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mc^2 - 알폰소 왕자
(1) 알폰소 왕자
현대의 과학은 고대의 역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여기에 마법학이 가미되어 생활에 편리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나 무기들을 개발해 내었다. 타임캡슐과 던전에서 발견된 여러 고대의 지식들로 인해 고대의 기준으로 중세(Middle Ages)였던 문명이 갑자기 몇 단계를 건너뛰어 현대로 넘어와 버린 것이다. 우리가 고대의 지구문명과 비슷한 수준의 문명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건 비교적 쉬웠던 거시세계일 뿐, 고대의 미시세계에 대한 자료나 논문은 해석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마법의 폐해이기도 했다.
마법의 발견은 분명, 고도로 발달된 마도문명을 안겨준 선물과도 같은 위대한 발견 중 하나였지만 타임캡슐로 해석한 고대 물리학의 발전을 저해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고대의 과학사를 보면, 대현자 중 한사람인 아이작 뉴톤은 그의 위대한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지구상의 운동, 더 나아가 천체의 운동까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때가 바로 고대연도로 1678년도로 그 후 200~300년도 채 되지 않아 고대의 문명은 미시세계를 거의 해석해 놓은 양자역학과 핵물리학을 탄생시켰다. 이와 같은 속도라면 분명 우리 세계에서도, 일반 역학을 해석한 좋은 길잡이가 있었기에 지금쯤이면 미시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하지만 마법학의 발달로 인해 그곳으로의 길은 요원하기만하다.
이 시대의 마도문명은 중세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온 지식을 받아들여 발전한 것이기에 고대의 일반역학을 겨우 해석하고 뒤따라가고 있을 뿐, 미시세계로의 확장은 꿈도 못 꾸고 있다. 하물며 고대의 일반역학을 모두 해석한 것도 아니라, 결과물인 자동차, 비행기 등을 만들며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은 마법진으로 대체했기에 우리 시대의 과학은 기형적이라 할 수 있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견 p 72
아카데미로 돌아온 나는 마크와 제니와 함께 시치리스 섬 마법진을 해석하는 데 주력했다. 방송에선 연일 아르카 제국의 통일전쟁 소식이 흘러나왔고 베르딘 제국의 연합군 창설식도 방영되었다. 제네리아 왕국도 연합군에 참전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아카데미도 뒤숭숭하기만 했다. 아카데미로 돌아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똑똑]
한 사내가 들어왔다.
“지니 박사님,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정보국장이었다.
“무슨 일이신지?”
“아~ 별일 아닙니다. 겸사겸사 인사나 드리러 왔습니다.”
“그렇소? 어쨌든 들어오시오. 저도 물어볼 게 있으니.”
정보국장은 연구실 내부를 스윽 한번 훑어보더니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박사님께서 원하는 정보는 앤드류 박사 관련이겠지요?”
“네, 앤드류는 어쩌고 있소?”
“잘 있습니다. 이말 밖엔 할 수가 없군요. 몸은 편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갔다. 정작 알고 싶은 앤드류 등의 일은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 국장에 의해 많은 걸 알 수는 없었다. 그때 머리가 울리며 메시지가 들어왔다.
[“박사님, 저와 함께 꼭 가보셔야 할 데가 있습니다.”]
정보국장의 얼굴엔 다급함이 묻어나온다. 왜 그런지, 어딜 가야하는지 물어봤지만 바로 답하지 않고 계속 부탁해온다.
[“임의동행 같은 형식도 아니고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일 이유가 있소? 그것도 무소불위의 정보국이?”]
정보국이 일하는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그들이 이 왕국에서 눈치 볼 곳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자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베르딘 때문이오?”]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시군요. 네, 그 이유도 있습니다. 박사님께 해가 되지 않을 것이란 건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소. 이렇게 부탁드리오.”]
은밀하게 같이 가자는 정보국장,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협조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좋소. 멀리 가야하오?”]
[“고맙습니다. 멀리는 아니지만 밤늦게 까진 계셔야 될 건데 시간은 괜찮겠습니까?”]
나의 형편을 고려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초대라고 봐야했다. 그래서 협조하기로 했다.
[“시간이야 빼면 되는 거고, 어떻게 하면 되오?”]
국장이 제시한 방법은 간단했다. 박물관에 가 있으면 요원이 알아서 할 것이란 거였다. 제니와 마크를 불러 해야 할 일을 당부하곤 국장의 말대로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어떤 요원의 안내로 자동차로 안내되어 어딘가로 이동했다. 복잡한 경로를 따라 이동한 곳은 어느 산속 깊숙이 자리 잡은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집이었는데 정보국의 안가(安家)라 했다. 그곳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정보국 요원이 한 청년과 함께 나타났다. 균형 잡힌 몸매와 기품 있는 모습이 꽤 좋은 인상을 가진 청년이었다.
“처음 뵙겠소. 지니 박사, 아니 스톤 백작, 본인은 알폰소 폰 제네리아라고 하오.”
“네? 그럼, 왕자님이십니까?”
“그렇소. 아~ 그렇게 정색할 필요는 없소. 실권 없는 소국의 왕자일 뿐이니.”
현재의 제네리아 왕국은 국왕이란 구심점이 존재하나 내각통치제인 의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그들의 존재는 상징적 의미가 사실 더 강했다.
“전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니어드 스톤 백작입니다.”
“백작께선 정치에 전혀 관여를 안 하시니 처음 뵙는군요. 아~ 그렇게 정색하지 마시오. 할 얘기도 많은데 불편하기만 하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백작을 보고자 한 건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차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자 드십시다.”
얼마간 서로의 주변 얘기를 주고받았다. 소소한 가족사라든지 결혼여부 등을 묻고 답하며 서로간의 거리를 줄여 나갔다.
“백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나 좀 도와주시오. 아니 우리 조국에 힘이 되어 주시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알폰소 왕자는 뜬금없는 말로 본론을 꺼냈다.
“이번 프로이트 박사와 앤드류 박사의 일도 그렇고 다 힘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원죄가 크오.”
서글픔이 느껴지는 비장한 말투였다.
“정말 그들에게 미안하오. 지켜주지 못하고, 베르딘 제국의 오만한 사신 앞에 힘없는 국왕폐하께서도 어쩔 수 없었다오.”
“그럼 앤드류도 베르딘 제국으로 잡혀갔단 말입니까?”
“그렇소. 앤드류 박사만은 빼돌리려고 했는데, 실패했소. 짐작은 가지만 이유가 뭔지도 알려주지 않았소. 잡혀가는 그들 앞에 부끄러워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오.”
“흐음......”
“베르덴 제국으로 이송되기 전날 앤드류 박사가 나에게 부탁하더군요.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백작을 만나보라고 했소.”
“저를요?”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오. 하지만 조국이 힘을 가질 수 있는 힘을 박사는 가지고 있다고 했소. 그런 방법이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것이오. 제발 방법을 가르쳐주시오.”
그러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전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옆에 부동자세로 서있던 정보국 요원이 깜짝 놀라 옆에서 만류한다. 나도 당황하여 같이 무릎을 꿇었다.
“왕국민 한사람도 지켜주지 못한 못난 사람이오.”
“왕자님. 일어나십시오.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좀 더 차분히 생각을 해 보십시다.”
부축하여 그를 일으켜 세웠다.
“후~ 그래요. 내가 추태를 보였군요. 흐음.”
다시 알폰소 왕자가 자리에 앉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시사 얘기를 꺼내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제국은 다 똑같은 놈들이오. 베르딘 제국이 연합군을 꾸린다고 하나 그것도 자신들을 위해 하는 행동이오. 누가 옳고 그른 건 없잖소.”
“저도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가능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렇소. 그래서 말이오. 전쟁억제력이 있어야 하오. 아마 전쟁이 길어지고 확전되면 우리 왕국에도 참전하라는 강압이 올 것이오. 남의 전쟁에 얼마나 또 우리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게 될지. 후~”
가슴 절절한 왕자의 말을 들으니 가슴 한구석에서 울컥하는 느낌도 든다. 거창하게 애국이니 인류애니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학자의 한 사람으로 뭔가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하, 갑작스런 일이고 정리되지 않아 무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많이 생각해보고 다시 전하를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소. 부탁하오. 지니 박사.”
짧은 왕자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다시 정보국에서 마련해준 자동차를 타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정보국 요원은 항상 지근거리에서 날 경호하겠다고 한다. 그럴 필요 없다고 완곡히 거절했으나 알폰소 왕자까지 들먹이며 고집을 피워 그러면 안 보이는 곳에 있어달라고 했다.
머리가 복잡하다. 앤드류, TCD, 아르카, 전쟁, 던전, 그리고 시치리스,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무턱대고 밖으로 나왔다. 문득 아카데미 꽃길을 걷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화사하게 피어있는 벚꽃 길,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세잔,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건물 앞에 도착해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세잔, 잘 살고 있지? 오늘은 더 당신이 그립군.’
고향 절벽에서 그녀를 내려다본 후 더 생각이 난다. 그런데 약간 감정이 변했다. 지금까진 막연한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볼 수조차 없음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를 내려다 본 후, 그리고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본 후, 이제 정말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상을 어지럽히던 서류처럼 여기저기 널려있던 복받쳐 오던 감정이 책상서랍에 차곡차곡 정리된 것 같은 그럼 느낌이다.
‘세잔, 당신이라면 그쪽에서도 잘 살고 있겠지.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고 잘 살길 바래. 나도 이제 당신 닮은 사람 만나야 할 텐데, 후~’
무심코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 파랗게 높이 솟아있다. 보이진 않지만 저 하늘 어딘가 다른 은하에서 웃고 있을 세잔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날 편안하게 해주던 그녀의 모습이 더욱 그리운 어느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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