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비
오 가을의 끝, 겨울, 흙물에 젖은 봄,
졸음을 몰고 오는 계절들! 나는 사랑하고 기리노라,
안개 수의와 몽롱한 무덤으로
내 마음과 뇌수를 이처럼 감싸 주는 그대들을.
이 허허벌판에, 차가운 바람 뛰놀고,
긴긴 밤 새워 바람개비 목이 쉬는데,
내 혼은 제 까마귀의 날개를
다사로운 새봄에서보다 더 활짝 펴리라.
음산한 것들 가득한 데다, 오래 전부터
서리 내린 이 가슴에, 더 아늑한 것은 없구나,
오 우중충한 계절, 우리네 기후의 여왕이여,
그대 창백한 어둠의 한결같은 모습보다,
— 달도 없는 어느 저녁에, 둘씩 둘씩,
아슬아슬한 침대에서 고뇌를 잠재우기가 아니라면.
샤를 보들레르. (1861). 『악의 꽃』. 황현산 역. 민음사. 2017. pp.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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