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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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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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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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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터닝 포인트(6) - 아디마 케티르

DUMMY

#1


황성에서 가장 높은 산.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지(地)의 창끝.

인(人)의 신을 섬기는 자들이 신과 닿기 위해 뿌리를 내린 땅.


이외에도 여러 가지 명칭이 있지만,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디마 케티르’ 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아시리아였기에 ‘가장 높은 산’ 이 가지는 의미도 남달랐다.

다양한 이유로 과거 아시리아의 종교 내전에서 이 아디마 케티르 산의 소유권을 두고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디마 케티르의 험준한 산길은 자연적인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는 것과 동시에 감옥이 되기도 했다.

산을 빼앗기 위한 싸움은 큰 희생을 낳았고 산에 들어선 이들은 식량과 식수를 찾다 조난당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렇게 무의미한 싸움과 희생, 인내의 끝에 사람들은 깨달은 것이다.

이곳은 사람을 허락하지 않는 산이라고.


결국 아디마 케티르 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은 채, 아시리아 내전은 끝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런 땅에 겁도 없이 발을 붙인 자들이 있었다.


인(人)의 신 발라문드를 섬기는 신도들.

지금에 이르러선 ‘아시리아의 승려’ 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



‘여길 오르라고?’


도시 외곽을 타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차는 마침내 카리카에 붙어 있는 아디마 케티르의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내가 마주한 것은 울창하게 솟은 나무와 그 아래에 숨겨진 가파른 산길이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여긴 열셋의 순례길 중 하나로군요.”


나랑 같은 길을 바라보던 사무엘이 말했다. 난 귀를 쫑긋거리다 그를 돌아보았다.


“열셋이면 그나마 덜 가파른 길도 있겠죠?”

“다 비슷비슷합니다. 아디마 케티르는 사람이 발을 디뎌 평탄해진 길도 며칠 뒤엔 다시 가파르게 깎여 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되나?”

“아직 과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아디마 케티르 산의 비밀입니다. 산 안쪽에 무언가 거대한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관측 보고도 있었죠.”


오르기도 더럽게 빡세 보이는데, 산 자체도 뭔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어두컴컴한 산길 안쪽엔 어딘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다.


“산에 야생동물도 있겠죠? 곰이나.. 뭐 그런 거.”

“호랑이가 있다더군요.”

“호랑이...”

“산길까지 내려오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대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찰이 나올 겁니다.”

“그럼 중간중간 사찰에서 휴식하고.. 정상까지 가려면..”


말하기가 무섭게 멀리서 하늘을 가르는 하얀 가시가 산 어딘가로 떨어졌다. ‘쿵’ 하며 울리는 굉음이 가슴을 때렸다.

그것과 동시에 이클립스의 항공 전력으로 보이는 전투기 편대가 하늘을 가로질렀고 아가레스의 비명이 들렸다.


“갈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올라가 봅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대열을 구축하며 올라가기로 했다. 콥스 바탈리온을 반으로 쪼개 전열과 후열에 배치하고 나머지가 그 사이에 끼는 형태다.


자리만과 그 대원들의 걸음이 조금 빠르단 걸 제외하면 산을 타는 건 아직까지 크게 문제가 없었다. 전체가 가파른 건 아니라 가파른 길과 평탄한 길이 번갈아가며 나왔기 때문이다.


머리 위로 아가레스의 가시나 격추당한 공업의 전투기가 떨어지지 않기만을 빌며 우린 그렇게 산을 올랐다.



#2


시간상으론 이미 해가 넘어가고도 한참이나 지났을 시간이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불그스름한 황토색을 띄며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했다. 모래바람도 거셌다.


다행히 나무가 많아 여기까지 모래가 들이치는 일은 없었지만 몇 시간째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니 슬슬 숨이 차기 시작했다. 특히 부상을 입은 야차가 유독 뒤처졌다.


“..두고 올 걸 그랬나.”

“거뜬해. 자빠지면 기어서라도 간다.”


그렇게 말한 야차는 땀을 질질 흘리며 이를 악물고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말은 저래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사찰은 언제쯤 나오죠?”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슬슬 나왔어야 합니다.”

“...”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건 오직 나무뿐이다. 아래는 이미 까마득하게 멀어진 카리카의 도시 외곽 부근이 보였다.


정 안되면 사찰이 아니더라도 길바닥에 나앉아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저 꼭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쥐어짜듯 체력을 써가며 올라가는 건 리스크가 크다.


{ 형제. 잠깐 와서 봐야 할 게 있다. }


그때, 무전기로 앞에 있던 자리만이 보고를 해왔다. 주변에 있던 팀원과 시선을 교환한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선두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춘 자리만의 바이저가 날 향해 ‘삐빅’ 소리를 내며 발광했다. 그리고 자리만은 자기 권총으로 바로 앞에 있는 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이게 뭐야?”


겉보기엔 죽은 동물.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아는 어떤 동물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얼핏 사슴처럼 보이지만 머리에 달린 건 뿔이 아니라 피에 젖은 깃털이었다. 깃털은 예리한 가시로 이루어져 있어 건드리면 따끔거렸다.

게다가 눈알은 새하얗다. 붉은 피도 마치 모래처럼 굳어있었는데, 생선 비린내 같은 악취가 났다.


“앞다리는 원래 없고 뒷다리는 새의 다리다. 꼬리 끝엔 금속성의 칼날이 붙어 있다.”


자리만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였기에 난 잠시 내 상식을 의심해야만 했다.


“내가 못 배우고 자라서 그런데, 얘가 어디 백과사전에 실려 있는 희귀동물이야?”

“아니. 황성에 이런 생물은 없다.”


자리만이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의 대원들도 바이저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 형제. 잘 들어봐. 소리가 있어.”

“소리?”


잠시 숨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이자 정말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는 꽤 있어 보이지만 이 소리가 사람이 내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짐승의 울음소리다.


아가레스는 아니다. 내가 아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울음소리는 맹수의 것이 분명했다. 소리에 실린 악에 받친 살의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아마 이런 짐승이 아디마 케티르 산 곳곳에 있는 것 같다.”

“...잠깐.”


이제보니 죽은 괴생명체의 상처는 날카로운 것에 찔린 듯한 자상(刺傷)이었다. 자리만의 바이저를 마주 보자 그가 끄덕였다.


“이걸 죽인 건 사람이다. 누군가 이 산에서 이 괴물들과 싸우고 있어.”

“헤이카가 데려온 공업의 전투 병력이려나?”

“가서 확인해보면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자리만은 또 다른 곳을 가리켰다. 풀숲과 나무 사이마다 붉은 혈흔이 묻어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길에서 벗어나 그 혈흔을 따라 움직였다.

어차피 길을 잃어 사찰을 지나쳤다면 이제 와서 산길을 따라 오르는 건 별로 의미가 없었고, 지금 아디마 케티르 산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해두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정지.”


내 신호에 맞춰 전원이 멈췄다. 핏자국을 따라 이동한 끝에, 큼지막한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를 빡빡 민 남자였다.


‘승려..?’


콥스 바탈리온을 경계 태세로 전환하고 나도 나이프를 뽑은 채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남자는 우리의 인기척에 놀란 듯 숨을 들이켜더니 고개를 들었다.


역시 승려였다. 이 아디마 케티르 산에서 머무른다는 아시리아의 도승.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승려의 옷은 피에 푹 젖어있었다.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린 채, 우리에게 부러진 창대를 내밀고 있었다.


창날의 끝에는 가루 같은 피가 묻어있었다. 아까 그 괴상한 짐승의 피로 보였다.


“진정하세요. 이클립스 공업에서 나왔습니다.”

“..고, 공업?”


승려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더니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창대를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대에서 낙오되신 분들입니까? 아니면, 또 피난 권고로 오셨습니까?”


승려는 물었다. 그 의미심장한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후발대입니다. 아디마 케티르 정상을 향하고 있고요.”

“후발대라..”


승려는 말꼬리를 흘렸다. 그리고 조금 뒤에 다시 말했다.


“그럼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산에서 내려가십시오. 그리고 카리카에서.. 아시리아에서 벗어나십시오.”

“헤이카를 도우러 왔습니다.”

“유감이지만 헤이카 미켈런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얼어붙는 것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서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머스칼이 헤이카의 옆에 딱 붙어 있을 테니까.


“아디마 케티르 산 전체에 안 좋은 것들이 퍼졌습니다. ‘바깥의 것’ 이라 불리는 괴물입니다.”

“..오는 길에 이상한 동물을 봤는데, 그거 말하는 건가.. 그놈 죽인 것도 그쪽이 한 거죠?”

“예.”


승려는 부러진 창대를 눈으로 가리키며 답했다.


“그 괴물을 ‘바깥의 것’ 이라 부르는 겁니까?”

“옛것. 뒤처진 자. 바깥의 것. 저희는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나 보네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조금 거친 숨을 내쉰 승려가 대답했다. 이제 보니 옷을 적신 피는 그 짐승의 것뿐만이 아니라 승려 본인의 것도 있었다.

난 서둘러 승려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이건..’


쭉 찢어진 배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미 흐른 피도 많았다. 지금까지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도망치십시오. 아디마 케티르의 문이.. 쿨럭! 열렸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흰 올라갈..”

“이 위에 있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승려는 내 옷깃을 꽉 붙잡았다.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채, 윗니와 아랫니가 딱딱거리며 부딪쳤다.


“여기서.. 서, 서쪽으로 산길이 나올 때까지 이동하면 길 끝에 사찰이 하나 보일 겁니다..! 정 믿기 어렵다면 그 사찰을 찾아가 보십시오. 라하단 스님께서 아직 무사하시다면.. 문을.. 문 너머에 있는 괴물들에 대해... 서.....”


내 옷을 쥐던 승려의 손이 스르륵 떨어졌다. 그리고 기우뚱하며 쓰러지는 승려를 재빨리 손으로 받쳤다.


간당간당하게 숨이 붙어 있는 승려의 눈에 초점이 풀려가고 있었다. 난 고민할 틈도 없이 승려를 어깨에 들쳐멨다.


“형제. 그 승려는..”

“알아. 그래도 이런 곳에서 죽으면 좀 그렇잖아. 사찰까진 데려다 주자고.”

“알았다.”


아시리아의 승려들에겐 별다른 악감정도, 그렇다고 우호적인 감정도 없다. 애초에 난 승려와는 연이 멀고도 한참이나 먼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죽어 싸늘하게 방치되는 건 역시 그렇다. 특히나 내 눈앞에서 죽는 인간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예는 갖춰줄 수 있다.


‘나도 무뎌졌나.’


아니, 어쩌면 사람다워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3


승려의 말대로 방향을 잡자 금세 사찰에 닿을 수 있었다. 문제는 사찰에 가까워질수록 아까 보았던 괴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클리어.”


칼에 묻은 피를 털듯, 권총을 가볍게 털며 자리만이 말했다. 그 옆에선 야차가 피 묻은 곤봉을 늘어뜨렸다.


주변에 널브러진 것들은 모두 본 적도 없는 짐승들이었다. 아까 승려가 말했던 ‘바깥의 것’ 이란 놈들이 확실했다.


“사람을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배고파서 달려드는 건 아닌 것 같고.”


여전히 승려를 들쳐멘 나도 카르마 나이프에 묻은 피를 휙 털어냈다. 바닥으로 튄 피는 마치 사막의 모래처럼 가루가 되어 말라붙었다.


“원래 그런 놈들이다.”

“뭔가 아는 게 있는 것 같군요. 자리만 콥스.”


자리만의 대꾸에 사무엘이 물었다. 자리만은 바이저 너머로 사무엘과 날 번갈아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선 사찰로 가자고. 형제들.”


그렇게 말하며 자리만이 앞장섰다. 난 그런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랑 좀 다른데..”


이런 상황이 되서 그런지, 아니면 뭔가 태도가 바뀔 필요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자리만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가만 보면 조금 전, 자리만은 이런 말도 했었다.


‘머리를 터뜨리거나 잘라라.’


이 괴생명체들은 생명력이 질기니 반드시 머리를 날려버리라는 뜻이었다.

마치 예전에도 상대해본 적 있다는 것처럼 들렸고, 실제로 괴물을 상대하는 자리만의 모습도 능숙했다.


“얼른 가자. 힘들어 죽겠다.”

“..그래.”


곤봉의 피를 훙훙 털어내던 야차가 터덜터덜 걸으며 말했다.


가파른 산길에 더불어 언제 아가레스의 가시가 날아들지 모를 위험한 곳. 거기에 이런 끔찍한 괴물들까지 마구 튀어나왔다.

부상을 입은 야차뿐만이 아니라 나도, 사무엘도, 시카도 꽤 지쳐있었다. 어찌 됐든 지금 노페이스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곧, 우린 사찰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꽤 살벌한 환영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입구엔 나무를 깎아 만든 뾰족한 목제 방책이 깔려있었다.

그 주변에 찔려 죽은 괴생명체들도 꽤 많은 걸 보니 역시 이 사찰도 놈들의 습격을 받은 것 같았다.


목제 방책 뒤엔 머리를 빡빡 민 승려들이 기다란 창을 든 채 우릴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도 지금 내 어깨에 있는 승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포와 살기, 살육의 흥분으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클립스 공업에서 나왔습니다.”


먼저 가서 그들과 대치하던 자리만을 재치고 말했다. 승려들은 내 어깨에 들쳐멘 승려를 보더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클립스 공업이라고..?”

“예. 잠시 쉬어가려고..”

“당장 꺼져!”


승려 중 하나가 창을 삐죽 내밀며 고함을 질렀다.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승려였다.

아디마 케티르의 사찰은 방문자에게 꽤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공업의 인간까지 포용할 정도로 바보들은 아닌 모양이다.


어찌됐든 지금 이 사태를 초라한 건 공업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했다.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아시리아를 이 꼴로 만들고.. 뻔뻔하게 잘도 그딴 소릴..!”

“니시타.”

“!”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에 고함을 지르던 승려가 입을 다물었다. 곧, 안쪽에서 나이가 지긋한 승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승려들도 그의 등장에 한 걸음씩 물러나는 걸 보니 아마 저 늙은 승려가 이 사찰에선 가장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겐 손을 내밀어야 하느니라. 그런 가르침이지 않았더냐?”

“하지만 이 자식들은 공업..!”


늙은 승려의 눈길에 다시 흉터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이내 승려들은 목제 방책을 옆으로 치우며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들어선 사찰 내부는 멀쩡한 곳이 없었다.


망가진 사찰 건물과 더불어 중앙에 커다란 불이 있었다. 집채만 한 장작더미를 쌓아 올린 불.

그 불에 타고 있는 건 단순히 장작뿐만이 아니었다.


“코란을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늙은 승려는 내게 두 손을 모으며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아마 코란은 내 어깨에 짊어진 승려의 이름 같았다.


이내 하얀 천으로 입을 가린 승려들이 달려와 내 어깨에 축 늘어진 승려를 대신 받았다. 그는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축 늘어진 죽은 승려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활활 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승려들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고 싶지만.. 백사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선 시신을 태우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백사요?”

“바깥의 것 중에는 종종 백사병을 퍼뜨리는 개체가 있습니다. 다만, 사람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모든 시신을 태워야만 하죠.”


늙은 승려는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등 뒤로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이 죽은 승려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사람이 타는 냄새에 코가 근질거렸다.


그때, 담벼락 너머로 승려들의 기합과 괴물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왔다. 그들은 길쭉한 창으로 괴물을 찔러 죽이고 있었다.

언제나 그 마무리는 목을 자르는 것이었다. 마치 시라비아의 처형인들처럼.


괴물의 비명, 시체를 태우는 불꽃.


“전 ‘라하단’ 이라고 합니다. 부족한 몸이나마 이 사찰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이젠 익숙하다는 듯 늙은 승려가 말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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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3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8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2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7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4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5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9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2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9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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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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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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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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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3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2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1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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