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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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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s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7 14:21
최근연재일 :
2021.05.08 19:46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215
추천수 :
169
글자수 :
130,087

작성
21.04.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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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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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전장정리

DUMMY

반대쪽에 있었기에 하트가 내 발걸음을 맞춰주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동쪽 외곽 성벽.

전장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두머리를 처리한 시각과 비슷한 시간에 이곳도 정리가 된 듯하다.


오우거의시체 열 둘...

굳이 우두머리를 죽이지 않았어도 우리가 빠르게 합류했다면 전부 정리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이었나보다.


“하필 이럴 때...”


보고를 하러 가는 길.

저 멀리서 지휘권자로 보이는 중년의 기사가 보였다.

옆에서 피해 상황을 보고하는 부하의 입이 열릴 때마다 그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간다.

잘못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모습.

하트는 거리낌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자네는?”

“서쪽 상황 정리하고 보고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왔습니다. 하트입니다.”

“아... 이번에 용사로 선발된?”

“예.”


그의 눈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향했다.


“같이 선발된 마법사입니다.”

“아... 그렇군요.”


깊게 내쉰 한숨.

그가 전장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상황이 말이 아니다. 황실 소속도 아닌데 전투에 참여해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기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 어려운 시기에 돕고 살아야지. 그래서 서쪽 상황은 어땠나?”

“오우거 두...”

“부단장!”


하트가 막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오셨습니까.”


하트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예의를 차려 인사했다.


“상황 보고해!”

“예. 오우거 총 18마리 중 13마리 사살했고...”


열셋? 내가 본 건 열두 마리였는데...

아마도 한 마리는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야 밖에 있는 듯했다.


“이제 막 서쪽 성벽에서 오우거를처치한 기사와 마법사에게 상황 설명을 들으려던...”

“얘네?”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묻는다.


“안녕하십니까 단장님. 하트입니다.”

“소속이 어디지?”

“레온 백작 기사단 소속 기수입니다.”

“기수?”


기수라고 하면 오러를 다루지 못하는 자들, 즉 평기사들을 지휘하는 계급.

지금으로 따지자면 군대의 부소대장 같은 중사의 위치다.

기수라는 말에 그가 불편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소속도 아니네?”

“예. 소집령이 있다고 하여 도움 될 것이 있을까 하고...”

“에이 씨발. 평기사 주제에.”


갑자기 날아든 욕설.

하트가 잠시 당황한 듯 눈이 커졌다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름대로 감정을 숨기려 노력한 듯했다.


“잠깐... 이제 보니 그놈들이구만? 이번에 선발됐다던.”

“예.”

“그래서 서쪽은 두 명이서 처리했다고? 오우거 한 마리라도 잡았나?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기사단 공로를 가로채려다 거짓말하면 국법으로 처리한다.”


깔보고 있다.

완전히.


“평기사라고 무시할 거면서 왜 물어보지?”

“뭐?”


갑자기 끼어든 반.

그에게는 처음 받아보는 취급이었다.

마법사와 기사는 서로 계급 간 차이가 있어도 존중한다.

그것이 부단장이라고 불렀던 남자가 하트와 나를 대할 때 당연하게 나타났다.

같은 기사에겐 하대를, 마법사인 나에겐 존대를.

그런데 단장이라는 놈이...


“니네 소속한테 들어도 충분하겠지? 부단장님. 일손이 부족한 것 같은데 저희가 좀 도와도 되겠습니까?”


화가 났다.

단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휘하에 부하들이 죽었는데도 어지러운 전장을 지휘하기는커녕 공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게.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죠. 특히 마법사라고 하시면.”

“알겠습니다.”


나는 단장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당연히...


“멈춰 이 새끼야.”

“뭐?”

“어디 햇병아리 마법사 새끼가 단장하고 맞먹으려 들어? 황실 기사단 단장이라고. 황실!”

“그게 어쨌다고.”

“이 새끼가오우거한테 한 방 맞고 정신 못 차리지?”


인간이 아닌 놈에게 인간으로 대접해 줄 이유는 없다.

저런 타입.

한국에서 평범한 청년으로 국방의 의무를 질 때도 만나본 적 있으니까.

그때는 아무런 빽도 없고, 조용히 전역하는 게 목표였으니 부딪힐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세계로 떨어져 동료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세 번째 삶을 사는 지금.

믿고 있는 구석도 있었고, 이런 식으로 부딪혀야 좋다는 걸 알고 있다.

가진 게 많은 놈일수록 잃는 것을 두려워하니까.


“당신이야말로 오다가 뒤뚱대면서 어디 머리한대 맞은 거 아닌가? 난 선발 용사다.”

“그게 황실을 모욕하는 이유인가!”

“황실? 당신에게 하는 말이 황실을 모욕하는 말이라면 당신은 황제라도 되나?”

“뭐?”


황제라는 말에 그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마치 본인이 황실의 대표라는 듯이 말하네? 그래서 선발 용사도 하대하나?”


분위기가 넘어왔다.

나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단장을 노려봤다.


“그래. 아까 국법 이야기했지? 국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선발 용사가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도 알 텐데? 당신이야말로 황제를 모독하는 짓을 하고 있잖아?”

“으...”


선발 용사.

이름만 번지르르한 것에 불과했다.

시대가 변하고, 인식이 변하면서 지금에 와서는 이름만 번지르르 한 것이 아니게 됐지만.


명목 상 선발 용사는 황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비록 마왕의 장난감으로 이리저리 혹사당해 죽을 운명이지만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처참하게 죽거나 살아돌아온들 미쳐버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선발용사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했다.


선발용사는 말 그대로 애매한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실력과 잠재력이 보이나 그것이 애매한 이들.

그 애매함 덕분에 마왕의 손에 놀아나다 죽어 줄 사람.

말 그대로 시간끌기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람들이다.


마탑에서 마법을 완성했을 경우엔 선발용사의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위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발용사에 뽑힐 때마다 좌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재능이 애매하다고 판단해버린 윗 사람을 증오하면서.

그 덕분에 생긴 것이 선발 용사에 대한 국법이다.


황실을 대표한다는 명예.

나아가 대륙을 구할 위대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허상.

그것만으로도 치기어린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기엔 충분했다.

명예 하나만으로 젊은이들이 선발용사로서 마왕의 장난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줄 좋은 미끼가 되었다.


당연히 명목상 황실을 대표하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귀족들과 사람들의 대접도 좋은 편이다.

이들이 죽어나가기에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니까.


“공로를 뺏어? 정신차려. 저기 죽어가는 부하들은 안보이고 실적 쌓을 생각만하나? 황실을 수호하는 기사단장이 황실을 모욕하는 꼴이라니...”

“...”


그에겐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항상 존경받고 윗자리에 위치했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한참 어린 햇병아리가 대드는 꼴이니.

반의 말이 전부 맞는 말이라 그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사단장을 보며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전장을 정리하는 게 이런 쓰레기를 상대할 시간을 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니까.


*


“어제 상황은 당시 근무였던 경비병에게 들었네.”


다음 날.

전장을 정리한 뒤 쉬고 있을 때 부단장이 우리를 찾아왔다.

여관을 통째로 빌려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공간에서의 식사.

어제와는 다르게 인자한 미소를 품은 부단장.

그때의 일로 조금은 편해진 듯 나를 대하던 딱딱한 말투가 부드럽게 변해있었다.

그가 점심을 대접하면서 입을 열었다.


“고맙네. 같은 소속이 아니면 잘 도와주지도 않는데.”


기사와 마법사는 작위는 없지만 귀족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다만 취급 받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이들이 있어 문제일 뿐이지.


“아닙니다. 선발용사니 황실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그리고 자네. 놀랐네.”


그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도 많은 마법사들을 봤지만... 의외더군. 국법에 대해서도 빠삭한 듯 하고.”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바뀐 것들은 있었지만 이미 두 번째 삶이다.

이 세계에서 대마법사로 살았던 시절에 새로운 지식을 덧붙이면 그만.

다만 나도 바뀐 국법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젊은이가 없었으니 의외라는 거지. 누가 황실 기사단장 앞에서 그렇게 말하겠는가? 여러모로 도와준 것도 있는데...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그런 쓰레기 밑에서 일하고 있는 부단장님이 고생이죠.”


부단장이 쓰레기라는 말에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런 추태를 보였군.”

“이 친구는 몰라도 저는 입이 무겁습니다.”

“뭐라는거야? 나도 입 무겁거든?”


자신의 상사를 욕하는 말을 듣고 웃었다는게 소문이 나면 좋을 게 없다.

추태에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안심시켜주자 그가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마법사 답지 않네. 젊은이지만 그 안에는 노장이 보이는 것 같아.”

“애늙은이라는 말이시죠?”

“뭐? 크하하하!”


삼단 콤보에 결국 부단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인재가 선발용사라니... 참 아쉽구만. 아무리 마법을...”


그가 말을 삼켰다.

듣는 이가 불쾌할 수 있는 실수.


“괜찮습니다. 이제 겨우 마법을 쓸 수 있게 돼서요.”

“아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한동안 잡담이 오간 뒤, 식사를 마칠 때 쯤 부단장이 있던 동쪽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황제는 선발식을 치루고 난 뒤, 근위대와 황실 마법사들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나타난 오우거들.

황실 소속 마법사가 없었기에 어제 하트가 말해준대로 인해전술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이 오우거를 베면 평기사들이 죽을 각오로 달라붙어 불로 지지는.


빈집털이가 되버린 상황에서 서쪽이 뚫리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었다.

게다가 서쪽은 우두머리가 있었던 터라 그 피해가 더 클 뻔 했고.


“단장님이 반대하겠지만 폐하께서는 무지하신 분이 아니니 곧 좋은 소식을 들고 올 걸세. 내 생각에는 황실창고를 개방하실 것 같은데...”

“황실창고!”


그의 말에 눈이 번뜩였다.

황실창고.

귀한 아티팩트들이 수두룩할 말 그대로 보물창고.

제대로 된 룬어 하나만 얻을 수 있어도 만족할 만한 보상이다.

아니 차고 넘칠 수도 있다.


“역시 장비가 좋아야 뭐든 하지 않겠나? 선발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공까지 세웠으니 당연하지. 가치 있는 일에 가치 있는 보상이 따르는 법이니까.”

“아직 예정이란 뜻이지요?”

“자네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안된다고 하면 다시 한번 요청하겠네.”


-끼이익!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관 밖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침 전서구가 도착했군.”


그가 문을 열고 팔에 매 한 마리를 앉혔다.

다리에 묶인 종이를 펼쳐 내용을 읽던 부단장이 환하게 웃으며 소식을 전했다.


“어떤 물건을 챙길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엇이든지 하나는 가져가도 된다고 승인하셨네. 하트 자네도 무기가 없어 보이던데 잘됐군.”

“감사합니다!”


부단장이 자신을 챙겨주는 것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하트.

그녀가 어떤 이유에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황실창고라면 그녀에게 딱 맞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도 잡담을 이어가며 식사자리를 끝마쳤다.


잘된 일이다.

비록 피해가 있었지만 오우거를 잡았고 보상으로 황실창고의 물건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 뿐만 아니라 하트까지도.

내일 황실창고의 문이 열린다.

부단장이 떠난 뒤 둘은 어떤 물건을 가져올 수 있을지 각자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황실창고에서 익숙한 물건을 발견하고 찝찝했던 사건이 발목을 잡을 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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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어긋난 계획. 21.05.01 6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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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잠입 준비. 21.04.29 103 4 12쪽
14 14화 반인반마 21.04.28 95 7 11쪽
13 13화 암흑교단의 꼬리 21.04.27 12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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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요정의 변이 21.04.24 153 7 12쪽
9 9화 마기로 인한 변이 21.04.23 203 5 14쪽
8 8화 옛것 21.04.22 147 7 15쪽
» 7화 전장정리 21.04.21 183 10 12쪽
6 6화 오우거 +1 21.04.20 193 11 12쪽
5 5화 하트의 비밀 21.04.19 243 11 14쪽
4 4화 실력발휘 21.04.18 286 11 13쪽
3 3화 동료 21.04.17 390 13 11쪽
2 2화. 무능한 마탑 마법사들 중에서. 21.04.17 485 14 11쪽
1 1화. 결함의 극복. 21.04.17 701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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