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팀으로 출근하다
삼심그룹 회장실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상당히 고급스럽고 편해 보이는 소파가 중앙에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긴 모양의 테이블과 몇 개인지 한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많은 의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양 회장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바로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어디 가서 구경도 못해 봤을 것 같은 웅장함마저 느껴지는 그림들이 액자로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 같이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울 만큼 고가의 물건들이었다.
심지어 업무를 보는 책상마저 장인이 손수 제작한 것이라 시장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과거 이서준의 아버지 이인석이 사용할 때만 하더라고 이렇게까지 사치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치의 총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회장실에 있는 물건들만 팔아도 일반인들은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양 회장이 머무르는 집무실 바로 앞에는 비서 데스크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항시 두 명의 여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바로 양 회장을 모시고 있는 여비서들이었다.
둘 중 키가 크고 섹시한 쪽에 속한 여자가 메인 비서였는데, 흔히 김 비서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앳돼 보이는 모습의 이 비서로 불리는 여자였다. 그녀는 김 비서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오로지 양 회장만이 두 명의 여비서를 두고 있었다. 수행비서 격인 김 실장까지 더한다면 세 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이사들은 수행비서와 여비서 각각 한 명씩이 전부였다.
삑!
비서 데스크에 놓인 내선 전화기에서 소리와 함께 불빛이 반짝였다.
김 비서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지금 바로 기필이 녀석 회사로 들어오라고 해. 그리고 김 실장도 내 방으로 오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 비서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고 들고 있는 상태로 손가락만으로 수화기 부분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 능숙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김 실장이 있는 집무실로 전화를 돌렸다.
“회장님, 호출입니다.”
굳이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다른 부서라면 회장실 비서 데스크니 뭐니 말을 덧붙여야 했겠지만, 김 실장의 집무실로 연락하는 것은 하루에도 조금 과장해 수십 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듣는 입장에서도 간략하게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것이 편했다.
김 실장은 연락을 받고 서둘러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로 올라갔다.
가볍게 여비서들과 눈인사를 하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양 회장은 가타부타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서준이라는 아이 말이야. 내가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엄연히 기필이 녀석 수행비서로 채용하는 건데, 그놈에게도 의견을 들어봐야지 않겠어?”
익숙한 모습이었다. 김 실장 입장에서도 결코 나쁠 것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가끔은 무슨 용무인지 도통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양기필 도련님을 부를까요?”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불렀으니까. 그나저나 이사들 반응은 어때?”
정작 중요한 용무는 이것인듯했다.
자식 놈을 모두 삼심그룹 이사 자리에 앉혔으니 이사진들 반응이 궁금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행에 속했다. 양 회장이 이런 질문을 해올 줄 알고 미리 이사진들 반응을 주의 있게 살펴놓았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어떤 매서운 눈초리를 받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김 실장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거짓 없이 알려주었다.
“다들 밖으로 들어내지는 않고 있지만, 불만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양 회장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거짓을 고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때로는 거짓을 말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양 회장은 케이스에서 시가를 하나 꺼내 입에다 물었다. 불을 붙이고 뻑뻑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시가를 피워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상을 치는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습관적으로 고심할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병현이나 정남이 그놈들 들어왔을 때도 어죽 시끄러웠어? 시간이 지나면 다 조용해질 거야.”
의외로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성질대로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선대 회장들과 달리 지분이 약한 회장이었기에 도리가 없다.
이럴 때는 한 번씩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 김 실장은 그런 생각으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회장님. 지금은 양병현 상무에 관한 얘기는 일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놈이 스페인에서 1조가 없는 계약을 따내고 왔으니 어느 놈이 뭐라 하겠어?”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한데, 양정남 상무에 관한 평가는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양 회장의 둘째 자식을 언급한 말이었다. 그는 홍보팀을 총괄하는 상무이사였다.
김 실장은 좋지 않은 얘기를 할 때마다 불안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고를 안 하면 더 큰 곤욕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정남이? 그 녀석이 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외람되지만, 양정남 상무님께서 얼마 전 홍보팀 여직원을 건드렸다고 합니다.”
“뭐? 그놈이 또?”
양 회장의 표정이 또다시 급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홍보팀 여직원들이 외모가 뛰어났다. 아무래도 그 부서 팀장이 양정남 상무의 오더를 받고 인사평가에 영향을 준 듯하다. 김 실장은 그리 생각했다.
양 회장의 표정을 보니 제 버릇 개 못 주는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런 말을 해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잠시 붉어졌던 양 회장의 얼굴색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여직원에게 권고사직을 보내놓았습니다. 아마 조용히 일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잘했어. 그건 김 실장 선에서 알아서 정리하도록 해.”
충분히 예상한 대답이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들의 대화가 조금 더 오갈 때쯤 회장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곧이어 김 비서의 묘하게 관능미가 느껴지는 음성이 들렸다.
“회장님, 양기필 도련님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양기필이 회장실로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회사로 절 다 부르시고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
“와서 앉아라.”
양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편해 보이는 소파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기필도 그런 양 회장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 실장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서준이라는 아이 얘기로 잠시 불렀다.”
“서준이요? 서준이가 왜요?”
“그 아이를 네 수행비서로 채용할 생각인데, 기필이 네 생각은 어떠냐?”
양기필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양기필 입장에서는 절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죠! 완전 좋아요.”
“그렇게 좋으냐?”
“그럼요! 그 녀석은 다른 애들과 다르거든요. 아버지도 차차 알게 되실 거예요.”
“다른 애들과 다르다? 뭐가 말이냐?”
“그러니까 뭐라 할까?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지금까지 저하고 놀았던 녀석들은 하나 같이 돈 보고 붙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자기 아는 사람을 삼심그룹에 채용할 수 있게 하려고 아부 떠는 애들뿐이었잖아요? 뭐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서준이는 확실히 달라요. 그 녀석과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니까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양 회장은 잠시 이서준과 대면했을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녀석에게 묘한 매력이 느껴지기는 했어.’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라고 할까? 양 회장은 그런 느낌도 함께 들었다. 떨쳐낼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답답하다.
“어쨌든 기필이 네 생각은 잘 알았다.”
“그럼 아버지, 서준이 확실히 내 옆에 두고 써도 되는 거죠?”
그 말에 양 회장이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허허! 녀석도 참! 그래, 그렇게 해주마.”
몇 개월 후 양기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삼심그룹 본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바로 업무에 투입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감사팀이라고 하면 문젯거리가 생길 때만 움직이는 부서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삼심그룹 감사팀은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감사팀에서 이루어지는 주 업무는 크게 봤을 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부서별로 올라오는 큰 건수의 보고서를 재검토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인사평가에 대한 공정성이라든지 부당하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일도 처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양기필은 감사팀 상무이사였기에 밑에 직원들이 검토를 끝낸 보고서에 사인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맞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라는 것이 검사팀에서 걸러지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양기필 그 녀석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바로 근무에 투입될 수는 없었다.
원래 같으면 기본적인 업무를 다 숙지한 상태로 상무이사가 되었겠지만, 녀석은 확실히 특이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양기필을 교육하는 것은 다름 아닌 김 실장이었다.
이서준도 함께 교육에 참여했다.
상무이사가 하는 업무를 전반적으로 도와야 하는 수행비서였기에 어떻게 보면 교육은 이서준에게 더 필요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같으면 최소 3개월은 받아야 하는 교육이었지만 단기간에 끝이 났다. 정확히 딱 3주 걸렸다.
교육을 끝내고 양기필 녀석과 함께 정식으로 감사팀으로 출근했다.
박도현이라고, 그 사람이 감사팀에 팀장이었다.
아마 지금 직원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장본인도 그 사람일 것이다.
“뭣들 해! 다들 양기필 상무님께 축하 인사해야지!”
그 한 마디에 직원들이 일제히 손바닥에 불이 나게끔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거리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사정없이 때렸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시끄러웠다.
양기필 녀석은 매우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직원들을 둘러보고 있다. 아무래도 예쁜 여직원이 없나 찾아보고 있는 듯하다.
이서준의 그런 생각은 정확했다.
‘어차피 일은 서준이가 알아서 할 테고. 어디 보자? 여긴 예쁜 여자가 없나? 나도 작은 형처럼 예쁜 여직원과 한번 찐하게 놀아야 하는데···.’
- 작가의말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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