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아줘야죠
“너도 맞을래? 맞기 싫으면 가만있는 게 좋을 거야.”
“그만하지. 진호가 네 도시락을 훔쳐 먹었다는 증거도 없잖아?”
“이 새끼가 원래 애들 도시락을 잘 훔쳐 먹는다잖아? 그러니 당연히 내 도시락도 훔쳐 먹었겠지.”
“고작 그런 논리라면, 여기 있는 애들이 다치면 전부 네가 때렸다고 봐도 되는 거냐? 좀 전에 보니까 누가 다친 것 같던데 그 아이도 네가 때린 거냐?”
“뭔 개소리야?”
“내 말이. 그러니 강철민 너도 개소리 그만하라고.”
“근데, 이 새끼가 돌았나?”
말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도중, 임진호가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잠시 시선이 그에게로 쏠릴 때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단번에 이서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서준이 한 발 더 빨랐다.
“어쭈! 내 주먹을 피해?”
“말로는 안 될 녀석이군.”
이런 식으로 단순무식하게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이서준이 먼저 주먹에 힘을 실어 강철민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거친 주먹이 허공을 가르기도 상대의 얼굴에 꽂히기도 했다.
임진호마저 싸움에 가세했다.
쪽수의 우위를 가져가자 기세는 금세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강철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이것들이.”
1대1 싸움에서도 우위를 장담할 수 없었던 강철민 입장에서는 임진호까지 싸움에 가세하자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다.
말했듯 이서준은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안했다.
“계속할 거야?”
“치사하게 2대 1로 덤비냐?”
“우리보다 두 살이나 많으면서 사람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잠시 정적이 흐르는 순간 어디선가 원장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출 나갔다 돌아온 모양이다. 강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세를 바로 했다.
“됐다, 그만하자.”
“그래.”
녀석은 싸우다 묻은 먼지를 털어대고, 이서준에게 다가가 악수를 권했다.
“너 이서준이지? 내게 겁도 없이 덤빈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나 강철민이다. 반갑다, 이서준.”
갑자기 태도전환을 하자 이서준도 그것에 맞게 응했다. 녀석의 손을 맞잡아준 것이다.
“그래. 앞으론 애들 괴롭히지 말고 잘 지내보자.”
“근데, 너 싸움 좀 한다. 보기엔 맨날 도서관에서 책만 보는 거 같던데.”
“싸움 같은 거 원래 싫어해.”
“근데 왜 덤빈 거냐? 겁도 없이.”
그러게? 왜 끼어든 걸까? 이서준은 잠시 임진호를 바라보고 나서 대답했다.
“네가 내 친구를 괴롭히니까.”
어린애다운 대답이었다.
그날 후로 임진호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서준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서 강철민과 싸워준 것에 감동한 모양이었다.
강철민 또한 이서준의 당부대로 더는 임진호를 건드리지 않았다.
어느새 셋은 나이를 떠나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또다시 원장선생이 새로운 아이를 보육원으로 데려왔다. 이서준보다도 한 살 어린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이름은 김은정이라고.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강철민은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녀석이라 김은정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호는 달랐다.
“야, 서준아. 은정이라는 애 예쁘지 않냐?”
“글쎄.”
“이놈 봐라! 그럼 뭐야? 서준이 네 눈에는 은정이가 안 예뻐 보인다는 거야?”
“관심 없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미성년자라지만 하나 같이 사내아이들은 김은정을 관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일부러 다가가 장난을 치는 녀석도 있었고 괜스레 쑥스러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오직 이서준만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애는 이서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오빠는 왜 맨날 책만 봐?”
“저리 가라.”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도서관에서 주야장천 책만 보는 거야?”
“책 봐야 하니까, 저리 가라고.”
무뚝뚝한 이서준을 대신에 임진호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은정아, 나랑 놀자. 오빠가 놀아줄게.”
“흥! 됐어.”
콧방귀를 뀌며 돌아가는 김은정을 보며 임진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쟨 왜 나하고는 안 놀려고 하는 걸까?”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강철민이 다가왔다.
“걔가 왜 진호 너랑은 안 놀려고 하는지 알아?”
“철민이 형은 알아? 왜 그런대?”
“뻔한 거 아니겠냐? 진호 넌 무진장 뚱뚱하잖아. 여자애들이랑 어울리고 싶으면 일단 살부터 좀 빼라.”
“그럼 서준이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뭔데?”
“그야, 서준이는 잘생겼잖아.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하니까. 원래 여자들은 그런 애들을 좋아해.”
“하긴, 서준이가 좀 생기긴 했지. 나도 인정.”
이서준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못 들은 척 독서에만 집중했다.
몇 년 후 강철민이 20살이 되어 먼저 보육원을 나가게 됐다.
“잘 지내라, 서준아. 나가자마자 휴대폰부터 개통해서 번호 알려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이 형님에게 연락하고. 다른 놈들은 몰라도 서준이 네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아이고, 말이라도 고맙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형이나 잘 지내. 그나저나 이제 뭐하고 살 거야?”
“나야 뭐 할 게 있겠냐? 서준이 너처럼 내가 똑똑한 것도 아니고. 어디 막노동이나 뛰면서 입에 풀칠이나 해야지.”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강철민은 사회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강철민이 보육원에서 나간 지 1년이 지날 무렵 누군가 보육원으로 찾았다. 나이가 지극히 많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원장선생은 이서준을 찾았다.
“서준아? 서준이 어디 있니?”
“원장님, 서준이 도서관에서 책 보고 있는데요.”
“그래? 그럼 진호 네가 가서 좀 불러와라. 누가 찾아왔다고 휴게실로 오라고 해.”
그 말에 중년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도서관이 어딘가요? 제가 직접 가보죠.”
“그러시겠어요? 어차피 지금 시간에는 서준이밖에 없긴 할 거예요. 그 아이는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든요.”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러곤 원장이 알려준 대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서준이 보였다.
“서준아.”
이서준은 중년의 사내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이사진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준 최정만 아저씨였으니까.
“아저씨?”
“그래, 서준아. 잘 지냈냐?”
둘은 잠시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못 보던 사이에 정말 많이도 컸구나?”
“그러게요. 이제 아저씨보다 제가 더 크네요.”
“허허, 녀석.”
가벼운 인사가 잠시 오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분위기는 금세 무거워졌다.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안 좋으세요.”
최정만은 잠시 뜸을 들이곤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너도 이제 다 컸으니 너의 아버지가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알아야지 않겠니?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단다. 서준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너의 아버지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다가 변을 당한 거란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이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 비극적인 일을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이서준에게 정말 알려줘도 괜찮을까?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얘기를 들은 이서준의 표정이 아주 묘하다. 애초부터 전부 알고 있었던 표정 같기도 하고 아니면 너무 충격을 받아 잠시 할 말을 잃은 것 같기도···. 최정만은 도저히 이서준의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서준아?”
“아저씨, 제가 궁금한 건요. 누가 우리 아버지를 죽게 했냐는 거예요. 아저씨는 알고 계시죠?”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서준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서준아, 이 아저씨가 미안하다. 그때 내가 네 아버지를 도와주기만 했어도···.”
목이 메는 듯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오히려 이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아저씨가 도와줬어도 소용없었을 거예요. 오히려 그랬다면 아저씨도 우리 아버지처럼 누명을 쓰시고 옥살이를 하셨을 거예요.”
이서준은 정확히 과거의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직 미성년자인 이서준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웠다.
회사를 직접 운영하거나 경영해본 경험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본 것이 많은 아이다. 아마 그래서 남들보다 보는 시야가 넓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정만은 적잖게 당황한 표정으로 말없이 이서준을 바라봤다. 이서준은 계속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 일로 제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그런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부탁?”
“네. 아저씨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뭐든지 말해봐라. 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줄 테니.”
“우리 아버지가 누명을 쓰셨다고 하셨죠? 그 당시 저희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이사진 명단이 필요해요. 구해주실 수 있으시겠죠?”
최정만은 또다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거라면 구하고 말고도 없다. 이미 내게 있으니까.”
며칠 후 최정만은 이서준이 원하는 명단을 들고 다시 보육원을 찾아왔다.
“거기에 다 나와 있다. 그 명단에 나와 있는 이사진들이 너의 아버지를 모함해 옥살이를 시키고, 너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경영권을 포함해 모든 지분을 차지해 회사를 뺏은 거란다. 그리고 그중 양현철 이사라는 인간이 그 음모를 주최했지. 지금은 그놈이 삼심그룹 회장이 됐다.”
양현철이 삼심그룹 회장이 됐다는 것은 이서준도 애초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양현철 회장을 중심으로 삼심그룹 대다수 임직원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사실도.
“고마워요, 아저씨.”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렴.”
“그럼 양 회장의 자식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좀 알아봐 주세요. 포털사이트에 나온 정보 말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성격이라든지, 뭐가 됐든 최대한 상세하게요.”
“그래 알겠다. 걱정하지 마라, 아저씨 본업이 기자 아니냐.”
그러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최정만 기자는 이서준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어서인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며칠 후 최 기자가 이서준이 요구한 자료를 갖고 또다시 찾아왔다.
“양 회장 자식이 총 3명이라는 건 서준이 너도 잘 알지? 첫째가 양병현, 둘째가 양정남 둘 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삼심그룹 사내이사를 맡고 있지. 그리고 셋째 양기필이라고 있는데, 걔는 아직 서준이 너처럼 미성년자야. 그러고 보니 지금 너랑 동갑이구나.”
최 기자는 셋째 양기필에 대해서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가장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이서준이 유난히 관심을 보였기에.
“아직 어린 애에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완전 개차반 같은 녀석이란다.”
“그러니까 양기필이 학교에서는 일진으로 유명하고, 심지어 삼심그룹 직원들을 자기 종처럼 부려먹기까지 한다는 거죠?”
“그래! 어린놈이 자기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도 어찌나 막말을 해대는지. 나도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유명했다고 하더구나.”
“그래요? 잘됐네요.”
“서준아,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설마 너···.”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제가 그 애를 다치게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그 반대면 몰라도.”
“반대라고 하면?”
“전 양기필과 친해질 거예요. 그것도 아주 가깝게.”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제게 있어서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아버지의 원한을 합법적으로 갚을 수 있게 해줄 유일한 키가 될 거예요. 두고 보세요.”
이서준은 같은 또래에 비해 싸움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학창시절 축구부로 한 가닥 날리던 몸이라 타고난 순발력과 신체조건을 물려받았다. 아마 할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아버지의 미래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말하듯 이서준은 폭력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상대를 무너트리는 거라면 얘기가 달랐다. 누구보다도 잔혹하게 상대를 끝장낼 자신이 있다.
“갚아줘야죠.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모든 것을 되돌려 놓아야죠.”
“서준이 너···. 진심이구나? 네 아비가 뺏긴 것을 전부 돌려받을 작정이야. 그렇지?”
“이미 계획은 세워놓았어요. 난 그들도 우리 아버지처럼 옥살이하다 죽기를 원하지 않아요. 오래오래 옥살이를 하다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돼 교도소에서 나올 때 두부 하나 사줘야지 않겠어요? 그때 꼭 한번 물어보려고요. 자기들도 당해보니 심정이 어떠냐고? 물론 그들이 살아서 걸어 나올 수 있다면요.”
살기가 느껴진 말투에, 최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 작가의말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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