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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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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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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1,941

작성
22.09.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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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학살자

DUMMY

#1


드문드문 빗방울을 흘리던 잿빛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메마른 사막의 모래가 비를 머금고 어둡게 물들어갔다. 사막은 마치 검은 모래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그 모래 위로 검붉은 피가 튀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위로 죽음의 존재들이 발자국을 남겼다. 피가 진득하게 늘어졌다.


D.A.B(Dead Army Battalion).

혹은 콥스 바탈리온(Corpse Battalion)이라 불리는 자리만의 용병대는 죽음을 찬양하는 광신도들이 모인 곳이지만, 그들은 광적으로 죽음을 바라면서 죽음과는 거리가 먼 강자들이었다.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죽지 않기 위해 남을 죽인다는 그 모순적인 행동의 기원에는 분명 그들이 칭송하는 신의 의지와 깊은 교리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군인이 그런 광신도들의 뜻을 알 리가 없었고 이해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그렇기에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저 공포에 불과했다.


사람은 결코 죽음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 원초적 두려움은 인간의 뇌리에, 그리고 본능에 말뚝처럼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다.

결코 뿌리칠 수 없기에 죽음은 만물의 위에 있고 끝의 문지기로서 존재한다.


퉁!

투박한 총성과 동시에 피가 튀었다.

검붉은 피는 사막의 모래에, 곁에 있던 전우에게 튀었다. 그 피를 뒤집어쓴 군인은 마침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끊을 놓아버렸다.


그는 총구를 앞세우고 마구 돌진했다. 요란한 총성이 울렸고 총알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대범한, 혹은 정신 나간 공세에도 죽음의 신도들은 묵묵히 걸음을 계속할 뿐이었다.


쏟아지는 비에 번들거리는 검은 슈트.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새까만 바이저 헬멧의 중앙에 새빨간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삐-’ 하는 전자음이 군인을 멈춰 세웠다.


퉁!

그들의 새까만 총구가 번쩍이자 군인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마지막까지 그들이 퍼뜨리는 죽음의 교리에 벌벌 떨던 그는 맥빠진 신음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홍 대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송용 트럭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곤 무전기를 꺼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구 눌렀다.


“지휘실! 응답 바란다! 지휘실!”


{ - - - - - - }


무전 너머로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홍 대위는 채널을 바꿔 지금 이곳에 모인 전 부대를 향해 소리쳤다.


“상황 보고!”


이번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나마 이따금 돌아온 대답은 총성과 비명에 묻혀 뚝 끊길 뿐이었다.


모든 게 혼돈 그 자체였다.


‘이 정도라고!? 일개 공업사가 이 정도란 말인가!’


정확히는 콥스 바탈리온이라는 용병들의 화력이겠지만, 홍 대위의 머릿속엔 이미 그런 걸 판가름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코렌 정부군을 보며 홍 대위는 차라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때, 찢어지는 듯한 단말마에 홍 대위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지막 숨을 토한 한 병사에게 향했다.


“저게 무슨..”


콥스 바탈리온 뿐만이 아니었다. 정 반대방향.. 국도의 아래쪽부터 늘어선 정부군 병력을 도륙하며 올라오는 이가 있었다.


고작 새까만 나이프 한 자루가 무기의 전부인 검은 코트의 칼잡이였다.

그는 눈 깜짝할 새에 이리저리 사라지고 나타나길 반복했다. 처음엔 감응자라고 생각하던 홍 대위는 그의 ‘목을 베는’ 마무리 방식에 칼잡이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게 노페이스의...”


노페이스의 팀장, 산.

이 나라의 에이전트 전력 절반을 혼자서 날려버린 공업의 신입 팀장이자 헤이카의 최측근.


홍 대위의 눈은 다시 반대편을 향했다. 유탄 세례에 기울어지는 전차와 그 불꽃 너머로 뚜벅뚜벅 걸어온 자리만 콥스가 두 자루의 권총을 뽑았다.


“...”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자리만 콥스. 아래에서 올라오는 산.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는 따질 필요도 없었다. 어느 쪽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괴물같은 화력과 방어력을 가진 최정예 용병 부대는 코렌의 정규 군대를 너무나도 손쉽게 박살 내고 있었다.

게다가 칼잡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의 목을 잘랐고 심지어는 전차의 궤도와 장갑판을 나이프 하나로 종잇장처럼 썰어대고 있었다.


이 상식을 벗어난 상황을 홍 대위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대위.”

“!!?”


홍 대위는 재빨리 소총을 내밀었다. 하지만 총구 앞에 있던 건 루저였다. 얼굴에서 안도감이 피어난 홍 대위는 재빨리 총을 내렸다.


“루, 루저!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장 능력을 써서 저것들을..”

“트럭 좀 빌리죠.”

“예?”

“우린 이쯤에서 빠져야겠습니다.”


하지만 루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홍 대위의 희망을 모조리 짓밟았다. 대위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더니, 결국 루저에게 다시 총구를 들었다.

자신에게 겨누어진 소총을 물끄러미 보던 루저가 입맛을 다셨다.


“좀 비벼볼까 했는데, 견적을 보니 영 아니더군요. 미안하지만 우린 군인이 아니라 에이전트라서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제 후배놈들까지 개죽음당하게 둘 순 없습니다. 여기서 도망치겠습니다.”

“...설마 당신이 공업에 정보를 흘린 겁니까?”

“정보?”


대위는 턱에 힘을 바짝 주고 콥스 바탈리온을 가리켰다.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루저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탁 트인 사막에 대놓고 모여 있던 주제에 적이 아무것도 못 보고 가만히 당해만 줄 거라 생각했던 거라면.. 진지하게 대위의 능력을 의심해야겠군요.”

“거짓말! 당신이 흘렸지?! 당신이 놈들에게 정보를 줬어! 그래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한 거야!”


루저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도 피해잡니다. 그리고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요. 이건 범죄자나 테러범 제압 같은 게 아니라, 전쟁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

“애당초 코렌 정규군 같은 오합지졸로 상대할 놈들도 아니었죠. 공업의 전력은 하나같이 괴물이니까요. 기대도 안 했습니다.”

“이 자식이.. 어떻게 그런 말을..!”

“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루저를 재빨리 지나친 윈터가 수송용 트럭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 반대편 조수석엔 뒤따라 조엘이 올라탔는데, 그 광경을 보던 홍 대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트럭은 못 내줘! 도망가게 둘 것 같아!? 이 더러운 괴물 새끼들아!”

“쯧.”


루저는 ‘역시나’ 라는 얼굴로 혀를 찼다.

아무리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했든, 실력 있는 군인이든, 처음부터 루저는 홍 대위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곳에 모인 비감응자 자체를 모두 믿지 않았다. 감응자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혐오와 차별을 몸소 겪어온 루저에겐 이젠 이런 대우도 익숙했다.


“홍 대위. 우리가 정신병 가진 돌연변이라고 해서 죽으라고 죽는 등신들은 아니야.”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가! 내가 직접 에이전트 본부에 이 일을 보고할 거야! 그럼 그쪽은 모조리..”

“에이전트 본부? 그런 건 이미 박살 났어.”


루저가 자기 휴대전화를 흔들며 말했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던 홍 대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조금 전 내 바로 윗사람에게 연락이 왔더군. 에이전트 본부가 폭탄 테러를 당했다고. 관계자들도 많이 죽었고, 본부의 높으신 양반들도 잘게 다진 고깃덩이가 됐다는데.”

“뭐.. 그럴 리가..”

“결국, 모양새만 그럴듯했던 기관이란 거다. 에이전트라는 감응자들에게 의지만 하던 철밥통들의 말로지.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면 도망쳐. 저놈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루저의 눈이 힐끗 등 뒤를 향했다.

새까만 궤적을 흘리며 군인들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리는 산은 이미 그 얼굴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홍 대위의 입에서 꼴사나운 신음이 나왔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나이프는 한 사람의 목을 날린다.

장갑차는 물론이고, 전차도 찢어발기며 머리 없는 시체를 방패로 조금씩 다가오는 산은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로도 전혀 꿇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작 한 명의 영향력에 그를 마주한 모두가 압도당하고 있었다.

패닉에 빠진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총을 갈기다 아군을 쏘거나, 총 따윈 내다 버리고 사막으로 내달리는 병사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미 이 주변엔 자리만 콥스의 용병들이 쫙 퍼져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이클립스 공업을 적으로 돌린다는 건 이런 뜻이다. 난 알고서 이런 싸움을 벌였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상상 이상의 머저리들뿐이었군. 각오도 없이 전쟁을 걸었어.”

“루저!”


루저는 가볍게 수송용 트럭의 화물칸으로 몸을 던졌다. 그곳에 우뚝 선 루저는 느릿하게 한 손의 장갑을 벗었다.


“그래도 일단은 에이전트니 할 일은 하지. 홍 대위. 틈이라도 만들어 줄 테니 알아서 부대를 물려. 윗선 보고 같은 건 집어치우고.”

“뭘 하려고..”


홍 대위는 폭발하듯 터져나가는 루저의 주변 공기에 입을 다물었다. 감응자의 파장이었다.

곧, 루저를 실은 수송용 트럭이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사막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졸지에 엄폐물까지 잃은 홍 대위는 다급히 근처에 있던 군용 험비로 기어갔다. 그는 멀어지는 루저를 바라보며 무언가 소리쳤다.


“...쩝.”


멀어서 들리지도 않는 외침에 분명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 홍 대위와 정부군을 바라보던 루저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조용히, 평화롭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렵나.”


푸념하듯 중얼거린 루저가 숨을 내뱉었다.

빗줄기 속으로 뿜어진 그의 숨결이 뜨거웠다. 그의 몸 전체가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흡!”


짧은 기합.

루저는 정면을 향해 장갑을 벗은 손을 내밀고 손아귀를 노려보며 움켜쥐었다.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사막을 쩍쩍 가르기까지 했다.

갈라진 틈으로 모래와 콥스 바탈리온의 대원들이 떨어지곤 했다. 교묘하게 정부군을 피해 간 사막의 균열은 점점 규모가 커지더니 이윽고 폭발했다.


─ !!!


세상이 뒤집힐 지경으로 흔들리던 땅이 무너져내렸다.

피할 수 있는 콥스 바탈리온의 대원들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고 정부군도 그들의 공세가 멎은 틈에 달리거나 차량을 움직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루저는 움켜진 손을 절도있게 휘두르고 그대로 내리쳤다. 옆에서 보기엔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사막이 갈라지고 무너졌다.


이내 사막엔 마치 싱크홀처럼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쿨럭! 퉷!”


루저는 피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그리고 흘러나온 코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는 알아듣지 못할 목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이 짓거릴 또 하게 될 줄이야.”


비틀거리던 루저는 화물칸 바닥에 주저앉았다.



#2


“자리만. 피해는?”


{ 12명이 떨어졌다. }


산은 쩍쩍 갈라지고 구멍이 뻥 뚫린 사막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전트가 있었나 본데. 뭔 능력이길래 땅을 쪼개고 구멍을 뚫는 거야?”


{ 형제. 이건 아마 ‘굴착기’ 다. }


“굴착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 예전에 아시리아 내전을 한 방으로 끝내버린 감응자가 그렇게 불렸지. }


아시리아에서 헤이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 산이었다. 산은 끄덕이며 물었다.


“그 굴착기가 왜 지금 코렌에서 나와? 용병 아니었어?”


{ 용병 그만두고 굴착기가 정부 소속 에이전트가 됐다는 소문이 돌긴 했었다. 아무래도 그게 진짜인 모양이군. }


“흠. 많이 위험한가?”


{ 굴착기는 파스트라스 부대장까지 해먹었던 놈이다. 전쟁에 있어선 프로지. 게다가 지금은 힘을 다 쓴 것도 아닐 거다. }


“그건 어떻게 알아?”


{ 그야 아시리아에 뚫렸던 싱크홀은 지름이 180m였으니까. 여기 뚫린 건 그 반도 안 돼. }


산의 시선이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자리만의 공세가 늦춰진 틈에 정부군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멀어져 있던 수송용 트럭 하나를 발견한 산이 나이프를 까딱거렸다.


“자리만. 튀는 놈 다 쫓아서 처리해.”


{ 음? }


“원한 산 놈들 살려둬서 좋을 거 없어. 죄다 보내버려.”


잠시 대답이 없던 휴대전화 너머로 자리만의 깊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 알았다. }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꽂아넣은 산이 코트 옷깃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나이프를 길게 펼치고 고쳐잡은 산이 지면을 찼다.


전에 없던 속도로 산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산이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생각할 속도였다.


텅!

그렇게 산은 도망치던 한 군용 험비 위에 발을 딛고 섰다.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달리는 험비 위에서 중심을 잡는 건 역시 어려웠다. 몸을 낮춘 산은 주저 없이 험비의 지붕에 카르마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카르마 나이프의 칼날은 손쉽게 지붕을 뚫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카르마 나이프는 마치 종이를 자르듯, 험비의 지붕을 도려냈다.


그렇게 산이 험비의 뒷좌석으로 불쑥 내려오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홍 대위가 경악하며 권총을 쥐었다.


하지만 이미 뽑혀 있던 나이프가 훨씬 빨랐다. 홍 대위는 자신의 목에 드리운 새까만 칼날에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였다.

홍 대위는 슬그머니 앞좌석의 룸미러로 산의 얼굴을 확인했다. 입을 쩍 벌린 그는 얼어붙었다.


“전방주시. 사고 나면 안 되잖아.”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더 밟아. 속도 이것밖에 안 나와? 저기 저 수송 트럭 보이지? 저거 따라서 붙어.”


홍 대위가 머뭇거리자 산의 나이프가 그의 목을 살짝 스쳤다. 대위는 화끈한 감각에 턱을 세우고 핸들을 돌렸다.


“그렇지. 잘하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하는 거 봐서.”


수송용 트럭은 특히 이런 사막에선 속도를 마음껏 낼 수 없었다. 덕분에 홍 대위가 모는 험비는 금세 트럭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화물칸에 주저앉아 있던 루저가 따라붙은 차량을 눈치채곤 다시 일어섰다. 산과 루저의 시선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 아저씨가 굴착기였어? 세상 좁네.”

“이, 이제 어떻게..?”

“계속 붙어. 속도 유지.”


산은 카르마를 여전히 홍 대위의 목에 겨눈 채 차량 문을 열었다. 벌컥 열린 문으로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그때, 루저가 소리쳤다.


“겨울아! 브레이크!”

“브레이크!”


앞서가던 트럭이 급정거한 것이다. 산이 재빠르게 외치기도 전에 홍 대위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젖은 모래에 미끄러지며 트럭과 험비가 쭉 밀려 나갔다. 무게가 실린 트럭이 조금 더 멀리 떨어졌다.


“살았다..”


홍 대위는 안도했다. 이곳이 사막이 아니었다면,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급제동한 트럭을 그대로 들이받았을 터였다.


그때, 산이 험비에서 내렸다. 카르마 나이프의 위협이 사라지자 홍 대위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후진 기어를 넣었다.


“아저씨. 공업이 그렇게 잘못했어?”

“예..?”


험비 옆에서 묻는 산의 질문에 홍 대위는 화들짝 놀라며 눈알을 굴렸다. 그는 재빨리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사실 저도 이 작전엔 의문을 가졌습니다..! 고.. 공업의 회장님께서 좋은 일을 하는 거라고.. 예! 하하!”

“입에 발린 소리 하긴.”

“이건 진..”


홍 대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산이 크게 휘두른 카르마 나이프가 무시무시한 섬광을 뿜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카르마 나이프가 우뚝 멈췄을 때, 군용 험비는 지붕과 차량 바닥을 각 경계로 쪼개졌다. 홍 대위의 목이 있는 높이였다.


“...”


그 광경을 트럭 화물칸에서 지켜보던 루저가 인상을 썼다.


고작 나이프 하나로 험비를 통째로 쪼개며 안에 탄 홍 대위의 머리까지 잘랐다.

아무리 저 나이프가 공업의 기술이 들어간 무시무시한 장비라도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써먹을 수 있는 건 역시 칼잡이의 몫이었다.


단순히 장비만으로 밀어붙이는 얼간이가 아니라, 산이라는 인간 자체도 정상의 범주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괴물이 되어있었다.


“별수 없군.”


다시 장갑을 낀 루저는 화물칸에서 뛰어내렸다. 운전석에 있던 윈터가 고개를 내밀었다.


“선배! 선배! 뭐 해요!? 미쳤어요? 빨리 타요!”

“겨울아. 뒤돌아보지 말고 밟아.”

“선배!”

“시간 벌 테니까 가라고. 어서.”


윈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못 가요! 저도 도울게요! 조엘! 네가 운전대 잡고..”

“현장 이탈 명령이다. 윈터.”


루저의 내리깔린 목소리에 차에서 내리려던 윈터가 움찔했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루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 우두커니 선 처형인의 얼굴은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찢어져 웃고 있었다. 소름 끼치게 비틀어진 미소였다.


그 얼굴을 마주 본 윈터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인간은 저렇게 웃지 않는다. 저 미소와 독기로 가득 찬 눈에는 인간성이라 부를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른 가라. 겨울아.”


루저의 등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얼어붙어 있던 윈터가 다시 숨을 들이켰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목소리.

이따금 늦게까지 잔업을 하던 그녀에게 ‘얼른 집에 가라.’ 고 말해주던 그런 느긋한 말투였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다시 핸들을 잡았다.

곧, 수송용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배님! 루, 루저 선배님이!”

“시끄러워.. 뒤돌아보지 마..”


윈터는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빗줄기가 거셌다. 와이퍼에 쓸려나가는 빗물처럼 윈터는 손등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명령이야..”


핸들을 쥔 손과 그녀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처형인의 얼굴과 그 앞을 막아선 루저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명령이란 말이야...”


울음을 참으며 이를 악무는 그녀를 바라보던 조엘은 침울하게 고개를 떨궜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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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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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3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7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4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6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6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1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9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4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2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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