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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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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s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7 14:21
최근연재일 :
2021.05.08 19:46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204
추천수 :
169
글자수 :
130,087

작성
21.04.17 21:50
조회
389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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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화 동료

DUMMY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도와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마탑에서 나왔으니.

필요한 것은 모두 챙겨두었던 터라 짐을 싸고 제국으로 가기 위한 준비는 금방 마쳤다.


‘끝까지 접근하지 않을 생각인가?’


내가 유일하게 신경 쓰고 있는 점은 그것뿐이었다.

편지를 두고 간 사람이 언제쯤 접근할 것인가.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협박을 하려고, 혹은 응원을 하려고?

편지의 의도는 그것을 쓴 사람만이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


마탑을 나와 제국으로 가는 마차에 올라탈 때까지.

그 누구도 내게 접근하는 일이 없었다.


“기다리시는 분이 있습니까?”


마차에 한쪽 발을 걸친 채, 마탑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마부가 다가왔다.


“아뇨... 아닙니다.”

“편하게 대해주십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마부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존대에 당황했지만 금세 예의를 차렸다.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이것은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도 고칠 수 없었던 부분이다.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의 존대.

대마법사의 육체로 살아갔을 때 이런 부분 때문에 누군가는 사제로 오해하곤 했지.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한다면서.


멀리서 뛰어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웃음을 흘리고 나니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뭔가 원하는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나타났겠지.


언젠가는 마주칠 사람.

반의 몸으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관심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걸까?

편지를 쓴 자와는 언젠가 필요에 의해서 마주칠 것이다.

나는 그 생각과 함께 마차에 올라 몸을 맡겼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쇼. 이랴!”


마부의 말과 함께 마차가 제국으로 출발했다.


*


“우리는 마왕에게 많은 세월을 시달렸다.”


황제의 근엄한 목소리가 홀 내부에 울려 퍼진다.


“젊고, 용감한 도전자들이 마왕을 처리하려 했으나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주변에 모인 이들은 황제의 근엄한 목소리에도 그저 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익숙한 일을 넘어 지겨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일을 마지못해 하는 사람처럼.

황제는 그저 준비된 대사를 읊기만 할 뿐이었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열정이 새로운 도전자에게 깃들기를!”


황제가 검을 들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내 어깨에 얹고 바라본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을 거두고 내 옆에 있던 기사에게로 향했다.


은빛의 갑옷을 입은 기사.

이번 여정을 함께 할 사람이자 제국에서 선발한 기사다.

화려하기보단 기능을 강조한 듯 어떤 문양도 새기지 않은 단순한 모양새.

견갑에 황제의 검이 내려앉자 그 기사도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두 사람의 여정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예식은 그렇게 간단히 끝을 맺었다.

정식으로 마왕에게 도전하는 용사임을 공표하는 행사.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민의 시선이 느껴진다.


본인 대신 마왕에게 대접 당할 기사와 마법사.

저 자리에 있는 게 내가 아닌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불쌍하다 느끼는 시선.

그중 한 시선이 천천히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반갑습니다 반. 그레그 데 알카스입니다.”

“예.”


깔끔한 차림새를 보아하니 귀족의 자제인 듯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음...?’


마탑에서 불을 훔치고 난 뒤, 겪은 이상한 감각.

내 마나가 본능적으로 각인할 룬어에 반응하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귀족의 오른손, 검지에 있는 반지로 향했다.


‘룬어다.’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반지에 새겨진 각인.

그 감각을 자세히 느껴보자 그것이 무엇과 관계된 룬어인지 알아차렸다.


‘실드!’


가장 기초가 되는 방어마법이 그의 반지에 새겨져 있었다.


“마탑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마법사는 존재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에 귀족과 동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레고리 교수님이 뭔가 전해주신 게 있지 않으십니까?”


그레고리 교수?

마탑 원로중 한 명이다.


“아뇨. 아무것도.”

“아... 알겠습니다. 당신의 여정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간단한 질문과 함께 돌아선 알카스.

싱거운 귀족이다.


그 마저 자리를 벗어나자 거대한 홀 안에는 나와 은빛의 기사 둘 만이 남아있었다.


“통성명이라도 하시죠. 앞으로 같이 다녀야 할 텐데.”

“반. 맞지? 우리 사이에?”


음?

온몸을 감싸고 있던 갑옷 때문에 남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정작 갑옷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여성의 중저음이었다.


“나야 나. 하트. 기억 안 나?”


투구를 벗자 검은 단발의 머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기사답게 살아있는 눈빛, 뚜렷한 이목구비.

마치 얼어붙은 장미가 생각나는 외모의 여자다.


“하트?”

“그래. 임마. 하트.”


누구지.

마탑에서 17년간 살면서 여기사와 마주친 적이 있던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과 함께 생각에 잠기자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음침한 모습은 어디 안 가고 그대로네. 따먹고 싶게.”


순간 사례들릴 뻔했다.

이 여자가 뭐라고? 따...뭐?

“정말 기억 못하는 건가? 좀 실망인데.”

“나를 본 적이 있다고?”


처음이다.

당황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존대가 아닌 말이 튀어나왔다.

급히 말을 바꿔보려 했지만 어차피 이 여자도 편하게 대할 심산인 듯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잡생각을 떨쳐내고 나니 그녀가 말한 ‘기억’에 대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나를 본 적이 있는가.


“그래. 마탑에서 혼자 책만 들여다보던 책벌레 반.”


아무래도 나를 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잘 자랐네. 4년 만이지만.”


4년 만이다.

4년 전?

아무리 기억을 꺼내 보려 해도 생각나질 않는다.


“날 어떻게 알지?”

“음... 뭐랄까 나에겐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지? 성교육 선생님.”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볼 말을 해댄다.

성교육 선생님이라고? 반의 몸으로 딱히 여자와 접촉한 적 없는 나에게?


“이름은 알고 있어도 뭔가 다른 기억이 섞인 것 같은데?”

“음? 아냐. 넌 나의 성교육 선생님이야.”

“... 난 지금껏 마법에만 몰두해왔다.”

“마법... 못 쓰잖아?”


마법을 못 쓴다는 건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여자는 날 알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오해도 같이.


“누군가에게 성교육을 했던 적도 없고, 성적인 접촉을 해본 적도 없다. 뭔가 오해...”

“아. 선생님보다는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음... 스승? 이라고 해야 하나?”

“스승?”

“그래. 내가 처음 널 본 순간. 그 뭐랄까... 상처 입은 야수라고 해야되나? 그런 느낌이 들었어. 품어주고 싶은 마음? 난 그런 게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감정인 줄 알았지.”


뭔가 이상한 기사가 동료가 된 것 같다.

그녀는 내 모습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15살 소녀에게 그 감정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단다... 그리고 나서 성에 대해 눈을 떴지. 그제서야 알겠더라고. 아... 이것이 욕정이라는 거구나.”


또다시 사레들릴 뻔했다.

욕정이라니.


“언젠가 한 번쯤 합을 맞춰보고 싶었어. 설마 내가 선발될 때 반이 동료가 될 줄은 몰랐지만.”

“합? 본인은 선발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군.”


용사 선발에 뽑힐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말하는 하트.

그러나 그녀는 내 대화에 포인트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음... 아! 합은 침대에서의 합이지. 전투의 합이 아니라.”

“...”


그녀가 주먹을 쥔 손을 비스듬히 세워 손바닥을 두어 번 가볍게 맞댄다.


“어때 이왕 동료가 된 겸. 힘들 때마다 서로 등을 내줘야 하는데 이참에 이 합도 저 합도 한번 맞춰봐야 하지 않겠어?”

“... 사양한다.”

“어차피 선발된 이상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몸인데? 아꼈다가 똥 된다?”

“아끼는 게 아니라... 됐다.”


신체 나이는 17살이었지만 정신연령은 중년을 지나 노년에 가까운 상태다.

혈기왕성한 몸이라 쉽게 반응할 수도 있었지만 마법사가 된 이후 나는 더 이상 성욕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서클에 상처를 입었던 시절, 새어나가는 마나가 상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번 생은... 마법에 몰두하느라 잊기도 했지만 마나 방출 불능이라는 증상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고, 굳이 욕구에 휘둘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그때도 느꼈지만 참 희안한 놈이야...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진 않는데.”


그녀의 말대로 어디 가서 꿀릴만한 외모는 아니었다.

갑옷에 가려져 있었지만, 외모와 말에서 유추하건데 몸매 또한 꿀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쉽게 됐네. 그럼 아쉬운 대로... 아까 그 귀족이나 꼬셔볼까?”

“... 알카스?”


그녀가 내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거 나쁘지 않고... 귀족 자제면 쓸 만하지 않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어떨 것 같아? 귀족이니 하인도 있을거고...”

“알아서 판단해라.”


알카스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그가 끼고 있던 반지의 룬어가 생각났다.

불을 훔친 뒤 새롭게 얻을 수 있는 룬어.

제국의 대도시인 만큼 다양한 상점에서 그것과 비슷한 것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그래? 그럼 내일 물고래 상점에서 만나자. 어딘지 알지?”


그녀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아쉽게도 상점에서 성과를 얻진 못했다.

처음 불을 얻었을 때처럼 룬어의 각인이 명확한 물건을 ...가령 알카스의 반지처럼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찾을 순 없었다.

귀한 물건인 만큼 상점에서 거래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심 기대했던 터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찍 왔네?”


물고래 상점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나타났다.

나는 시선을 한 번 주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자.”

“? ...!”


그녀는 다가오자마자 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보자마자 나는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알카스의 반지.

실드의 룬어가 새겨진 반지가 그녀의 손바닥에 얹혀져있었다.


“가지고 싶어 했잖아? 이거.”

“... 이걸 어떻게?”

“고맙지? 섬세하지? 크... 동료를 위하는 이 마음!”


헛소리하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뒤로 한 채 손바닥에 놓인 반지를 들어 올렸다.

확실히 알카스가 끼고 있던 반지다.

그때의 기묘한 룬어의 감각까지 그대로인.


“마법을 못 쓰면 이런 아티팩트가 필요할 것 같아서. 처음 봤을 때도 반지에 시선이 머물렀잖아?”

“... 고맙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룬어가 새겨져 있는 물건.

그리고 두 번째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법 실드.


“그럼 한 판?”

“거절하지.”

“쳇.”


이 여자... 이상한 것만 빼면 은근히 쓸모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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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하트의 비밀 21.04.19 243 11 14쪽
4 4화 실력발휘 21.04.18 285 11 13쪽
» 3화 동료 21.04.17 390 13 11쪽
2 2화. 무능한 마탑 마법사들 중에서. 21.04.17 484 14 11쪽
1 1화. 결함의 극복. 21.04.17 700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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