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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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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79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50

작성
22.11.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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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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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7쪽

권유

DUMMY

#1


거센 빗줄기가 후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너머엔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껴 어두컴컴한 하늘이 보였다.


그런 창 밖을 바라보는 난 귀에 휴대전화를 붙인 채 멍청하니 굳어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그냥 좀 잘난 사람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잘난 무리의 대표 겸 나라를 대표한다는 인간이다.

일단 높은 사람이란 인식은 있다. 다만, 대통령이란 게 딱히 내 인생에 끼어들 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런 대통령이 고작 나 같은 놈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부총장이라는 아저씨가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뉴런드가 어디 있는 나라였지? 대통령이 혹시 그 아저씨였나? 아니면 그냥 사기꾼?

온갖 생각이 오가던 중, 다시 휴대전화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듣자하니 자네가 그 노페이스의 팀장이라더군. 이전부터 자네한테 관심이 많았는데, 이렇게 직접 얘기할 기회가 올 줄은 몰랐네. }


“진짜 대통령?”


{ 말로는 뭐란들 못하겠나. 못 미더워도 당장 증명할 방법도 없으니 판단은 자네에게 맡기지. }


“..이거 그 부총장이란 아저씨가 준 휴대폰인데요. 왜 대통령이란 사람이 전화를 걸어요?”


{ 그 부총장이 이 방법을 추천하더군. 곧바로 헤이카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보단 자네와 먼저 얘기하는 게 나을 거라고. 다행히 부총장이 자네한테 먼저 줄을 걸어놔서 이렇게 된 거지. }


“도움이라면..”


{ 그건 나중에 말하겠네. 지금은 기회가 됐으니 자네에게 먼저 할 얘기가 있어. }


수상쩍은 냄새가 풀풀 났지만 반대로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일국의 대통령씩이나 되는 양반이 내게 할 얘기가 뭔지 말이다.

듣다가 내키지 않으면 전화를 끊어버리면 될 일이다. 들어서 손해 볼 건 없었다.


“말씀해보세요.”


{ 그럼 일단 확인하겠네만, 아시리아에서 초대형 아가레스를 잡은 건 자네인가? }


“예. 제가 잡았죠.”


솔직히 날아오를 때부턴 제정신이 아니었던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그 괴물이랑 부딪쳤다는 건 이 몸이 증명하고 있었다.


어깨째로 오른팔이 날아갔고, 백사병은 아주 제대로 도져서 머리도 눈깔도 하얗다. 그 외에도 안 보이는 쪽으로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아 이렇게 몇 주째 병실 침대에서 과자나 까먹고 있는 거다.


그때를 떠올리며 텅 빈 오른팔 소매를 바라보고 있자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사실 우리 세계 연합에서 극비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네. 자네를 그 프로젝트에 초대하고 싶어. 프로젝트 내용은.. }


“싫습니다.”


{ 음, 아직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


“연구나 실험. 프로젝트. 이런 잘나신 분들의 사업에 실험쥐나 들러리로 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 연합은 결국 우리 공업이랑 적이잖아요? 제가 거기 끼면 입장이 곤란하거든요.”


내가 그 뭔지 모를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공업을 돌아서는 꼴이 된다.

시라비아에 이어 공업까지. 두 번이나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고 싶진 않았다.


{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이해하네. }


“왜 하필 저죠? 아가레스 큰놈 하나 잡은 게 대수인가? 만약 머스칼이 잡았다면 머스칼한테도 권유했으려나요?”


{ 아니. 그런 괴물과 인간을 같은 취급 할 순 없지. }


대통령의 억양에서 머스칼을 향한 적대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머스칼도 지내다 보면 나름 인간미가 넘치는데, 이럴 땐 머스칼이 불쌍하단 생각도 들었다.


{ 그럼 이 말만 기억해두게. 우린 오래전부터 ‘칼날’ 을 찾아오고 있었네.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 자네가 바로 그 ‘칼날’ 이야. }


“칼 쓴다고 사람을 칼날이라 부르는 건 좀..”


{ 그런 의미가 아닐세. 뭐, 지금은 자네가 거절했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물론, 우리가 포기한 건 아닐세.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권유하겠네. }


“그러시죠. 할 말은 끝입니까?”


{ 지금부터가 본론일세. 공업의 항공 전력이 필요하네. }


이걸 왜 나한테 말하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공업의 팀장급이라곤 해도, 아무 때나 말 한마디로 공업의 전투기나 수송기를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상대가 그 세계 연합이라면 더더욱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이건 헤이카의 몫이다.


{ 자네가 얼마 전, 코렌에 몰래 입국했다는 걸 알고 있네. }


잠시 필라드에 갔던 걸 말하는 모양이다.

머스칼의 능력으로 슬쩍 다녀왔던 건데, 역시 세계 연합도 정보력에선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것 같다. 그걸 알아채다니.


“그래서요?”


{ 자네가 찾는 사람들은 아직 무사하네. 횟집 주인장과 여자 하나.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그들은 모두 피난민 캠프에 있다네. }


“..전 코렌 군인한테 부탁했는데, 왜 대답이 엉뚱하게 세계 연합의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겁니까?”


{ 정보. 이게 우리의 무기니까. }


대통령은 짧게 대답했다. ‘정보도 곧 힘이다.’ 같은 얘길 하는 것 같다. 부정할 순 없는 게, 확실히 지금 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횟집 사장님과 미나가 무사하다는 얘길 들었으니 더 이상 내게 이 정보의 거래 가치는 없었다.


{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피난민 캠프가 재난 구역에 포함되어 있네. 테러로 인한 재난 구역 말일세. }


“뭐라고요?”


{ 다행히 아직 피난민 캠프의 민간인들은 무사한 것 같더군. 다만 코렌은 지금 자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야. 사방에서 짐승들이 날뛰고 있어서, 그 캠프가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네. }


“..잠시만요.”


슬슬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난 슬리퍼를 신고 곧장 병실을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입구를 나오자 양복쟁이 하나가 서 있었다. 헤이카가 경호라면서 배치해놓은 공업 보안팀인데, 그는 날 보더니 졸린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헤이카한테. 지금 어딨어요?”

“대표님은 에이전트 핸들러와 함께 옥상에 계십니다.”


난 그에게 대충 끄덕이곤 복도를 걸었다.


휑하니 썰렁한 복도엔 방금 그 보안 팀원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버려진 아시리아의 병원 건물을 공업이 무단으로 점거해 사용하는 상황이니 당연했다. 의료진이 필요할 땐 따로 호출해야만 했다.


난 보안 팀원과 거리가 좀 멀어지자 다시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구해줄 테니, 저보고 공업의 항공 전력을 지원해달라는 말씀?”


{ 정확히는 자네가 헤이카 회장에게 말해줬으면 하네. 자네한테 그만한 권한이 없는 건 알고 있으니까. 최종 결정권자는 결국 헤이카 회장이야. }


“왜 하필 저를 통해서 전달하란 겁니까? 바로 대표님께 하면 되잖아요?”


{ 아까도 말했다시피 부총장의 의견이었네. 자네를 통해 요청하는 게 훨씬 잘 먹힐 거라더군. }


“흐음..”


높으신 분들 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이라 영 내키진 않았지만, 저쪽에서 이런 한 수를 내놓은 건 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저 정보를 통해 결국은 날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 셈이니까. 그 피난민 캠프를 구하려면 난 연합의 의견에 맞춰서 헤이카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정보를 이미 뿌린 이상, 제가 그 피난민 캠프만 구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나 보네요?”


이기적이지만 그 방법도 있다. 머스칼이 있으니 딱히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

굳이 전 세계의 재난 구역에 공업의 항공 전력을 보낼 필요도 없이 그 피난민 캠프에서 사장님과 미나, 그리고 그 망할 고양이만 빼 오면 된다.


{ 그건 자네와 공업, 헤이카 회장의 속 좁은 마음씨를 온 세상에 공개하게 되는 일이지만, 그게 자네의 선택이라면 존중하네. }


“뭐요?”


{ 쪼잔하다는 말일세. }


“..대통령이 그런 단어 써도 됩니까?”


{ 나도 사람이거든. 허허. }


태연한 웃음소리였다. 이미 이 아저씨는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분하지만 여기선 이 아저씨 뜻대로 움직여줄 선택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의하고 다시 말씀드리죠. 이 전화로 연락하면 되겠죠?”


{ 아마 다음부턴 스콧이 받을 걸세. 하지만 스콧도 결국은 이쪽 사람이니 별문제는 없겠지.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대하겠네. 산 팀장. }


“..먼저 끊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어기적거리며 병원 계단을 올랐다.



#2


“씨바.. 엘베탈껄..”


재활 치료 겸 옥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갈 셈이었는데, 막상 옥상에 도착하고 보니 더럽게 힘들었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무릎이 찡하니 아프다. 허리도 쿡쿡 쑤셔댔다.

그리고 그놈의 빌어먹을 오른팔이 또 툭툭 때리는 것처럼 아팠다. 있지도 않은 오른팔. 망할 환상통.


옥상 문을 열어젖히자 끼익 하는 쇳소리와 함께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비가 오는 탓인지 생각보다 쌀쌀한 공기였다.

옥상 끝 가장자리엔 검은 우산을 쓴 헤이카와 그 옆에 나란히 선 사무엘의 등이 보였다. 둘이서 뭔가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우산 까먹었네.”


설마 비 좀 맞는다고 상처가 덧날 리는 없겠지.


절뚝거리며 문을 나서자 미적지근한 빗줄기가 머리와 어깨를 순식간에 푹 적셨다. 옥상을 반쯤 걸어갔을 때쯤, 사무엘의 눈이 날 발견했다.


그는 헤이카에게 무언가 짧게 말하곤 날 향해 달려왔다. 그리곤 자기 우산을 내 머리 위로 씌웠다.


“아직 회복 중입니다. 산 팀장님.”

“비 좀 맞는다고 안 죽어요.”

“...”


대답 대신 사무엘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기만 했다. 눈빛만으로 보내는 무언의 잔소리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우산 쓰면 되잖아요. 내려가서 갖고 와야겠네.”

“어차피 용건은 끝났습니다. 제 우산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거의 강제로 내 손에 우산을 쥐여준 사무엘은 빠른 걸음으로 옥상에서 떠났다. 멀뚱멀뚱 사무엘의 모습을 바라보던 난 그가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다시 걸음을 계속했다.


별 거 없는 옥상인데도 몸이 이런 꼴이니 엄청 넓게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지독하게 무겁고 힘들었다.

그렇게 옥상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아까 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헤이카가 날 향해 돌아서 있었다.


한 손에 든 검은 우산을 빙글 돌리는 헤이카는 어딘가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산아. 다 젖었잖아.”

“..사무엘한테 잔소리 듣고 온 참이니까 참아주세요.”

“그래도 할래.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안 그래도 온갖 약이랑 수술 때문에 지금 네 면역력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야. 감기 하나도 치명적일 수 있어.”

“...”


잔소리를 끝낸 헤이카는 싱긋 웃으며 내 뺨을 만지더니 젖은 머리칼과 어깨를 털어줬다. 자기 옷소매가 젖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여기서 사무엘이랑 뭔 얘기 했어요?”

“왜? 혹시 질투했어?”

“사무엘은 제 밑에 들어오기로 했거든요. 벌써 배신하고 헤이카한테 붙었나 싶어서요.”


헤이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 속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유독 잘 들렸다.


“나한테 질투한 게 아니라 사무엘한테 질투했던 거구나?”

“음.. 그렇게 되나?”

“걱정 안 해도 돼. 네 말대로 사무엘은 날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어. 그리고 경험상 저런 타입은 뭐로 꼬드겨도 안 넘어와서 나도 포기한 참이야.”


그 말은 지금 사무엘을 빼앗으려고 했었단 것처럼 들렸다.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헤이카가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산. 너는 내 거야. 그리고 난 네게 있는 모든 걸 함께 고민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어. 빼앗는 게 아니라 공유라고 해야 할까. 그게 그 사람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거든.”

“좀 무섭게 들리기도 하네요.”

“그래? 네가 싫다면 이건 고칠게. 네 건 손대지 않기로.”

“그래 주면 고맙고요.”

“응.”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헤이카였다. 단순히 대답뿐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인데.”

“...”


난 헤이카에게 조금 전 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뉴런드의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온 일. 그가 요구한 것.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의 존재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 얘기를 말없이 듣던 헤이카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꽤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말하려고 온 겁니다. 일단 최종 결정권자는 제가 아니니까요.”

“흐음. 내가 아니라 너한테..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접근을 시도해올 줄은 몰랐어. 하지만 그걸 빼면 다 예상한 대로네. 결국 내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지.”

“그런 셈이죠. 지금 시대에 전투기나 수송기 같은 걸 보유한 건 이클립스 공업뿐이니까.”


헤이카가 끄덕였다.


“너무 예상대로라 놀랍네. 철두철미한 그 세계 연합이 정말로 하늘을 되찾을 미래에 대비도 없이 있었다니.”

“세상에 누가 갑자기 하늘을 되찾을 줄 알았겠어요. 비행기 같은 거 만들어봤자 돈만 날리는 일이라 생각했겠죠.”

“그렇겠네. 끝까지 날 믿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헤이카의 웃는 눈이 칙칙한 도시 풍경을 담았다.

아가레스의 재해와 며칠째 내리는 비로 엉망진창이 된 도시는 말 그대로 ‘죽은 도시’ 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영화나 만화 속에 나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배경이라면 딱 이러한 광경일 것이다. 버려진 차가 사방에 뒤엉켜있고, 텅 빈 거리와 빌딩에선 음산한 적막감만이 남아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저기서 좀비 같은 게 나와야겠지만, 지금 저곳을 활보하는 건 조금 더 다른 생물이었다.


퉁! 퉁!

묵직한 총성이 빌딩 사이를 타고 메아리쳤다. 멀지 않은 곳에서 콥스 바탈리온의 대원들이 총을 쏘고 있었다.

두 팔이 길쭉하고 다리는 엄청 짧은 기괴한 놈이 괴수의 비명을 질렀다. 펄쩍 뛰어 콥스 바탈리온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내 녀석은 현대 화기의 집중 공세에 너덜너덜해졌다.


‘아우터.’


헤이카가 아디마 케티르의 ‘문’ 이란 걸 열어버린 이후, 그 문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다.

자리만에겐 헤이카를 설득해 내가 문을 닫게 시키겠노라 떵떵거렸는데, 정작 헤이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문? 솔직히 말하면 닫는 법을 몰라.’


그 어이없는 대답을 듣고서 난 한동안 멍청하니 천장만 보고 있던 기억이 있다.

괴물이 마구 튀어나오는 문을 무작정 열어놓고 닫는 방법은 모른다니. 헤이카답지 않았지만 모른다는 사람을 붙잡고 아무리 닫으라고 해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덕분에 그날 이후 자리만과 콥스 바탈리온은 아시리아의 죽은 도시를 활보하기 시작하는 아우터를 사냥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인 건 거의 산송장이 되어 돌아온 날 향한 자리만 나름의 배려인지, 뭔가 다른 건진 모르겠지만, 자리만이 날 추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헤이카를 잡겠다는 헛소리도 더 이상 하진 않았다. 자리만은 그저 묵묵히 자기 대원들을 데리고 죽은 도시들을 수색하며 눈에 띄는 아우터는 모조리 사냥했다.

관계가 좀 서먹해진 건 있지만, 애초부터 고용주와 용병이라는 비즈니스적 관계였을 뿐이다. 친분을 쌓을 생각은 없었다.


“흐음. 좋아. 산이가 아끼는 이웃이 위험에 빠졌다니 도와줘야겠지. 미나랑 베디는 별 걱정 안 되지만.”


콥스 바탈리온의 사냥을 감상하듯 보던 헤이카가 말했다.


“연합의 요구대로 하려고요?”

“물론 조건을 더 걸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예. 제가 할 건 없어요?”

“음.. 나랑 같이 코렌으로 돌아가는 거?”


드디어 이 먼 나라 땅에서 코렌으로 돌아가는구나. 왠지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따지고보면 내 고향은 시라비아지만, 코렌만큼 마음 편한 곳은 별로 없었다. 분위기든 뭐든 간에 말이다.


특히 아시리아는 식사가 영 입에 맞지 않았다. 사장님이 끓여주던 매운탕 생각이 절절했다. 흰 쌀밥까지 있으면 세상 남부러울 게 없는 식탁이다.


“본사에 네 오른팔 후보들이 있거든.”

“응? 오른팔 후보?”

“공업은 의수도 제작하니까.”


빈 오른팔 소매를 힐끗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클립스에서 만든 게 뭐가 있더라?’


머스칼을 흉내 내는 참수도. 강철도 종잇장처럼 찢는 카르마 나이프.

그리고 이번 아가레스와의 싸움에서 보여줬던 그 엄청난 기술력들..


그런 공업에서 만든 의수라는 얘기다.

은근슬쩍 기대감이 차올랐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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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3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58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6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8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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