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럼에도 이서준, 그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재벌 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항상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큰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 사람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집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와 가장 친하다는 사람이 어느 날 다급한 표정으로 집으로 찾아왔다.
그룹 이사진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으셨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삶에 가장 큰 오점이 될 줄은 그날은 알지 못했다.
각종 비리에 휘말려 아버지는 구속이 되셨다.
어머니와 난 아버지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우리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비극적인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아버지는 그룹 이사진들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으셨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아버지처럼 수감생활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비극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수감생활 중 돌아가셨다는 말에,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그나마 다행히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돌아가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번 앓아누우신 어머니는 그 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러고 1년 후 돌아가셨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주변 친인척이라는 인간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아버지가 구속됐을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모습을 보이는지, 난 그것이 궁금했다.
허나 그 궁금증이 해소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안 자금을 관리하는 변호사가 있었다.
친인척들은 날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고 난 친인척들 손에 이끌려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없는 것이 우리 집을 팔아먹기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재벌 집 외동아들에서 돈도 뭐도 없는 고아가 됐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전부 착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임진호라고 그 녀석이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다른 보육원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몰라도 내가 있는 곳은 도시락 형태로 급식이 나왔다. 그 뚱뚱한 녀석이 노리는 것도 매번 그 도시락이었다.
“야, 이서준! 네 도시락 내가 다 먹었다.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한판 붙을래?”
오늘도 어김없이 임진호가 시비를 걸어왔다. 이서준이 보육원에 새로 들어왔으니 그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들어온 셈이었다. 보육원에 처음 들어온 애들은 한 달 정도 원장의 집중 관리를 받게 된다. 그동안에는 이서준을 건드리지 못하다가 관심이 뜸해진 시기가 오자 하루가 멀다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이서준이 아니었다.
“너, 임진호지?”
“그래, 내 이름 임진호다. 그래서 뭐? 원장님에게 이를 테냐? 계집아이처럼 이를테면 일러라.”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저녁에 나오는 내 도시락도 네가 먹으라고.”
“뭐? 점심도 내가 먹었는데, 저녁에 나오는 도시락도 나보고 먹으라고? 너 어디가 좀 모자란 거 아니냐?”
“도둑고양이처럼 훔쳐먹을 필요 없어. 내가 저녁에 가져다줄 테니까.”
“뭐라고! 도둑고양이?”
이서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돌아서 갔다. 임진호는 성질이 났는지 콧김을 뿜어내며 씩씩거렸다.
‘저 녀석이 감히 날 무시해! 두고 봐, 앞으로 네놈 도시락은 모조리 다 뺏어 먹어버릴 테다.’
그날 저녁 이서준은 약속대로 도시락을 임진호에게 가져다 바쳤다.
“기세등등하게 날 무시하고 갈 때는 언제고 정말 도시락을 가져온 거냐?”
“말했잖아. 저녁에 나오는 도시락도 준다고.”
그날 저녁 메뉴는 카레였다.
임진호는 먹보답게 준다는 도시락을 마다할 녀석이 아니었다. 냉큼 도시락을 건네받고 허겁지겁 카레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녀석의 입안에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임진호는 치아가 몹시 아픈 듯 칭얼거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울더니 녀석이 이서준을 원만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럼에도 이서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단히 일러줄 뿐이다. 두 번 다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또다시 내 밥을 뺏어 먹으려면, 다음번에는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지금은 비록 조약돌 하나 집어넣은 것뿐이지만, 다음번에는 쥐약을 집어넣을 테니까.”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고난을 겪으면 변하기 마련이라고. 참을성이 좋고 기업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순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이서준은 상당히 독기가 풍만한 녀석으로 자란 것이다.
카레밥에 조약돌 하나를 집어넣은 사건 후로 보육원 아이들은 아무도 이서준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호는 어금니에 금이 갈 정도로 상처를 입었음에도 이서준을 따라다녔다.
“서준아, 넌 왜 맨날 책만 봐? 그것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책만 골라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책 보는 것밖에 없으니까.”
“왜? 들어가서 게임을 해도 되고, 놀게 얼마나 많은데.”
“별로.”
이서준은 훗날을 위해 끊임없이 독서를 했다.
아는 것이 많아야 복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날이 생각보다 일찍 다가오고 있었다.
“강철민이라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이니까,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원장님 손에 이끌려 표정이 더러운 녀석이 새로 들어왔다. 녀석도 보육원에 있는 애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눈빛이었다.
며칠 후 녀석이 임진호에게 다가와 거칠게 몸을 밀쳤다.
“어이, 뚱보. 넌 이름이 뭐냐?”
“임진호라고 하는데···. 왜?”
강철민은 우리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다. 2년이나 더 살아서인지 몰라도 키와 덩치가 훨씬 컸다. 그래서인지 거친 녀석의 행동에 임진호는 기가 죽은 듯했다.
“네가 내 도시락에 손댔냐?”
“아, 아닌데.”
“이게 어디 죽으려고. 너 원래 애들 도시락에 손대는 거로 유명하다면서? 다 알고 있으니까 순순히 불어라, 뒤지고 싶지 않으면.”
“진짜 아닌데.”
임진호의 가슴팍을 콕콕 찔러대던 녀석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머리로 향했다.
“말하라고, 새꺄.”
머리를 샌드백처럼 툭툭 쳐대자 임진호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주변 아이들은 험상궂게 생긴 녀석의 기세에 눌려 아무도 나서려 들지 않았다.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하지만 녀석도 굳이 폭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폭력을 저지른다면, 재수 없으면 보육원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녀석이 임진호에게 다른 제안을 해왔다.
“너 이제부터 내 똘마니 해라. 그럼 이번 일은 눈감아줄게. 어때?”
“···.”
“어떠냐고 새끼야? 왜 대답이 없어?”
“싫은데.”
“이게 뒤지려고.”
녀석이 거칠게 주먹을 휘둘러 임진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애들에게 경고했다.
“원장님에게 이르면 너희들도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암묵적으로 다들 수긍했다. 전부 하나 같이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강철민은 다시 임진호에게 집중했다.
“몇 대 더 맞아 볼 테야? 아니면 순순히 내 말대로 할래?”
“싫어!”
임진호는 나름 단호했다.
“그래? 그럼 더 맞겠다는 소리군. 좋아, 원하는 대로 해주지.”
거친 주먹이 이번에는 임진호의 얼굴에 제대로 꽂혔다. 애초에 폭력을 행사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꼭지가 돌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인정사정없이 임진호를 때리기 시작했다.
듣기에도 거북스러운 비명소리가 보육원 마당에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원장선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외출한 모양이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임진호를 불쌍하게 바라볼 뿐, 여전히 나서려 들지 않았다. 그들도 겁이 났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누구도 비논리적인 폭력 속에서 임진호를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있던 이서준이 보던 책을 덮고 녀석에게 다가가기 전까지는···.
- 작가의말
독자님들 반갑습니다.
이번 작품도 한 번 열심히 달려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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