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팀 마지막 날
“그러니까 병현이 네 말은, 감사팀 이서준 실장이 채용 비리를 저지르려고 했다는 소리냐?”
“그렇습니다, 회장님. 인사팀 김철진 팀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시면 알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채용시켜주지 않으면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겁박했다고 합니다. 물론 끝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자신이 가진 직책으로 권력 남용을 하려고 했으니 당장 그자를 그룹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양병현이 직접 양 회장의 집무실을 찾아와 일반적인 주장을 펼치고 돌아갔다.
“이봐, 김 실장.”
“네, 회장님.”
“어떻게 생각해? 이서준 실장이 정말 그럴 사람으로 보여?”
“글쎄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좀 이상한 듯합니다.”
“그렇지? 그만한 일로 굳이 병현이 그 녀석이 직접 찾아온 것도 이상하고 말야.”
“일단은 양기필 상무를 불러서 확인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양 회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양기필이 곧바로 호출을 받고 회장실로 올라왔다.
“네 큰형 말이 사실이냐?”
“네?”
“넌 전혀 그런 낌새를 몰랐냐고?”
“저, 그게···. 아, 아니 회장님. 서준이는···.”
녀석은 상당히 긴장한 듯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에 양 회장은 충분히 직감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양반이니 모를 리가 없다.
“알겠다, 그만 가봐라.”
“그냥 이대로 가라고요?”
양기필은 부정도 긍정도 제대로 못 하고 돌아서 나오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러곤 다시 돌아서 말했다.
“회장님, 만약 이서준 실장을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이시면 삼심보험사로 보내주세요.”
“그만 가보라니까.”
양 회장은 가볍게 녀석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철컥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녀석이 나가자 양 회장은 다시 김강호 실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가 보기에 병현이 녀석이 이서준 실장을 내보내기 위해서, 어렸을 때처럼 기필이 녀석을 겁박한 것처럼 보이는데. 자네가 보기엔 어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회장님.”
“그건 그렇다 쳐도 왜 병현이 녀석이 이서준 실장을 경계하는 걸까?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이유야 어찌 되었든 양병현 상무의 뜻대로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냐, 이서준 그놈이 나가면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책임질 사람이 없잖아?”
“그럼 다른 계열사로 인사발령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양병현 이사의 체면도 세워주고 훗날 자금으로 문제가 터졌을 때 얼마든지 이서준 실장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게 좋겠어.”
“인사발령을 하실 거면 양기필 상무 말대로 삼심보험사로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곳이 현재 계열사 중에 영업실적이 가장 엉망인 곳이라 이서준 실장이 가면 상당히 도움이 될 듯합니다.”
“삼심보험사라···. 그곳 사장이 강미리 아냐?”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 돌아이 같은 년이 있는 곳으로 이서준 그놈을 보낸다? 이거 기대가 되는데···. 어디 두고 보자고, 이서준 그놈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 말야.”
“만약 이서준 실장이 버티지 못하고 나가게 되면, 그때 모든 협의를 안고 나갈 수 있게 미리 조치해 놓겠습니다.”
오후 5시, 집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감사팀 이서준 실장입니다.”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직 공식적으로 발령이 난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 후 이서준 실장님을 삼심보험사로 보내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공지는 발령나기 하루 전에 올라갈 거지만, 미리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후부터 삼심보험사로 출근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실장님. 이런 전달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정확히 하기 위해 확인 차원에서 물은 것뿐입니다. 회장님께 그렇게 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네, 실장님.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부탁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말해 보렴?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삼심그룹 계열사 중에 삼심보험사가 가장 실적이 엉망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이러다가 계열사가 삼심그룹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는 기사가 실렸으면 해서요.”
-삼심보험사라면 그런 기사가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위태로운 상황인데···. 거기에 계열사가 그룹에서 나갈 수 있다는 기사까지 실리게 되면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질 거야. 굳이 그렇게 주가를 떨어트리려는 이유라도 있는 거냐?
“일주일 뒤 제가 그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제가 가지전에 최대한 주가를 떨어트리려고요.”
-서준이, 네가? 아니 네가 삼심보험사로 발령이 났는데, 뭐하러 회사를 더 위태롭게 만들려고 하는 거냐?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아무리 위태로워도 삼심보험사는 엄연히 삼심그룹 계열사예요. 보도된 것이 오보라는 게 밝혀지면 주가는 금세 회복될 거예요. 그러니 너무 노골적으로 기사가 나가면 아저씨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 최대한 그럴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기사를 내보내 주세요. 왜 그런지는 나중에 다 설명해드릴게요.”
-알겠다. 일단 그렇게 하마.
언제나 그렇듯 자극적인 기사가 하나 실리자, 너나 할 것 없이 언론사마다 기사를 받아적었다.
[삼심보험사 이대로 괜찮은가?]
[삼심그룹의 유일한 오점 될라.]
[양 회장의 결단이 필요할 때, 과연 삼심보험사는 그룹에 득인가? 실인가?]
부정적인 기사가 실리기 시작하자 예상대로 며칠도 안 돼 안 그래도 안 좋은 주가가 더욱 곤두박질쳤다.
주가를 떨어트린 이유는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주가를 가장 저렴하게 사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그렇게 주가를 출렁이게 하지 않으면 현재 남은 3,000억을 한 번에 매수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차피 오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들어간 후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그 반사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계산까지 깔려있었다.
이서준은 삼심그룹 본사 지분을 사들이는 대신, 계열사 그것도 가장 취약한 계열사를 먼저 공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서준이 삼심보험사로 발령이 났다는 공지가 공식적으로 인사팀 게시판을 통해 올라왔다.
감사팀 직원들은 하나같이 뜬금없이 올라온 공지에 우왕좌왕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루아침에 계열사로 발령이 나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이서준 실장이···.”
고상태 대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김인혁 대리가 뭐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일을 아무리 잘하면 뭐해? 윗분에게 대들면 한순간에 모가진 걸.”
“윗분? 이서준 실장이 누구에게 대들었어?”
“저번에 양병현 이사 왔을 때 벌써 잊은 거야? 그때 분명 집무실 안에서 무슨 사달이 났으니까, 일주일도 안 돼 이런 공지가 올라온 거 아니겠어?”
“듣고 보니 그러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양병현 이사 표정이 상당히 어둡기는 했지.”
“마치 누구 하나 잡을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들어와서, 나갈 때는 완전 표정이 어두워져서 나갔으니 이서준 실장이 그만큼 심하게 들이댄 게 아니겠어? 그러니 계열사 중에 가장 실적이 엉망인 곳으로 보내지.”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그냥 나가라는 소리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양병현 이사가 누구에게 기죽을 타입은 아닌데, 어째서 이서준 실장에게는 그렇게 맥을 못 추고 기가 꺾였을까?”
“뭐가 됐든 어차피 쫓겨나는 건 매한가진데 무슨 상관이야. 고 대리, 원래 조직이라는 게 일을 너무 잘해도 윗분들에게 찍히는 법이야.”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 나오자 수다를 떨던 직원들도 한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저기, 이서준 실장님! 정말 가시는 거예요?”
권은빈 사원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을 붉히곤 다가왔다.
이렇게까지 아쉬워할 직원이 있을 줄은 솔직히 몰랐다. 업무적인 것 외에는 딱히 직원들에게 정을 보이지 않았는데···.
“네, 뭐. 그렇게 됐네요.”
“안 가시면 안 돼요?”
“그럼 은빈 씨가 회장님께 말해 볼래요? 인사발령 취소해 달라고?”
“네? 그, 그건···.”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름 귀엽다.
“농담이에요. 잘 지내요, 은빈 씨.”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직원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다들 그동안 성질 고약한 저와 함께 근무하시느라 수고들 많았습니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보겠죠, 그럼 다들 수고들 하세요.”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또 벌어졌다.
“저기, 이서준 실장님. 이건 선물이에요.”
들어온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아르바이트 여직원이 언제 사 왔는지 꽃다발을 들고 와서는 수줍은 표정으로 건네는 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언제 사 온 거예요?”
“점심시간 때 나가서 사 왔어요. 실장님 감사팀에서 근무하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사람들이 그러기에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꽃다발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고마워요, 지아 씨.”
짐을 잠시 옆으로 내려놓고 꽃 향을 맡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꽃다발을 짐 상자 위에 올려놓고 함께 들었다.
“이서준 실장님! 오늘 회식 안 하는 겁니까? 송별회는 해야죠.”
뜬금없이 김인혁 대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분명 원해서 삼심보험사로 가는 거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좌천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굳이 송별회까지 하는 게 맞나 싶다.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직원들이 합심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송별회를 연창하기 시작했다.
“송별회! 송별회!”
“송별회!”
그때 때마침 양기필 녀석까지 감사팀으로 들어와 보챘다.
“그래, 서준아. 회식은 하고 가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직원들, 그리고 양기필 녀석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가 다시 그룹 본사로 돌아올 때, 사장급으로 돌아오면 이 사람들 완전히 까무러치겠는걸.’
날이 날인 만큼 못 이기는 척 직원들 뜻대로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회사 근처 삼겹살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 잔을 맞대는 소리,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야금야금 고기와 상추를 씹어먹는 소리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숙취가 올라오는 듯했다.
그 틈을 타서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김정우였다.
“정우야, 나야.”
-그래, 서준아. 드디어 내일이지?
“첫날이니까, 정우 너도 조금 일찍 나와야 할 거야.”
-내가 서준이 네 비서로 들어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내가 삼심보험사 실장의 비서라니···.
“본사와 달리 거기에는 실장급부터 개인 비서를 둘 수 있으니까.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양병현이 분명 그쪽 사람들에게 절대 호의적으로 대해주지 말라고 귀띔을 해놓았을 테니까.”
-근데, 서준아. 현재 네가 가진 자금으로 삼심보험사 지분을 사들였으니까, 원하면 이사급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왜 차명계좌로 지분을 사들인 거야?
“작전 중에 가장 좋은 작전이 뭔지 알아? 그건 바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겨놓고 상대에게 싸움을 거는 거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처럼? 확실히 서준이 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 작가의말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고라 오타나 어색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빠르게 다듬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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