서 창백한 표정의 마르고 키가 훤칠한 소년이 나왔다.
나보다 한 두살 정도 밖에 들어 보이지 않는 소년은 아발로니안 특유의 커다란 키를 가지고 있었다.
몸은 너무 말라서 바람이 불면 그냥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 소년의 날카로운 눈빛은 나를 주눅들게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이었다. 자일이라는 소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스승님.."
"저 구스타프 선생님."
"응? 왜 그러냐 봅?"
"저에게 소개시켜 준다는 친구가..?"
"아니. 아니. 이 아이는 내 제자인 자일 레이드먼이라고 한단다. 내가 전에 소개를 안 시켜 준 모양이구나. 둘 다 아는 사인 줄 알았는데."
"아.. 네 그렇군요. 그러면?"
"자일. 그 녀석을 데려오너라. 깨우지는 말고. 또 무슨 말썽을 일으킬라."

자일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뒷방으로 사라졌다. 수다스럽기 짝이 없는(?) 구스타프 선생님과는 달리 너무나 조용하고 어른스러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노려보는 듯한 눈빛은 왠지 구스타프 선생님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구스타프 선생님이 찻잔의 차를 모두 비워버리고 잔을 모자처럼 머리에 거꾸로 뒤집어 쓴 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자일이 뒷방에서 뭔가 녹색의 상자를 들고 왔다. 꽤 무거운 듯 하지만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상자를 선생님 앞에 내려놓았다. 구스타프 선생님은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고는,

"후음.. 약효가 있는 것 같구나. 이렇게 조용한 걸 보니 말이야. 탈로스 선생의 시약을 기다리기엔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아서 내가 약을 만들어서 썼지. 뭐 시약에 대해서는 너희 스승한테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기는 하지만. 시약 분야에서 낙제점은 안 받았으니까 걱정은 말게나."
"??"
"자 소개하마. 하이버니아의 매그맬 출신의 전(全) 렐름(Realm) 최고의 수다쟁이이자 재주꾼 '루리킨'!"

자일이 조심스레 녹색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7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 만한 난쟁이가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몸에 비해서 이상할 정도로 큰 머리에 훤히 벗겨진 머리는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구레나룻 수염은 광대뼈까지 이어져 있었고 머리에 비해 마른 체구에 손과 발은 꽤 큰 편이었다.
내가 이 우스꽝스러운 광대(?) 같은 모습을 보고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을 때 구스타프 선생은 지팡이를 루리킨이라는 난쟁이에게 가리키고 뭐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카발리스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주문이 아닌 거 같았다. 주문이 완성되자 보랏빛의 섬광이 루리킨 주위를 둘러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구스타프 선생님은 대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런.. 소서러의 마법을 한번 흉내내서 해보긴 했는데 잠들게 하는 것 까진 성공했는데 잠깨는 것은 실패했구나."
"에엑?!"

구스타프 선생의 어이없는 말에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거 같았다. 구스타프 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지만 황당하게도 "이놈아 일어나라! 아침 먹을 시간이다!"라고 외치며 지팡이로 루리킨의 대머리를 두세 번 톡톡 치자 루리킨은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품을 하며 깨어나는 게 아닌가!
루리킨은 의외로 늙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거 같은 모습이었다. 루리킨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거리 더니 구스타프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하! 보기 보다 잠꾸러기였군. 루리킨. 봅 소개하마. '룽크' 하이버니아의 마법의 길을 걷던 루리킨이지.
지금은 내 마법의 시약을 마시고 고분고분히 우리의 말을 따르는 친구고! 룽크! 인사하게. 앞으로 자네와 함께 해야할 꼬마 마법사인 봅일세!"

룽크라는 기묘한 이름의 루리킨은 나를 바라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더니(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를 향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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