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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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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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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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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선제 타격

DUMMY

#1


넥타이를 매고 마지막으로 가벼운 여름용 정장 자켓을 걸친 루저는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 물끄러미 관찰했다.


주름진 와이셔츠에 바지. 정돈하지 않아 까슬까슬하게 남은 수염.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눈가의 주름은 전형적인 일에 찌든 중년의 모습이었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근육도 줄었고, 축 처진 어깨나 구부정하게 굽은 목과 허리는 볼품없었다.


“흠.”


하지만 그런 거울 속 남자의 모습에 루저는 오히려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볼품없이 늙어가는 모습이지만 적어도 평범하게 나이를 먹고, 어긋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루저는 무엇보다 평온한 삶을 중시했다.

젊었을 땐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험한 일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부턴 한 번에 큰돈을 버는 것보단 안정성을 중시했다.


물론, 정부의 에이전트로 일하는 이상 여전히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제법 적성에는 맞았다.


거울을 향하던 시선이 빙글 돌아 집안을 향했다.

중년의 남자가 혼자 지낸다기엔 꽤나 깔끔한 집안이었다. 청소와 정리정돈이 습관화된 덕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요리도 제법 했다. 지금은 바쁜 일과 피로에 치여 패스트푸드나 건강식 시리얼, 샐러드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부우웅. 부우웅.

울리는 진동에 감상에서 빠져나온 루저였다. 그는 옆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집었다.


{ 지금 도착했으니 내려오세요. 급한 대로 제 차 갖고 왔어요. }


“응? 겨울아 네가 운전도 하냐?”


{ 잊으신 모양인데, 저도 운전면허 있거든요? 신입은 먼저 가서 준비 중이에요. 얼른 내려와요. }


“그래. 알았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루저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돌아보았다.

이번엔 거울 안의 남자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매섭게 노려보는 눈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루저는 그 말이 떠올랐다.


보르단에서 개인적으로 루저를 찾아왔던 레베스타의 에이전트. 옛 후배이기도 했던 사무엘은 루저를 향해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

지금 이 시대엔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의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선 구태여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헤이카 미켈런에게 표를 던지자고?”


거울을 향해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거울 속 남자에게 콧방귀를 뀐 루저는 자켓을 꽉 당기며 돌아섰다.


아직 대답이 나올 단계는 아니었다.



#2


루저가 차에 오르자 윈터는 주저 없이 기어를 넣고 액셀을 콱 밟았다.

그 순간적인 가속에 털털거리던 차가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차가 퍼지는 일은 없었다. 루저는 핸들을 잡은 윈터를 바라보며 콧잔등을 긁적거렸다.


“화났냐? 거 얼마나 늦었다고..”

“선배 때문에 화난 거 아니에요.”

“화난 건 맞네. 그래서? 이번엔 뭐 때문에?”

“조금 전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상자가 천 명을 넘었어요. 아직 구조대가 도시 중앙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윈터가 말하는 집계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루저는 알고 있었다.

어떤 채널을 틀어도, 어떤 인터넷 기사 페이지를 들어가도 질리도록 떠들어대는 아시리아의 재앙.


인류의 최전선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아시리아의 도시 룩타에 아가레스가 떨어진 사건은 지금도 쉴 새 없이 사상자 집계가 늘고 있다.


아가레스의 충돌은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다. 태풍이나 지진, 토네이도나 산사태와 닮았다.

그런 천재지변에서 발생하는 사상자는 대비하지 않고서야 많을 수밖에 없다. 항상 대비를 해두는 부자들의 도시라면 모를까, 하필 룩타는 사막과 맞닿아있는 외진 도시였다.


그런 곳에 제대로 된 안전 설비나 방공호가 있을 리 만무했고 하물며 그런 게 있었더라도 지상으로 곤두박질친 아가레스의 거체를 피할 순 없었을 것이다.


“헤이카 미켈런은 미쳤어요.”


하지만 지금 윈터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천재지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건 천재지변이라 부를 수 없는 인재(人災)였다.


“아가레스와의 전쟁으로 하늘을 되찾는다..”


루저의 중얼거림에 윈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가레스와의 전쟁.

공업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클립스 공업의 행보를 보면 그렇게 밖엔 설명되지 않았다.


이클립스는 하늘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단은 누구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 괴수들과의 전쟁이다.


“당연히 그런 괴물들한테 하늘을 빼앗긴 건 통탄할 일이죠. 네. 맞아요. 멸망 전 옛날 사람들이 봤으면 혀를 내두를 상황이 맞겠어요.”

“...”

“하지만 선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어요. 하늘을 되찾는다니, 그런 건 굳이 급하게 할 필요 없잖아요? 좀 더 준비를 한 뒤에 해도..”

“준비는 이미 갖춘 거 아닌가?”


루저의 말에 윈터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선배. 지금 진심으로 말한 거예요?”

“냉정하게 판단했을 뿐이야. 너도 한 번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봐라.”

“전 모르겠네요. 대체 지금 무슨 준비가 됐다는 거예요? 다 같이 죽을 준비?”


루저는 고개를 저었다.


“소문만 무성했던 이클립스 함대가 실체를 드러냈고, 마찬가지로 다들 헛소리라며 손사래만 치던 이클립스의 항공 전력까지 나타났다.”

“확인 결과 이클립스 함대는 황성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 함대였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괴물 같은 화력에 이클립스의 자본과 기술력을 모두 쏟아부은 현시대 최강 전력.”

“그리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항공 전력은 실제로 아가레스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묵묵히 시선을 앞으로 향한 윈터였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건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그리고 루저의 말엔 무엇하나 틀린 게 없었다고.


“황성에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첫 번째 쾌거인 셈이다. 확실히 헤이카 미켈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고요?”

“글쎄. 난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여자가 옳다고 말하는 거예요? 레베스타에선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했잖아요.”


입맛을 다신 루저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붙은 담배는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인류는 언젠가 하늘을 되찾아야 해.”


루저는 창 밖의 하늘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윈터의 눈도 슬쩍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 하늘이 우르릉 울고 있었다.


“기차와 자동차, 선박으로만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슬슬 질리잖아? 사람은 원래 하늘을 지배했어. 하늘 너머의 우주로도 뻗어 나갔지.”

“옛날 사람들이 비행기 타고 날아다녔다는 얘긴 알아요. 로켓도 쐈고요. 그런데 하늘을 나는 쇳덩어리에 목숨 걸고 몸을 맡기다니. 솔직히 저는 이해 안 가네요.”


루저가 웃었다. 그도 윈터의 말에는 공감했다.

하늘을 나는 쇳덩어리가 수백 명을 태우고 이 행성의 이곳저곳을 오가다니, 지금으로선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거뿐만이 아니야.”

“그럼요?”

“지금 인류의 문명이 여기까지 복구될 수 있던 건 여러 기술자의 덕도 있지만, 옛 문명이 남긴 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저 하늘 너머에 있다는 고철 덩어리 말이야.”


하늘을 노려보던 윈터가 끄덕였다.


“인공위성 말하는 거죠?”

“그래. 저 하늘 너머에 남은 위성으로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지.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거다. 늦든 빠르든 인류는 하늘을 되찾아야 해.”

“그게 하필 아가레스와의 전쟁이 될 이유가 있어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요?”

“인간이란 종족은 털북숭이 시절부터 전쟁으로 살아왔다. 그러니 이건 인류 생존을 위한.. 혹은 인류가 나아가기 위한 전쟁이란 거지. 무의미하게 자원 낭비나 하는 병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곰곰히 생각에 빠져 있던 윈터는 멀리서 보이는 사막 국도의 차량들을 발견하고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그 전쟁으로 엄청난 사람이 죽을 거예요. ..제가 보기엔 승산도 없고요.”


루저는 담배 연기를 크게 뿜어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연기가 빠져나갔다.


축축한 비 냄새에 루저가 코를 훌쩍였다. 벌써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조금 뒤면 시원하게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이건 여전히 생명을 낳지 못하는 죽은 비다.

아무리 내리고, 아무리 땅에 스며들어도 풀 한 포기 피우지 못하고 사막을 걷어내지도 못하는 무의미한 비.


루저는 그 죽은 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베스타에서 난 미래의 벌어질지도 모를 세계 대전을 걱정해서 헤이카 미켈런을 방해했다. 그때는 진심으로 그 여자가 멍청하다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다른가 보네요.”

“생각을 좀 하게 되더군. 희대의 천재에 그 정도로 지기 싫어하는 여자가 과연 아무 생각도 없이 아가레스에게 질 싸움을 걸었을까? 하고.”


루저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윈터는 부드럽게 차량을 멈췄다. 사막길 중에서도 정부에서 국도로 지정한 넓은 포장도로였다.

그 국도에는 차량이 가득 줄을 서 있었다. 모두 평범한 차량은 아니었다.


수송용 트럭, 장갑차, 군용 험비, 그리고 세 대의 전차까지.


전차는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현재 위치를 알 수 없는 델라리온 머스칼을 고려한다면 세 대의 전차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전력이었다.

아시리아에서 머스칼에게 싸움을 걸었던 전차는 무려 13대였고, 그 13대는 머스칼에게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모조리 파괴당했었다.


그런 군부대를 눈에 담으며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먼저 와서 무언가를 준비하던 조엘은 두 사람을 발견하곤 재빠르게 달려와 차렷 자세로 섰다.


“오셨습니까!”

“그래. 넌 지치지도 않냐? 좀 쉬라니까 또 일하고 있네.”

“젊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젊어서 좋겠다. 그래도 너무 힘쓰진 마라.”


루저는 다 타들어 간 담배를 툭 던져 밟아 껐다.


“여기서 괜히 무리하면 진짜 죽어.”


그의 말은 농담 같은 게 아니었다. 조엘도 루저의 말에 담긴 무게를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코렌 정부의 에이전트 여덟 명이 살해당했다.

1, 2년 차 루키가 둘, 베테랑이 넷, 팀장급이 둘이나 있던 그런 에이전트 작전팀이 고작 한 명에게 모조리 목이 날아갔다는 소식은 이미 에이전트 본부 내에 쫙 퍼져있었다.


그리고 그 가해자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그 ‘산’ 이라는 공업의 신입 팀장.. 정말 감응자가 아닌 겁니까?”


조엘은 평소와 달리 약간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대답을 고민하던 루저 대신 윈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 전에 공조 수사 때 만난 적은 있는데, 솔직히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어. 날뛰는 감응자도 나이프 하나로 제압했거든. 게다가 분위기가 묘하게 기분 나빴지.”


윈터는 산을 처음 마주쳤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감응자 범죄의 살인 사건 현장 앞에서 마주쳤던 그는 분위기만으로도 꺼림칙했다.

물론, 그때의 공조 수사로 범인을 검거할 순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것조차 공업을 위한 일에 불과했다. 윈터는 당시의 수사에도 아직 불만이 많았다.


“그 말씀은.. 진짜 감응자라는..?”

“필로와 거스트는 모두 숙련된 에이전트였다. 현장 경험은 나보다도 많았어.”


새 담배를 꺼내 문 루저가 말했다. 그의 라이터가 ‘탁’ 하며 불이 켜졌다.

필로와 거스트. 그 두 사람은 이번에 희생된 여덟 명의 에이전트 중 가장 경험이 많던 팀장급 두 명이었다.


“그런데 팀장급까지 다 죽어나갈 동안 녀석의 파장을 관측기가 잡아내지 못했지. 기기적 결함이라기엔 말이 안 돼. 즉, 녀석은 감응자도 아닌 몸으로 에이전트 여덟을 죽였다는 거다.”

“시, 시라비아 마피아의 처형인들은 다 그런 겁니까?”


허탈하게 웃으며 연기를 뿜어낸 루저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처형인이라고 다 그렇진 않아. 평범한 놈들에게 비하면 마피아의 처형인들은 괴물이 맞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칼 좀 쓰는 칼잡이들에 불과해. 에이전트를 상대할 정도의 처형인은 현재로선 산을 제외하고 하나뿐이지.”


조엘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오코넬 다이아.”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시라비아에서 처형인들의 대부라 불리는 남자다. 세계 연합에서도 못 잡아서 안달인 블랙리스트지. 예전에 다섯 명의 에이전트가 놈을 잡으려고 갔다가 머리만 다섯 개 덜렁 돌아온 이후론 연합에서도 놈을 잡기 포기했어.”


아마 조금 전의 일이 없었더라면 조엘은 방금의 얘기를 쉽사리 믿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전트는 그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기 때문이다.


“공업의 신입 팀장인 산이라는 그 남자도 오코넬이 키운 놈이야.”

“그렇군요..”

“아마 조직의 히든카드였던 모양이더군. 어쩌다 시라비아에서 탈주하고 코렌 촌구석에 눌러앉아 있던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놈은 감응자가 아니다. 하지만 감응자라 생각하고 대응해. 그게 편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신입 에이전트인 조엘이 직접 산을 마주할 리는 없었다.

경험이 적은 것도 이유지만 조엘의 능력은 애초에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치유계 능력이다. 후방 지원이 특기라는 얘기다.


게다가 정부 소속 에이전트 전력이 반이나 날아간 시점에서 코렌 정부는 상당히 소극적으로 스탠스를 바꿨다. 더 이상 에이전트를 잃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루저 일행이 단독으로 돌입할 일은 일단 없었다.


“겨울이, 너도 명심해라. 무조건 내 지시 따라. 조금만 위험하다 판단되면 바로 빠지고.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

“알고 있어요. 저도 목 따여서 죽는 건 싫거든요.”


때마침 정부군 쪽에서 젊은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루저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다가온 젊은 군인은 가장 먼저 루저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원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이번 작전의 현장 지휘를 맡은 홍성만 대위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짧게 자른 머리와 다부진 체격.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젊은 군인.

루저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홍 대위로. 에이전트 본부에서 나온 긴급 현장 대응과 루저입니다. 직급은 과장이지만.. 뭐, 폼으로 있는 거니 그냥 루저라 부르시죠.”


루저는 홍 대위의 손을 맞잡으며 살짝 놀란 눈치였다. 가볍게 잡았을 뿐인데도 그의 손아귀 힘이 꽤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들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예. 부탁하죠.”

“이쪽으로.”


홍 대위가 앞장서 걸었다. 그 뒤를 루저가 따랐고, 윈터와 조엘도 서둘러 루저를 뒤따랐다.


일행이 멈춘 곳은 정부군 전열의 가장 앞이었다.

황량한 사막과 빗줄기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은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저곳이 네키타 항구입니다. 과거엔 석탄 항구로 쓰였는데, 몇 년 전 바이러스 침투 사건 당시 버려지고 현재까지 쭉 폐쇄된 곳이죠. 바이러스 연구 목적으로 이클립스 공업이 사들인 곳이기도 합니다.”

“저곳에 있는 겁니까?”

“일단은 추정이지만.. 거의 확실합니다. 저 항구에서 감응자가 신고도 없이 능력을 사용한 것도 확인됐는데, 공교롭게도 의사입니다.”


눈썹을 까딱인 루저가 피식 웃었다.


“의사라.. 대충 알겠군요. 그럼 저쪽도 부상자로 발이 묶여 있다는 뜻일 테니 기회라면 기회가 맞긴 한데.”

“예.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델라리온 머스칼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루저는 까슬까슬한 턱을 만지작거렸다.


델라리온 머스칼.

공업의 결전 병기라 여겨지는 괴물 능력자.


감응자라기엔 단 한 번도 파장이 관측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기괴한 외형과 압도적인 능력은 분명히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그렇기에 아시리아의 아가레스 충돌 이후 자취를 감춘 델라리온 머스칼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섣부르게 공업의 무장 전력을 공격하는 건 위험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겠죠.”


루저의 말에 홍 대위가 끄덕였다. 그는 국도에 쭉 늘어선 정부군 전력을 돌아보며 말했다.


“15분 뒤 항구로 돌입할 예정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대로 구경만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전력은 어디 있습니까?”

“다른 전력.. 말입니까?”

“공업 노페이스 팀엔 델라리온 머스칼과 산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홍 대위는 ‘아’ 하는 얼굴로 루저를 마주 보았다. 루저는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설마 생각도 안 하고 있던 겁니까?”

“다른 부대에서 쫓고 있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위에서는 델라리온 머스칼에 비하면 그다지 위험한 전력이라곤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노페이스에 있는 놈들이 모조리 괴물이란 거, 혹시 몰랐습니까? 다른 놈들 위치는 파악된 겁니까?”


루저의 질문에 홍 대위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숙이며 눈을 피했다.

그의 곤란한 얼굴을 보던 루저는 결국 기가 차다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긁었다.


“지금 이 작전 총지휘자가 누굽니까?”

“예? 그건 저..”

“여기 현장 뛰는 말단 책임자 말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멍청한 지시나 내리는 양반이 누구냔 말입니다.”


홍 대위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잠시 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 제가 알기론 VIP까지 올라간다고 들었습니다.”

“허. 다들 머저리밖에 없군.”

“예?”

“이건 범죄자 검거나 테러 진압 같은 게 아니라, 전쟁입니다. 공업의 전력은 군대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쟁의 기본조차 준비하지 않은 상태로 대체 뭘..”


그때, 루저의 말을 끊으며 홍 대위의 무전이 전자음을 냈다. 인상을 찌푸린 루저는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꼈다.


{ 3소대장입니다. 남동 방향에서 현재 식별 불가의 무장 세력이 접근 중. 거리 300m. 규모 약 50. 슈트와 총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자리만 콥스의 D.A.B(Dead Army Battalion)로 추정됩니다. }


“지휘실 보고 후 지시 하달하겠다. 경계 태세 유지한 채 대기하라.”

“당장 쏘라고 하시죠.”


루저의 말에 홍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보고가 우선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홍 대위가 다시 무전을 치려던 때, 루저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홍 대위의 눈이 커졌다.


{ 유탄! 유탄 발사기다! }


“발포 허가! 대응..”


그의 말은 폭음에 묻혔다. 루저는 사방에서 터지는 유탄에 혀를 차곤 재빨리 내달렸다.

어느새 루저의 뒤를 윈터와 조엘도 뒤따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장갑차 뒤에 몸을 숨겼다.


“겨울아! 차! 차 어디다 놨냐!?”

“저쪽에 있습니다! 저쪼..”


조엘이 가리키던 곳에 있던 윈터의 차는 말하기가 무섭게 유탄에 직격했다.

사방으로 터지는 불꽃과 파편. 가슴을 때리는 폭발음에 조엘은 아연실색했고 윈터는 자신의 차가 박살나는 광경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곧, 정부군과 콥스 바탈리온 사이의 본격적인 총격전이 시작됐다.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영부영하며 눈만 끔뻑거리던 조엘의 머리를 루저는 재빨리 잡아 눌렀다.


“뒤지기 싫으면 대가리 숙여!”

“죄, 죄, 죄송합니다!”

“선배! 앞에!”


윈터는 콥스 바탈리온이 몰려오는 곳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네키타 항구가 있는 방향이었다.


항구에서 빠져나온 차량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저 차 안에 누가 타고 있을 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내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춘 차량에선 한 남자가 내렸다.

검은 코트를 걸치고 새까만 나이프를 쥔 젊은 남자. 그의 독기로 가득한 눈동자가 살기를 머금은 채, 몸에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현 시간부로 능력 사용 허가한다.”


루저는 장갑을 끼며 말했다. 윈터도 두 자루의 권총을 꺼냈고 조엘은 이리저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뒤늦게 자기 권총을 꺼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라. 사신이 왔어.”


입꼬리를 히죽거리며 루저는 주변의 공기가 흔들었다.


동시에,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2.10.06 14:45
    No. 1

    문득 드는 생각이, 연방이 코렌을 칠 때 어떤 대가도 없이 함대를 증발시키고 종전시킨 게 공업인데 코렌 정부가 망설임 없이 세계연합을 따라 공업에 대한 제압에 나선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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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4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7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2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0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8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7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70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4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6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6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5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78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0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2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7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3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6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5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8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2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1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2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7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6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6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3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5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5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0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2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8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3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2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1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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