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위대한 발견 - 마법공학 발전사
(1) 마법공학 발전사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는 이 마나석(마법의 돌)과 대륙 남단 시치리스 섬에서 발견된 마법 도형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신입생을 대상으로 ‘마법공학 개요’라는 강의를 맡게 된 나는 첫 수업을 이렇게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재직한지도 벌써 7년, 매년 박사과정 학생들과 지루할 정도로 파고들던 ‘마법학 원론’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매너리즘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강좌를 맡은 것이다.
“마나석이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는 지금과 같은 효용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땔감으로 나무를 대체하는 정도로만 여겼었지요.”
지금은 보편화되어 자원적가치가 금보다 더 높은 마나석이 하찮게 땔감으로 사용되었단 말에 학생들이 실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마도문명의 발전사를 되새기며 강의는 절정을 지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마법도형은 다음 주 견학가게 될 박물관에서 일부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도형을 이 마나석에 새겨 넣었을 때 우리 인류는 비로소 역사의 주인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자~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저요”
앞에서 두 번째에 앉은 한 여학생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든다.
“이름이?”
“제니아 로렌스라고 합니다. 제니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제니양, 질문이?”
“시치리스 섬에서 발견된 마법 도형은 고대인이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던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불행하게도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누가, 언제, 무엇 때문에 그것을 그렸는지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인이 아니란 건 확실합니다. 고대인들이 마나석을 활용했다는 기록은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타임캡슐에서 없으니까요.”
다른 학생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마법 도형은 어떤 언어 같은 건가요?”
“언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단어가 모여 글이 되고 문장이 되듯, 도형들이 모여 조합된 힘을 발휘합니다. 시치리스 섬의 대형 마법진도 다섯 개의 도형이 조합되어 이뤄졌고 현재도 많은 마법학자들이 그 도형을 조합해 수많은 응용 마법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마법은 마법잉크로 그린 스크롤을 찢어야만 발휘되는데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아, 그 방법은 세월이 흐르며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다른 방법들도 있지만 가장 쉽기 때문이죠. 그건 차차 진도가 나가면 여러분들도 알 수 있을 겁니다.”
“......”
“자~ 더 이상 다른 질문이 없으면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강의는 시치리스 섬 5대 마법도형 중, 불에 대한 도형을 소개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와르르 쏟아져 나가는 학생들, 나도 그들에게 둘러싸여 연구실로 돌아왔다.
“오~ 닥터 지니, 첫 강의는 어땠나? 신입생들이라 많이 산만하지?”
“예상했던 대로지 뭐. 신입생들이 어련하겠나. 그땐 우리도 강의라면 무척 귀찮아했었지.”
첫 수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긴장을 가시지 못한 채 연구실로 들어서자 동료 교수인 앤드류 박사가 찾아와 있었다.
“그래 앤드류, 무슨 일이야? 고작 그런 소리나 하려고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진 않았을 테고.”
“그런 말 말게. 요즘 다이어트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헛둘 헛둘.”
팔을 뻗으며 체조하듯 휘두르며 앤드류가 말한다.
“......”
“그래그래, 알았네, 알았어. 용건부터 말하란 말이지? 사람 참, 나이 들더니 더 고지식해 지는 것 같아. 빈틈이 없어.”
그때 갑자기 머릿속으로 앤드류 박사의 목소리가 울린다. 가지고 있던 작은 스크롤을 찢어 ‘메시지 마법’을 발현한 탓이다.
[“이번 주말에 장인께서 자넬 꼭 보자고 하시네.”]
[“자네 장인이라면 프로이트 박사님 말인가?”]
나도 늘 휴대하던 스크롤을 찢어 ‘메시지 마법’으로 대답했다. ‘메시지 마법’은 도형이 복잡하지 않아 작은 쪽지 정도의 스크롤만 있어도 가능했다.
[“그래, 웬일인지 자네를 만났으면 하시네.”]
[“나를? 그 분과는 만나본 적도 별로 없는데?”]
[“그건 그렇지. 이상하게 자네를 꼭 찍어 지목하셨네.”]
[“무슨 일일까? 자네를 포함해서 제자도 많으신 양반이, 왜 나를?”]
[“그야 나도 모르지. 반드시 아무도 모르게 이번 주말에 와 달라 하셨네. 오는 방법까지 이렇게 쪽지로, 쪽지는 읽고 바로 소각하게.”]
앤드류가 작은 종이를 하나 내민다. 종이 내용을 확인 한 나는 책상위에 놓여있던 또 다른 스크롤을 찢어 ‘파이어 마법’으로 그것을 태웠다.
“아~ 이번 주말 경마장 가기로 한 것 말일세. 내가 못 갈 것 같아 여기다 예상 추천마를 적었네. 어때 그럴듯하지?”
메시지 마법을 취소한 앤드류는 책상위에 놓인 연습장에다 몇 가지 숫자를 쓰며 눈을 찡긋거린다.
“흠, 난 그런 쪽에 관심 없다는 걸 자네도 알잖아. 아직도 자넨 그쪽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흠, 이건 내가 태워 버리겠네.”
일부러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연습장 종이를 뜯어 태웠다.
“이런, 재미없는 친구 같으니. 그렇게 태워도 소용없네. 여기 몇 장 더 있으니 말이야. 자네도 연구 말고 다른 것 좀 하게. 그러니 아직 총각이지. 이번 신입생 중 눈에 뛸만한 제자는 없던가? 신입생이 젊은 교수를 흠모하는 그렇고 그런 얘기들은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지 않는가? 하하”
“이봐.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해, 신입생과 나이차가 얼마나 나는데.”
“호~ 그래도 관심은 있다는 거야? 나이차 나보니 스무 살도 안 나잖아. 흠, 자네가 흥미 없다니 이건 다른 친구에게나 줘야겠군.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내 연습장에 숫자를 다시 적더니 그걸 뜯어 들고 앤드류가 돌아갔다. 몇 번 비밀스런 활동들을 같이한 친구였기에 이런 식의 대화는 우리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프로이트 박사가 왜 날 찾지, 그것도 이렇게 은밀한 방법으로?’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주말에 찾아가면 될 일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침에 읽다만 신문을 펴 들었다. 요즘 세간에 떠들썩하게 돌고 있는 연쇄 실종사건이 머리 면을 한가득 장식하고 있었다.
* * * * * * * * * *
일찍 문을 여는 노천카페에서 간단한 커피와 빵 몇 조각으로 아침을 여는 것은 내 반복된 일상 중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다. 오늘도 난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자전거를 타고 아카데미 정문을 일찌감치 들어섰다.
정문을 지나 이른 꽃망울을 터트린 나무들 사이로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다보면 넓게 펼쳐진 잔디 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그 광장을 지나 올망졸망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의 계단을 헉헉대며 힘겹게 오르면 잠시 쉬어가라는 듯 ‘사색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길이 나온다. 그렇게 ‘사색의 길’, 마법공학관 옆길을 따라 걷노라면 나의 연구실을 품고 있는 연구소가 나를 환영하는 듯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색의 길’, 이 길을 걸은 지도 벌써 이십여 년쯤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이 길을 걸을 때면 십여 년 전 청년이라 불렸던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이름그대로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매순간 너무 벅차 차라리 치열하기까지 했던 그녀와의 사랑의 추억도 이젠 빛바랜 영상처럼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그 벅찼던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이 길에서 난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오늘도 난 그렇게 ‘사색의 길’을 어제와 다른 날 일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걷고 있었다.
[톡톡]
가벼운 어깨 두드림에 상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하셔서요.”
“아~ 미안, 좋은 아침이야. 이름이?”
“제니. 제니요! 어제도 그제도 제 이름을 물어보셨잖아요. 치~”
“아 그래 제니양, 미안. 내가 사람이름을 잘 못 외워.”
“또, 또! 제니양이 뭐예요. 제니라고 부르면 되잖아요. 꼭 늙은 할아버지 같이.”
“하하, 또 핀잔 들었네. 이것도 삼일연속 같은 레퍼토리지?”
“알긴 아시네요. 교수님이 이렇게 재미없는 분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아는 체 안 했을 거라고요. 치~.”
“이제라도 알았으면 아는 체 안 해도 난 상관없.......”
“뭐라고요!”
“아냐, 아냐 제니양, 아니 제니. 그래 무슨 일로?”
“피~ 꼭 무슨 용건이 있어야 인사하나요? 그냥 교수님이 지나 가시기에 인사한 거예요. 그럼 전 가볼게요.”
“이런, 그, 그래.”
‘가볼게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 저 멀리 후다닥 달아나 버린다. 요즘 학생들의 엉뚱하고 당돌한 모습, 그런 모습까지도 열정적으로 보여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아참, 교수님!”
후다닥 멀어지던 제니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점심시간에 연구실로 찾아 뵈도 돼요?”
“응. 괜찮아. 그런데 무슨 일로? 이런......”
응이라는 대답이 나오자마자 뒷말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벌써 저만치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있다.
‘허~ 에이 설마, 앤드류 얘기처럼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쓸데없는 망상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설렘이란 감정이 살며시 고개를 드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 * * * * * * * * *
“그런데 교수님, 고대인은 왜 멸망했다고 생각하세요?”
점심시간에 찾아온 제니는 역사에 대한 열망으로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특히 그녀의 주요관심사는 ‘고대인의 멸망’이었다.
“글쎄. 그쪽에 대해선 내 전공이 아니라서.”
“그래도 교수님 견해가 있을 거잖아요. 제가 볼 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쪽은 생각해 본적도 없고.”
“피~ 재미없어.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해봐요. 저는 사실 마법공학보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도 많았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엄~청나게 많이요. 아마 교수님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읽었을 걸요. 그런데요.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그 마법도형을 활용한 과정이 너무 이상한 거 있죠. 시치리스 섬에서 발견된 도형을 연구하다보니 활용도를 알게 되었다. 뭐 이런 식인데, 그건 너무 ‘작위적이다’라는 느낌 안 들어요? 마법도형을 발견하게 된 것도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도,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되게 유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견되게 했다는 그런 생각이요.”
“......”
저렇게 긴 말을 숨도 하나 안 들이쉬고 뱉어내는 제니, 미지의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두 눈이 별을 담고 있는 것 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잠시 딴 생각이 나서. 흐음 누군가라? 그건 너무 지나친 비약 같은데, 그런 게 있다면 아마 신(神)이겠지.”
약간 벌어진 입으로 어색하게 바라보자 대뜸 이유를 물어보는 제니, 조그마한 의문이라도 있으면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대범한 성격인 것 같았다.
“에잇, 또 신으로 결론이 나네. 제가 이런 질문을 하면 열이면 열 모두 신이라고 말해요. 그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역사책은 분명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법도형 부분만 나오면 대부분의 역사책이 신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물론 직접적으로 신이 그렇게 했다고 말해놓진 않죠. 아주 교묘한 말장난으로 그렇게 믿게 해놓았다고나 할까요. 저도 속아 넘어갈 뻔 했지 뭐예요. 앗, 늦었다. 그럼 교수님 저 수업이 있어서 그만 가볼게요.”
덜렁대고 엉뚱한 모습과는 달리 꽤 주관 있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준 제니는 또 그렇게 자기말만 하고는 횡 하니 사라져 갔다.
누군가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인류의 긴 역사에 비춰볼 때 마법도형이 발견되고 현재의 마도문명으로 발달한 것은 거의 순식간에 이뤄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누가, 왜 그랬을까 하는 질문을 떠올리면 답은 뻔하다.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이렇게 발달된 마도문명을 안겨줄 마법도형을 공짜로 퍼 준 이유가 과연 있을까?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