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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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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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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90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1.12.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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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포도군관

DUMMY

“군관나리, 그러지 마시고 잠깐 앉아보시라니까요. 혹시, 좌청에 계십니까?” 주인이 포도군관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알아 무엇 하려고?” 포도군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요, 좌청에 계십니까? 좌청에 계신 분들은 제가 다 아는데······ 이쪽 관할에 계신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장사는 안 하고 좌청 포도군관들이랑 사귀러만 다녔냐? 그래, 난 우청에 있다. 이놈아, 국법을 집행하는데 관할이 무슨 상관이냐?”

“여긴 좌청 관할인데요. 관할도 국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국법을 집행하시는 어른께서 국법으로 정해놓은 관할도 우습게보십니까?” 주인은 포도군관의 말을 듣고 비꼬면서 물었다.

“그래, 그러면 잡아서 좌청에 넘기면 그만이지. 누가 우청으로 잡아간다고 그러냐?”

“아하, 우청에 계시군요. 그러니까 제가 못 알아 뵙죠. 그런데 저를 잡아다 좌정에 넘기면 군관나리께서는 무슨 공이 있습니까? 실적도 없고, 압수한 판돈도 다 넘겨줘야 할 텐데요. 그러지 마시고 압수하신 판돈은 그냥 가져가시고, 그것 말고도 제가 얼마 더 챙겨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못 본 척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주인은 능구렁이 같이 뇌물을 제안했다.

“지랄한다. 여긴 내 관할이 아니니까 좌청에 넘긴다고. 그리고 지금 했던 말 내 부하들이 다 들었어. 너는 뇌물죄까지 추가야.” 포도군관은 관할구역 운운하며 자신을 비웃던 주인을 비웃었다.

“아니, 군관님. 그러니까··· 이놈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다른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관할도 아닌데 체포해서 좌청에 넘겨봤자 우리에게 무슨 공이 있습니까?” 압수한 돈을 챙긴 포졸이 말했다.

“공을 세우러 관할을 넘어온 게 아니잖아?” 포도군관이 엄숙하게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군관님, 저희도 밤새 기찰했는데 좀 쉬어야죠.” 포도군관보다 나이가 많은 포졸이 말했다.

“그래? 쉬고 싶어?” 포도군관이 물었다.

포졸들은 대답을 못했지만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럼 판돈은 가져온 놈들에게 가져온 만큼 다 나눠줘. 그러고 너희는 주인이 판돈 말고 챙겨주겠다던 돈이나 챙겨.” 포도군관이 말했다.

포졸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노름꾼들은 기쁜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래, 이놈들 좌청에다 넘겨도 좋아할 것 같지 않다. 자기네 관할까지 뒤지고 다녔는데 좌청에서 좋아할 수가 없지. 우리도 그렇잖아? 판돈은 원래 가져온 대로 돌려줘라.”

포졸들은 못마땅했지만 상사의 말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여긴 우리 관할구역이 아니야. 압수한 판돈 따위는 그냥 다 없던 셈 쳐라. 주인장이 술대접한다고 했으니 술 한 잔씩 마시고 돌아가.” 포도군관이 앞서 한 자신의 말에 쐐기를 박았다.

“술상 푸짐하게 내와라.” 주인이 포도군관의 말을 받아 밖에다 소리치며 속으로 안도했다.

‘평소라면 우청에서 도박이나 단속하려고 여기까지 넘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는 건 아마도 비공개로 수사한다는 괘서 때문일 것이다. 괜히 괘서와 관련되어 있다고 엮인다면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포졸들은 압수한 판돈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술상이 들어왔다.

판돈을 압수한 포졸은 돈을 도로 내놓았다.

도박꾼들은 돈을 나누어가졌다. 그러다 서로 눈을 부라리기는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포졸들 앞에서 돈을 나누면서 목소리를 높여서 싸울 수는 없었다.

“너 이 은덩이 어디서 났어?” 포도군관이 승호의 판돈을 손에 들고 물었다.

“훔친 게 아니에요. 내가 가져온 겁니다.” 승호가 항변했다.

“내가 언제 훔쳤다고 했어? 그러니까 어디서 났냐고?”

“내기바둑 둬서 땄습니다.”

“이런 은덩이를 걸고 내기바둑을 둔다고?”

“그동안 딴 걸 은덩이로 바꾸었습니다.”

“내기바둑으로 이만큼을 땄다고? 그건 그렇고 누구한테 바꿨어?”

“예? 서울에서 그걸 바꿀 데가 없겠습니까?”

“이놈 수상해. 너희들 술 마시고 와라. 난 이놈 데리고 먼저 일어나야겠다. 이 은덩이 어디서 났는지 조사해야겠다.” 포도군관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포도군관님, 아직 밥 한 안 떴는데, 요기 좀 하시고 같이 가시지요.” 늙은 포졸이 제안했다.

“됐다. 그럼 너희들은 천천히 밥 먹고 집으로 돌아가. 포청 점호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밤새 기찰하느라고 고생했다.” 포도군관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포졸들은 모두 반색했다.

포도군관은 승호의 은덩이를 품에 넣으며 일어섰다.

주인은 그걸 보고 포도군관이 은덩이를 혼자 가로챌 것이라고 짐작했다.

포졸들은 따라 일어나 인사를 했고, 이 때 늙은 포졸이 젊은 포졸에게 승호를 오랏줄로 묶으라고 했다.

“됐어, 뭣하게?” 포도군관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젊은 포졸이 손을 거두었다.

“아니, 이놈 보니까 키도 크고 힘이 장사겠는데요. 혹시라도 도망치면 어쩝니까?” 늙은 포졸이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날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자네, 내가 뇌물이나 써서 무과에 급제한 줄 알아.”

“압니다만··· 그래도······”

“하긴, 요즘 무과가 대리시험이니 성적조작이니 개판이긴 하지. 그렇게 합격한 놈들이 목에 힘주고 다니면서 활도 제대로 못 쏘는 걸 보면 나도 열불이 난다. 난 그렇게 급제한 게 아니야. 이런 놈 하나 제압 못하면 난 현직에서 물러날 거야. 혹시 그게 오늘이 될지 모르겠구먼. 하하.” 포도군관은 마지막에 농담을 던졌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그러고 승호의 뒷덜미를 잡고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십시오.” “고생하셨습니다.” 포졸들은 포도군관에게 인사했다.

주인은 저런 자존감을 가진 포도군관이라면 노름판에 돈이나 뜯으러 다니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승호의 은덩이를 가로챌 거라는 짐작을 거두었다.


포도군관은 승호를 경계하지 않았다. 죄인처럼 승호를 앞세우지도 않았다. 그냥 옆에서 같이 걸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변 역관에게 양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포도군관이 말을 꺼냈다.

“아니, 그게 말입니다. 거짓말은 아닌데··· 그러니까······” 승호는 말을 끌면서 어떻게 말해야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포도군관은 머뭇거리는 승호의 옆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넌 내가 아는 사람이랑 많이 닮았어. 서소문에서 널 처음 봤을 때 난 희수 형의 어릴 때 모습을 떠올렸지. 매일 같이 놀던 사람을 몰라볼 수는 없지. 형이 역관생도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매일 같이 놀았으니까. 형은 바로 옆집에 살았으니까. 그러고 나서 형이 널 낳은 것도, 양호 형이 널 양자로 키우고 있는 것도 전혀 몰랐다.”

“포도군관님, 그러니까··· 그 양자 얘긴 오늘, 아니 밤을 샜으니 어제 나온 말입니다.” 승호는 말을 하다 포도군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이놈아, 둘만 있는데 포도군관님이 뭐야? 삼촌이라고 불러. 너 희수 형 아들 맞지?”

“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실은 저도 엊그제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역병이 돌 때 버려진 고아인 줄 알고 컸습니다. 그러고···”

승호는 변양호에게 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포도군관에게 옮겼다. 이름도 모르는 포도군관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누구에겐가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다.

포도군관은 얘기를 들으며 혀를 차기도 하고 한숨도 쉬었다.

승호가 이야기를 마치자, 포도군관은 한참동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건 그렇고 어쩌자고 노름판에 끼었어?” 포도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얘길 들고 집에 있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섰지요. 나름대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갈 데를 모르고 걷다보니 동대문에 와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렸고 요기나 하려고 아까 그 주막을 들렀습니다. 술 몇 잔 마시고 있는데, 노름판이 벌어졌고, 아무 생각 없이, 아니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노름판에 끼어들게 됐습니다.”

“그래? 네 마음은 알겠다만······” 포도군관은 말을 끌며 따뜻한 눈빛으로 승호를 바라보다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너 혹시 김 총각 아냐?”

“예? 누구요? 아, 아니요. 절대로 모릅니다.” 승호가 극구 부인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모르는 거야. 모르는 사람을 절대로 모른다고 하지는 않아. 알겠니?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야.” 포도군관은 고개를 끄떡이는 승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 총각이 잡히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예?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승호는 떨면서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때를 말한 거지 김 총각을 말한 게 아니다. 그 때, 그러니까 그가 잡혔을 때 말이다.” 포도군관은 겁먹은 승호를 다그쳤다. “그 때는 참수된 후에 효시될 거야. 사지는 잘려서 팔도에 흩어질 거야. 역적은 그렇게 죽는 거야.”

“예, 그건 아는데, 김 총각은 모릅니다.”

“김 총각 물어본 게 아니잖아. 김 총각을 모른다는 얘긴 자꾸 왜 꺼내? 꼭 아는 걸 부정하려는 것 같잖아. 넌 포청에 끌려가서 신문을 받으면 영락없이 걸려들겠구나. 누구든 역모로 몰려서 국청에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는 없어. 고문은 없던 말도 만들어내게 해. 국청은 지옥 같은 고문장이야. 난 고문으로 받은 자백은 인정할 수 없다고 절대로 인정하지만, 이 나라 국법은 고문을 인정한다. 포청에 있는 고문기술자들은 너한테 역적이라는 자백을 받아낼 수 있어.” 포도군관은 떨고 있는 승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김 총각을 알게 되거든 말 좀 전해라. 밖에도 함부로 나다니지 말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군관님 성함은······” 승호는 아버지 친구였다는 포도군관의 이름을 겨우 물었다.

“이름은 알아 무얼 하려고?” 포도군관은 말하며 승호에게 은덩이를 내밀었다.

“그냥 가지고 가십시오. 저는 돈 필요 없습니다.”

“이놈아, 삼촌이 조카 돈 뺏는 경우가 어디 있냐?” 포도군관은 은덩이를 승호에게 던졌다.

승호는 무엇인가 날아오기에 얼떨결에 그걸 받았다.

포도군관은 이미 몇 걸음을 앞서갔다.

“잘 들어가라. 그러고 아까 한 말 잊지 말고.” 포도군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내던졌다. “내 이름은 최진규다.”

승호는 속으로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면서 받아든 은덩이와 포도군관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녕히 가세요.” 최진규의 등에 대고 꾸벅 인사를 했다.

최진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빠른 걸음에 철릭 자락이 휘날렸다.

승호는 늠름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그려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해 상상해볼 어떤 실마리도 없었다.

어머니는 더했다. 변양호조차 그녀가 죽는 날 그녀를 처음 보았다. 성조차 모른다. 어머니에 대해 알려면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당장 아버지를 찾아 나설 수도 없었다.

승호는 최진규의 말을 곱씹으며 두서없는 생각들을 김 총각에게로 옮겼다.


김 총각은 잡히면 역률에 의해 참수될 것이었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했던 걸까?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주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저 주인의 말을 따랐을 뿐이다.

주인은 김 총각을 죽이기 위해 그걸 시킨 것은 아니었다. 김 총각이 참수당한다면 그걸 사주한 주인도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김 총각의 주인도 자신의 목을 내놓고 하는 일이다.

어떠한 명분도 없이 목숨을 내놓을 사람은 없다.

괘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명분은 정당하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 모른다. 하지만 그걸 사실로 믿으면 명분은 정당하다.

임금의 자격도 없는 놈이 버젓이 임금 노릇하고 있는 건 부당하다. 그걸 반대하는 건 목숨을 내놓을 만한 정당한 명분이다.

김 총각은 이런 자각이 있었을까? 아니면 주인이 시켜서 그냥 심부름꾼 노릇이나 했던 것일까?

아무 생각 없이 심부름만 하다가 죽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목숨을 걸어야한다면 그 이유를 절박하게 벼려야 한다. 그래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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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공개수사 22.01.03 350 7 13쪽
14 왕세제 책봉 22.01.02 354 6 13쪽
13 역관 +1 22.01.01 410 8 13쪽
12 종로 괘서 21.12.31 382 8 12쪽
11 그림 거간꾼 21.12.30 387 9 15쪽
10 고수들의 대국 21.12.29 396 10 12쪽
9 진화루 21.12.28 425 10 13쪽
» 포도군관 21.12.27 442 11 13쪽
7 역관가문의 후손 +1 21.12.26 609 9 12쪽
6 비공개수사 +2 21.12.25 505 10 12쪽
5 광통교 화방 +1 21.12.24 568 11 13쪽
4 내기바둑 +1 21.12.23 631 13 13쪽
3 명문대가의 얼자 +2 21.12.22 777 23 14쪽
2 해산 +1 21.12.21 999 24 13쪽
1 서소문 괘서(掛書) +10 21.12.20 1,934 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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