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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라(Allegra), 영혼의 여행자.

K.M 클리닝 프로젝트


[K.M 클리닝 프로젝트] K.M 클리닝 3차 프로젝트 - 전쟁 준비 (2)

공포(?)의 명절 연휴가 낀 2월을 맞이하여,

드디어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 물건이 사람 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쌓이기 시작하고 나서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부쩍 줄었었죠.  그 외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사나 차례도 생략하고... 명절을 제대로 쇠어본 기억이 까마득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2월이 다가오니 참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군요.

음력 설(구정) 연휴가 있기도 했지만, 저희 집에서는 올해부터

설 전후로 제사가 두 번 있게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정확히 밝히자면, 친할아버지 제사를 30여년 동안 꼬박꼬박 챙겼다가...

작년 이맘 때 할머니도 돌아가셨던 거죠. 일단 돌아가신 분의 첫 제사만큼은

지나갈 수가 없고요. 


새삼 집안 정리를 안 했으면 어땠을지 돌이켜보면 전율이 쫙 돋기도 했습니다.

호딩 문제를 제일 먼저 인지하신 분은, 바로 할머니였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문제를 상기시키고 합의점을 찾기에는...

생전의 할머니 화법은 모두에게 거의 먹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할머니는 그 세대 어르신들 기준으로는 나름대로 공부 많이 한 여성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외로 자신의 의사를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전달하고 공감 및 변화를 끌어내는 방법에는 상당히 취약한 분이었던 듯했습니다.


할머니와 유달리 사이가 돈독했던 막내 동생에게,

근황 이야기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 그러고 보니, 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엄마 물건 너무 못 치운다고 병원 가보라고

소리치는 걸 몇 번 들었던 거 같아.“


그게 언제적 일인지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30대 초반인 막내가 <어릴 때>라는 말을 했던 것을 보면

적어도 제 가족들이 지금 사는 동네에 막 이사 왔던

10대 때부터였겠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와 동생들이 각각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무렵이라면...

확실히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2004년 초반부터는 한동안 어머니 건강 문제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가사 일에 대해 터치할 상황이 아니었지요. 


(애초에 환자에게 그런 걸 강요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고,

돌아가면서 간병 및 집안일 분담하는 쪽으로 갔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입원한 며느리에게 <그럼 애비 밥은?> 했다는 시어머니의 발언이

온라인에서 잊을 만하면 전설적인 망언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그런 맥락의 일이 저희 집안에서는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느 정도 호전되고 나서는...

이상할 정도로 집안에 물건이 급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막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가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이 때부터였는지, 혹은 그 이전부터 집안 살림을 지켜본 입장에서 날카롭게

툭 던진 독설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생전의 할머니께서 언제 어떤 식으로 말씀하셨든 간에...

머리로 생각하면 분명 맞는 이야기였다 해도,

듣는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하셨던 겁니다.

오래 전이면, 집안이 어지럽혀지는 일은 가정 하나의 문제, 즉,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고, 사회적 차원에서 개입되는 일이 지극히 드물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원인을 오로지 살림의 실무자 - 주부의 솜씨가 미숙한 탓으로만 왜곡해서 보고

책임을 묻거나 쉬쉬하는 일이 더 많았을 겁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며느리인 어머니의 모습이

단순히 솜씨가 당신보다 미숙해 보여서가 아니라, 의학 전문가의 소견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꿰뚫어보셨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집안 정리하는 기술만을 원했다면

조리사, 베이킹, 양재, 청소 관련 강습을 나가라고 하거나, 할머니께서 직접 가르치려

하셨겠지요. (아니면 도저히 믿고 맡길 수 없으니 주도하겠다고 하고도 남을 분이었습니다.)


다만... 고부간의 사이가 그런 말이 진정으로 통할 만큼 신뢰가 쌓인 것도 아니었고,

할머니께서도 그 한계를 굳이 넘으려고 하신 건 아니었던 듯했습니다.

저는 아예 그런 사실 자체를 몰랐었고, 막내 입장에서는 할머니의 지나가는 탄식이나

툭 던지는 말을 들었어도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기억해낸 것이었죠.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 남은 식구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할머니께서 진정으로 바라셨을 <집안 정리정돈 및 정서 안정>을 향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겁니다.


1. Slow, slow, Quick! quick!


지난 1월 25일에 포스팅을 한 이후에는, 곧장 커튼 빨래부터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문간방(드레스룸), 거실, 안방에 걸려 있던 커튼을 모두 걷어내서

세탁소에 맡기려고 했지요.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생활 빨래도, 그 주의 엄청난 한파 때문에

세탁기를 돌리지 못해서 엄청 밀려 있었고요. 그 전에 서둘러서 집안 공기도

좀 바꿔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탁소 명함을 받아 가지고 와서, 온 가족의 동의를 얻어내고

커튼을 내려서 대기시킨 뒤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었습니다.


“너무 낡고 찌들어서 저희 쪽에서는 해도 잘 안 될 거 같네요.”


결국 세탁소에 맡겼던 커튼은 그 다음날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세탁실 상황을 봤을 때는, 아예 그 주변 물 빠지는 곳 바닥이 얼어붙어서

벽 사이사이마다 고드름이 생겼었고요. (아니 이 무슨 겨울왕국 동굴인가요.)


실제로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던 건, 29일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막 바닥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이 살얼음으로 얇아지면서

물이 서서히 녹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전 그걸 가속화시키려고

간만에 식칼 들고 세탁실에 들어갔었습니다.


세탁기 바닥에서 하수구까지의 공간, 그리고 바닥에 아직 붙은 얼음들을

죄다 칼질로 바닥 및 벽과 분리시켜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정도 녹아서 틈이 난 부분에 칼날을 비집고 살짝 힘을 주면

대개는 알아서 떨어져 나가더군요.


따로 얼음덩어리들을 떼어놓고 녹은 물이 자연히 빠지게 둔 다음...

비로소 하루가 더 지나서야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저녁 운동하러 간 사이에 어머니께서 돌리셨다네요.)

알고 보니, 이번 지독한 한파 때문에 3일 동안 세탁기를 사용 못한 게

저희 집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해서... 계절에 더 화가 났다는 건 비밀 아닙니다. ^^;;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옛날에 각 분야별로 아동 대상의 학습 만화(대략 14~5권 정도의 전집) 시리즈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 중에서도 의학, 발명, 날씨에 대한 만화를 꽤 재미있게 봤었죠.

날씨에 대해서는 나이 지긋한 박사와 소년 소녀가 등장해서 기상 원리 및

미래 사회를 가정한 세계관을 간결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페이지를 넘기다가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가정을 살짝 보았을 때는

흥미로운 컷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밝히자면,

로봇 복장의 기상청 직원들이 각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바쁘게 받으며

대답하는 컷들이었습니다.


“아, 소풍 가야 하니까 맑은 날씨가 필요하다고요? 알겠습니다!”

“논밭에 물을 대야 한다고요? 네, 시간을 말씀해 주시면 비를 바로 내려드리겠습니다!”


지역에 따라 원하는 날씨를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지요.

다만,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자연의 흐름 자체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바꿔서 연출하기에... 사계절이 의미 없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은 좀 있었습니다.


근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보니, 겨울이라 어느 정도 찬바람은 있다는 것을

자연의 섭리로 인지한다 해도,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 혹은 긴급 상황에서는

좀 인공적으로라도 완화되는 시스템도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겨울처럼 사람이 일상 생활을 못할 수준으로 여러 날 한파가

계속되는 수준이라면... 난생 처음으로 기상청에 전화해서 어느 지역 어느 구의

한파를 좀 풀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현대의 시스템으로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지만요.

(3일 동안 빨래를 못하는 건 이렇게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얼음이 완전히 녹고, 세탁기가 예전처럼 돌아가서 밀린 빨래를 두 번 하게 되기까지...

의외로 오래 걸렸습니다. 마치, 저희 집이 예전으로 돌아가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오래 걸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그리고, 빨래 문제 만큼

느리게 변화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2. 다시 치우기, 템포 차이


집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자,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나

새로운 상황(이를테면 첫 외손녀)에 대해 하고 싶은 일들을 마구마구 벌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살짝 밝혔지만, 아버지는 아직 아기인 제 조카가 집에서 뛰어놀길 바라는 마음에

매트를 바닥에 까셨죠. 근데 거실 일부만 깐 게 아니라 현관에서부터 제 방과 안방 앞까지

이르는 길까지도 온통 덮어놓으신 겁니다. (부엌까지 할 뻔했는데 그건 막았죠...)


이 문제는, 바로 어제서야 타협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매트 때문에 미끄러져서 왼쪽 발가락을 다쳤는데, 이걸 예로 들면서

안전 문제 있다고 이의를 제기해도... 모두 외면했었습니다. 작년에 병원에 갔을 때보다는

상태가 덜 심각하니, 저 하나만 참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나 싶었어요.


매트를 제외한 각 공간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갈 쯤,

어느 날 저는 제 방을 또 한 번 정리했었습니다.
청소와 관리는 지속적으로 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아직 정리가 덜 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107_deskside_bottom.jpg


작년 11월에 제 방 정리를 마쳤을 때, 문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책상의 모습이었습니다.


Y4BH6DZhjZXlqvuT.jpg


소품들과 책을 2차 정리하고, 바닥 청소를 한 번 더 하고 난 뒤의 책상과 선반의 모습입니다.

삐져 나와 있던 멀티탭 전선은 책상 뒤로 우회시켜서 감추었고요 :)


조만간 커피 머신은 부엌으로 보낼 예정이라 아래로 내려두었습니다. 대신에

제일 위에는 제 사진과,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각각 넣은 연보라색 액자를 올려두었죠.

좋아하는 것들을 남겨두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 인생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니까요.^^

(왼쪽 사진은 제가 D백작님 뵈러 미국에 갔을 때, 그쪽 대학 도서관에서 찍힌 겁니다.

오른쪽에는 제가 굉장히 사랑하는 분의 사진을 넣어두었는데... 초상권 보호차

곰돌이로 살짝 가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찍은 사진으로 단일 주문 제작한 달력이 그 옆에 있습니다.

1월 말에 찍은 인증샷이라, 사진 속 달력은 아직 1월인데요... 일단 저 달에는

저희 집 근처에 눈이 예쁘게 내렸을 때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넣은 겁니다.

(저런 식으로 각 달마다 제가 선정한 그림 및 사진이 들어간 거여요 ^^)


달력 앞에는 푸른색 병에 담긴 방향제가 있지요.

12주까지 향이 유지되는 것으로 아는데, 저 향을 고른 이유를 살짝 밝히자면...

언젠가 EBS 라디오에서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리스>가 가장 기억에 남았었죠.

그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실제로 아이리스(붓꽃) 향을 내는 방향제를 골라서 쓰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이야기의 결말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우아하고 은은한 향기 속에서 해피엔딩이

오길 바라죠 ^^)


이런 정리를 끝내면서, 바닥에도 새로 들여온 진공 청소기를 사용했는데....

매트를 깔지 않은 바닥에서는 아예 청소기가 쓰레기를 잘 빨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매트를 써야 한다면(...)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한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에

일종의 테스트가 필요했는데,

이게 참 예상보다도 안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제사를 앞둔 어제...

어머니가 집안 청소를 다시 하면서 거실 매트가 청소 불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하셨죠. 결국, 저와 어머니가 합세한 끝에 아버지께서는 일부 공간만 남겨놓고

매트 대부분을 다 걷어내셨습니다.


무엇이든 상대가 직접 겪어보고 체감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면,

그 시간이 지금처럼 길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는 할머니 첫 제사입니다.

아마 그 때는 생전의 할머니 마지막 소원대로 정리된 집안 사진들을 보이고,

좋아하셨던 음식 + 제사 양식에 따라서 상을 차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사 음식을 주도해 본 적은 없어서요. 이건 어머니를 보조하는 정도일 듯요.)


정리된 공간의 형태를 정착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첫 명절을 무사히 지내보고 싶네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__)


ps. 여담이지만, 지난 한 주는 공모전 정보를 입수한 끝에

  작품 하나를 다듬어서 제출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수정하면서 묘한 점을 하나 발견했었죠.


  극중 남주인공은 불의에 맞서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초반에는 정말 쇼킹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실패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다치는 것으로 돌아옵니다.)


  구하고 싶었던 상대에게, 현재를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한 사람들을 찾아내며

  시대의 흐름에 공감하고... 자신의 청춘을 다 바치게 되지요.

  결국, 남주인공은 자신이 바라던 것을 오랜 세월 끝에 이루게 됩니다.


  그런 결말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불의를 선택한 자들을 돌직구로 질타하던 남주인공의 언변이 아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들이었던 사람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나중에 이해하게 되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끝까지 충실하며... 동시대의 다른 선한 사람들을

  찾아서 끊임없이 공감한 주인공들의 진정성이 가장 큰 힘이었던 겁니다.


 정리 정돈을 하면서, 실제 일상과 작품에서도 해답을 찾아가는 날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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