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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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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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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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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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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8쪽

터닝 포인트(1) - 병문안

DUMMY

#1


“거대한 뱀이 아가레스를 휘감고.. 불을 뿜어서 터뜨린 뒤에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그렇다니까요!?”


내 얘기를 들은 시카는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가 조금씩 타들어 갔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담뱃재를 털어낸 시카가 입을 열었다.


“네.”

“아니, ‘네’ 가 끝이에요? 좀 더 놀라는 반응 같은 거 있잖아요? 역시 안 믿는 거죠?”

“믿어요. 놀랐어요.”

“놀란 척이라도 해봐요.”

“.....와..”


고민 끝에 튀어나온 어색한 감탄사.

정작 본인도 좀 부끄러웠는지 시카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아.. 같이 본 사람이 있다니까요. 그 수송기 파일럿이..”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습니까?”


때마침 도착한 사무엘이 다가오며 물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난 사무엘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수송기에서 라가토니아에 추락한 아가레스를 봤던 것. 그리고 그 아가레스 말고도 엄청난 괴물이 바다에서 튀어나왔다는 것.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사무엘은 무표정하게 날 바라보았다. 역시 사무엘도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사무엘. 그쪽 능력이 뭐 미래 예지 비슷한 거잖아요? 아가레스가 떨어지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 거기 뭐가 있는지는 모른다고요?”

“예. 제가 본 광경엔 팀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괴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본 게 아니라고 하셨으니.. 믿을 수밖에 없군요.”


사무엘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회장님께 여쭐 수밖에 없습니다.”

“헤이카요?”

“예. 그녀는 저희가 모르는 아가레스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그 미지의 괴수를 상대로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군요.”


맞는 말이긴 했다. 그 괴물이 어쩌고, 아가레스가 어쩌고 떠들어봤자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휴..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넘기고, 뒤처리는요?”

“플뤼테와 그녀의 부하들은 예정대로 시라비아 국경 바깥으로 이송했습니다. 수송기를 이용해 은밀하게 옮겼으니 당장 들킬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잘만 숨는다면 문제없겠죠. 거기서부턴 플뤼테랑 그 떨거지들이 알아서 하도록 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시라비아 뜨고 한동안 숨으려고 고생 좀 했으니까요.”


단순히 신분 세탁만으로는 마피아의 추적을 떨쳐내기 어렵다.

정말 복잡하게, 멀리, 마피아들은 신경도 안 쓰는 곳으로 기어들어가 조용히 사는 게 아닌 이상은 언젠가 오코넬도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뭐, 그때가 오더라도 그건 먼 훗날의 일일 테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한테 불똥이 튈 일은 없었다.


“그리고 스토커도 함께 왔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타고 온 수송기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거기선 수송기에서 내려 흥미롭다는 눈으로 수송기 이곳저곳을 살피는 스토커의 모습이 보였다.


닐라에게 맡겨 그렘린 공장은 박살 냈고, 플뤼테도 무사히 오코넬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도왔으니 이젠 보상을 받을 차례였다.


“안으로 들어가죠. 술도 있으니까.”



#2


플뤼테가 버리고 간 술집은 고스란히 우리 노페이스 팀의 전유물이 되었다.

사실 주인 없는 술집을 무단 점거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지만 시라비아에서 주인이 없다는 건 누구라도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시라비아의 법으로 우리가 곤란해질 일은 절대 없다는 얘기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난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콥스 바탈리온, 야차, 시카. 그리고 닐라가 데려온 공업의 특수팀도 지금은 보상을 줄 때였다.

돈은 당연히 주는 거고 거기에 추가로 이 술집을 통째로 점거해 ‘마음껏 마셔라.’ 라고 전해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1층은 꽤 떠들썩했다.


“잘들 마시는군. 이렇게 풀어놔도 되는 건가?”


그런 소란을 피해 올라온 2층. 원래는 플뤼테가 쓰던 곳으로 보이는 방에서 나와 스토커, 그리고 사무엘이 테이블 하나를 두고 각자 둘러앉아 있었다.

난 스토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쉴 땐 푹 쉬고, 놀 때도 잘 놀아야죠. 언제까지 긴장 상태로 총만 들고 있을 순 없잖습니까.”

“흠. 벌써 부하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아는 것 같군. 하지만 목줄을 너무 풀어주진 말게. 자네 팀에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괴물들이야.”

“예. 자주 듣습니다.”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스토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사무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난 자네한테 꽤 놀랐어. 에콰의 아들.”

“플뤼테를 잘 살려놔서요?”

“그것도 있지만, 이쪽이 더 신기하더군. 세계 연합의 외교관으로 온 외국의 에이전트가 설마 자네가 심어놨던 스파이였을 줄이야.”


정작 난 아직 사무엘을 완전히 신뢰하진 않고 있는데, 스토커는 이미 사무엘이 우리 쪽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며칠 전의 나라면 당연히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엘은 자신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걸 정말로 증명해 보였다.


난 사무엘과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사무엘이 옅은 미소를 머금고 끄덕이고 있었다.


“자네가 아직 시라비아에 있을 땐 그냥 목이나 자를 줄 아는 어린 칼잡이라고 생각했네. 이 정도까지 유능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지.”

“그렇게 칭찬해도 뭐 안 나오는데요. 하하.”


스토커는 구부러진 콧수염을 튕기며 히죽 웃었다.


“그냥 내 감상을 말한 것뿐이야. 어떻게 생각해보면 유능한 게 당연하지. 그 에콰의 아들이니까.”


좋던 기분도 싹 가라앉았다.

난 내가 딱히 유능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만약 유능하더라도 그게 에콰에게 물려받은 유능함이라는 평가를 듣는다면 차라리 무능한 게 나을 정도였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에콰의 대한 혐오감은 그 정도의 수준이었다. 스토커도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챘는지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도 얼른 얘기 끝내고 쉬어야 할 테니까.”

“그러죠.”


내가 끄덕이며 답하자 스토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나이프 하나를 꺼내 쥐었다.


“전에 내가 준 금화 좀 꺼내보게.”

“여기요.”


금화를 받아든 스토커는 갑자기 나이프로 자기 손바닥을 베더니 베인 손으로 금화를 움켜쥐었다.

내가 놀라는 사이 스토커는 붉은 피가 맺히다 못해 방울져 뚝뚝 떨어지는 금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피 묻은 금화의 문양이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이미 사무엘에게 들었겠지. 난 자네를 테스트했네. 자네에게 날 맡길 수 있을지 가늠해야 했거든.”


난 사무엘을 슬쩍 곁눈질하다 스토커의 눈을 마주 보았다.

스토커의 눈에선 흥분과 희열이 엿보였다. 마치 자신의 기쁨을 가까스로 주체하고 있는 듯한 얼굴. 뭐가 그리 기쁜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롬 스토커는 라가토니아를 수십 년째 지배해온 마피아 최고 간부인데.. 왜 배신자에다 한참이나 어린 햇병아리 밑으로 들어온다는 거죠?”

“음. 조금 짚어주자면 자네가 아니라 자네의 행보를 믿는 거야.”

“행보?”

“이건 계약일세.”


스토커는 테이블 위 피 묻은 금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금화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뭡니까? 이거?”


금화에 묻었던 스토커의 피가 금화에 새겨진 문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자 피는 완전히 사라졌다.


“피에는 영혼이 담겨있다고들 하지. 그리고 이 금화는 일종의 계약서일세. 인장 대신 내 피를 먹인 계약서. 계약을 어기면 피의 주인을 찾아가 주살(誅殺)하니 어길 수도 없어.”

“...되게 오컬트 하네요.


B급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싸구려 계약법을 이런대서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스토커도 이런 내 반응은 예상했다는 듯 털털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 롬 스토커는 지금부터 새로운 바르바로사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노라.”


내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진지한 얼굴로 있던 스토커는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이 어색한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설마 지금 저보고 바르바로사가 되라는 겁니까?”

“...”


스토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여 정수리만 보인 채 침묵했다.


“스토커. 전 시라비아에 돌아올 생각이 없어요. 바르바로사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고요.”


그제서야 스토커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마치 내 말을 정면에서 받아치려는 듯이.


“아니. 자네는 좋든 싫든 바르바로사가 될 거야.”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스토커는 자기 눈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저 노인네 눈에는 보인다는 게 쉽사리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스토커를 포섭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그렇게 강조했다. 스토커는 훗날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사무엘에게 놀아나는 기분이란 건 사실이다. 지금까진 모두 사무엘의 말대로 흘러갔고, 사무엘의 방법대로 했더니 일이 술술 풀렸다.


그러니 스토커를 포섭한다고 해서 내게 나쁜 일이 생길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게 시라비아에 돌아오는 것이고 심지어 바르바로사의 자리가 걸린 이야기라면 무작정 결정을 내리기엔 일렀다.


“지금 대답을 해드릴 순 없겠네요. 당장 제 생각이 바뀔 일은 없으니까.”

“상관없네. 난 이미 계약을 걸었고 그 금화는 자네 것이야.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하게.”

“돈 달라면 줍니까?”

“돈? 힘이 닿는 만큼은 해주지. 신묘한 골동품도 있고. 말만 하게.”


수상쩍게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놈치고 사기꾼이 아닌 적이 없었다.

대가 없는 호의란 없고 특히 이런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지금은 스토커를 일단 적으로 두지 않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직도 그 사업에 대한 자세한 건 알려줄 생각이 없겠죠?”

“유감스럽지만 그것만큼은 아직 일세. 뚜렷한 윤곽이 나온다면 그때 전부 말하지.”

“그럼 그렇게 합시다. 얘기는 여기까지. 저도 갈 곳이 있어서요.”


난 냉큼 금화를 다시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 피를 먹는 금화라니, 꺼림칙하기 짝이 없지만 스토커의 말대로라면 이 금화가 곧 계약서니 갖고 있는 편이 유리할 것 같았다.


“아직 일이 남으셨습니까?”


사무엘은 그런 내게 물었다. 일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지만 귀찮은 일이 정리되면 가려고 하던 곳이 있긴 했었다.


“병문안이요.”



#3


이것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시라비아의 의료 시설은 믿을만한 게 못 된다.


기껏해야 양아치, 범죄자들 몸에서 총알이나 빼고 칼침 맞은 곳이나 꿰매주는 시라비아의 의사들에게 의사 면허 같은 고상한 물건이 있을 리가 없고 병원의 의료 설비들도 전부 불법 장비다.


그런 놈들이 모여 형식상 ‘병원’ 이라 세운 곳은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면서 실력은 쥐뿔도 없다. 병을 치료하러 갔다가 병을 얻어 오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시라비아의 주민은 병을 얻으면 스스로 나을 때까지 몸을 추스르거나, 뒷거래를 통해 약을 사곤 한다.

못 미더운 의사 놈들보단 효과 하나는 확실한 알약이 훨씬 믿음직스러우니 말이다.


그래도 병원이 나름 제 역할을 할 때가 있는데, 시라비아 마피아가 관련된 경우가 특히 그렇다.

병원 자체가 마피아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경우가 많다 보니 마피아 조직원들을 상대론 언제나 최고의 의사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것과 별개로 돈을 많이 퍼다줘도 꽤 대우가 좋다. 결국, 이 동네의 의사도 돈벌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고하십니다.”


병실 앞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양복쟁이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닐라가 데려온 공업 특수팀의 일원인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이 병실을 지키도록 지시해놨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시킨 일만큼은 착실히 하는 인간들이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켜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혜니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어머? 산 팀장님?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몸은 좀 어때요?”


혜니는 자기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두 팔을 팔락거리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팔다리도 다 붙어있고!"

"붙어 있어야죠. 하하.."

“다 팀장님 덕분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답을 드리면 좋을지 쭉 고민하고 있었어요. 제가 돈은 많이 없어서.. 머리카락으로 드려도 괜찮을까요? 길어서 좀 잘라도 괜찮아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하는 혜니였기에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여자 머리카락 받아서 어디에 쓰라고..


“그냥 다 나으면 제 옷이나 더 해주세요.”

“그런 걸로 괜찮으세요? 더 심한 거 요구해도 된다구요? 아주아주 무서운 거요.”

“저 그렇게 파렴치한 놈 아니거든요.. 이런 거 여름용으로 몇 벌 더 있으면 좋겠어요.”


코트를 팔락거리며 말하자 혜니는 이불 아래에서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슬쩍 살펴보니 온갖 옷 주문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렇게 주문이 밀려있어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주문이 밀렸다는 건 그만큼 돈도 번다는 거예요. 좋은 일이죠. 아! 취소하진 말아 주세요? 위약금 물어요?”


헤실헤실 웃으며 메모를 끝낸 혜니는 수첩을 다시 이불 아래에 집어넣었다.

나는 오는 길에 사온 과일 바구니를 근처에 올려놓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창 밖은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다, 멈추다, 다시 내리길 반복하는 눈 때문에 바닥이 질척거렸지만, 안에서 이렇게 감상하기엔 썩 나쁘지 않았다.


“여긴 정말 우울한 곳이에요.”


그런 창문을 바라보던 혜니가 말했다. 눈을 뿌려대는 칙칙한 하늘과 잿빛 도시가 전부인 시라비아의 풍경에 걸맞은 감상이었다.


“해가 뜨는 것도, 해가 지는 것도 잘 안 보여요. 밤하늘에도 달빛, 별빛 하나 없고요. 춥다가, 더웠다가, 비가 오다가, 눈이 와요.”

“시라비아는 날씨가 고장 났으니까요. 왜 이런진 아무도 모르지만요.”

“예전에 박사님이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있어요. 시라비아의 기후가 이상한 이유는.. 이곳에 ‘문’ 이 숨겨져 있어서 그렇다고.”

“문?”


창 밖을 보던 혜니는 다시 날 바라보며 끄덕였다. 평소와 달리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세상 이곳저곳에 문이 있대요. 문은 거울처럼 맑은 연못의 모습인데, 완전히 다른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대요. 그리고 그곳에서 새어 들어오는 기운이 황성과 맞지 않아서 날씨가 이렇게 나쁜 거래요.”

“그런 이야긴 처음 듣네요.”

“헤이카 박사님도 아직까지 입증하지 못한 가설이니까요. ‘증명할 수단을 찾지 못했다.’ 라고만 하셨죠. 그런데 한 번 박사님이 실종되신 적이 있어요. 회장으로 취임하시기도 전인 10년 전에요.”


실종이란 단어는 그다지 달가운 건 아니다.

아직 공업의 회장은 아니었다지만 차기 회장 후보인 헤이카의 실종은 아마 꽤 큰 사건이 됐을 것이다.


“어떤 소식도 없이 꼬박 일주일을 사라지셨다가 홀연히 돌아오셨어요. 그리고 박사님이 아가레스를 몰아내려고 생각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문 너머에 답이 있더라.’ 라고 하셨죠.”

“어.. 혜니 씨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혜니는 배시시 웃으며 끄덕였다.


“전 박사님이랑 오래 알고 지냈거든요. 인류가 하늘을 되찾고, 황성을 올바르게 만들 방법을 찾았다고 엄청 들떠있었어요.”

“혹시 지금 아가레스를 몰아내려고 하는 것도 관련 있는 겁니까?”

“아마도요. 박사님은 남몰래 그 ‘문’ 이란 걸 계속 연구했으니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건조한 반응 외엔 감상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내 머리로 헤이카의 생각을 이해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혜니는 그런 내게 갑자기 자기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다. 익숙한 인터넷 뉴스 페이지였다.


“시라비아.. 아가레스 충돌... 와. 이게 벌써 뜨네?”

“시라비아 뿐만이 아니에요. 레베스타 동부, 글라타, 연방, 암레드, 보르단 바다에도 떨어졌고.. 그 외에도 많아요.”


그러면서 혜니는 화면의 무언가를 가리켰다. 난 눈을 끔뻑거리며 그녀가 가리킨 기사를 읽었다.


“코렌..”


난 혜니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기사를 자세히 살폈다.

쑥대밭이 된 도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간판이나 길의 구조는 분명 내가 아는 동네였다.


“필라드예요.”


난 혜니를 바라보았다. 혜니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


“산 팀장님이 지내시던 그 도시요. 필라드 앞바다에도 떨어졌어요. 아가레스.”

“거기.. 거기 살던 사람들은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대요. 다른 곳도 그래요. 아가레스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돌진해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죠. 처음 있는 일이니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기사를 뒤적거렸지만 어떤 기사에도 멀쩡한 모습의 필라드는 없었다.


‘횟집 사장님은?’

‘미나는?’


그렇게 뒤지던 기사 중,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드론으로 찍은 듯한 필라드의 풍경. 날아가 뒤집힌 어선과 그 어선에 깔려 뭉개진 횟집 간판이 하나.


‘왜 생각을 못 한 거지?’


시라비아에도 아가레스가 떨어졌는데, 다른 곳이라고 떨어지지 않을 보장이 없었다.


처음부터 쟈토 노인도 경고하지 않았던가?

헤이카가 아가레스와의 전쟁을 시작하면 엄청난 희생이 나올 거라고.


그 희생자 리스트에 내가 아는 사람이 포함되진 않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산 팀장님.”


덥썩 내 손을 잡은 혜니였다. 난 휴대전화 화면에 꽂혀 있던 시선을 올렸다.

그녀의 눈엔 복잡한 감정이 들어차 있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난 혜니의 손을 놓아주고 일어났다.


“..가봐야겠어요.”

“시라비아를 벗어나면 연합의 에이전트들이 팀장님을 노릴 거예요.”

“그래도 가야겠어요.”


혜니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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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3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8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2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7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4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5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9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2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9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8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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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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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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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7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4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6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6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1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9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4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2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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