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삼심그룹 회장이 돼야겠다고!
최종협 팀장을 찾아간 이유는 뭘까?
김인혁 대리가 생각하기에 최종협 팀장만큼, 양병현 이사의 라인을 타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최종협 팀장이, 양병현 이사와 관련된 말이라는 한마디에 사무실을 뛰쳐나온 이유도 설명될 수 있었다.
“이봐, 최 팀장.”
“네, 이사님.”
“그러니까 감사팀 이서준 실장이 전화를 받고 뭔가 고심하는 것 같았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근데 그 고심하는 이유가 우리 영업본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이사님은 미리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이사님.”
“근데 덥나? 왜 그래 땀을 흘리지? 에어컨 좀 더 세게 틀어줘?”
“아, 아닙니다. 급하게 오니라 헤헤!”
최종협 팀장은 안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서 흐르는 비지땀을 닦아냈다.
일은 그리 못하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자기관리를 못 하는지, 양병현은 그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봐.”
“아,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사님.”
돌아서 나가는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이봐, 최 팀장.”
“네, 이사님.”
“언제 저녁이나 같이하지.”
“아, 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이사님.”
데리고 다니기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그도 자기 사람이라 기본적으로 챙겨야 한다. 그래서 꺼낸 말이었다.
최종협 팀장을 내보내고 인터폰을 눌러 박창신 실장을 불러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창신 실장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이사님.”
이서준에 관한 얘기를 전하고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분명 회계팀에는 영업본부에 관한 건 걸릴 게 없다고 하지 않았나?”
“틀림없습니다. 특히 이서준 실장이 그렇게 고심할 정도로 나올 만한 게 절대 없을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해. 설사 영업본부에 관한 게 나왔다고 해도, 이서준 그놈이 내가 무서워서 고심할 캐릭터는 아니지 않나?”
“외람된 말이지만, 그렇긴 합니다.”
“그럼 뭐라고 생각해?”
“혹시 이번 이집트 사업이 잘못된 게 아닐까요?”
“어째서 그래 생각하는 거지?”
“실은 제가 1시간 전에 호루스 대리인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양기필 측과 계약을 약속한 상태라 바꿀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더니···.”
“버티더니? 그래서 우리 쪽으로 계약을 하기로 한 거야?”
“아직은 확답은 듣지 못했지만, 자신이 호루스를 설득해서 우리 쪽으로 계약이 성사되게끔 해보겠다고 합니다.”
짝!
양병현은 회심의 손뼉을 쳤다.
“됐어! 좋았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그 대리인이라는 놈 믿을 수 있는 자야?”
“말하는 걸 보니 호루스의 일을 거의 전반적으로 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믿어도 될 듯합니다, 이사님.”
“그래, 좋아. 그러고 보니 이제 이해가 되네. 이서준 그놈이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
“맞습니다, 이사님. 아마 틀림없을 겁니다.”
원래 믿고 싶은 대로 보인다고 이서준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를 주시하고 있던 인물들은 그 모습 하나로 별의별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호루스라는 인물을 더욱 믿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이서준에게는 절대 나쁜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박창신 실장은 또다시 양병현의 집무실을 찾았다. 상당히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철컥!
“이사님, 됐습니다.”
“됐다니? 뭐가?”
“이제 확실히 우리와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이사님. 그러니 서둘러야 합니다.”
“서두르다니? 대체 뭘?”
“입금입니다. 먼저 입금하는 쪽과 계약을 하기로 호루스라는 사람이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직 양기필 도련님 쪽은 모르고 있을 테니 저희가 서둘러 입금을 해야 합니다.”
“당장 회계팀 최종협 팀장 불러!”
최종협 팀장이 영업본부 총괄 상무실로 불려갔다. 큰 자금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회계팀을 거쳐야만 했다.
한편 이서준은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있는 겉옷을 챙겨 들고 집무실을 나오자 직원들이 하나같이 인사를 건넸다.
그중 진심으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고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어떤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든 상관없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산 지 오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 긴 통로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는데 임진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 진호야.”
-서준아, 돈 들어왔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일단 통화를 끝내기로 했다.
“진호야, 내가 조금 있다 전화할게.”
-어, 아, 알았어.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윤설아라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타고 있었다면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러니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그렇게 자극적인 여자를 처음 봐서 그런지 쉽사리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지하 3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위에 달린 TV 광고를 쳐다봤다.
여전히 삼심그룹 전자제품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봤으면 또다시 욕을 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차 키를 꺼내 잠금을 해지하고 세워둔 아반떼로 향해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러고 나서 임진호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입금됐다고?”
-어, 서준이 네가 시킨 대로 먼저 입금한 곳과 계약하겠다고 하니, 불과 30분 만에 3,500억 입금했다.
일반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삼심그룹 양병현 이사였기에 단시간에 그 많은 자금을 굴릴 수 있었다.
“계좌가 왜 한국은행이냐는 말은 안 해?”
-호루스가 대한민국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계좌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묻지도 않던데. 아마 양기필 측에서 상당히 까다롭게 절차를 따져서 내가 될 수 있으면 그쪽과 계약을 한다고 말해서 그런가 봐. 암튼, 삼심그룹 양병현 이사 대단하긴 하다. 그 큰 금액을 단번에 입금하다니···. 솔직히 난 이렇게 빨리 입금이 될 줄은 몰랐다.
“돈이 들어왔으니, 다음 단계로 서둘러 넘어가야겠어.”
-다음 단계? 그게 뭔데?
“돈을 다른 계좌로 옮겨놓아야지.”
-근데 서준아, 다른 곳에 계좌를 옮긴다고 한들 그들이 못 찾아낼까?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이 나라들은 계좌주인 이름을 본인 이름이 아닌 숫자로도 등록할 수 있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쉽게 말해 정부에서 나서도 계좌주인이 누군지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거야.”
-우와~! 대단하다. 언제 그런 것까지 알아본 거야?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일단 스위스 계좌로 돈을 보내면, 그걸 핫머니로 만들 거야.”
세상의 모든 범죄와 연관된 돈은 스위스 은행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스위스 정부도 그런 오명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세금을 많이 받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위스가 우스갯소리로 범죄자 돈으로 운영되는 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서준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항상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까지 꿰뚫어 본다.
-핫머니?
“정부에서 계좌 추적하는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지금은 국가적으로 범죄자 돈을 막기 위해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라, 비록 오래 걸린다고 해도 찾아낼 수는 있어.”
-그래서?
“하지만 그 돈을 우리가 다시 핫머니로 전환하면 돈을 추적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거지. 더욱 좋은 건 핫머니 특징이 자금이동이 단기간에 대량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야. 복잡한 절차 없이도 말야.”
임진호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암튼, 서준이 넌 정말 난 놈이라니까.
그럼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서준의 똑똑한 머리를.
집으로 오는 길에 양기필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이서준은 블루투스로 전화를 받았다.
“기필아, 왜?”
-서준아, 지금 잠깐 볼 수 있을까?
“뭐, 지금? 왜 무슨 일 있어?”
-퇴근하자마자 불러내서 미안한데, 회사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밖에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까는 말을 못 했어.
“아냐, 괜찮아. 어차피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다시 돌아가면 돼. 근데 회사에서 못할 말이면, 어디서 볼래?”
-너 지금 어딘데? 내가 거기로 갈게.
“그래. 여기가 어디냐면···. 잠깐만.”
강남대로를 지나기 전이었다. 근처 커피숍으로 차를 돌리며 말했다.
“강남대로 쪽에 있는 스타벅스 있잖아? 거기로 와.”
-어, 알았어.
커피숍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퇴근 시간대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게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앉을 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상당히 감미로운 음악이다.
제목도 모르고 재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지만 그래도 좋았다.
음료는 주문하지 않았다. 양기필 녀석이 오면 주문할 생각이다.
10분쯤 지났을까? 양기필 녀석이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금세 이서준을 알아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어?”
“아냐, 앉아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녀석에게 물었다.
“뭐 마실래?”
“아니, 서준아. 내가 사 올게.”
“됐어. 내가 명색의 네 수행비서인데, 이런 건 내가 해야지. 뭐 마실래? 카라멜마끼아또 사 올까?”
“그래.”
녀석은 원래 카라멜마끼아또를 좋아했다.
주문대로 가서 여종업원에게 카라멜마끼아또와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주문하고 돌아왔다.
소파형식으로 된 자리라 상당히 편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퇴근 후 갑자기 보자고 한 거야?”
“그게 서준아···.”
드르르륵!
뭐라 말을 꺼내려 하자 호출 벨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일단 주문한 음료부터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해서 받아왔다.
“마셔.”
“어.”
녀석은 평소답지 않게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서준아, 나 결심했다.”
“뭘?”
“네 말대로 우리 형들 재끼고 내가 아버지 후계자가 돼야겠다. 내가 삼심그룹 회장이 돼야겠다고! 그래서 말인데, 서준이 네가 말한 이집트 사업 우리가 하자?”
“그러니까 내가 일전에 말한 이집트 사업을 해보겠다는 거야?”
“응!”
“좋아. 일단 알았어. 근데, 한두 푼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니까 일단 내가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한 번 자세히 알아볼게.”
“그러다 큰형이 먼저 사업을 따내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큰형 양병현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한 녀석이···.
- 작가의말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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