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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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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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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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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터닝 포인트(5) - 어셔 스콧

DUMMY

#1


“접선해보도록 하죠.”


한동안 쌍안경으로 동태를 살피던 사무엘이 말했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무엘은 내게 자기가 쓰던 쌍안경을 건넸다. 딱히 쌍안경으로 확인해볼 것도 없이 저기 있는 건 지난번에 봤던 크루아틀 본인이었다.


“저거 크루아틀입니다. 월교 사도요. 아까 그 짐승들도 우릴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는데, 저놈한테 가자고요?”

“그 옆에 있는 남자를 봐주십시오.”

“옆에?”


쌍안경의 시점을 크루아틀의 주변으로 두고 쭉 훑었다. 비슷한 복장의 군인들 사이로 조금 다른 사람이 하나 있었다.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수통을 홀짝거리는 정장에 코트차림의 남자. 덥수룩한 수염이나 싹 넘긴 머리, 선글라스는 아무리 봐도 이런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웬 산타 닮은 할아버지가 하나 있는데.. 군인은 아닌 것 같고.”

“어셔 스콧. 세계 연합 니로퍼의 부총장입니다.”

“부총장? 얼마나 높은 건데요?”

“세계 연합의 2인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와우."


그런 거물이 이 위험한 전장에 몸소 나타났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지만, 세계 연합에 있던 사무엘이 부총장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쌍안경 너머의 남자는 꽤 태연했다. 수통 안에 든 걸 맛깔나게 홀짝거리며 마치 영화 감상이라도 하러 온 것처럼 느긋하게 카리카 상공을 구경하고 있었다.


“정보대로라면 크루아틀은 늘 선봉에 서는 전쟁광입니다. 이런 치열한 전장에서 태연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을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요?”

“크루아틀이 저기 있는 건 어셔 스콧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모종의 이유로 그의 말을 따라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죠. 그리고 제가 아는 어셔 스콧이라면 저희와 대화를 원할 겁니다."


사무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충 이해했다. 저 영감이 저기 있는 이상 크루아틀은 우릴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무엘의 머릿속에서 나온 상식적인 이야기다.

내가 여태껏 만나 온 월교의 사도라는 놈들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난 놈들이었다.


“만약 크루아틀이 우릴 보자마자 달려들면?”

“제가 본 미래에 저희가 크루아틀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또 봤어요? 아무 때나 못 본다면서?”


사무엘은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보였습니다.”

“뭔 기준이야.. 그럼 어쨌든 가봅시다. 여차하면 저 영감 인질로 잡으면 될 테고.”

“산 팀장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 남자는 연합의..”

“2인자라면서요? 대통령 바로 아래 부통령. 회장 바로 아래 부회장. 그런 위치잖아요? 인질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죠.”


어딘가 떨떠름한 얼굴을 한 사무엘이었지만 결국엔 끄덕이며 내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2


사무엘의 말처럼 크루아틀은 움직이지 않았다.


크루아틀은 오히려 우리에겐 무관심하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난 카르마 나이프 대신 영업용 미소를 걸고 그들과 마주 섰다.


물론, 내 미소와는 달리 환영식은 뜨거웠고 우리의 화답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연합의 평화 유지군.

자리만의 콥스 바탈리온.


엄청난 수의 총구가 서로를 겨누었다. 모래 먼지와 함께 내리깔린 공기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때, 모래를 밟으며 어셔 스콧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도 그에 맞춰 콥스 바탈리온의 대열을 지나쳐 나왔다.


“첫 인사치곤 좀 과한가?”

“그런 것 같네요.”

“미안하네. 자네는 연합의 블랙리스트거든. 형식적인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사람을 상대로 총을 겨누는 광경을 ‘형식적’ 이란 단어로 일축한 스콧은 선글라스를 까딱거렸다. 나도 그를 향해 끄덕이자 스콧은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블랙리스트라..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니 좀 부끄럽네요.”

“나도 자네 같은 유명인을 만나 영광일세. 레베스타를 구한 영웅, 코렌의 학살자. 그야말로 두 얼굴의 노페이스가 아닌가? 어디선 스마일 페이스라 불리는 모양이네만. 웃는 얼굴이 무슨 귀신같다고.”


알게 모르게 그런 별명들이 붙었단 사실에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수통에 든 무언가 홀짝인 스콧이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돌발 행동에 연합의 군인들은 당황한 듯 보였다. 여차하면 인질로 잡을 생각이었는데, 본인이 직접 가까이 와준다니 나쁘지 않았다.


“악수나 하지.”

“예.”

“가위!”


라고 외친 스콧은 손가락으로 가위 모양을 해 보였다. 내 손은 당연히 악수를 위해 쫙 펴진 상태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며 얼빠진 얼굴로 그의 손을 보고 있었더니 스콧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껄껄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 내가 이겼구만!”

“...”

“다들 이거 보게! 내가 이겼다니까? 역시 아직 죽지 않았어!”


가위바위보로 이긴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인가 싶었지만 스콧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박수까지 치고 있었는데, 군인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총을 내리고 같이 박수를 쳐야 할지, 우리에게 계속 총을 겨누고 있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영감 원래 이래요?’


사무엘을 향해 그런 눈빛을 보냈다. 조금 뒤에 있던 사무엘이 쓴웃음을 지으며 끄덕거렸다.


“으흐. 미안하네. 자! 다시 한 번 악수!”

“...”


무슨 꿍꿍이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걸려주기로 했다. 난 스콧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두꺼운 손에서 딱딱한 굳은살과 악력이 제법 느껴졌다. 스콧은 내 얼굴을 보더니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이래 보여도 왕년에 몸 좀 썼네. 지금은 다 뱃살로 가버려서 아쉽지.”

“...예.”

“혹시 콜라 마시나?”


‘콜라?’ 라며 되묻자 스콧은 악수하던 손으로 허리띠에 걸어 달랑거리던 수통을 통통 두드렸다.


멀리서 지켜볼 때부터 홀짝거리던 그 수통이었다. 설마 물을 그렇게 마셔대는 건 아닐 테고, 아마 안에 든 게 술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술은커녕 콜라라니. 조금 의외였다.


“마셔보게.”


평범하게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난 응해주기로 했다. 아직 이 남자의 속내를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통에 담긴 것을 조금 입에 머금었다. 약간 김이 빠지고 미지근해진 설탕물. 콜라가 맞았다.


“어때? 맛 좋지?”

“시원했으면 더 좋겠네요.”

“그건 나도 아쉬워. 하지만 이런 곳에서 시원한 콜라까지 바라는 건 역시 욕심이더군. 마실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지. 인간은 욕심을 멈출 줄 알아야 해.”


수통을 돌려받은 스콧은 자기도 콜라를 한 모금 넘겼다. 그리고 다시 수통은 그의 허리띠에 고정되어 달랑달랑 흔들렸다.


“그보다 ‘핸들러’ 가 그쪽에 있는 걸 보니 신기하군. 처음부터 공업이 심어놓은 스파이였나? 아니면 레베스타가 우릴 배신한 건가?”


난 슬쩍 사무엘의 눈치를 살폈다. 사무엘은 묵비권이라도 행사하듯 입을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입맛을 쩝 다신 스콧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뭐, 그건 차차 알아보도록 하고. 자기소개가 아직이군.”

“제가 먼저 할까요?”

“젊은 사람 먼저 하면 좋지.”

“공업에서 노페이스 팀장을 맡은 산입니다. 나이 스물셋. 연애 경험 없고, 칼 좀 씁니다. 회도 잘 썰고.”


스콧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썹을 씰룩거렸다.


“겉보기에도 젊어서 뭔가 했는데, 진짜로 젊구만. 청춘이야.”

“예. 정말 파란만장한 청춘이죠.”


스콧은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어셔 스콧일세. 세계 연합 니로퍼의 부총장을 맡고 있지. 나이는 음.. 먹을 만큼 먹었네. 그리고 집에 젊은 아내랑 늦둥이 딸이 하나 있네.”

“좋으실 때네요.”

“그럼. 하루하루가 즐거워. 딸아이 이름이 로즈인데, 올해 일곱 살이 됐네.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하루라도 안 보면 견딜 수가 없더군. 지금도 보고 싶어 죽겠어.”


무해한 웃음을 머금은 스콧이었다. 나도 그를 향해 마주 웃었다.


꽤나 살가운 대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살벌했다.

평화 유지군과 콥스 바탈리온은 나와 이 남자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게다가 평화 유지군 뒤에 우뚝 서 있는 건 크루아틀 본인이다.

아무리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크루아틀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자리에서 저 괴물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난 그런 크루아틀을 내심 경계하고 있었다.

지난번 아시리아의 호텔 빌딩을 가른 ‘빛의 칼날’ 을 다시 볼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 집에 계시지 왜 이런 곳까지 나오셨어요?”

“어허. 아는 사람끼리 왜 이러나? 당연히 일 때문이지. 자네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잖아?”


난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고 싶어서 온 겁니다.”

“오? 혹시 누구처럼 싸우는 걸 즐기는 타입인가? 아니면..”


선글라스 너머 스콧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자네도 영웅 후보인가?”

“영웅 후보는 뭡니까?”

“그건..”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 근처에 박혔다.

땅이 흔들리는 충격. 하늘 높이 치솟은 모래가 다시 지면으로 쏟아진 뒤에야 나는 저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가레스다 - !”


연합쪽 군인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치기가 무섭게 하늘을 뒤흔드는 아가레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모래 구름이 가득 낀 곳에서 5m짜리 하얀 가시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금 날아와 박힌 것도 그 가시였다.


‘미친!’


직접 보고 싶진 않던 광경이 막상 눈앞에 펼쳐지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우릴 겨누던 평화 유지군도 우왕좌왕했고 콥스 바탈리온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시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두 번째 가시는 평화 유지군의 전차를 꿰뚫었다. 안에 든 폭약이 터졌는지 전차는 불꽃과 굉음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세 번째 가시는 트럭을. 네 번째 가시는 어떤 불운한 군인을. 그리고 다섯 번째가 될 때쯤,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경보음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움직이려니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시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얼마나 뿜어대는 거야?!’


정말로 빗줄기가 쏟아진다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가시들은 우리가 있는 곳뿐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쏟아졌다.


한 곳에 집중된다면 그 지역을 벗어나면 될 뿐이건만,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가시는 단순히 벗어난다고 될 수준이 아니다.

비를 피한다고 비가 오지 않는 곳까지 달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쪽으로 오게.”


그와중에 스콧은 내 손목을 덥석 쥐더니 어디론가 끌고 갔다. 손을 뿌리칠 생각도 하기 전에 그는 한 군용 차량 뒤에서 멈춰 섰다.


“여기면 안전할 거야.”

“아니, 저 가시 장갑차도 찢는데요?”

“그야 이 차는 찢기겠지. 근데 저건 안 찢기거든.”


고개를 쭉 내밀며 스콧은 차량 너머에 있는 크루아틀을 가리켰다.


크루아틀은 아까와 똑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거대한 몸집에 움직이지도 않는 타겟을 가시가 전부 빗겨나갈 리는 없었고 크루아틀을 향해서도 가시가 쏟아졌다.


“못 뚫네..?”


그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을 뿐인데, 아가레스의 거대한 가시는 크루아틀을 꿰뚫지 못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크루아틀의 몸이 휘청거리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부딪친 가시가 부러지거나 이상한 곳으로 튕겨 나가는 수준이었다.


단순히 크루아틀이 두른 강철 슈트의 방어력뿐만은 아닐 것이다. 저 쇳덩어리 안에 든 알맹이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는 의미였다.


“그렇지? 여차할 땐 대충 크루아틀의 그림자가 있는 곳에 숨으면 되거든.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어.”

“..저 위험한 짐승이 뭐 때문에 그쪽을 지켜주는 겁니까?”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거지. 블라다카는 조금 겁쟁이거든.”

“월교 교주?”


끄덕이던 스콧은 다시 크루아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기회가 됐으니 말하지. 난 사실 저 짐승한테 감시당하고 있네.”

“감시라면..”

“즉, 크루아틀은 내가 있는 근처를 벗어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나? 내가 크루아틀의 발을 묶어두고 있을 테니 자네들은 여길 지나가도록 하게. 평화 유지군도 내 지시가 있기 전까진 자네들을 막지 못할 거야.”


난 스콧을 향해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이렇게 우리만 좋은 이야기를 굳이 크루아틀 몰래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챈 스콧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 하나를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가져가게. 내 번호가 들어 있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혹시 사실은 월교를 싫어한다던지?”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아.”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곧, 아가레스의 가시 세례가 멈췄다.

하지만 그 대신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아가레스의 몸뚱이가 바로 위에 있었다.


‘이거 떨어질 것 같은데..?’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낀 순간, 아까부터 우두커니 있던 크루아틀이 갑자기 망토를 하늘로 집어 던졌다.

동시에 날개를 뿜은 크루아틀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면의 모래가 높이 튀어 올랐다.


모래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하늘을 향해 충격파를 터뜨리며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는 쇳덩어리의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내 등을 스콧이 밀었다.


“구경도 재밌겠지만 어서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그것보다 저, 저거 떨어질 것 같은데..”

“지금 자네한테 가장 중요한 건 뭐지? 뭐하러 이 생지옥이 된 아시리아에 돌아왔나?”


스콧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가시를 피하느라 힘을 쓰던 사무엘이 땀을 흘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고 자리만과 그의 대원들도 내 지시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서 자네 주인을 돕게.”

“그냥 보내주는 겁니까?”

“흐흐. 행운을 비네.”


스콧이 엄지를 척 치켜들며 말했다. 도대체 뭐가 목적이고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건 깨달았다.


난 그가 넘겨준 휴대전화를 코트 안주머니에 쑤셔 넣고 달렸다. 사무엘과 자리만에게도 차량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날렸다.


─ !!!!


등 뒤에선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로 쩌렁쩌렁한 두 포효가 충돌했다.

달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주둥이를 쩍 벌린 아가레스와 크루아틀이 충돌했다.


그 이후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크루아틀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아가레스의 가죽을 찢고, 물어뜯으며 사방으로 살덩어리를 흩뿌렸다.

조금 뒤엔 아가레스를 붙잡아 도시로 힘껏 내던지기까지 했다. 크루아틀보다도 수십, 수백 배는 더 거대한 아가레스가 마치 짐짝처럼 날아갔다.


도시에 아가레스가 충돌하자 세상이 비명을 질렀다. 중심을 잡기가 힘들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


난 입을 꾹 다물고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괴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번 크루아틀과 대치했을 때도 느꼈던 압도적인 무력감이 다시 찾아왔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은 전의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꼴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사무엘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을 달리는 사무엘은 창백한 얼굴로 애써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조금 뒤엔 또 한 번의 커다란 땅울림이 있었다. 등 뒤에 몰아치는 바람 속, 우뚝 선 크루아틀이 망토를 낚아채 둘렀다.


피와 열기에 취한 짐승의 포효가 아시리아에 퍼져나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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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3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0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7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8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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