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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uan7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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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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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056

작성
21.12.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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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서소문 괘서(掛書)

DUMMY

무신(戊申)년, 훗날 영조라는 묘호를 받는 이금(李衿)이 임금이 된지 사 년이 흘렀다.

이 해(1728) 정월 열하루, 파루의 종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승호는 밤새 이 종소리를 기다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승호는 종소리를 세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세어보지 않은 종소리였다.

서울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듣지만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승호는 서른세 번째까지 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센 것이 틀리지 않다면 마지막 종소리였기 때문이다.

종소리를 세다보니 승호는 ‘댕’ 소리가 더 울려야 할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이 환청 같은 느낌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고 집을 나섰다.

통금이 풀렸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겨울 해는 아직까지 날을 밝힐 수가 없었다.

승호는 남은 달빛에 의지해 청계천변을 걸었다. 걸으면서 부러 자신의 발걸음을 셌다. 마음은 급했지만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 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 몇까지 세었는지 잊어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셀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뿌옇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승호는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서소문이 승호의 시야에 들어왔다.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았지만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승호는 성벽에 붙은 괘서(일종의 대자보)를 바라보았다. 괘서는 어른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이 붙어 있었다. 승호는 괘서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직까지 아무도 괘서를 발견하지 못 한 것 같았다.

그는 성문에서 거리를 두고 서성였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들의 눈길을 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큰 키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항상 남들에게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문을 향해 걸었고 홍예문을 지나 성 밖으로 나갔다.

승호는 성 밖의 칠패시장에서 흥정도 안하고 비싼 민어 한 마리를 샀다. 그러고는 성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짚으로 아가미를 꿴 민어가 들려 있었다.

홍예를 지나기도 전에 안쪽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괘서가 붙은 성벽 아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승호는 모여든 군중들 때문에 괘서를 읽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걸 올려보았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 나라가 어쩌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민의 뜻을 뒤엎은 나라가 되었느냐? 가짜가 임금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이 나라이다. 천하의 역적이 조선의 임금으로 앉아 있으니, 하늘이 노하지 않으면 그건 하늘이 아니다. 선대왕이신 숙종대왕의 풍모는 없고 쥐새끼 같은 몰골로 선왕의 아들이라 하니 하늘이 믿겠느냐 민이 믿겠느냐? 최무수리는 간통하여 너를 낳고 선대왕의 씨앗이라고 하늘과 민을 속였다. 조선 왕조의 성을 훔쳐 나라를 능멸하고 하늘과 민을 능멸하였다. 너희 역당(逆黨)은 이를 눈 감고 모른 척 해도 하늘과 민이 어떻게 눈을 감고 모른 척 할 수 있으랴? 하늘은 쥐새끼의 천하에 용납할 수 없고, 민은 쥐새끼를 임금으로 섬기고 살 수 없다. 조선 왕조의 씨앗이 바뀌었느니라. 무수리가 간통하여 쥐새끼를 낳으니 이게 지금 조선의 개 같은 임금이다.

그 쥐새끼는 선대왕께서 안질과 노환으로 병석에 계실 때 어미의 묘를 본다고 상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남의 묘를 가로채려다 소송에 걸려 선대왕께서 질책하시며 상복을 벗으라고 호통을 치셨다. 죽은 무수리 어미는 소중하고 편찮으신 선대왕은 아버지가 아니더냐? 아버지가 따로 있더냐?

너희 역당 노론이 경종대왕을 시해했음을 하늘이 알고 민이 안다. 역당의 우두머리 이금은 선왕께 게장에 독약을 타고 상극인 감까지 올렸다. 그러고도 붕어하시지 않자 의가에서는 꺼리는 부자(附子)를 올렸다. 이에 선왕께서 돌아가시니, 아아, 슬프고도 슬프도다! 분하고도 또 분하도다!

선왕 경종대왕은 생전에 역당을 처단하시면서도 그 우두머리 이금은 수족의 정을 생각하시어 살려두셨다. 선왕은 최무수리의 참언으로 어머니를 잃으셨지만, 그래도 부관참시를 당해 마땅한 최무수리도 그냥 두셨다. 이금은 자신을 살려준 형의 자비를 저버리고 그걸 시해로 갚았다. 너희 역당은 입만 열면 떠들어대던 강상을 당리당략 때문에 무너뜨렸다. 예(禮)를 들먹이더니만 선왕을 시해하는 게 역당에게는 신하의 예이더냐? 선왕께서 하늘에서 눈을 감으시겠느냐? 하늘이 어찌 참으시고, 민이 어떻게 참겠는가? 이 조선이 어찌 너희 역당의 땅이겠느냐? 조선은 민의 땅이고 민은 추호라도 참지 않겠다.

너 이금은 경종대왕의 장례일이 지나지도 않아서 충신 김일경을 죽였다. 선왕의 시신이 궐 안에 계신데도 그 궐 안에다 충신의 피를 뿌렸다. 조선의 어떤 임금도 이런 포악을 행하시지는 않으셨다. 조선에는 선왕이 붕어하신지 3년 이전에는 과거사의 문제를 뒤집지 말라고 유훈이 있었다. 그런데 이금 네놈은 선왕의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널 위해 역모를 꾸미다 죽어간 역적들을 모두 신원하였다. 네놈은 선조의 유훈조차 비웃으며 왕실의 씨가 바뀌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과연 네놈의 씨는 어디서 온 것이더냐? 네놈의 극악한 죄는 하늘에 용서조차 빌 수 없다. 네놈은 역당과 협잡하여 무도하게 이 나라를 빼앗았을 뿐이다. 부도(不道)는 잠시이고 정도(正道)는 영원하다. 하늘이 너희를 처단할 것이고, 민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걸 쓴 자와 붙인 자는 잡힌다면 목이 잘릴 것이다.

이미 모여 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방금 온 사람들은 무엇인지 보려고 앞 사람들을 밀쳐냈다. 어떤 이들은 순순히 떠밀렸고 어떤 이들은 밀려나지 않으려고 버텼다. 보려는 사람들과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난장판이 되었다.

승호는 뒤에 서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왕실의 씨가 바뀌었다니?”

“얘기 못 들었어? 숙종대왕님과는 닮지 않았잖아?”

“직접 봤다는 말이야?”

“그럼 행차할 때 멀리서 봤지. 숙종대왕님보다 얼굴은 갸름하고 수염도 많더라고.”

“그래? 나도 그런 소릴 듣긴 했는데, 모르지.”

“난 숙종대왕님께서 붕어하신 후부터 게장을 안 먹어.”

“자네가 게장 먹을 돈이나 있나?”

“어쨌든 안 먹는다니까.”

“그래, 나는 그 때부터 감을 안 먹는데.”

괘서는 한문으로 써져 있었다. 승호는 여기 모인 군중 누구도 내용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도 군중은 잘도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금이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소문도 이복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도 이미 파다했다.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서울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고 있었고 여기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소문은 황당할수록 믿음을 주었고, 나쁜 소문일수록 빨리 퍼져나갔다.

“뭣들 하느냐?”

사위가 조용해졌다. 방금 몇 마디 지껄이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고개를 돌렸다. 앞쪽에서 글을 보던 사람 몇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

포도군관과 포졸이 등장하자 군중의 웅성거림은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길을 열었고 그들은 괘서가 붙은 성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도군관이 괘서 아래 서서 몇 줄을 읽더니만 낯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계속 읽어나가는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식은땀까지 흘렀다. 글을 모르는 조졸은 포도군관의 낯빛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포도군관이 뒤꿈치를 들고 괘서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한참 모자랐다.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가 팔꿈치를 성벽에 찧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부여잡고 돌아섰다.

“뭣들 하느냐. 빨리 물러가라.” 포도군관은 손을 휘저으며 호통을 쳤다.

포졸은 포도군관의 말에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군중을 쫓아버리려고 허둥댔다. 그의 앞에 있던 몇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다. 뒤에 있는 군중은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승호는 군중의 맨 뒤에 서 있었지만 큰 키 덕분에 그걸 볼 수 있었다. 둘이서 이 많은 군중을 해산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뒤에 서있는 너, 이리 좀 와라.” 포도군관이 손가락으로 군중 뒤에 서있는 키 큰 청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승호는 좌우를 돌아보다가 포도군관과 눈이 마주쳤다.

“어딜 보냐? 그래, 너 말이야.” 포도군관이 호통을 쳤다.

승호는 대답 없이 그 포도군관을 바라보았다. 군중은 고개를 돌려 승호를 바라보았다.

“빨리 이리 좀 오라니까. 어서.” 포도군관이 승호를 쳐다보며 재촉했다.

승호는 멈칫거리다 군중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군중은 그에게 길을 터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민어를 손에 든 채 군중을 헤치며 나아가 포도군관 앞에 섰다.

“야, 이것 좀 떼어봐라.” 포도군관이 말했다.

“저도 안 닿을 것 같은데요.” 승호가 대꾸했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빨리 해보라니까.”

승호는 뒤꿈치를 든 채 팔을 뻗었다. 그의 큰 키와 긴 팔에도 괘서까지의 거리는 멀었다. 포도군관처럼 뛰어보았지만 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젠장. 어떤 놈이 저렇게 높이 걸어놓은 거야. 모가지 잘린 각오는 했겠지?”

승호는 포도군관의 혼잣말에 움찔했다.

“너 이리 와서 엎드려봐.”

승호는 자리에 엎드리려고 했다.

“너 뭐 해? 너 말고 너.”

승호는 그제야 포도군관이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는 걸 알아차렸다. 덩치가 큰 사내가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나왔다. 굽실거렸지만 인상을 쓰며 괘서 아래 엎드렸다. 승호는 그의 등에 올라섰다.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야, 안 닿으면 뛰어봐. 빨리 좀 해보라고.”

승호는 뛰어올랐다가 미끄러졌다. 뒤로 자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덩치 큰 사내는 등을 밟히고는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그러다 뒤에 넘어져 있는 승호의 얼굴을 밟았다.

“이런 병신,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하고.”

포도군관은 자신 앞에 쓰러진 승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승호는 발길질에 나가떨어지며 손에 든 민어를 놓쳤다.

“미친놈, 이건 뭐라고 계속 들고 있어.”

포도군관은 땅에 떨어진 민어를 짓밟은 후 군중에게 차버렸다. 승호는 억울했지만 일어서서 머리를 조아렸다. 포도군관은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모두들 돌아가라. 싹 다 잡아가기 전에 말이야!”

이 말에 군중은 겁먹었으나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잡아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몇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대로 서있었다.

포도군관은 혼자서 어쩔 수가 없자 상관에게 보고하고 지원 병력을 불러오기로 마음먹었다.

“젠장, 돌아가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남아 있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포도군관은 협박을 하며 군중을 헤치고 나아갔다. 포졸은 어쩔 줄 모르고 포도군관을 뒤따랐다. 군중은 길을 터주었다. 포도군관과 포졸은 군중을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포도군관이 자리를 뜨자 군중은 웅성대며 괘서 아래로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군중은 포도군관이 차버린 민어를 짓밟아 곤죽으로 만들었다.

승호는 포도군관에게 차인 옆구리를 감싸 안으며 일어났다. 왼손으로는 옆구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부어오른 눈두덩을 비볐다. 그러면서 군중을 바깥쪽으로 나가려고 했다.

군중은 포도군관에게 했던 것처럼 길을 터주지 않았다.

승호는 자꾸 안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밀리다 겨우 군중을 헤쳐 나왔다. 모여 있던 군중의 뒤쪽으로 빠져나와 한숨을 돌리며 상처를 어루만졌다.

군중은 괘서의 내용을 두고 갑을박론을 벌였다. 양반들만 쓰는 진서(眞書)를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논쟁은 치열했다. 그러다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승호는 군중 밖에서 군데군데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지켜보았다.

괘서가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 공공연한 비밀을 공론화시키고 있었다.

얼마 후, 승호는 포졸들이 떼로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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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08 2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1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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