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631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1.12.21 11:00
조회
994
추천
24
글자
13쪽

해산

DUMMY

동쪽에서 삼십여 명이 넘는 포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승호는 서울에서 이렇게 많은 포졸이 한꺼번에 출동한 것을 처음 보았다. 도적을 잡거나 순찰을 도는 데에는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린방 우포청 소속 포졸들의 절반은 출동한 것 같았다.

겹겹이 모여 있던 군중들 대부분은 그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앞쪽에 모여 있던 군중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승호는 군중에게서 빠져나와 뒤쪽에서 무섭게 달려드는 포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승호는 상황을 인지했지만, 군중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포졸 때문에 뒤로 피할 수도 없었다.

포졸들은 경고도 없이 군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육모방망이로 뒤쪽에 있던 군중부터 구타하기 시작했다.

승호도 뒷통수를 가격 당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쓰러지면 안 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면서 얼른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묵직한 뒤통수로 가져가자 손바닥이 끈적거렸다. 피였다.

포졸들은 체포보다는 해산을 우선시하였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군중들을 내버려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포졸들은 인정사정없이 군중의 머리를 공략했다.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포졸들의 동태를 느낀 사람들은 피하다가 얻어맞고 그것을 모르던 사람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앞쪽의 군중들은 진압봉을 휘두르는 포졸들과 쓰러지는 군중들을 뒤돌아 바라보았다.

“죽어요. 빨리 피해요. 흩어지란 말이에요. 제발 빨리요. 해산, 해산!” 승호는 말리고 싶었지만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포졸과 군중 몇 명이 승호를 바라보았다. 포졸들은 여전히 진압봉을 휘둘렀고, 군중들은 그것을 맞거나 겨우 피했다.

군중은 승호의 말처럼 해산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몰렸다. 포졸들의 방망이에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제야 군중 모두 상황을 인지하고 흩어지려고 하였다. 뒤쪽에 쓰러진 사람들이 앞쪽에서 달아나는 사람들에게 밟혔다.

진압봉을 휘두르던 포졸들도 뒤로 밀리면서 더 이상 방망이를 휘두를 수가 없었다.

해산시키려는 포졸들과 해산하려는 군중이 뒤엉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포졸과 군중 모두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에 잠시 멈춰 있던 군중은 해산하는 속도를 높였다. 모두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도성에서는 왕명을 수행하기 위해 급히 가는 자 이외에는 말을 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급한 공무가 있는 것이 분명했고 그것은 괘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군중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승호는 괘서를 붙인 자는 모가지가 잘릴 것이라던 포도군관의 말이 귀에 울렸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포도군관이 그 말을 했던 포도군관임을 알아보았다.

포도군관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군중과 포졸들은 말이 달리는 양쪽으로 갈라졌다.

포도군관은 괘서가 붙은 성벽 앞까지 말을 달릴 수 있었다. 괘서 아래 말을 세우고 굳어진 표정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부하들을 불러 말을 잡으라고 한 후에 말 잔등에 올라섰다. 팔을 뻗어 성벽에 붙은 괘서를 떼어냈다. 그것을 품에 넣으며 말 잔등에 앉았다. 부하들에게 자리를 정리한 후에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말을 달렸다.

포졸들은 해산하다 남은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육모방망이 대신 붉은 오라를 손에 들고 거칠게 군중을 묶었다.

군중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혐의가 없더라도 포도청에 끌려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군중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부상을 입어 쓰러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오라에 묶였다.

군중들 뒤쪽에 있던 승호는 그것을 보고 놀라 서소문 밖으로 달렸다.


승호는 서소문으로 도망쳤다가 남대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다동에 있는 집까지 내달렸다.

“어디 갔다 와?” 명희가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승호에게 물었다.

“밖에요. 그···그, 그냥······” 승호는 말을 끌며 허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시에 안도의 한숨도 내뱉었다.

동희와 명희는 땀과 피와 흙으로 뒤범벅인 승호의 얼굴을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새벽부터 어디서 싸우고 왔어? 심하게 맞은 거 같은데. 그냥 맞기만 했어, 아니면 좀 패줬어?” 명희가 물었다.

“아니에요, 아가씨. 싸우긴요.” 승호는 숨을 고르며 대꾸했다. 그러다 또 다시 허리를 구부리며 가픈 숨을 내뱄었다. 기침도 나왔다. 기침이 그치자 명희에게 고개를 숙인 채 손을 흔들었다.

“뭐야, 왜 그래.” 동희가 물었다. 두 손으로 승호의 어깨를 잡아 세우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어르신은 집에 계시죠?”

“안 그래도 너 기다리시던 같던데. 무슨 일이야?” 명희가 둘의 대화를 자르고 물었다. “얻어터지고 와서 아버지는 왜 찾아?”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아가씨, 그냥 다친 거예요. 우선 어르신 뵙고 나올게요.”

“흥, 그냥 다치긴. 맞아도 된통 맞았구먼. 아침댓바람부터 얻어터지고 다니긴. 이리 와봐. 얼마나 다친 거야.”

“괜찮다니까요. 우선 들어갔다 올게요.”

승호는 소매로 대충 얼굴을 닦고 옷의 흙먼지도 털어냈다.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사랑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뒤통수까지 깨졌어.” 명희는 승호의 뒤통수를 보고 말했다.

“그만해! 아버지 뵙고 나온다잖아.” 동희가 명희를 꾸짖었다.

승호는 뒤를 돌아보며 남매에게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남매를 뒤로하고는 사랑채로 향했다. 거기에 도착해 숨을 한 번 고르고 변양호를 불렀다.

“어르신, 승호입니다.”

“그래, 빨리 들어와라.” 변양호는 밖에서 나는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인기척과 승호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

승호는 “예”라고 대답하며 방문을 열었다.

“거기 상황은 어땠냐?” 변양호는 승호가 방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물었다. 승호가 들어서자 다친 것을 발견했다. “넌 별일 없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승호를 살피며 물었다.

“전 별 일 없었습니다. 근데 거기 상황은 좀 복잡해졌습니다.” 승호는 절을 하고 몸을 세우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몸을 세우고 꿇어앉았다. 추운 날씨에 달려왔기 때문에 방안에 들어선 승호의 머리에서는 하얗게 김이 올랐다. 얼굴에는 땀이 배어왔고 대충 닦은 얼굴은 피와 흙이 범벅이 되어 지저분했다.

“얼굴은 왜 그 모양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변양호가 물었다. 승호의 몰골을 살피며 긴장했다.

“아닙니다. 거기가 난장판이 되어서는······.”

승호는 새벽에 서소문에서 보았던 괘서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양호는 굳은 표정으로 승호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 깊게 들었다.

“수고했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돌아가서 상처 좀 치료하고 쉬어라.” 승호가 말을 마치자 그는 한숨을 길게 쉬고는 말했다.

승호는 인사를 올리고 물러나왔다. 남매는 사랑채 밖에서 승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새벽에 어디 갔었어?” 동희가 승호를 보며 물었다.

승호는 동희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그를 바짝 당기고 있었던 팽팽했던 긴장감도 풀려버렸다. 변양호에게 서소문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늘어졌다.

“도대체 왜 뭔 일이야? 이거나 받아.” 명희가 승호에게 보따리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승호는 그걸 받아들고 명희를 바라보았다.

“약이야. 씻고 발라. 어디 가서 얻어맞고 다니지 말고.” 명희는 승호가 뭔지 물어보기 전에 말했다.

“고마워요, 아가씨. 씻고 좀 쉴게요.” 승호가 말했다.

명희는 고개를 끄떡였다. 평소 같았으면 승호를 붙들고 늘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승호가 이렇게 맥이 풀린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어서 들어가서 쉬어.” 동희도 걱정스런 눈으로 승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월 대보름이 하루가 지났다.

서소문에 괘서가 붙었던 날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포도청은 조용했고, 서울도 조용했다.


이 날 아침, 변양호는 집을 나섰다. 혼자서 말을 타고 파주로 향했다. 재작년 죽은 처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성묘하기 위해서였다.

집사 역할을 하는 손돌이 모시고가겠다고 했으나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동희도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혼자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손돌과 동희는 성문까지 배웅하겠다며 따라 나섰다. 손돌이 변양호가 탄 말을 끌었고, 동희는 그 뒤를 따랐다.


명희는 문 앞에서 아버지를 배웅하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사랑채의 손님 접대하는 방으로 승호를 불렀다.

“아가씨, 부르셨어요.”

“어, 들어와.”

승호는 명희의 대답을 듣고 방문을 열었다. 명희는 벼루와 붓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화선지는 방바닥에 펼쳐 양쪽을 문진으로 고정시켜놓았다.

“또 그림 베껴 그리셨어요?” 승호는 궤안 위의 말아놓은 족자를 보며 물었다.

“응. 바둑이나 한 판 두자. 좀 챙겨와.” 명희가 대꾸했다.

승호는 대답을 하고 바둑판과 돌을 가져왔다. 흑돌을 명희에게 건네고 자신이 백돌을 자신의 오른쪽 무릎 옆에 놓았다.

둘은 16개의 꽃무늬가 그려진 화점(花點)에 피차의 돌을 같은 모양으로 섞바꾸어 놓았다. 그러고는 승호가 정중앙의 천원(天元)에 백돌을 놓고 나서 명희는 그 백돌을 에워싸고 흑 4점을 놓았다. 순장바둑의 접바둑 배석이었다. 승호의 선수로 바둑이 시작되었다.

“서소문에 괘서 붙었다던데······ 소문 들었어?” 명희가 몇 수를 두고 나서 물었다.

“예? 아, 예, 그렇다고 하대요.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그래? 그건 그렇고,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승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바둑판에 고개를 묻은 체 부정했다.

“아니긴, 뭔가 불안한 사람 같잖아. 지금도 그렇고, 안하던 싸움질까지 하고··· 그러다 맞고 들어오는 건 뭐야.”

“누가 싸움질을 해요. 아니라니까요.”

“아니면 뭐야? 어디서 맞고 온 건데? 사내놈이 싸움질도 할 수 있지. 뭐가 켕겨서 말 안하는 건데?”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승호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마주친 명희의 눈빛을 피했다. 그러다가 다시 바둑판에 고개를 묻으며 화제를 바꿨다. “아가씨, 오늘밤에 달구경 꼭 하세요.”

“응? 어제 실컷 했는데 뭔 달구경? 대보름 다음날 달구경을 하라니. 하여간 요즘 너 이상하다니까.”

“아니요. 오늘 월식이 있대요. 관상감에서 예측했는데 구식의(救蝕儀)를 한다고 하던데요.”

“그래? 바보들, 그냥 자연현상인데 뭔 의례까지 지내? 근데 올해는 보름달이 두 번 뜨나보네?”

“예?”

“원래 월식은 보름달이 뜰 때만 생기거든. 근데 달의 공전주기가 30일보다 적기 때문에 윤달이 생기고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이 생길 수밖에 거라고. 근데 서양에서는 ‘푸른 달’이라고 부른다고. 어쨌든 지구의 그림자가 보름달을 가리는 건데, 어제가 보름이었으니 월식이 있는 오늘 또 보름달이 떠야 할 것 아니야?”

세현은 고개를 들어 휘둥그레진 눈으로 명희를 바라보았다.

“지구가 해를 돌고 달은 지구를 돈다는 얘기 안 들어봤어?” 명희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들어봤지요. 근데 이해가 안 돼서······”

승호는 지구가 돈다는 얘기를 손돌에게 들었다.

역관 변양호는 사행을 갔다가 북경 천주당에서 서양 선교사들에게 천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 때 변양호를 따라갔던 손돌도 그것을 들었고 승호에게 그 얘기를 해줬다.

승호는 논리는 이해가 됐지만 믿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진보적인 역관들과 양반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믿었다.

명희는 바둑돌을 짚어가며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 그러고는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에 놓이기 때문에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게 월식이라는 설명도 했다.

승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열두 살 소녀의 설명을 들었다. 언어는 조금 유치했지만 논리는 간결하고 선명했다.

그녀는 여섯 살에 《소학》을 뗀 신동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림과 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마감합니다 22.07.05 196 0 -
110 접어둔 복수 22.07.05 230 3 11쪽
109 자진 반환 22.07.02 140 3 12쪽
108 사칭 22.07.01 145 2 12쪽
107 대리 대국 22.06.30 140 3 11쪽
106 무덤에서 22.06.29 142 2 12쪽
105 또 다른 명희 22.06.28 138 2 10쪽
104 손돌 22.06.25 135 2 13쪽
103 의인(義人) 22.06.24 143 3 11쪽
102 상봉 22.06.23 140 3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42 2 11쪽
100 인삼주 22.06.21 141 2 12쪽
99 국경 22.06.18 136 2 12쪽
98 엄마 22.06.17 140 2 11쪽
97 가출 22.06.16 139 2 12쪽
96 22.06.15 154 2 12쪽
95 거래 종료 22.06.14 142 3 11쪽
94 사부 22.06.11 142 3 11쪽
93 핑계 22.06.10 150 3 11쪽
92 가보(家寶) 22.06.09 168 3 12쪽
91 감정(鑑定) 22.06.08 160 3 12쪽
90 가슴 시린 백발 22.06.07 155 2 11쪽
89 두 번째 검 22.06.04 149 3 12쪽
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45 3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53 3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7 3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49 2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46 2 12쪽
83 할머니 22.05.27 157 2 11쪽
82 22.05.26 158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