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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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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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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잿빛의 고향(2) - 시라비아

DUMMY

#1


그리움과 꿈.

한데 뭉쳤던 황성의 초창기 인류를 반으로 갈라놓은 것은 다름 아닌 그 두 가지였다.


황성의 이름으로 인류가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옛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어디까지나 ‘현재’ 와 ‘생존’ 을 위한 땅이었다.

그들이 바다를 건너 본래 땅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황성의 시대가 시작되고 약 4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무서운 속도로 문명을 복구한 인류에겐 자연스러운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륙으로 뻗어 나가며 도시를 세웠고 보다 나은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들이 멸망 이전, 유럽이라 불리던 거대한 땅에 발을 들인 것도 바로 그런 시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 또한 거기서부터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조화롭게 어우러졌을 때의 이야기다.

지독하게 과거에 얽매여 그리움에 미쳐 살거나, 앞날만 내다보며 과거와 현재를 내치는 것은 분명 어긋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인류는 멍청하지 않았겠지만, 당시의 인류는 조화라는 이성적인 판단보단 욕망에 굴복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외부의 망향(望鄕)을 쫓던 낡은 방랑자들은 주인 잃은 섬을 기사들의 땅으로 선포했다.

보다 나은 미래로 개척(開拓)을 꿈꾸는 자들은 공백의 비밀이 잠든 잿빛의 땅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삼았다.


그렇게 탄생한 다양한 나라들이 서로 결속을 다지며 동시에 그 땅은 ‘시라비아’ 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됐다. 시라비아 연합이 탄생한 것도 그 직후였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지금은 지옥이 변해버린 시라비아의 기원이다.


비록 시작은 꽤나 건설적인 목적이었지만 원래부터 시라비아는 사람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대부분이 오염된 바다는 잿빛으로, 때로는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그곳엔 생명이라 부를만한 것조차 없었다.

기후도 변덕스러웠다. 추위로 사람이 얼어 죽던 땅이 얼마 후엔 더위로 사람을 말려 죽이곤 했으니 말이다.


부족한 자원과 보금자리는 싸움을 부추겼다. 서로의 땅을 탐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하루가 멀다 하고 피가 튀었다.


그런 혼돈의 땅에서 결국 망향의 기사들은 등을 돌렸고, 올드 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시라비아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시라비아는 변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이 계속됐다.

모두가 시라비아엔 승자가 없을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그 땅에서 모두를 짓누르고 그 정상에 올라선 승자는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바르바로사’ 의 탄생이었다.



#2


거리에 발을 내디딘 산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랑 똑같다니.’


시라비아를 떠난 지 8년.

결코 적은 시간이라 할 수 없는 8년이 지나 되돌아온 시라비아건만,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거리는 칙칙한 잿빛이었다. 하늘도 비슷했다. 그럴듯한 빈민촌을 그려놓고 회색과 검은색의 물감으로만 덕지덕지 칠해놓은 듯한 곳이었다.

무언가 썩어들어가는 악취도 났다. 거리 이곳저곳에 뭔지 모를 오물이 있었고, 배수구에도 그런 오물과 쓰레기가 뒤섞여 퇴적물처럼 쌓여있었다.


거리마다, 골목골목마다 나앉은 사람들도 많았다. 꾀죄죄하고 마른 그들은 어떤 활기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거리를 지나가는 산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런 거리를 나아가는 산은 문득 추위를 느꼈다. 코렌에선 한여름이던 날씨가 여기선 매서운 겨울 같았다. 산은 혜니에게 받았던 검은 코트를 조였다.


“너무 쳐다보지 마세요.”


산은 그런 자신을 뒤따라오던 닐라를 향해 말했다. 거리에 나앉은 이들을 살피던 닐라가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며 산을 보았다.


“여기서 당신 같은 사람은 잡혀가기 딱 좋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팀장님. 어디로 가시는지 슬슬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왕한테 인사부터 하러 가야죠.”


왕이라는 단어에 닐라는 눈을 깜빡이며 말없이 산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산은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넣으며 말했다.


“시라비아에선 마피아들이 법입니다. 그리고 이 라가토니아를 지배하는 마피아 최고 간부가 여기선 왕이죠.”

“라가토니아의 관리자라면..”

“8년간 바뀌지 않았으면 롬 스토커겠죠.”


닐라는 들고 있던 휴대용 단말로 무언가를 재빠르게 두들겼다. 곧, 단말기 화면을 들여다보던 닐라가 끄덕거렸다.


“지금도 라가토니아는 그 롬 스토커라는 남자가 관리하는 것 같습니다.”

“오래도 해먹네. 나머지도 그대로죠?”


다시 단말을 두들기던 닐라였다. 이번에도 금세 정보를 찾아낸 그녀가 말했다.


“네. 8년 전과 달라진 건 없습니다. 베르몬드는 플뤼테. 콜레타는 쿠스카. 미다스는..”

“모르스 에콰.”


닐라가 끄덕였다. 산은 착잡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어째 시라비아는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네요. 그때랑 지금이랑 죄다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사람이라니.”

“보스는 없지만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준 닐라였다. 산은 그녀를 슬쩍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바르바로사가 독살당했다고 했죠? 확실한 정봅니까?”

“네. 바르바로사의 시신을 부검한 사람을 통해 직접 들은 정보였습니다. 그 외의 목격자들도 있었죠.”

“즐겨 가던 음식점에서 늘 먹던 음식을 먹던 마피아 보스가 갑자기 독살이라..”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닐라가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하군요. 시라비아 마피아의 보스가 독살을 당했다면 시라비아가 뒤집히는 게 정상 아닌가요?”

“목소리 낮춰요. 아마 바르바로사가 죽었다는 건 대부분 모르는 것 같으니까.”


산의 경고에 닐라는 입을 다물었다.

시라비아 마피아는 이 시라비아를 지배하는 자들이다. 당연히 마피아들의 우두머리가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시라비아는 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마피아들이 바르바로사의 죽음을 숨기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겠죠. 단단히 입단속을 시킨 모양입니다. ..잠깐.”


그렇게 거리를 나아가던 두 사람을 검은 차량 한 대가 막아섰다.

산은 주머니 속의 나이프를 꼼지락거렸다. 그러는 사이 열린 운전석에서 검은 정장과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내렸다.


남자는 산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빠르기도 해라.”



...



산과 닐라를 태운 차량이 도착한 곳은 다 쓰러져가는 빈민촌을 벗어난 곳에 있는 박물관이었다.

말 그대로 박물관. 오랜 골동품들을 모아놓고 한데 전시한 이 장소는 시라비아라는 척박한 땅과는 분위기가 영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산은 이 박물관이 익숙했다. 라가토니아의 지배자인 롬 스토커는 골동품 수집가로도 유명했으니 말이다.


산과 닐라의 발소리가 박물관 내부를 울렸다. 묵묵히 안내역을 따라 걷던 산이 꼼지락거리던 나이프를 말아쥔 것은 저 멀리 수염 난 남자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였다.


‘신사’ 라는 두 글자가 잘 어울릴 듯한 꼬부라진 수염과 정장, 중절모를 쓴 중년의 남자는 오래된 원목 지팡이를 짚은 채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안내역은 남자를 몇 걸음 앞에 두고 멈춰서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재빨리 물러났다. 산은 남자가 바라보는 그림을 따라 보았다.


그 그림은 꽃이었다. 푸른 잎을 가진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는데, 그 아래로 뻗은 줄기와 뿌리는 뱀이었다.

예술 작품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산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그림이었다. 그때, 중년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라푸스 벤데르드.”


산이 남자를 보았다.


“이 작품의 이름일세.”

“이름에 뜻이 있는 겁니까?”

“동양에선 이 작품을 욕망죄화(欲望罪花)라고 부르더군.”


욕망과 죄, 그리고 꽃.

얼핏 들으면 어떤 관련도 없어 보였지만 산의 머릿속엔 곧바로 무언가가 떠올랐다.


월교의 죄화(罪花)였다.


“사람의 욕망은 죄를 낳고, 그 죄를 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는 것. 그게 이 죄화라더군.”

“흐음. 작가는요?”

“블라다카.”


산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월교의 교주님은 그림도 참 잘 그리시네.”


마침내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신사는 중절모를 까딱거리며 산에게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돌아왔군. 에콰의 아들.”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지만요. 스토커.”


시라비아 마피아의 최고 간부 중 하나, 롬 스토커는 산에게 입꼬리를 히죽 비틀더니 그의 어깨너머로 다소곳하게 선 닐라를 살폈다.


“오호? 결혼 상대?”

“...직장 상사입니다.”


그제야 닐라는 스토커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클립스 공업 회장 비서실장인 ‘닐라’ 라고 합니다.”

“헤이카 미켈런의 비서였군. 흐음. 에콰의 아들이 헤이카의 밑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니. 걸으면서 얘기하세. 여긴 볼거리가 많거든.”


스토커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산과 닐라도 그를 따라 걸었다.


“에콰의 아들. 얼마 만에 돌아온 거지?”

“올해로 8년 째네요.”

“8년이라.. 에콰가 힘들었을 만도 하군.”


산은 눈살을 찌푸렸다. 스토커는 그런 산의 얼굴을 훔쳐보더니 자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시라비아에 돌아왔으면 내가 아니라 어머니부터 찾아갔어야지.”

“그 여자를 어머니라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흠.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에콰가 자네를 낳은 건 사실이야.”

“핏덩이를 뒷골목에 버린 것도 사실이죠. 주워다가 칼을 들려주고, 처형인으로 부려 먹은 것도 사실이고요.”


스토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발소리가 불규칙하게 박물관 내부를 울렸다.


“그래.. 바깥세상은 좀 어떻던가?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었나?”

“아뇨. 똑같이 먹고 살기 힘들었죠.”


산의 대답에 스토커가 껄껄 웃었다.


“그렇겠지. 어딜 가도 먹고 사는 건 힘들어.”

“그래도 여기보단 나았습니다.”

“그야 그것도 그렇겠지. 시라비아보다 망가진 곳이 어디 있겠나.”


스토커의 걸음이 다시 멈췄다. 그리고 그의 눈이 향한 건 투명한 유리관 속에 잠들어 있는 녹슨 검이었다.

녹슬지 않았다면 분명 그 가치는 있을 법한 골동품. 하지만 오랜 시간 관리되지 않아 검은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나마 이 골동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 검자루에 박힌 푸른색의 보석 세 개였다.


“이번에 돌아온 건 어째서지? 보스의 장례식에라도 참석할 셈인가?”


그 검의 보석에 시선을 빼앗긴 듯한 스토커가 물었다.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든 것 같았다.


“아뇨. 다른 목적으로 왔습니다. 시라비아에 그렘린 제조 공장이 있다더군요.”

“그렘린이라면.. 먹으면 짐승으로 변해버린다는 그 약이로군.”


스토커의 대답에 산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산은 이미 주머니 속으로 나이프를 뽑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알고 있는 걸 말씀해주시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피를 봐야겠죠.”

“허허. 꼬맹이가 많이 컸군.”


산의 무뚝뚝한 대답에 웃으며 말한 스토커는 검에게 꽂힌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산과 닐라도 다시 그를 뒤따랐다.


“공장이 들어선 건 얼마 안 지났네. 반년 전인가? 그쯤이었지.”

“공장의 위치는 베르몬드겠죠?”

“이미 거기까진 알고 있군. 맞네. 베르몬드에 그렘린 제조 공장이 있지.”


산은 닐라와 눈을 마주치며 끄덕였다. 닐라가 재빨리 휴대용 단말을 두드렸다.


“그렇담 플뤼테가 월교와 내통하고 있는 건가요?”

“베르몬드의 관리자가 플뤼테긴 하지. 그런데 플뤼테는 에콰가 배신자라고 주장하고 있네. 이번에 보스께서 돌아가신 것도.. 에콰의 짓이라고 말하더군.”


닐라가 계속 단말기를 두드렸다. 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마피아 보스의 독살. 시라비아에 들어온 월교의 그렘린 공장. 최고 간부들 사이의 불화.’


8년이나 시라비아를 떠나 있던 산에겐 지금 시라비아의 상황이 꽤 낯설었다.

시라비아 마피아는 무엇보다 규칙을 중요시하는 자들이다. 규칙을 어긴 자에게 처형인을 보내고, 배신자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 자들이 서로를 모함하고 월교와 내통하고, 조직의 머리가 되는 보스 바르바로사를 독살한 것이다.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웠다. 무엇하나 시라비아 마피아답지 않았다.


“스토커!”


그때였다. 조용하던 박물관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성난 발소리가 다가왔다.


그러자 산은 닐라에게 물러나라는 듯 눈치를 주며 자기도 스토커에게서 몇 걸음 물러났다. 닐라가 끄덕이며 산의 곁에 딱 붙었다.

이 박물관은 롬 스토커의 개인 소유다. 그렇다는 건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스토커의 몫이었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음? 예약 손님이 있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스토커는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발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살짝 곱슬기가 있는 새까맣고 긴 머리칼. 검은 정장 위로 새까만 코트를 늘어뜨린 여자.

약간 창백해 보이는 얼굴을 한 여자는 얼굴에 길게 남은 흉터가 있었다. 마치 칼에 베인 듯한 흉터였다.


“시치미 떼지 마! 스토커! 당신!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뭐야?”


스토커에게 무언가를 따지러 왔던 그녀는 놀란 얼굴로 산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잠시 멍청하게 시선을 교환하던 여자는 놀란 숨을 들이켰다.


“너, 잠깐만. 얼굴이 익숙한데.. 설마 그.. 이름이 뭐였지? 탄? 반? 한 글자였는데.”

“산.”


산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제야 여자는 손뼉을 치며 피식 웃었다.


“그래. 산! 그 꼬맹이가 많이도 컸네. 응?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플뤼테. 자네도 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아직도 라가토니아에 수송기가 날아왔다는 소문을 시라비아에서 모르는 사람은 자네 뿐일 거야.”

“수송기? 그게 뭐야?”

“비행기 말일세.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거.”


여자, ‘플뤼테’ 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산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곧, 코트 안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 산에게 향했다.


“상황은 잘 모르겠고, 일단 죽여야겠다. 잘 가. 꼬마야.”

“..이봐요. 상황도 모르는데 죽이기부터 해서 뭔 득이 있는 겁니까?”

“모르니까 죽이고 봐야지. 죽이면 뭐라도 알아낼 수 있을 거 아냐? 일단 하날 죽이고 보면 옆에 있는 놈이 입을 열기 마련이거든.”


플뤼테의 그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산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게 바로 플뤼테였다.


스토커와 마찬가지로 최고 간부 중 하나인 그녀는 라가토니아의 북쪽, 베르몬드의 관리를 맡은 인물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그녀는 ‘광견’ 이라는 별명으로 곧잘 불리곤 했다.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미친개처럼 일단 총부터 갈기며 날뛰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늘 플뤼테였기 때문이다.


“진정하게. 플뤼테. 나한테 볼일이 있어서 온 거 아니었나?”


스토커가 그녀를 말렸다. 산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플뤼테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랬지. 근데 내가 뭐 때문에 왔더라?”


닐라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산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으쓱한 산은 주머니에서 카르마 나이프를 꺼내 쥐었다.


“아, 기억났다. 맞아! 이 빌어먹을 스토커! 당신 때문에 에콰가 날 죽이려 하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에콰가 나한테 오코넬을 보냈어. 당신이 에콰한테 말한 거지? 내가 배신자라고? 난 배신자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믿어주는 거야! 공장 같은 거 없다고! 보스도 미다스에서 죽었잖아!”


닐라가 다시 단말기를 두드렸다. 산은 나이프를 내리고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코넬을 보냈단 말입니까? 그럼 그 오코넬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게 지금 왜 중요해? 에콰가 날 죽이려 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아니요. 오코넬이 당신을 죽이려고 온 거라면 여기까지 따라왔을 테니..”


깡! 까가가각..

박물관 바닥을 긁으며 뚜벅뚜벅 다가오는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플뤼테는 순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홱 돌렸다. 그러더니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갑자기 총을 쏘기 시작했다.

두 발째 총성이 울릴 때쯤, 플뤼테는 훅 들이닥친 바람에 몸을 날렸다. 스토커의 원목 지팡이가 허공을 갈랐다.


“이 빌어먹을 스토커!”


플뤼테를 향해 휘둘렀던 원목 지팡이를 빙글 돌리며 스토커가 수염을 씰룩거렸다. 그러는 사이 처형인의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마침내 표정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오코넬이 참수도와 권총을 늘어뜨리며 멈춰 섰다. 그 맞은편엔 스토커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두 남자 사이에서 뒷걸음질치는 플뤼테가 산을 보더니 갑자기 총을 겨누었다.


“날 건드리면 저 자식 머리통부터 날아갈 거야!”


기껏 물러났던 산은 갑자기 불똥이 튄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였기에 산도 나이프를 치켜들며 몸을 낮췄다.


졸지에 세 명을 상대하게 된 플뤼테는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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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2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3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0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7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8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1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6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3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5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9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2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9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8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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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7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7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6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79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1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3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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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5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5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0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2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8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3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2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1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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