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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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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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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터닝 포인트(12) - 계산 밖의 칼날

DUMMY

#1


세상엔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게 아니다.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천재라 불리는 이름난 과학자조차도 상식적인 인지 범위를 넘어선 현상에 대해선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지금 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러한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초대형 아가레스와 함께 주변에 징글징글하게 깔린 수백 마리의 아가레스들.


어떤 지지대도 없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땅덩어리.


그 땅덩어리 위에 우두커니 자리를 잡은 얼굴 없는 사내는 등에 달린 검고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바람을 일으킨다.


세상에 이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속 연출이라면 모를까, 이건 CG 같은 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또렷한 현실이었다.


황성의 시작이래, 역사상 최초로 하늘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인류의 전쟁.

너무나 많은 희생을 딛고,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희생이 날 것을 알면서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렇게 결전에 걸맞은 무대가 완성되었고, 난 지금 그 무대 위에 섰다.


뽑아들었던 카르마 나이프가 유독 작아 보였다. 강철벽도 종잇장처럼 찢어대던 공업 기술력이 들어간 나이프건만, 이 자리에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들이닥치는 바람에 머리나 코트가 마구 나부꼈다. 눈살을 찌푸리며 바람을 막자 그게 불만이라는 듯 아가레스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산. 너는 뒤에 있어.”


둥둥 떠다니는 아베스타의 인터페이스를 바쁘게 조작하며 헤이카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제가 할 일 없어요? 보조라던지..”

“없어. 원래도 네가 여기 있는 건 계산 밖이니까.”


계산 밖.

그러니 끼어들면 계산에 착오가 생긴다는 의미겠지.


괜히 나대서 헤이카의 승리 공식을 망가뜨릴 생각은 없다. 어째 어깨가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초라한 카르마 나이프를 집어넣고 조금 뒤로 물러났다.


헤이카의 양옆으로 두 무리의 무장 전력이 전투를 준비했다. 한쪽은 감응자 부대인지 딱히 무기로 보이는 건 없었고, 한쪽은 특수부대처럼 슈트에 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감응자 부대로 보이는 무리가 파장을 터뜨렸다. 반대편에선 슈트에서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둔탁하게 생긴 총구를 치켜들었다.


머스칼이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건 잠시 멈춰있던 전투의 재개를 의미했다. 수백 마리의 아가레스가 땅으로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머스칼이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공업의 모든 전력이 각자의 힘을 과시했다.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미사일이나 전투기들이 아가레스를 불태우고 머스칼의 검은 아가레스를 썩뚝썩뚝 썰어댔다.


어디선가 날아온 기관포가 아가레스의 배에 구멍을 냈다. 쏟아지는 피를 뚫고 번쩍거리는 포탄이 날아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어디서 이런 화력이 뿜어져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까 아베스타의 영상으로 보았던 세계 각지의 공업의 모든 화력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의 폭발은 내 기억으론 분명 마운틴 클리너다. 아시리아 근처 철도는 전부 망가졌을 텐데, 이 기묘한 영역 자체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덕분에 아가레스의 수가 제법 줄었다. 한 마리로도 벌벌 떨던 아가레스였는데, 이렇게 우수수 추락하는 꼴을 보니 정말 별거 없어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전투가 계속됐다. 패러데이니, 미스틸테인이니 하는 병기 이름 같은 것들이 계속 언급되며 그때마다 하늘에서 뭐가 더 떨어지거나 땅에서 뭔가 솟아나곤 했다.


머스칼은 그것들을 응용하며 싸웠다.

항상 손짓 하나로 다 으깨던 델라리온 머스칼이 검을 뽑고, 구닥다리 무기를 들고 싸우는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전체적으로 공업의 전력이 머스칼을 서포트하고, 핵심이 되는 머스칼이 전투를 주도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델라리온 머스칼이 가지는 강함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사실상 공업은 이 많은 아가레스와 초대형 아가레스에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있을 뿐, 치명타를 넣는 건 항상 머스칼이었다.


머스칼에게 모든 걸 쏟아부은 작전. 괴물에는 괴물로 대항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전략이다. 전체적인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헤이카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은 불길함을 낳았다. 바쁘게 아베스타를 통해 지휘를 계속하는 헤이카의 뒷모습이 초조해 보였다.


헤이카의 행보는 늘 자신만만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건 늘 성공을 전제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


헤이카의 등이 기울어지며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2


머스칼은 휘두르던 검을 우뚝 멈췄다. 검에 깃든 백은의 빛은 여전히 찬란했지만, 그 찬란함이 머스칼에겐 불길함으로 다가왔다.


‘헤이카?’


뒤를 돌아본 검은 후드의 시선에 무너지는 헤이카의 모습이 보였다. 재빠르게 달려온 산이 그녀를 부축했지만 헤이카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 ... }


쌔액!

날아든 거대한 가시에 머스칼은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내리치기 직전, 머스칼은 검을 치우고 손을 내저었다.

그의 손짓에 가시가 으스러졌다. 사방으로 튀는 아가레스의 가시 파편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웠다.

그 날카로운 조각을 털어내며 머스칼은 허공을 향해 물었다.


{ 베르나데트. 헤이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


- 네 번입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듯 들려온 목소리.

성역 분출기와 동시에 그를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자율 기동 서포터, 베르나데트였다.


‘시간을 더 끌 순 없군.’


베르나데트의 보고에 머스칼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네 번. 이 많은 아가레스 무리를 뚫고 모체의 숨통을 끊기엔 아슬한 숫자다.

머스칼은 초조함을 느끼며 커다란 날개를 휘둘렀다.


그의 몸이 붕 떠올랐다. 하늘에 오르자마자 주변을 재빠르게 훑은 그가 절도있게 손을 휘둘렀다.

머스칼을 향해 돌진해오던 아가레스 무리가 압력에 짓눌리며 피를 터뜨렸다. 비처럼 쏟아지는 핏물을 온몸으로 받으며 머스칼이 다시 한 번 날개를 휘둘렀다.


번개처럼 궤적을 뿌리며 날아간 머스칼이 지면에 꽂혀 있던 또 다른 검을 끌어와 낚아챘다. 황금으로 뒤덮인 검이 빛을 머금었다.


황금검이 넓은 범위를 베었다. 아가레스 무리가 반으로 쪼개지고 그 너머에 있는 초대형 아가레스의 주둥이가 보였다.


{ 모체를 친다. }


- 마운틴 클리너 화력 지원 개시.

- 초시공 경유. 3. 2. 1.


베르나데트의 신호와 함께 하늘에서 물결치듯 파장이 일고, 그곳에서 새빨간 불꽃이 떨어졌다.

금세 어미로 가는 길을 틀어막던 아가레스를 향해 떨어진 불꽃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마운틴 클리너의 불꽃에 다시 한 번 길이 열렸다.


- 마운틴 클리너 냉각 중. 다음 화력 지원까지 15분.


‘충분해.’


머스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날개가 힘껏 공기를 후려쳤고 두 자루의 검을 앞세워 돌진했다.


- 모체 내부의 에너지 급상승.

- 마력 폭풍 관측.


{ ! }


모체까지 코앞을 남겨두고 몰아친 거센 폭풍이 머스칼을 날렸다.

머스칼은 날아가는 도중에도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어깨 위로 들어 올린 황금의 검을 힘껏 던졌다.


{ !!!!!!! }


번쩍이는 궤적을 남기며 황금검이 모체의 가죽을 꿰뚫었다.

고통에 찬 울부짖음에 다른 아가레스들이 머스칼을 향해 가시를 뿜어댔다. 머스칼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가시를 압력으로 짓이겼다.

부서진 가시의 파편이 후두둑 쏟아졌다. 날카로운 가시 파편이 머스칼의 날개와 외투에 마구 박혀 상처를 냈다.


머스칼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다른 곳에 박혀 있던 황금의 창이 날아와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 보고. }


- 황금 병장, 잔여 일곱.


{ 모체에게 접근한다. }


- 스테판 미사일 인사이드. 화력 지원 개시.

- 베인, 비숍 필드 오프닝. 5초 뒤 인사이드.


다시 하늘에 파장을 일으키며 갑자기 나타난 미사일이 아가레스 무리에 꽂혔다.

폭발하는 불길에 맞춰 머스칼이 날아올랐다. 불꽃을 가른 머스칼은 자신에게 닿은 감응자의 파장에 몸을 맡겼다.


순식간에 바뀐 시야. 어느새 모체에 접근하는 데 성공한 머스칼이 창과 검을 교차했다.


황금의 창을 먼저 꽂고, 백은의 검이 빛을 뿌리며 크게 호를 그렸다.

초승달처럼 궤적을 남긴 백은이 모체의 몸을 크게 갈랐다. 쩍 벌어진 가죽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검의 빛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머스칼은 검을 당겨 잡으며 재차 휘둘렀다.


{ ─ !!!!! }


모체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토했다. 백은의 빛에 절단된 몸뚱이에서 온갖 것이 쏟아졌다.

하지만 괴물의 숨통은 끈질기다. 더욱 하늘 위로 올라가는 모체와 그 뒤를 막아서는 아가레스 무리는 이젠 폭발적으로 그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 흡! }


낚아챈 황금의 낫이 창공을 가르고 붉은 비가 쏟아졌다.


피안개 속에서 머스칼의 후드 아래 뿌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날개가 힘을 끌어모으며 잔뜩 팽창하고 훨씬 거대해졌다.


- 황금 병장, 잔여 여섯.

- 마운틴 클리너 냉각 완료까지 13분.

- 비숍. 필드 아웃.


‘마지막 한 번.’


백은의 검을 늘어뜨리며 머스칼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열기로 가득 찬 몸이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었다.

지끈거리는 머릿속에선 온갖 끔찍한 음성이 계속됐다. 머스칼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 크롬벨. 필드 오프닝.


날아드는 가시를 터뜨리는 로켓포와 함께 공업의 특수부대가 머스칼과 같은 위치에 섰다.

쏟아지는 가시 파편을 공업제 방패로 막아낸 그들이 다시 총과 로켓포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여성이 머스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클레멘타인. }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박사님이 한계입니다.”


{ 알고 있다. 한 번 남았어. }


“베인은 전원 아웃입니다. 마운틴 클리너도 냉각 중. 그러니 여기서부턴 패러데이와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저희는 한 번 뿐입니다.”


머스칼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축 늘어진 헤이카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아베스타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녀를 부축한 산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머스칼과 시선을 마주쳤다. 둘 사이에선 무언의 대화가 잠시 오갔다.


모든 것이 자신의 어깨에, 날개에, 검에 달려있다.

이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머스칼은 백은의 검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 해봐야지. }


“마지막 기회입니다. 해보는 게 아니라 해내셔야 합니다.”


{ ...그래. }


클레멘타인이 긴 숨을 내쉬었다. 몸을 돌린 그녀가 아베스타 디바이스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말했다.


그 동안 자세를 바로잡은 머스칼이 이젠 엄청난 크기로 자라난 날개를 웅크렸다.


단 한 번의 도약.

이 마지막 도약과 마지막 검격으로 모체의 숨통을 끊어야만 한다.


사방에 흩어져있던 황금의 무장들이 둥둥 떠 머스칼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에 손에 들린 낫까지 포함해 최후까지 남은 여섯이었다.


- 패러데이. 필드 오프닝.


하늘의 구름이 활짝 열렸다. 푸른 하늘을 등지고 나타난 거대한 강철의 비행체가 하단부로 모든 무장을 전개했다.


그런 하늘을 향해 머스칼이 꼿꼿이 섰다. 밝은 빛이 내리쬐지만 그의 얼굴에 자리잡은 것은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 패러데이, 크롬벨. 화력 지원 개시. 5초.

- 4. 3. 2..


머스칼이 웅크렸던 거대한 날개를 터뜨리듯 넓게 펼쳤다.


- 1.


몸이 짓이겨지는 감각을 견디며 날아오른 머스칼이 백은의 검을 비스듬히 내세웠다.

여섯의 황금 병장이 그의 뒤를 뒤따르고, 하늘과 지상에서 동시에 온갖 공격이 날아들었다.


몰아치는 로켓포와 특수탄. 강철의 비행체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화력에 아가레스 무리에 순간적으로 구멍이 뚫렸다.


{ !!!! }


위압적으로 번지는 아가레스의 포효.


위로 오를수록 서릿발처럼 차가운 공기가 머스칼의 몸을 붙잡고 늘어졌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아가레스의 거대한 가시 세례가 그를 찢어발길 기세였다.


머스칼의 한쪽 날개가 폭발했다. 충격파에 몸을 실은 머스칼은 가시와 얼어붙는 공기를 뚫고 더욱 치솟았다.


모체의 주둥이가 쩍 벌어지며 안에서 바람이 들끓었다.


- 모체 내부의 에너지 급상승.

- 마력 폭풍 관측.


폭풍이 들이닥치기 직전, 머스칼은 남은 날개를 터뜨렸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상승하는 머스칼이 황금과 백은의 궤적을 흘렸다. 그는 곧 모체의 거대한 이빨을 코앞에 두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어진 거대한 초승달.

동시에 여섯의 황금이 초대형 아가레스의 몸통을 꿰뚫었다.


“뭐...”


백은의 검을 크게 휘둘렀던 머스칼의 후드가 천천히 아래를 보았다. 그의 가슴팍을 꿰뚫은 얇은 가시가 뚝뚝 피를 흘렸다.


“이건..”


머스칼의 시선이 초대형 아가레스의 입 안쪽을 주시했다. 그가 베어낸 주둥이에서 진득한 피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것은 얇은 가시였다.


지금까지 집채만 한 가시를 날려대던 아가레스였기에 이렇게 작은 가시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머스칼이었다.

그의 입에서 넋두리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비처럼 쏟아지는 소형 가시가 머스칼의 온몸에 꽂혔다.

몸, 팔다리, 얼굴 가릴 것 없이 고슴도치처럼 가시에 찔린 머스칼이 아가레스의 피와 함께 추락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백은의 검이 햇빛을 반사하며 빙글빙글 떨어졌다.



#3


뜬금없는 얘기지만 난 수학을 싫어한다.

숫자 계산은 돈 계산을 할 정도로만 할 줄 알면 살아가는 데 딱히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식이니, 계산이니, 확률이니 그런 걸 열심히 떠들어봤자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확률이 몇 퍼센트건, 세상의 답은 두 가지뿐이다.


성공과 실패.

되느냐. 안 되느냐.

사느냐. 죽느냐.


“빌립니다.”


정신을 잃은 헤이카 귀에서 아베스타를 뺏어 내 귀에 꽂았다.


- 머스칼 다운! 다운입니다!

- 황금 병장, 잔여 둘!

- 초시공 출력 지속적으로 감소 중! 43%, 42%, 40%..

- 미스틸테인의 전개 출력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 베르나데트에서 올라온 정보입니다! 델라리온 머스칼의 능력 소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아베스타의 인터페이스와 쉬지 않고 들려오는 보고들은 하나같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졌네. 머스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거.


헤이카의 뭘 가져갔는진 모르겠지만, 중요한 걸 쭉쭉 빨아먹었으면서 머스칼은 결국 가장 중요한 마무리에 실패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 대의 얇은 가시가 머스칼을 걸레짝으로 만들었고 괴물이라 불리던 델라리온 머스칼은 초라한 모양새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게 계산대로의 결과란 거죠?”


들려오는 대답은 없지만, 헤이카는 모든 전투 플랜을 계산해 저 초대형 아가레스 토벌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헤이카는 역시 실패를 고려하지 않았나 보다.


머스칼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피를 토하더니 헤이카는 나가떨어졌다.

전부 믿고 맡긴 머스칼은 고슴도치 같은 꼴이 되어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고, 공업이 자랑하는 엄청난 전력들은 압도적인 아가레스의 물량에 결국 굴복했다.


공업은 분명 강하다.

그러나 소모전에서 저 징그러운 지렁이 무리는 끝이 없고 머스칼의 몸은 하나다. 전투가 늘어질수록 이쪽이 불리한 건 당연했다.


그러니 헤이카는 아마 큰 일격을 노려 모체를 잡고 새끼들이 비행 능력을 상실하면 하나하나 잡으려던 모양인데, 정작 모체를 잡지 못했다.


마무리가 부족했다. 아주 약간.


아베스타의 인터페이스를 구석으로 치우고 지면을 가볍게 찼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정면으로 날았다.

그리고 하늘로 손을 뻗어 빙글빙글 빛을 내며 떨어지던 검을 잡았다.


그립감은 나쁘지 않다. 무게도 적당하다. 생긴 건 영 센스가 구리지만, 이 검의 위력은 이미 알고 있다.


근처에 널브러져 죽은 공업 특수팀의 방패를 우산처럼 머리 위로 들어 쏟아지는 가시를 막아냈다.

그렇게 조금 있었더니 ‘철퍽’ 하며 머스칼의 몸뚱이가 바로 옆에 떨어졌다. 검붉은 피가 쫙 퍼졌다.


“머스칼. 살아있나? 말할 수 있어요?”

“..베.. 으... 베르...”

“말 못하면 몸으로. 이 칼 내가 써도 헤이카가 다치는 겁니까? ‘No’ 면 손가락이든 뭐든 까딱거려봐요.”


널브러진 머스칼의 손가락 하나가 움찔거렸다.


“그럼 잠깐 빌립시다. 그리고 또..”

“..베... 베르.. 나.. 데.. 트..”

“베르나데트?”


- 베르나데트, 오너를 변경합니다.

- 최종 승인 대기 중.


머릿속으로 울리는 전자 음성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기술도 있을 줄이야.


“이.. 름....”

“내 이름?”


머스칼이 다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산.”


- 베르나데트 온라인.

- 환영합니다. 산.


“현재 상황. 빠르게.”


- 델라리온 머스칼. 전투 불능.

- 크롬벨. 전원 전투 불능.

- 베인. 전원 전투 불능.

- 패러데이. 출력 저하로 필드 아웃.

- 마운틴 클리너. 냉각 완료까지 2분.

- 스테판 미사일. 잔탄 제로.

- 리판테스 미사일. 잔탄..


머릿속 음성은 빠르게 공업의 전력을 읊었다. 역시 이건 아베스타처럼 머스칼을 서포트하기 위해 개발된 공업의 프로그램이었다.

녀석이 해오는 보고는 거의 비슷했다. 대부분 잔탄이 없거나, 아가레스 가시에 뚫려 고장 났거나, 죽었거나, 냉각 중이었다. 쓸 만한 전력이 별로 없었다.


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활짝 열린 푸른 하늘 아래, 한눈에 전부 들어오지도 않는 초대형 아가레스와 그 아가레스를 지키듯 에워싼 아가레스 무리가 득실거렸다.


여기까지가 헤이카의 계산이고, 여기까지가 그 계산의 한계다.

그러니 여기선 ‘계산 밖의 변수’ 가 필요하다.


‘그게 난가?’


매사에 ‘난가?’ 싶으면 보통 나였다.

게다가 이번 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전쟁에서 엑스트라로 있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 하늘 위에서 떵떵거리는 괴물들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쁜 놈들이다.

이 욕망 시대에 나쁜 놈 잡는 건 같은 나쁜 놈이다.


난 머스칼의 검을 세게 말아쥐었다.

온 몸에서 피가 들끓고, 새하얗게 빛바랜 앞머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 산. 필드 오프닝.


“더 멋있게 소개해봐. 영웅답게.”


- 영웅 등장.


센스 없는 녀석.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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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2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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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0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7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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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3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6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3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5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5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0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2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8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3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2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1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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