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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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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s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7 14:21
최근연재일 :
2021.05.08 19:46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213
추천수 :
169
글자수 :
130,087

작성
21.04.17 15:50
조회
700
추천
17
글자
11쪽

1화. 결함의 극복.

DUMMY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통해 후회와 만족을 얻는다.

내 인생 또한 그랬다.

선택으로 인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고, 추억이 되었으며 그것으로 만족감을 얻었다.

선택으로 인해 실패했고, 좌절했으며,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마왕군의 본거지.

전리품으로 장식된 수많은 용사들의 유골이 마왕의 왕좌에 놓여져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몸을 지배하자 허망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결국 나 또한 저 장식품 중 하나가 되겠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봤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동료들.

마왕을 처리하고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을 합친 동료들.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금은 그저 생명을 잃은 시체에 불과했다.


“크흐흐... 재미있었다.”


왕좌에 앉은 마왕의 입에서 짙고 음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재미있었다.

마왕에게 그저 우리들은 한낱 유희 거리에 불과했다.

공격을 허용하고, 발버둥 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던 이들.

그에겐 그저 애완동물의 애교 수준으로 보였나?


죽고 싶지 않았다.

갑작스레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 마법을 배웠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미친 듯이 마법을 연구했다.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마왕에게 있다는 걸 안 순간.

그때부터 나는 이럴 운명이었던 건가?

그저 마왕의 노리개로 전락해 마지막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죽어야만 했던...


동료들이 압도적인 힘 앞에 무릎 꿇고 생명을 잃었을 때.

마왕은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 상대할만한 가치도 없다는 듯.


이제는 혼자 남아버린 채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위태롭게 잡고 있던 나.

마왕은 그런 나의 잔불마저 완벽히 꺼트리기 위해 처음으로 왕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보이는 것이라곤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찬 마왕의 모습. 그의 검은 형체가 한 발자국씩 다가올수록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다.

무기력한 감정은 순식간에 공포에 잡아먹혔다.

나는 그저 식사꺼리로 전락한 피식자의 몸뚱이처럼 바들바들 떨기밖에 할 수 없었다.


마왕이 죽어가는 벌레를 보듯 시선을 내리깔고 그 차가운 손톱이 나의 심장을 관통할 때.


“흐악! ... 허억... 허억...”


죽어가면서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그 지독한 악몽에서 깨워주었다.

식은땀은 이미 침대를 흥건하게 적셨고, 아직도 부족한 듯 뺨을 타고 한두 방울씩 흘러내렸다.

깨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나의 손이 향한 곳은 악몽의 마지막 순간.

마왕의 꿰뚫고 지나간 심장으로 향해있었다.


생생한 악몽을 겪고 난 뒤,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가슴을 확인하자 조금씩 숨소리와 함께 놀란 마음도 진정되고 있었다.


“아... 반... 잠 좀 자자...”


악몽에서 깨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게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투정을 부렸던 녀석이 몸을 뒤척이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후...”


살아있다는 현실에 안도하자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기억은 이렇게 가끔씩 찾아와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구석에서 잠자던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끌어낸다.


가만히 앉아 감정들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엔 2시간이나 남은 상황.

축축한 시트와 찝찝한 식은땀들.

더 이상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살금살금 방문을 닫고 복도로 나오자 룸메이트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닫힌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저러고 말겠지.


나는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밖으로 나왔다.


마탑 기숙사를 빠져나와 공터로 향하는 길.

천천히 걸어가면서 악몽으로 인해 깨어난 기억들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17년 전.

나는 악몽의 내용처럼 동료들과 함께 마왕성에 쳐들어갔고, 처절하게 패배했다.

각자 마왕을 처리하려는 목적은 달랐지만, 그때만큼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수많은 난관들을 힘겹게 헤쳐나가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마수의 왕.

마왕.


우리가 그를 너무 얕봤던 것일까?

아니면 자만했기에 패배했던 것일까?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고, 혼돈의 중심이 된 마왕.

오로지 압도적인 힘 하나로 모든 마수들 위에 군림한.

마왕이라는 타이틀답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상대였다.


나는 마왕이 가지고 있는 혼돈의 힘으로 차원 이동 마법을 완성시켜 지구로 돌아가려 했다.

완벽한 이론에 준비까지.

그저 마왕만 처치하면 아무런 사고 없이 더 이상 마수에게서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 치안 좋은 대한민국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 모든 계획이 무너진 순간.

나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끼고 처음으로 불완전한 마법을 구현했다.

혼돈의 힘이 없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차원 이동 마법.


목표는 처음 마법을 배웠을 때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가장 후회했던 선택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오롯이 지구로 돌아가고자 했던 목표 하나로 스스로를 과로의 불길 속으로 밀어 넣었던 순간.


처음 마나를 느끼고 마법을 사용했을 때, 나는 과도한 마나 사용으로 인해 서클에 상처를 입었다.

그 덕분에 7서클이라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지만, 서클에서 새어나가는 마나로 인해 정상적인 마법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처음 마법을 배웠을 때로 돌아간다면 서클에 무리를 주지 않고 온전한 7서클로 마왕과 대면했을 것이란 후회가 밀려들어 왔다.


마왕이 목숨을 거두기 위해 나에게 다가오던 순간.

나는 마지막 마나를 쥐어짜내 발버둥 쳤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구현했던 불완전한 마법은 아슬아슬하게 성공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마법의 여파로 인해 잃는 것 또한 있었다.


과도하게 마법에 몰두해 서클에 상처를 입어 후회하게 만들었던 과거 대신 미래로 왔고.

상처 입은 서클 대신 충만한 마나의 축복을 받은 몸으로 태어났다.


그것뿐 이었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충만한 마나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축복받은 신체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몸에서 뽑아낸 마나를 외부로 발현시킬 수 없는 결함.

마나 방출 불능.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그야말로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태생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마나량은 태어났을 때부터 상처 입었던 지난 7서클의 육체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마나 방출 불능만 없다면 7살의 몸으로도 고위 마법을 난사할 수 있는 수준의 마나량.


단 하나.

마나 방출 불능만 해결하면 단신으로도 마왕을 짓밟을 수 있는 축복 받은 몸이었다.

그래서 지난 17년간 마탑으로 들어와 어떻게든 이 결함을 고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드디어 연구의 결실을 맺었다.


꽉 쥔 주먹에 검지 하나를 펼쳐 손가락 위로 불씨를 만들어냈다.

라이터와 같은 크기의 불씨가 손가락 위에 위태롭게 흔들거리며 솟아오른다.


“흐...”


손가락에 구현된 마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껏 이것 하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이 깨졌던가.


드디어!

마나 방출 불능이란 결함을 해결해 버렸다.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 지 17년 만에.


파이어볼이라는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 단계가 필요했다.


마나를 불의 속성으로 변형하고, 변환된 에너지를 온전히 가둘 구체 형태의 구속이 이루어져야 하며, 손에서 완성된 불의 구체를 쏘아내기까지.

간단하게 파이어, 볼, 발사의 세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인 마나를 불의 속성으로 변형하는 것을 이루어냈다.


마나 방출 불능의 몸으로 이 간단한 단계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방법들을 찾아다녔다.

시행착오 끝에 방법을 찾아낸 건 마법의 기초가 되는 룬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법진에는 반드시 해당 속성에 필요한 룬어가 그려진다.

주가 되는 속성은 가장 크게,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마법들의 속성은 작게.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진은 크고 작은 속성들과 조화를 일으켜 온전한 마법으로 구현된다.


그 구성의 기초가 되는 룬어를 이용한다면 마나 방출 불능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손에 들려있는 책에 각인된 룬어만 있다면 그것을 매개체로 마법을 구현할 수 있었다.

남들은 지팡이를 들고, 마법이 각인된 완드를 마법 구현의 보조로 삼는 대신 나는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반이 손에 들고 있는 책에 첫 페이지.

빈 페이지에 덩그러니 각인되어 있는 룬어 하나.

방금 전 반이 구현한 파이어의 룬어가 새겨져 있었다.


“흐... 흐흐...”


흐느끼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기뻐서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와 빈 공터에 작게 울렸다.

극한의 희열이 주는 감정이 그의 입에서 이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다른 마법사가 이 사연을 듣는다면 고작 파이어 룬 하나 각인된 것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코웃음 칠 상황이다.

나는 그 웃음에 ‘병신’이라는 말로 대꾸할 것이다.


파이어볼을 구성하는 파이어, 볼, 발사 중 고작 파이어 하나 구현할 수 있는 마법사?

그건 지금껏 마법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무지한 마법사들이나 할 생각이다.


상처 입은 서클로 7서클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마법 이론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이론에 기초해 생각한다면 파이어는 가장 기초인 원소 룬어인만큼 가장 변형이 쉬운 원소 룬어다.


내 마나 전체를 파이어의 크기 하나에 쏟아 붙는다면 제국 하나는 온전히 덮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불이 구현된다.

또한 불이라는 속성에 집중한다면 이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녹여버릴 만큼의 초고열을 뽑아낼 수 있다.


그저 주입식으로 파이어, 볼, 발사 만을 주구장창 연습해 몸에 숙달시킨 마법사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의 영역.

이론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원리를 이해한 나만이 구현할 수 있는.


아직 두 단계나 남은 7서클의 경지에도 대마법사로 불리울 수 있었던 건 이론을 등한시했던 마법사들 때문이었다.

그저 주어진 축복에 만족하고 발전하려 하지 않았던 무지한 마법사들.


물론 파이어 하나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아니었다.

룬어를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도 알았으니, 이제 각인할 룬어를 찾고 모으기만 하면 된다.


17년 만에 결함을 극복한 지금.

룬어만 찾아 모은다면 악몽 속 나와 마왕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을 것이다.


*


반이 성공에 취해 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마탑에서 마나 방출 불능으로 반푼이 마법사 취급당하며 짐 덩어리 취급받던 반.

그가 처음 마법을 구현하는 것을 보고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시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곤 의미 모를 웃음과 함께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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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하트의 비밀 21.04.19 243 11 14쪽
4 4화 실력발휘 21.04.18 286 11 13쪽
3 3화 동료 21.04.17 390 13 11쪽
2 2화. 무능한 마탑 마법사들 중에서. 21.04.17 484 14 11쪽
» 1화. 결함의 극복. 21.04.17 701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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