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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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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s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7 14:21
최근연재일 :
2021.05.08 19:46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211
추천수 :
169
글자수 :
13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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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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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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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1화 용서받지 못할 자

DUMMY

평범한 농부 먼부눈.

그가 암흑교단의 손을 잡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양교의 사제들은 그의 신분이 낮다며 교황청은 물론이오 그것이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사제단의 멸시.

천민이라는 위치.


사제에게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내를 지켜봐야만 했던 먼부눈.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손을 내민 건 암흑교단의 이름 모를 사제였다.


‘주인님께 복종하면 아내의 병을 고칠 수 있다.’


눈이 안 돌아가는 게 이상한 거지.

그날로 암흑교단의 사제를 따라 주인님께로 간 먼부눈.

사제는 그때 딱 한 번, 주인님이라는 검은 형체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태양신의 사제들이 주신의 이름을 매번 부르짖는 것처럼, 먼부눈도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계속해서 그 이름을 되뇌었다고 한다.

질병의 악마 수칸에게 아내를 낫게 해달라고.


몸이 불편한 아내를 끌고 악마에게 갔을 때, 수칸은 먼부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내를 치료하고 싶은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검은 형체가 아내의 몸을 감싸고...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인 것도 모른 채 먼부눈은 그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수많은 천민, 노예들이 그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암흑교단에게 손을 뻗었다.

그들은 그것이 독 사과인지도 모른 채 그저 눈앞의 배고픔만을 생각하며 사과를 베어 물었다.


악마에게 도움을 받아 건강한 신체를 찾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국 내의 천민과 노예들로부터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이것은 늘상 있는 일이기에 제국 내의 시민들은 그것을 한때 지나가는 유행병으로만 치부했다.


안일한 판단.

누구 하나라도 암흑교단과 관계되어 있단 것을 알았다면 이 정도까지 오진 않았을 것을.


천민에게서 평민에게로, 평민에게서 귀족에게로 점점 그 질병이 옮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병의 원인을 그들에게로 돌렸다.

죄 없는 노예와 천민.


곰팡이 피고 쥐가 돌아다니는 허름한 잠자리조차 빼앗겨버린 채, 그들은 거리에 숨어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들이 유일하게 안식처로 삼은 곳.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염병을 퍼트린 수칸이 손을 내밀었다.


의식행사로 모여든 이들에게 증상이 심한 자의 질병을 거두고 따듯한 손길이 되어준 암흑교단.

그들에게는 암흑교단이 태양신의 사제들보다 더 따듯했을 것이다.


“이런 쓰레기 새끼가...”


계획적이다.

교묘하기까지 하다.

제국의 눈에 들키지도 않은 채, 그렇게 무려 3년을 보냈다고 한다.


전생의 동료였던 사제도 수칸의 이런 치밀함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마왕의 군단장이라고 불렸던 7대 악마.

그중에서 제일 약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제일 까다로운 동료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때보다도 더 악랄해진 수법.

수칸이 살아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지만...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다른 악마와 다른 점.

서서히 스며들어 내부부터 조금씩 갉아먹어 끝내 원하는 것을 얻고 마는.

그것이 이 짓거리가 수칸이 한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만들었다.


“알고 있는 교단의 인원은 몇 명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해! 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생겼다!”

“반!”


반의 처음 보는 모습.

목의 핏줄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당장이라도 마법을 쓸 듯이 움직이는 반을 아이반이 막아섰다.


“환자입니다. 진정하세요!”

“환자? 니 눈엔 저 새끼가 환자로 보여?”

“반! 당신을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전혀 반 답지 않습니다!”


아이반의 목소리에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 니가 뭘 알아. 나에 대해 뭘 아는데 내가 아니라는 거지? 제국이 더러운 악마가 손을 뻗게 만든 원인이야. 저 지경이 되도록! 죽어도 구원받지 못할!”


질병의 악마.

그의 곁에서 지속적으로 마기의 노출된 자가 겪는 변화.

불태워버렸던 예배당에서도 저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먼부눈이 저 지경이 된 것은 그가 얼마나 수칸에게 충성을 바쳤는지 알게 하는 증거였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아이반의 말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지나간 것.

지금 이 사단이 난 것을 지나간 것이라고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인가?


“살려 주십시요! 아는 건 전부 말하겠습니다! 저는 버림받았어요! 그래서 태양신의 사제가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자가 이렇게까지 역겨웠던 적이 있었나?

자기 목숨만을 위해 남들까지 암흑교단의 마수에 물들게 했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라니.


“마지막 기회다. 아는 것을 전부 불어라.”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되물었다.

마음 같아선 죽을 때까지 고문하고 영혼을 가둬 영원히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


어떻게 없앤 뿌리인데.

그것을 다시 퍼트리게 하다니.


아이반이 막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전생의 동료가 겹쳐 보이지 않았더라면.

이 타오르는 분노를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을 것이다.


*


일단 치료부터 하자는 아이반의 말을 나는 단칼에 잘라냈다.

살 가치가 있는 놈인가.

이런 사태를 만들어놓고도.


그것이 아니라면 저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다.

전생에 쌓은 수고를 헛고생으로 만들고 그 더러운 뿌리에 양분을 쥐어준 자.


먼부눈이 저 지경이 되도록 수칸의 수발을 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일련의 이야기들.

뒷부분의 내용을 들어보자 화풀이로 죽여버릴 놈은 아니었다.


먼부눈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은 사람들에게서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라고 말했다.


“제겐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지금은 교황청의 중사제가 되었지요.”


교황청의 중사제.

그의 나이로 미루어봤을 때, 친구라는 자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친구가 1년 전 제게 찾아왔습니다. 잊지 않고서.”


천민과 교황청의 중사제.

누가 봐도 친구라고 하기엔 어마어마한 직위의 차이가 있었다.

아는 척도 하지 않을 사이임에도 친절하게 다가와 준 먼부눈의 친구.


“저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다 말해줬고 수칸이 악마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1년.

교황청 직속 중사제에게 악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시간.


“친구 녀석이 신성력의 힘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아까 마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했습니다. 죽어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수칸에게 목숨을 구걸했나?”

“그건 아닙니다! 친구 녀석은 제게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요.”


책임.

이 사태를 만든 원흉이니 책임을 져야지.


“그래서 첩자가 되었습니다. 내부 상황을 전달해달라고... 태양신의 사제들이 움직일 거라고...”


그것이 벌써 1년 전.


“이런 쓰레기들...”


암흑교단도 태양신의 사제들도.

전부 쓰레기들뿐이다.

제국이 악마에게 좀먹을 동안 그들은 대체 뭘 한 거지.

신의 사제들이라는 놈들이 제국과 정치질하기에 바빠 신경도 쓰지 않은 것인가?


“적어도 책임은 지고 싶습니다. 저의 아내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게...”

“...”

“반. 이제 치료해도 되겠습니까?”


아이반이 돌려 물었다.

이 자를 살려주어도 될 만한 자인가.

나는 말 없이 한 발자국 물러나 주었다.


“조금 아플 겁니다. 제가 비록 중사제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아이반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에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것이 사제의 참모습 아닌가.

전생의 동료였던 녀석처럼... 묘하게 겹쳐보이는 아이반의 모습.


그때도 그런 생각이었다.


‘세상에 너 같은 사제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신을 모시는 것뿐. 그들을 미워하지 마.’


사제단을 욕할 때마다 녀석에게 들었던 말.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욕하는데도 녀석은 오히려 나를 달래면서 말했다.


아이반과 녀석의 다른 점이라면...

녀석은 무조건적인 선의를 베풀려고 했다.

독약인 줄 알면서도 대신 마시는가 하면, 위험한 일임에도 망설임 없이 나선다.

그것이 사제의 도리라면서.


반면 아이반에겐 녀석에게 없던 모습이 있었다.

약자를 대하는 방식은 같았지만 살려둘 가치가 없다면 내버려 둘 사람.

그것이 녀석과 아이반의 차이점이었다.


만약 먼부눈이 나 몰라라 그저 목숨을 구걸했다면...

아이반도 더 이상 내 앞을 막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치료해도 되겠냐는 말 하나로도 알 수 있었다.


제국을 좀먹게 한 죄,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기회.

두 가지를 저울에 놓고 결정을 기다려줬다.

만약 거절했다면 방관할 것이고, 물러났다면 지금처럼 치료해줬을 것이다.


“아아...”


땅 속에 박힌 먼부눈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댄 아이반.

그의 손에 깃든 신성력이 더러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중사제도 못했던 것을...”


황홀한 감각에 꺼내든 말.


그러고 보니 그렇다.

교황청의 중사제나 되는 인물도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전이된 질병의 마기.

그것이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 의문이 든다.

왜지?


먼부눈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기.

그 자리를 메꾸려는 듯 감싸는 신성력.

어둠과 빛줄기가 엉켜붙어 아이반의 손과 먼부눈의 얼굴을 순환했다.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마기가 흩어지고 있는 게 아닌 아이반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반인반마.

그것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전이된 마기를 치료할 수 있는 이유였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먼부눈.”

“예. 사제님...”

“당신은 더 이상 그 악마의 편이 아닌데도 어째서 주인님이라 부르고 있습니까?”

“...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인을 욕보이면...”


먼부눈은 아직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마기를 거둬들이면 당신은 자유입니다.”

“흑... 감사합니다. 사제님!”


그가 따듯한 손길에 감동한 듯 눈물을 보였다.


“반. 저기.”


치료과정을 지켜보던 반.

하트가 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자욱하게 인 흙먼지.

멀리서부터 백마를 탄 태양신의 사제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멈춰라!”

“뭐야?”


멀리서부터 울리는 목소리.

신성력이 담긴 힘 있는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아이반은 그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부눈의 치료에 집중했다.


“멈춰라!”


그것에 분노한 듯 속도를 내는 사제 무리.

그들이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아이반도 먼부눈에게서 손을 거두었다.


“재들. 공격할 생각인가 본데?”


하트의 말에 자세히 보니 달려오는 사제무리들이...

검을 빼 들었다.


“어떻게 하지?”

“미친놈들인가?”


멈추라더니 다짜고짜 공격하겠다고?


“하트. 상황 봐서 싸울 준비해.”“안 그래도 그럴려고 했어.”


앉은자리에서 대놓고 오는 칼침을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속도를 내며 다가오다가 20보쯤 되는 거리에서 멈춰 섰다.


“악마에게 구원의 손을 뻗는 자가 누구인가.”

“안녕하십니까. 중사제님. 사제 아이반입니다.”

“아이반?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직속이 아닙니다.”

“그렇군.”


백마에서 내린 사제.

빼어들은 검을 다시 거두지 않은 채 다가와 입을 열었다.


“태양신의 중사제. 르나르다. 자네들은?”

“반. 하트. 선발 용사다.”

“건방진... 사제. 저 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유가 무엇인가.”


반말에 반말로 대응했을 뿐인데 건방지다는 말을 들었다.

그 태도가 권위적이고 어이없었지만 반은 조용히 사태를 방관했다.

사제들의 일은 사제들이 해결할 것이니.


“저는 사제로서...”

“오! 친구여! 이제 왔는가!”


친구?

먼부눈이 말했던 중사제가 르나르였나?


친구란 말에 고개를 돌린 르나르.

그가 검을 늘어트린 채 땅에 박힌 먼부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쓸모없는 것.”


르나르가 가볍게 휘두른 검.

그 궤적을 따라 먼부눈의 목이 잘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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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고대 유적의 관문. 21.05.07 27 2 12쪽
22 22화. 지금은 서로를 비켜가지만 21.05.06 56 4 12쪽
» 21화 용서받지 못할 자 21.05.05 48 5 12쪽
20 20화 떠올리기 싫은 이름 21.05.04 51 5 11쪽
19 19화 마법사와 신성력. 21.05.03 48 5 11쪽
18 18화 위기의 순간. 21.05.02 60 5 11쪽
17 17화 어긋난 계획. 21.05.01 61 4 11쪽
16 16화 의식행사 잠입. 21.04.30 86 5 13쪽
15 15화 잠입 준비. 21.04.29 103 4 12쪽
14 14화 반인반마 21.04.28 95 7 11쪽
13 13화 암흑교단의 꼬리 21.04.27 126 4 13쪽
12 12화 정화 작업. 21.04.26 137 5 10쪽
11 11화 까마귀? 21.04.25 145 5 12쪽
10 10화 요정의 변이 21.04.24 153 7 12쪽
9 9화 마기로 인한 변이 21.04.23 203 5 14쪽
8 8화 옛것 21.04.22 147 7 15쪽
7 7화 전장정리 21.04.21 18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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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하트의 비밀 21.04.19 243 11 14쪽
4 4화 실력발휘 21.04.18 286 11 13쪽
3 3화 동료 21.04.17 390 13 11쪽
2 2화. 무능한 마탑 마법사들 중에서. 21.04.17 484 14 11쪽
1 1화. 결함의 극복. 21.04.17 700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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