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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라(Allegra), 영혼의 여행자.

K.M 클리닝 프로젝트


[K.M 클리닝 프로젝트] K.M 클리닝 프로젝트 - 2. 열려라 참깨! 붙박이장을 열다!

한국 시간으로 18일 저녁에 귀국하고 나서 

간만에 정리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12일 남짓한 기간 동안, 미국에 있는 D백작님 댁에 머물면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지요. 


막연하게 한 공간을 혼자서 치우는 것과, 

이미 실제로 정리된 공간을 보면서 머릿속에 담아가는 것은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리고, D백작님께서는 이미 영문판으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을 소장하고 계시다가, 

이번에 저에게 책을 추천해주신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번 글에서는 책의 영문판과 

국내 번역판의 차이점을 알았다고 언급했던 거고요.


책에서는 작가님이 여성분이시라는 것과, 

아직까지는 가정에서 집안을 정리하는 일이 가사의 영역이며 

그러한 가사를 여성분들에게 주로 맡긴다는 사회상이 반영되어서인지... 

<소녀다운> 혹은 <여자다운> 뉘앙스를 강조한 표현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었습니다. 


물론 실제 의도는 깔끔하고 섬세하게 정리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수식으로 사용했다는 게 명백했습니다만... 


“곤도 마리에 작가님이 일본인이기에, 처음 일어 원서에서는 

아마도 일반적으로 젊은 여자나 소녀를 통칭하는 

<온나노꼬 - > (대략 이런 발음인 것으로 압니다. 전 일어를 쓸 줄 몰라서

편의상 기억하는 대로 표기합니다.) 가 나오지 않았을까?“ 


제 생각에도, 이러한 <온나노꼬> 라는 표현들이 

각국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직역되었을 가능성이 꽤 컸습니다. 


D백작님께서 이런 부분을 언급하셨을 때, 

문득 저는 라틴어 스터디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2007년에는 한 언어학 카페에서 주말마다 오전 스터디 모임이 있었는데, 

이 때는 기초 과정이라 명사의 성/수/격을 한창 습득하던 단계였습니다. 


한 번은 3인칭 복수가 주어로 나온 예문을 강독하던 중에,

그 때 참여했던 여성 회원분이 진행자님께 의문을 제기했었습니다. 

“왜 남성 주어와 똑같은 형태 아니면, 거기서 살짝 파생된 형태를 띨까요? 

분명 이 문장에 나온 상황 속에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통틀어서 

주어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실 저 당시에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 비몽사몽이었는데...

저보다 연장자였던 그 여성분 질문 때문에 잠이 확 깼었습니다. 

진행자님이 난감해하시는 사이에, 그 옆에 계시던 남자 회원분이 

꽤 인상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건 아마 라틴어가 쓰였던 고대의 사회 배경과 관련있을 거예요. 

그 때는 각종 사회 활동이 가능한 <사람>이 곧 남자 시민이었고, 

단체에 여자가 한두 명 끼어 있었다고 해도 아주 잠깐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 예외적인 소수를 포함시키는 단체를 뜻하는 

언어 표현이 따로 없었을 지도 모르죠.“ 


그 남자 회원분은 저를 포함한 여성 참여자들을 각각 한 번씩 돌아보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하셨었지요. 


“설령 지금 남성형으로만 만들어진 라틴어의 복수형 표현을 읽고 쓴다고 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남녀 모두가 동등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닐 겁니다.

그건 그 시대에서만 한정된 표현이고, 우리는 그런 시대 배경의 한 부분을 

잠깐 확인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니... 이런 복수형 단어 때문에 괜히 선입견을 갖기보다는, 그저 그 시대 배경의 

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여기엔, 여자분들을 낮춰보거나 

아예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진행자님도 어느 정도 동감하셨고, 2007년 스터디 시간에 제기되었던 의문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상당히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사회적으로 보는 <사람>의 기준이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뉘앙스였지요. 


정리를 주로 하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정리하고 난 이후의 느낌도 

여성에게 주로 사용되는 수식어인 <깔끔하고 섬세한 손길>을 표현한다고 해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듯했습니다. 


영어에서도 일반적인 남자를 Man으로 많이 쓰지만, 남녀 상관없이 대단한 사람을 통칭할 때도 

Man을 쓰는 것도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겠고요. 

Manner makes man 은, 매너가 (남녀를 막론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지, 

생물학적인 <남성>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지요. 


그리고... 가끔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을 언급한 영문 기록들 중에서는 

She was the only man in royal family. 라는 식의 표현이 말미를 장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이런 문장을 블로그에서 번역하고 인용하는 경우에는 가끔 “그녀는 왕실의 유일한 

남성이었다.“ 는 식으로 직역하는 것도 심심찮게 봐서 놀랄 때가 있었고요. 

지금 예를 든 문장은 원래 “그녀는 왕실에서 유일하게 왕족답게 행동한, 진정으로 된 사람이었다.” 는 정도의 칭찬을 의도하고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영문판에서는, 국내 번역본의 <소녀다운>이라는 표현이 

대부분 feminine으로 나타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girl- 이라고 나왔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girl 의 단어 의미를 <소녀>로만 알고 계신 분들도 꽤 계실 듯한데요... 실제로는 일반적인 <여성>을 표현할 때도 자주 쓰입니다. 

가끔 미디어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고, 여성들을 사로잡을 무언가를 가리켜 <걸크러쉬> 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긴 합니다.)


영문판을 확인하고 나서야,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조금이나마 있었던 거북한 감정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정리하는 사람의 느낌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기에, 작가님 또한 자신의 느낌을 담았을 것입니다. 영문판에서는 그런 여성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린 단어를 골라서, 저마다의 문화권 실정에 맞게 번역했겠고요. 


어딘가 자기 주변의 어수선한 곳을 치우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국내 번역본에서 나온 <소녀다운>에서 느꼈던 뉘앙스를 더 이상 

성차별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왼쪽 붙박이장을 열고 안의 물건들을 망설임없이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31_closet_middle.jpg


위에는 담요와 방석, 여행 가방이 있고, 아래는 바이올린 케이스 및 잡동사니들이 

대부분인 모습입니다. 이 붙박이장은 정리 후 이불이나 남는 옷을 수납하기로 결정했기에, 

이불은 내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34_cups.jpg


일단 가벼운 것들을 먼저 내리고 내용물을 확인하다가, 또 하나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저번에 옷 정리 할 때.... 다기 세트를 발견했던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지금 연 것은 아래칸에서 끄집어낸 박스인데요, 안에는 꽃무늬 커피잔 커플 세트가 있었습니다...


35_dish.jpg


그리고, 그 안쪽에 있던 박스를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도안을 그려서 구운 도자기(?) 접시 

세 개를 겹겹이 넣은 선물세트군요...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릇을 부엌에 두고, 

그런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고 싶으셨을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저와 제 자매들도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그런 마음으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길 

바라셨던 걸까요? 그런데 어쩌다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네요.)


일단 저 두 가지는 다른 곳에 고이 모셔두고, 큰 상자와 가방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냈습니다. 


36_tour_cart.jpg


묵직해 보이는 검은 가방을 열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옷 정리를 다시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좀 의외였습니다. 안에는 겨울옷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차 때 정리해서 남겨놓은 옷들과, 스타일이 거의 비슷한 옷들이었거든요. 

식구가 여럿인 집에서, 기존에 사온 것을 잊어버리고 또 사들였기 때문에.... 

이런 중복(?)되는 사태가 발생한 듯했습니다. 다행히, 먼저 정리한 옷들과 대조하고 

설레임 테스트/소재 감별/옷의 과거 회전도를 가늠하고 나니... 99%는 걸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부모님들께서 즐겨입는 겨울옷 4~5벌을 더 찾아내서 돌려보내기도 했고요. 

(안 입으시는 옷들도 기억했다가 다 걸러냈지요. 앞으로는 리바운드가 없도록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의 영역도 확실히 구분해 둬야겠고요.) 


37_baby_blanket.jpg


이불 틈에서 찾아낸 것인데... 아마도 아기 업을 때 쓰던 옛날 띠인 듯했습니다. 

실제로도 저희 집은 자매들마다 아기 때 사진 담은 앨범이 따로따로 있는데

어른들에게 업힌 채 찍힌 사진들마다 저 띠가 꽤 있었습니다. ^^;;; 

추억의 물건으로 분류할지, 옷 정리로 구분할지 고민했다가... 남은 옷 정리로 결정하고 

푸대자루로 쏘옥! 넣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38_green_sketch.jpg


아래칸에 있던 묵직한 종이 상자들 속에는, 대부분 책과 잡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 종류들은 

다음 단계에서 정리하기 위해 침대 옆으로 치워두고, 그 외 자잘한 것들을 빼서 살펴보다가 

붉은 스케치북이 있어서 펼쳐보았습니다. 스케치북에는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드문드문 있더군요. 


연필 스케치만 남은 걸 보면, 아마 미술 시간에는 완성 못했던... 꼬꼬마 시절의 설정 파일(?) 

정도에 해당했던 듯합니다. 그리고 몇 장 더 넘겨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올린 컷은, <초록별>의 설정을 상상해서 여기저기 그리고 글씨까지 군데군데 

써놓은 페이지를 찍은 것인데요... 


당시 제가 생각했던 <초록별>은 지구와 비슷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별이고, 자연 환경도 많이 다르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강물 = 소금물에 가까워서 먹을 수 있는 게 해초, 오징어, 조개 정도였고 

곡식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라는 세계관을 설정했던 거였죠. 


39_green_sketch.jpg


이 그림은 바로 그 다음 내용을 스케치했던 것인데, 오른쪽 위에 뭔가 빽빽하게 보이는 건 

메밀입니다... (어릴 땐 또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이삭을 참 빽빽하게도 그렸었군요....) 

(한국 기준으로 볼 때는 쌀이 없는 곳이죠.) 음식이 워낙 한정되어 있으니... 

저기 등장하는 깡마른 여인들이 저마다 다른데 가서 살고 싶다고 수군거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40_green_sketch.jpg

   

그래서 <초록별> 여인들이 염력을 이용해서 우주 공간 이동하고... 마침내 지구 대기권까지 

오는 사람도 있었다는 설정이었죠. 사각 컷을 나누어 만화처럼 그렸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가상의 <초록별>인지, 현재의 지구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서툰 그림 속 내용을 다시 보고 나니...

문제에 맞서기 보다는 다른 <완전한> 곳으로 도피하려고 했던 정신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제 자신을 한동안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좀더 빨리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런 심리로 일에 몰두하며 망설였던 건 아닌가 하고요... 조금은 부끄러웠네요. 


42_big_cart.jpg


스케치북은 추억의 물건으로 분류해 두고, 붙박이장 속 물건들을 마저 꺼냈습니다. 

윗칸에는 이불과 방석, 보자기들을 남겨두고... 아래칸에 있던 책 상자와 카세트테이프 가방 등등을 모두 끄집어냈는데, 바닥의 반을 채우고 누워있던 대형 여행가방을 발견하고 한 컷! 찍었습니다. 


일단 생긴 것만 해도 요즘 나오는 모양은 아니죠?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20여년 전에 해외에 장기간 나가계실 때 사용하셨던 

여행 가방이었다고 합니다. 덜덜덜... 


이 가방 안에는, 정말 의외의 물건이 들어있었습니다. 

워낙 크다 보니 부피가 풍성한(?) 것을 넣었는지, 처음에는 치렁치렁한 레이스 

비슷한 것이 보여서... 사실 엉뚱한 상상을 좀 했습니다. 

‘설마 옛날 웨딩드레스를 기념으로 여기다 넣어두신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아니었습니다. 여름용 레이스 커튼이 여러 종류 들어있었죠. 

그리고... 오래된 함석 상자가 묵직하게 두 개 낑겨 있었는데.... 

이거 안 열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집안의 족보가 구 버전/신 버전으로 있었고 

부모님 결혼식 때 방명록이 들어있었거든요... 


족보는 사람이 자주 보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 상징성은 중요하잖아요?

그러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나온 상황은 참... ^^;;; 

새삼스럽게 이참에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명록은 부모님께 돌려드렸습니다.) 


43_finish.jpg


한껏 비우고 난 왼쪽 붙박이장 내부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이 안에 이불과 가방들을 잠시 넣어두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내일부터 다음 단계로 넘어가 책/서류들을 일괄 정리를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가방들을 저 대형 가방에 최대한 넣어서 장 속에 임시 보관해두는 게 나을 듯해서 말이죠. 


그럼, 책/서류 정리를 시도한 뒤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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