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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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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45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41

작성
22.11.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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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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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9쪽

터닝 포인트(11) - 이클립스(Eclipse)

DUMMY

#1


“머스칼 - !!!”


헤이카의 목소리가 아디마 케티르 산의 정상을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동시에 추락하던 산과 헤이카의 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붕 떠올랐다. 산은 그게 머스칼의 힘이라는 걸 단번에 깨닫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전히 분화구 위에 자리를 잡은 머스칼이 후드 아래의 시선을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의 검은 코트가 요란하게 펄럭거렸다.


....!!!!


아디마 케티르 산이 진동했다. 산 아래 강철 도시에선 그나마 남았던 빌딩마저 주저앉았고 아시리아의 땅 전체가 뒤틀렸다.


가히 재앙에 가까운 규모의 대지진.

분화구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던 연기가 풍압에 밀려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연기는 주변을 가득 메웠지만, 곧 그마저도 전부 흩어졌다.

산은 후끈한 열기에 뺨이 따끔거렸다. 거대한 분화구 안쪽에서 '우르릉' 하며 천둥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뭔가 있어..’


산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아디마 케티르의 아래에 말도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땅이 갈라지고 무거운 굉음이 아시리아를 두들긴다.

질척거리는 피와 살점 속을 헤엄치던 괴물의 울음소리가 아디마 케티르 산의 구멍에서 쏟아져나왔다.


그건 새끼를 잃은 어미의 비통한 절규였다. 그리고 절규는 원망의 대상을 찾고 있었다.

지금은 땅속을 헤집고 있지만 곧 저것은 땅 위로 올라올 것이다.


산과 헤이카의 몸이 더욱 위로 떠올랐다. 어느새 두 사람은 머스칼보다도 높은 고도까지 올라와 한눈에 아디마 케티르의 구멍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 구멍을 내려다보던 헤이카가 말했다.


“머스칼. 검을 뽑아.”


{ 대가는? }


“!!”


산은 소름 끼치는 음성에 기겁했다.

아직 꽤나 거리가 있지만 분명 헤이카에게 답한 건 머스칼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머스칼의 기세가 평소와는 달랐다. 지금의 머스칼에겐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성마저 엿보이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


헤이카가 답했다. 그러자 구멍을 내려다보던 델라리온 머스칼이 어깨너머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등에서 마침내 백은(白銀)의 칼날이 뽑혔다.


은빛의 초승달을 닮은 검광(劍光)이 아디마 케티르 산을 반듯하게 가르며 내리 앉았다.


이젠 거대한 협곡의 모습이 된 아디마 케티르를 내려다보며 머스칼이 검을 털었다. 그의 검에서 은빛의 빛가루가 흩어져 공기에 아지랑이를 꽃피웠다.


그렇게 갈라진 산의 옆면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꽤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산은 저 괴수를 한눈에 담을 수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거대한 생명체. 상식의 경계선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압도적인 몸집의 괴수.


그나마 육안으로 인지할 수 있는 건 이빨 몇 개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고개를 크게 움직여야만 전부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저 괴물은 분명 다른 아가레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초대형 아가레스가 마치 뱀처럼 웅크리고 있던 몸을 튕겼다.


"..!"


그 단순한 동작에 그나마 남아있던 아디마 케티르 산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머스칼이 일으킨 대균열이 마치 애들 장난이라는 듯, 아가레스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과시했다. 풍압에 산과 헤이카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이런..'


저 재앙에서 사람은 그저 점 하나,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산은 남겨두고 왔던 노페이스의 팀원들을 떠올리며 탄식했다.


마침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아가레스가 소용돌이치듯 몸을 회전시키며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디마 케티르 뿐만이 아니라 아시리아라는 나라 자체를 짓이길 기세로 폭풍이 몰아쳤다.


머스칼의 창백한 손이 허공을 쥐었다.

무너진 아디마 케티르 산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대신, 머스칼의 능력으로 둥둥 떠다녔다.

산은 그 사이로 작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중엔 노페이스의 팀원들도 있었다.


“머스칼..!”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머스칼은 아디마 케티르에 있던 사람들을 지키며 저 압도적인 재해와 맞서 싸울 셈이었다.


머스칼의 몸을 두르고 있던 검은 외투가 그림자처럼 거대해졌다. 밤하늘보다도 어두운 칠흑이 거대한 날개가 되어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뻗어 나갔다.


“성공했어!”


헤이카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을 본 산은 놀란 숨을 들이켰다.

핏기 없이 창백한 헤이카는 당장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줄줄 흐르는 식은땀, 벌벌 떠는 몸, 호흡도 얕고 빨랐다.


“헤이카!”

“괜찮아. 대가니까.”

“대가라니..”


산은 헤이카의 심장에 관한 것을 떠올리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재빨리 헤이카를 부축했지만, 둥둥 떠다니는 몸에 부축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녀를 당장 어딘가에 눕혀두고 싶어도 이곳은 모든 게 떠다닐 뿐이었다. 아디마 케티르는 사라졌고, 아시리아라는 나라는 뒤집혔다.


재해 그 자체인 괴물이 인류가 가꿔온 문명을 우습게 비웃으며 전부 없던 것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산은 헤이카를 껴안은 채, 그런 괴물과 대치하는 머스칼을 바라보았다.


이젠 ‘악마’ 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 된 머스칼이 다시 한 번 허공에 검을 털었다.

백은의 빛을 머금은 칼날이 반짝거렸다.


그런 악마에 대항하는 것은 새끼를 잃고 마침내 원망의 대상을 찾아낸 아가레스다.

모체는 자신의 모든 슬픔과 분노를 인류에게 돌렸다.


비탄으로 가득한 포효를 들으며 산은 저 아가레스가 단순히 아시리아를 날려버리는 것으로 끝나진 않으리란 걸 깨달았다.

저 거구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다면 아시리아가 아니라 황성이 끝장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황성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며칠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


공업과 헤이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을 세상에 불러낸 것이다.


즉, 여기서 공업은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이클립스의 패배는 아시리아의 멸망이라는 시시한 얘기로 끝나는 수준을 넘어섰다.


산은 입술을 깨물며 몸을 날렸다. 둥둥 떠다니는 몸이지만 수영을 치듯 움직이면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근처에 떠다니던 아디마 케티르 산의 파편 중 하나를 고른 산은 파편 위에 착지해 헤이카를 눕혔다.


아까보단 호흡이 안정된 헤이카가 떨리는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그녀의 눈이 산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되는데.”

“...”

“일으켜줄래?”

“예.”


산의 부축을 받으며 헤이카는 일어섰다. 그녀는 한쪽 귀에 꽂았던 아베스타 디바이스를 작동했다. 파란 불빛이 점멸했다.


“아베스타. 채널 오픈.”


눈 앞에 수많은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산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 아베스타의 기능들이었다.

거기엔 산이 처음 보는 기능까지 있었다. 많은 영상이 떠오르고 가장자리를 가득 채운 복잡한 인터페이스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바다, 하늘, 육지, 철도, 산, 높은 빌딩, 혹은 지하.


아베스타의 영상에서 보이는 장소는 다양했다. 그리고 이건 모두 이클립스 공업의 전력이었다.

아시리아에 전개되고, 주변국에, 바다에, 먼 타국에 자리 잡은 전쟁 병기.


세상을 향해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로 비축하던 이클립스의 모든 것이 지금 이곳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었다.


헤이카의 눈이 흐트러짐 없는 투기를 품었다.

영웅과도 같이.



#2


헤이카 미켈런은 힘껏 숨을 들이켰다.

가쁘게 몰아쉬던 호흡도 이젠 완전히 진정되었는지, 그녀는 산의 부축 없이도 설 수 있었다.


곧, 그녀의 손이 재빠르게 눈앞에 떠오른 아베스타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인터페이스에 눈과 손을 바쁘게 움직이던 그녀가 말했다.


“여기는 헤이카. ‘모체’ 의 출현을 확인.”


- 이쪽은 패러데이. ‘모체’ 식별했습니다.

- 델라리온 머스칼의 필드 오프닝 확인. 오더 레디.


아베스타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성은 사람의 것이었다.

산은 한 걸음 물러나 주변을 경계했다. 여기까지 와서 산이 할 수 있는 건 지휘에 온 정신을 쏟기 시작한 헤이카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패러데이. 스카이라인 프로토콜 가동.”


- 아베스타 드라이브, 스카이라인 가동.

- 가동률 78%, 79%, 80%...


하늘 위로 요란한 소음을 내며 아베스타의 검은 드론들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수백 대의 드론 군세. 그 모든 드론은 공업의 기술인 아베스타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후로도 드론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그 드론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오는 게 아니라, 구름보다 높은 하늘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베인.”


- 이쪽은 베인(Bane). 통신 양호합니다. 박사님.

- 킹, 비숍. 오더 레디.

- 나이트. 오더 레디.


“크롬벨.”


- 크롬벨(Crombel). 통신 양호.

- 클레멘타인. 오더 레디.


“패러데이? 가동률은?”


- 드라이브 가동률 100%

- 출력 유지 성공. 스카이라인 프로토콜 전개 가능합니다.


헤이카가 짧은 숨을 뱉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머스칼을 향했다.


검을 뽑은 머스칼. 그 아래로 꿈틀거리는 초대형 아가레스의 온몸에서 가시가 솟아나왔다.

아시리아의 땅을 가시와 육중한 몸으로 마구 파헤치던 아가레스의 꼬리가 마침내 지상과 떨어져 하늘에 올랐다.


창공을 향해 높이 치솟는 괴물을 바라보며 머스칼이 자세를 잡았다.

헤이카는 머스칼의 움직임에 맞춰 인터페이스를 조작했다.


“스카이라인 전개!”


- 패러데이. ‘성역 분출기’ 투하.


상공의 드론들이 도넛 형태로 그 대열을 바꾸었다. 곧,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지던 검은 물체가 쏜살같이 산과 헤이카의 앞을 지나갔다.


하염없이 추락하던 물체는 둥둥 떠다니던 아디마 케티르의 파편에 꽂혔다.

우뚝 선 쇳덩어리는 마치 비석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상단에 쓰인 ‘Mistilteinn’ 이라는 글귀에 노란빛이 감돌았다.


- 성역 분출기 미스틸테인. 성역 선포까지 4분 소요.

- 베르나데트 인스톨.

- 황금 병장 투하. 4분 20초 소요.


“머스칼! 4분이야!”


아가레스가 일으키는 굉음 속에서도 머스칼은 헤이카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그의 날개가 크게 움직였다.


마침내 머스칼이 재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검에서 흘러나온 백은의 빛이 쭉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다.

움직이기 시작한 머스칼을 발견하고 초대형 아가레스가 포효했다. 사방에서 다른 아가레스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초대형 아가레스 탓에 다른 아가레스는 비교적 작아 보였지만 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여전히 저 작은 아가레스들은 지상에 곤두박질 치는 것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재앙이다.


{ 흠! }


머스칼이 짧은 기합을 지르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날아들던 아가레스 무리가 피를 뿜으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같이 베였는지, 초대형 아가레스의 몸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왔다.

새빨간 피는 폭포처럼 뿜어져 이젠 쑥대밭이 된 아시리아의 땅에 쏟아졌다. 대기를 가득 메우는 피 냄새에 아가레스들이 공명하듯 동시에 포효했다.


사방으로 날아드는 가시. 휘둘러지는 백은의 검.

머스칼의 베고, 짓이기고, 응축하는 힘이 무자비하게 아가레스를 도륙하는 동안 시계의 초침은 계속 움직였다.


이윽고 바늘이 예정된 4분에 도달한 순간, 파편에 박혀 있던 검은 비석의 겉 부분이 네 갈래로 쩍 벌어지며 내부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 미스틸테인 성역 선포.


창에서 연속적인 파장과 충격파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기를 때리고 흩어진 산의 파편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강렬한 충격파였다.


산의 어깨를 잡아 함께 몸을 낮췄던 헤이카가 눈을 빛냈다.


“머스칼!”


그녀의 외침에 아가레스와 사투를 벌이던 머스칼이 날개를 휘두르며 날아 창을 쥐었다.

쉴 새 없이 터지던 충격파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일대의 공기가 경직되고 대규모의 아가레스 무리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 이쪽은 패러데이. 초시공 구축. 아가레스 고정합니다.

- 예상 고정 시간 12초.

- 황금 병장 도달까지 3. 2. 1.


아가레스들이 굳어있는 사이 하늘에선 금빛의 물체들이 쏟아져 산의 파편 이곳저곳에 꽂혔다.

검, 창, 활이나 화살, 방패. 그러한 냉병기 시대의 무장들이 찬란한 황금빛을 머금고 있었다.


- 골든 에이지(Golden Age) 전개.


흩어졌던 아디마 케티르 산의 파편들이 빠르게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 초시공 완전 구축.

- 아가레스 고정 해제까지 5초.


그렇게 하늘 위, 거대한 섬이 형성되었다.


아디마 케티르였던 산의 파편들이 뭉쳐 거대한 땅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그 땅은 어떤 지지대도 없이 하늘 한복판에 부유하고 있었다.


아가레스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땅 위에 자리를 잡은 머스칼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다.


마찬가지로 땅 위에 내려선 산은 헤이카의 곁을 지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멍하니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았지만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거대했던 아디마 케티르가 아가레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공업은 그 파편을 끌어모아 하늘 위의 섬을 만들었다.


인류 기술의 정점에 섰다는 이클립스라고 할지언정,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헤이카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도취감에 빠져들었다.


“이게 진짜 되네? 역시 나 천재인가 봐.”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릴 하시네요..”


{ 온다. }


머스칼의 음성이 웅웅거리며 울렸다.


이 섬은 지금 하늘 위에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있다는 건 적진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거나 다름이 없다.


떠오른 땅을 수백 마리의 아가레스가 포위했다. 그들의 거대한 몸집 너머로 초대형 아가레스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꿈틀거렸다.


푸르른 창공의 하늘 아래.

괴물과 인간은 마침내 같은 높이에 섰다.



#3


세계 연합의 부총장. 어셔 스콧은 배를 잡고 한참이나 웃었다.


아시리아의 땅을 뒤집어엎은 듯한 거친 대지.

그곳에 마구 널브러진 연합의 평화 유지군은 더는 '군대' 라고 부를 수도 없는 꼴이었다.

거꾸로 뒤집힌 전차나 트럭, 사방에 흩어져 나자빠진 군인 중 대다수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먼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이보게! 저거 봐! 저게 말이 되나? 응? 세상에 저렇게 큰 생명체가 이 황성에 있었다고? 웃기고 있구만! 푸하하!"


스콧은 먼 하늘에 꿈틀거리는 초대형 아가레스를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잔뜩 흥분한 그와 달리 멍하니 그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던 한 군인이 탄식했다. 스콧이 그 군인을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이 드나?”

“집에 가고 싶습니다.”

“으하하하!”


폭소하던 스콧은 수통의 뚜껑을 열어 마지막 콜라를 전부 들이켰다. 미지근한 콜라를 맛있게 들이붓던 스콧이 입맛을 다셨다.


“저것도 좀 보게. 저것도 말이 안 돼. 대체 저 섬은 어떻게 떠 있는 거지? 아디마 케티르가 날아갔는데, 대체 저 섬은 뭐냔 말이야. 부유섬이라 해야 하나?”

“...”

“그리고 우린 왜 여기까지 온 거지? 분명 카리카 앞에 있었잖나? 둥실둥실 떠서 여기까지 날아온 건 뭐야?”

“그, 그건 저도 잘..”

“하하. 이건 델라리온 머스칼일세!”


군인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델라리온 머스칼이 우릴 구했다는 거야.”

“그 괴물이 어째서..?”

“그는 ‘자칭’ 평화주의자거든. 나라 하나를 저렇게 뒤집어엎으면서도 사람 목숨이 귀하다는 건 알아. 그래서 휩쓸리지 않게 우리를 여기까지 날려버린 걸세.”

“그런 것 같군요.”


대답은 다른 남자였다. 스콧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사무엘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뒤로 대자로 뻗은 야차와 그의 위에 거꾸로 엎어진 폭탄마 시카의 모습도 보였다.


“노페이스? 자네들은 왜 여기 있나? 저기 껴야 하는 거 아닌가?”

“산 팀장과 떨어졌습니다.”

“저런.”


스콧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겠구만. 저 멋진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었을 텐데.”

“...썩 내키진 않는군요.”


코트를 탁탁 턴 사무엘이 스콧의 옆에 섰다. 멍하니 있던 주변의 군인들은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곤 벌떡 일어나 총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총을 놓쳐 빈손이었다. 허겁지겁 총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무엘을 향해 재빨리 달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괜찮네. 적이 아니야. 저 뒤에 나자빠진 친구들 좀 도와주게.”


스콧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야차와 시카를 가리켰다. 사무엘도 느긋하게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연합의 부총장을 위협할 생각은 없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갈팡질팡하던 군인들은 결국 스콧의 말대로 움직였다. 그들은 나자빠진 야차나 시카를 살폈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스콧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변을 훑던 사무엘이 물었다.


“그런데 크루아틀이 보이지 않는군요. 떨어졌습니까?”

“그런 것 같네. 그 짐승은 머스칼의 영향을 안 받으니까.”

“..그렇담 저 한복판에 남아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사무엘은 이젠 지옥이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전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콧이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겠지. 그 괴물이 뭐에 깔려 죽을 것 같지도 않고.”

“...”

“이보게, 핸들러. 자네.. 앞일을 내다볼 수 있지?”


코렌, 레베스타, 그리고 세계 연합.

그 모든 곳에서 극비로 치부되는 사무엘의 능력이지만 연합의 부총장인 어셔 스콧은 사무엘에 관한 것을 속속 꿰고 있었다.


사무엘은 한숨과 함께 끄덕였다. 스콧을 상대론 어떤 속임수도 통하지 않으리란 걸 사무엘은 알고 있었다.


“제 의지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은 보았나?”

“이런 광경은 못 봤습니다.”

“그렇군. 그럼 이 뒤는?”


사무엘이 게슴츠레한 눈을 깜빡이며 스콧을 마주 보았다.


“이 전쟁의 결말은 보았나?”


멀리서 들려오는 아가레스의 포효를 들으며 사무엘의 표정이 변화했다.

그는 눈썹을 긁적이며 피식 웃었다.


“예. 봤습니다.”

“누가 이기지? 헤이카 미켈런? 아가레스?”


스콧은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사무엘은 입맛을 쩝 다시며 몸을 돌려버렸다.

흩어진 돌 부스러기를 저벅저벅 밟으며 사무엘의 등이 멀어졌다. 스콧이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


“우리 사이에 이러긴가?”

“알면 실망하실 겁니다.”

“난 영화 볼 때 결말부터 찾아보는 사람일세.”

“특이한 취미군요.”

“실망 안 할 테니 알려주게. 응?”


스쳐지나가듯 사무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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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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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3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6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3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5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5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0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2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8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3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2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1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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