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조회수 :
83,011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41

작성
22.11.21 18:05
조회
211
추천
10
글자
16쪽

올드 아일랜드(1) - 망향(望鄕)의 나라

DUMMY

#1


곧게 나아가는 인류의 욕망에서 한 줄기의 가지가 갈라져 나왔다.


그 가지는 역사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옛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들이며 잊히는 것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끝자락에 가까운 먼 땅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잊히지 않기 위해 거대한 판에 주사위를 던져 나라를 세웠다.


과거 유럽이라 불리던 시라비아. 그중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거대한 미다스 지역의 잿빛 바다 건너.

지금 시대는 그 땅을 이렇게 부른다.


올드 아일랜드.

고리타분한 기사들의 나라라고.


인류 문명은 황성의 시작 이래 복원에 그치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지만 올드 아일랜드는 달랐다.


스스로를 ‘기사’ 라 주장하는 그들은 기사라는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문명을 역행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참 이상하지. 지구에서도 기사는 근대에 접어들며 단순히 명예를 위한 직위에 불과했고 진짜 기사는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레베스타 서쪽의 넓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기차 안. 빵을 오물거리던 헤이카가 말했다.

맞은편에 앉은 나도 포장지를 뜯어 크림빵 하나를 크게 베어 물었다. 안에 가득 찬 하얀 생크림이 맛이 좋았다.


“그 기사 놈들 죄다 정신병자잖아요. 이해 안 되는 게 당연해요.”

“으음.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겠지.”


요즘 시대에 갑옷을 입고 롱소드를 휘두르는 놈들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정의와 기사도, 명예 따위를 외치면서 사람을 썩뚝썩뚝 토막 치는 놈들이다. 기사 놀이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냥 미치광이 살인귀들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그 기사들의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어.”

“무슨 그리움이요? 그놈들이 뭐, 중세 기사로 살아본 적도 없을 텐데. 그리워할 게 있나.”

“이건 내 가설인데. 올드 아일랜드의 기원은 진짜로 기사가 존재하던 세상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라 생각해.”

“기사들이 존재하던 세상?”

“문 너머.”


헤이카의 말에 난 슬쩍 주변을 확인했다. 다른 칸에 있는 자리만이 여기서 그 말을 엿들을 리는 없지만, 괜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 괴물 튀어나오는 구멍이요?”

“응. 기억해? 내가 아디마 케티르 정상에서 말한 적 있었는데. 거울 연못이라고.”


내가 끄덕이자 헤이카는 남은 빵 쪼가리를 입에 던져넣고 말을 이었다.


“세상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너무 많아. 지구와 황성 사이에 있던 10년의 공백도 그렇고, 문 너머에 있는 다른 세상이나 아우터라 불리던 괴물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러니 이것 또한 가설에 불과하지만 난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올드 아일랜드를 세운 최초의 기사들은 다른 세상에서 온 진짜 기사였던 거야.”


헤이카의 말을 가만히 듣던 내 머릿속엔 당연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딴 세상에서 기사 하던 놈들이 왜 굳이 이런 세상에서까지 기사 짓을 하려고 드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도 하나 있어. 거기 기사 중에서도 높으신 분들이 쓰는 무기나 갑옷이 심상치 않은 것들이거든. 그건 아마도 유물일 거야.”


유물이란 단어에 자연스럽게 내 오른팔 의수로 시선이 갔다. 여전히 축 늘어진 팔은 아무 감각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라 있는 둥 마는 둥 했다.


“마법이란 게 버젓이 존재하던 시대의 물건. 마법이 없는 시대에서도 마법이란 기적을 재현하게 해주는 게 바로 유물이야.”

“꽤 잘 아시네요..”

“나야 직접 접하고 있으니까. 아시리아에서 네가 휘둘렀던 머스칼의 검이라든지.”

“사람 몸을 좀먹는 그거요? 그거 때문에 헤이카도 쓰러졌잖아요.”

“그래서 잘 알고 있어. 유물이 얼마나 강력하고 얼마나 위험한지도.”


헤이카의 뛰지 않는 심장. 그리고 내가 머스칼의 검을 휘두르며 희생한 것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쓰러진 공업의 특수팀 대원들. 그리고 내 오른팔까지.


분명 상식을 넘어선 물건이긴 했지만 그렇게 비효율적인 물건이 유물이라면 절대 탐나는 물건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래서 난 그 기사들이 외부의 존재들이라 생각해. 어쩌면 지금도 계속 문 너머 세상과 교류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진짜라면 걔네를 아우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헤이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조금 뒤엔 쓴웃음과 함께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거기 기사들은 모두 과거에 붙잡힌 사람들이니까. 망향(望鄕)의 나라의 주민들을 아우터라 부르는 건 틀린 말은 아니겠어.”

“뭐, 그래도 막상 아군으로 돌아서면 도움은 되겠죠. 어중간한 놈들보단 확실히 강하니까.”


놈들의 정체를 논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역시 지금은 단순하게 생각할 때였다.

어쨌든 그 미치광이들의 나라가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녀석들의 강함 때문이니까.


그저 갑옷과 검을 든 저 괴짜들이 어떤 식으로 강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강함의 척도를 수치화하여 보여줄 기술이 내겐 없으니 말이다.


다만 올드 아일랜드의 기사들은 그냥 강하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자신들만의 법도로 나라를 세우고 인정받은 것도 놈들의 강함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타국에서 올드 아일랜드를 넘보지도 못하는 이유도 모두 놈들의 강함이 원인이다.


본래 시라비아에 속하던 아일랜드 섬을 되찾기 위한 전쟁. 마피아와 기사들의 전쟁이라 불리던 그 싸움에서도 마피아들이 찌질하게 패배한 것도 놈들의 강함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크루아틀의 목적은 세계 정복이라고 했으니 올드 아일랜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올드 아일랜드는 우리와 결국 같은 적을 두고 있다는 상황.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와 손을 잡고 함께 크루아틀의 침공에 대비하는 게 올바른 판단이다.


‘하지만 그놈의 고집이 문젠데.”


녀석들은 강하다. 그런데 고작 코딱지만 한 아일랜드 섬 하나에 틀어박혀 살면서 그걸로 만족하고 있다.


자원 전쟁, 기술 전쟁, 능력 전쟁.

올드 아일랜드는 그 어떤 싸움에도 끼어들지 않고, 싸움을 걸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손을 잡자는 유혹에도 꿈쩍도 않는다.


좋게 보면 완벽한 중립이자 싸움을 원치 않는 평화로운 나라지만, 막말로 자기들만의 세상에 틀어박혔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기사들은 누구랑 손잡을 사람들이 아니었어. 혹시 무슨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어?”


내 생각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헤이카가 물었다. 난 우물거리던 빵을 우유와 함께 넘겼다.


“대충은요. 역시 동맹이나 교섭 같은 것보단 그냥 도와달라고 말하는 거예요.”

“동맹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한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싸움에 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일단 좀 비굴해지는 겁니다. 그다음에 도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걔넨 어쨌거나 기사니까요.”

“정의의 사도 작전이구나.”


역시 헤이카였다. 내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는지 배시시 웃었다.


“그 기사들은 단순히 기사 코스프레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기사잖아요? 녀석들의 기사도인지 뭔지에 따르면 약자에겐 확실히 도움을 주게 되어있어요.”

“그렇지. 그 정의의 기준이 조금 이상하다는 게 있지만, 크루아틀이 ‘악당’ 이고 우리가 ‘약자’ 라는 인식만 심어준다면 약자 측의 도움을 무시하진 못할 거야.”


약자를 지키고 악인을 벌하는 것.

시도때도없이 ‘정의’ 를 논하는 그 기사들의 행동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그것만큼은 늘 확실하게 한다.


조금 꼴사납긴 해도 기사들에게 우리가 약자라고 인식된다면 도움 요청을 매정하게 내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보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병력이 크루아틀의 짐승들에게 당해 피떡이라도 되는 날엔 어차피 올드 아일랜드의 지배자인 ‘황제 기사’ 가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 곧 시라비아 국경으로 진입합니다. 베르몬드 콘파 정거장에서 정차하겠습니다. }


무전을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나와 헤이카는 서로 눈을 맞추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2


레베스타까진 수송기를 이용했지만 올드 아일랜드까지 남은 거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기차와 배를 선택했다.


크루아틀의 수인병 중에는 하늘을 나는 놈들도 있고, 만약 수송기로 이동 중에 녀석들을 마주치기라도 했다간 반격조차 못하고 저승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차로 가는 길에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라면 바로 시라비아였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올드 아일랜드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시라비아를 관통해야만 한다. 그리고 시라비아는 검문이 빡세다.


아무리 공업 소유의 기차라고 해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괜히 검문을 무시하고 달렸다간 마피아 놈들이 꼬리에 붙을 위험도 있었다. 그건 꽤 성가셨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 위로 똑같은 검은 코트를 걸친 녀석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기차를 포위했다. 총을 든 녀석들도 역 안쪽에서 슬그머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검문에 대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시라비아를 떠난 8년간 바뀐 게 아니라면, 국경을 넘어오는 기차나 차량에 대한 검문은 마피아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그 밑에서 일하는 끄나풀들의 몫이다.

기차역의 경우엔 역무원과 이곳의 직원들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기차 검문이랍시고 몰려든 놈들의 복장으로 보아, 마피아 조직원들이 직접 검문을 하고 있었다.


기차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선 마피아들이 이곳저곳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헤이카가 있는 칸에도 곧 녀석들이 들이닥쳤다.


“검문 협조 바랍.. 어? TV에서 본 얼굴이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놈 하나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헤이카는 무표정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우와. 이클립스 회장님이잖아! 이거 회장님이 탄 기차였구나? 몰랐네~”

“얼른 하고 가라. 바쁘다.”


녀석은 그제야 내게 눈길을 줬다. 그리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그시 내 얼굴을 노려보다 입꼬리를 피식 말아 올렸다.


“뭐야? 회장님. 병든 애완동물도 기르십니까? 이거 감염됐는데요? 몸에 안 좋아요~”

“...”

“네? 회장님. 이런 건 빨리 내다 버리는 게..”

“뉴카벤. 입 다물어라.”


빠른 걸음으로 뚜벅뚜벅 다가온 덩치 큰 녀석이 시비 털던 놈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덩치 녀석은 재빨리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르스 웅골라. 이제 막 들어온 놈이라..”

“모르스 웅골라? 설마 그 배신ㅈ..”

“뉴카벤!”

“..에헴. 뒤질 뻔했네.”


뉴카벤이라 불리던 녀석이 냉큼 자리를 떴다. 어찌나 빠른지 녀석은 어느새 역 안쪽으로 도망치듯 들어가고 있었다.

난 덩치 놈을 향해 힐끔 시선을 주며 말했다.


“요즘 신입들은 상태가 아주 개판이네.”

“정말 죄송합니다. 교육하겠습니다.”

“그리고 왜 검문을 너희가 직접 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덩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역시 조직원도 아닌 내게 자세한 내용까지 말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녀석들은 기차에서 재빠르게 내렸다. 창 밖으로 보이는 덩치 녀석이 굳은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까 깔짝거리던 뉴카벤이란 놈이 혀를 삐죽 내밀며 중지를 세웠다.


“...”


이름, 얼굴 다 기억했다. 저놈은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썰어버려야지.



#3


마른 흙을 파내는 삽이 멈췄다. 삽을 든 사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가 땀을 닦으며 돌아섰다.


“준비 끝났습니다. 헤카테 님.”


남자의 말에 길쭉한 나무 상자에 걸터앉아 있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처럼 하얀 머리칼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감겨 있던 눈꺼풀이 열리자 새빨갛게 빛나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소녀는 사내들을 한 차례 훑어보더니 말했다.


“응. 잘했어요. 이제 내리죠.”


나무 상자에서 일어난 소녀가 옷에 묻은 흙을 탁탁 털었다. 그러자 사내들은 조금 전까지 소녀의 의자가 되어주던 관을 다 같이 들었다.


관은 곧 사내들이 파낸 묫자리에 들어갔다. 그 뒤, 사내들은 기다릴 것도 없이 파낸 흙을 관 위로 다시 퍼 나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묫자리를 메우는 동안 소녀 헤카테는 붉은 눈동자를 굴리며 근처에 놓여 있던 묘비를 살폈다.


“히난?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안녕히 주무세요. 히난 씨. 좋은 꿈 꾸시길.”


소녀는 파묻히는 관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기도라고 보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누구 하나 소녀의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무덤에 사내들은 묘비를 세웠다. 그들이 손에 묻은 흙을 털자 소녀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몇 명 남았어요?”

“일곱 명입니다.”

“귀찮아..”


투덜거리며 돌아선 소녀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소녀와 별반 차이가 없는 왜소한 체격이지만 키는 소녀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더 컸다.


그리고 소녀와 정반대로 새까만 머리칼을 묶어 놓은 그녀는 같은 색의 검은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였다. 그녀는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소녀를 내려다보았고, 소녀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페이 투아르? 왜 여기 있어요?”

“황제가 널 찾아.”


소녀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싫다는 듯 구겨졌다.


“아직 매장이 다 안 끝났어요. 여기 계신 분들을 다 보내드려야죠.”

“그럼 다 할 때까지 기다릴게.”

“...”


뾰로통한 표정의 소녀가 사내들을 향해 돌아섰다.


“알아서 다 묻어놔요! 기도는 나중에 한꺼번에 할래요.”

“알겠습니다.”

“가요. 페이.”


페이라 불린 검은 갑옷의 여기사가 앞장섰다. 소녀는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자기 목에 걸린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달을 상징하는 월교의 문양. 소녀는 그게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쥐었다.


“페이. 근데 황제 폐하께선 왜 절 부르신대요? 혹시 또 절 벌하신대요?”

“아니. 이번엔 손님 접대.”

“손님?”

“바깥에서 온 손님.”


소녀의 빨간 눈동자가 잠깐이지만 반짝거렸다.


“누구예요?”

“헤이카 미켈런. 이클립스 공업의 회장.”

“그게 누구야..”

“바깥의 돈 많은 부자. 이번에 하늘의 아가레스를 토벌한 사람이야.”

“용사님이네! 잘 생겼어요?”

“여자야.”


소녀는 시무룩해졌다. 무표정하게 걷던 페이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경호원 중 하나가 젊은 남자야. 시라비아 마피아 출신.”

“우와. 마피아 출신이 무슨 배짱으로 올드 아일랜드에 들어온대요? 오자마자 머리 날아갈 것 같은데.”

“그래서 네게 접대를 맡긴 거겠지.”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소녀가 끄덕였다.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럼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예요?”

“황제가 다 설명해줄 거야. 멋대로 판단하지 마. 넌 포로니까.”

“포로는 무슨. 난 블라다카한테 버려진 거예요. 구하려면 진작에 구했겠지. 황제 폐하도 슬슬 인정해주시면 좋을 텐데.”

“그래? 그럼 네 신의 이름을 말해봐.”

“멜리더스 라게더스!”


소녀의 활기찬 대답. 페이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넌 뼛속까지 멜리더스 광신교도야. 헤카테.”

“또 그런다. 구신교도(救神敎徒)예요. 광신도가 아니라고요.”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볼을 부풀린 소녀의 어깨가 축 처졌다.


어느새 두 사람은 거대한 성문 앞에 도착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웅장한 왕성과 첨탑이 성벽 너머로도 잘 보였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성벽이 열리는 동안, 소녀는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손님’ 에 대한 것들로 가득했다.


“맛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성벽의 그림자에 비틀린 미소가 가려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욕망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 공지 +3 23.05.08 146 0 -
264 욕망 시대(完) +3 23.05.08 203 9 24쪽
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3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8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2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7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4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5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9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2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9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8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71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8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7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6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79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1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3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3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7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4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6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6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1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9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4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2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0 1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