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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미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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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공연장 의 두 남자

“사모님,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저희들 인사 고과에 반영되는 거라서...“

“전 공연 보러 가본 적 없는데...”
“아니, 괜찮아요. 저희들이 버스 준비해서 아파트 입구에 딱 대기시킬 겁니다. 사모님께서는 몸만 가볍게 오시면 됩니다. 암요. 되고 말구요.”

아파트에서 멀지 않아 거래하고 있던 새마을 금고 김 과장이 정자의 집을 찾아와 애걸복걸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가을 음악회를 개최하는데, 각 지점별로 할당된 티켓을 고객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할당된 티켓이 50장인데, 정자에게 2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남정네가 싹싹하고 무엇보다 엉큼스런 눈빛이 맘에 들어 정자가 가끔  금고에 들러 상담을 받곤 하던 대출계 과장이었다. 

40대 초반으로 잘 다듬어진 몸매 또한 여자로 하여금 들뜬 기대를 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그 남자가 정자에게 한 번 빚을 지는 일이라 더더욱 정자는 구미가 당겼다.

빚은 갚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게다가 푸짐한 경품도 있으니 마다하면 바보아닌가.

“김 과장님이 부탁하시니 그러죠 뭐. 근데 함께 갈 사람이 없는데 어쩌지?”
“괜찮습니다. 그건 상관없고요.  이곳에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 액정을 열더니 정자에게 쑥 내밀며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좁은 현관에서 남정네가 훅 다가서자 비릿한 냄새가 공기와 함께 밀려왔다. 

남자의 냄새, 사향내가 섞인, 싫지 않은 냄새가 났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아랫배의 뜨거운 기운에 정자는 흠칫했다. 그

 기운이 얼굴까지 올라오는 데에는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헉!” 들리지 않았을까.

고개를 숙여 액정을  정자 앞에 내밀며 사인할 곳을  가리키는 김 과장의 손가락이 굵고 튼실했다. 

마디에 두어 올 돋아난 검은 털이 남자의 어딘가를 떠오르게 했다. 

돋아나지 말아야 할 곳에 외롭게 모습을 드러낸 잡초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한번 쓰다듬고 싶었다. 

정자는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니까, 정자는 소외된 식물도 풀도 다 사랑해야 하니까. 

“여기?”
“네, 거기요.”

고개를 숙여 사인할 곳을 확인하는 정자의 얼굴 바로 옆에서 대답하는 그의 입에서는 방금 가글을 한 듯한  민트향이 정자의 코로 스며들었다. 

상큼한 민트가 코를 통해 폐로 그리고 혈관을 타고 온몸 곳곳으로 파고 들어 잠들어 있던 남정네바라기 세포를 깨우려 안달했다. 

얼마 만인가. 이런 기분.

“근데 저 함께 갈 사람이 없어요. 어쩌죠?”
“아저씬 시간 안 되나요?”
“그인 지방에 계신데... 오랄 수도 없고. 호호...”
“그럼... 제가 일 마치고 사모님 모셔다드리죠 뭐. 괜찮으시다면요. 허허...”

‘이 남자가 내 냄새를 맡았을까. 나처럼. 어머, 저 눈빛 좀 봐. 대출 상담을 할 때보다 더 노골적이야.  여자가 혼자 있는아파트라서? 상남자의 음탕한 눈빛을 싫어할 여인이 있을까. 아... 이상해.’ 

정자 역시 이미 발정기기 돌고 있는 상태라 남자의 예의 없는 행동에 오히려 더 자극이 되었다. 

정자는 싫지 않은 듯 눈을 곱게 흘겨며 짐짓  엉큼한 눈빛을 모른 체했다. 그럼,  여우는 서두르지 않지. 데스파시또.

“회사 행사에 어떻게 그래요?”
“아, 괜찮습니다. 임직원들 모두 의무적으로 가야 하거든요. 저희들은 티켓만 나눠주면 임무 완수니까. 공연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럼 그럴까요... 잘 생긴 김 과장님하고 뜻하지 않게 데이트도 하네. 호호호...”
“아이고, 사모님, 젊다뇨? 저도 40이 넘었습니다요. 하하하!”
“40이면 아직 청춘이죠. 어쨌든 알았어요.” 

발정난 암캐는 향이 짙은 법, 걸쭉한 점액질이 찔끔 흐른다. 

‘저 넘이 이 시큼한 냄새를 맡았을까.  좋아할까. 음...’

*

올림픽 체조 경기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의 대부분은 중장년층이었다. 새마을금고의 은행 성격이 젊은층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 그 이유인 듯했다. 

행사를 위해 동원된 인력을 감안하더라도 얼추 일만 명은 넘어보이는 관객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손에는 형광빛이 반짝거리는 봉을 들고 곧 있을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안내를 맡은 경비업체 직원들도 분주히 오가며 자신이 맡은 일에 여념이 없었다.

가-1859. 가-1860. 

왼쪽 복도에서 시작하는 첫 좌석과 두 번째 좌석이 정자와 김 과장의 자리였다. 

정자 혼자 입장한 터라 맨 바깥쪽 좌석을 비워두고 안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정자의 오른쪽, 가 -1858부터는 머리가 희끗한 남자들이 연이어 자리에 앉아있었다. 

긴 치마를 손으로 붙잡고 엉덩이 안쪽으로 여며 넣은 정자가 은근히 바람을 일으키며 살포시 앉았다. 

쁘와종의 향이 주위에 은은히 퍼졌다. 

저녁 6시 공연은 아직 십여 분을 남겨두었지만 공연에 대한 흥분과 기대로 전면에 설치된 무대를 응시하며 야광봉을 흔들어대는 중년의 남녀로 체조 경기장은 출렁였다.

김 과장은 조금 늦는다고 했으니 그러려리 하고 정자는 우두커니 무대 쪽을 응시했다. 

현란한 무대 조명이 반짝거리고 객석의 중간 중간에 비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는 새마을금고의 홍보 영상이 혼란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러분의 새마을금고는 아직 단 한 번도...”

흰 머리로 보아 환갑은 넘었을까. 어림짐작으로 그 정도는 돼 보이는 정자 옆의 남자 넷은 모두가 양복을 차려입고 제법 중후한 모습이다.

원래 말이 없는 것인지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한 건지 멀뚱거리기만 할 뿐 조용히 앞만 응시했다. 

앞과 뒤의 부산스러운 여자들하고는 달랐다. 같은 여자인 정자이지만 늙어가는 여자는 정말 남성호르몬이 나오는가 싶기도 했다. 

조용한 옆자리의 관객들이라 다행한 마음으로 정자는 무대쪽을 바라보았다.

‘김 과장은 언제 오지. 음....’ 

옆자리의 남자의 왼팔이 정자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한번 스윽 스치게  살며시 기지개를 함 펴졌다. 그리고 남자는 팔꿈치 부분으로 스윽 정자의 겨드랑이 안쪽으로 뭉개고는 슬그머니 팔을 내렸다. 

‘이건 뭐?’

잠시 후, 오른쪽 발의 튀어나온 복사뼈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닿을 듯 말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느끼면서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정자는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상대의 힘이 은근히 복사뼈를 통해 위로 올라온다. 

‘이런, 뭐지? 이 넘이, 날? 어쩌지 김 과장이 곧 올텐데...’ 

살며시 닿아있던 발을 조금 빼서 안으로 옮겨 놓고 가만히 있어 보았다. 

남자의 팔꿈치가 정자의 갈비뼈를 은근히 압박한다. 정자는 확신했다. ‘이 넘이 꼴렸어. 나에게 수작을 거는 거야. 받아줘? 말어? 잠시 즐겨 볼까...’

‘애니메이션크루’가 무대에 올랐다. 

무리를 이룬 젊은이들이 팝핀을 추며 무대를 이끌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나이든 관객이라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앰프의 소리와 조명이 내는 빛의 현란함만으로도 관객들은 고함을 지르며 무대에 호응하는 듯했다.

정자는 옆 남자의 행동에 신경이 쓰여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공연엔 관심도 없었지만. 정자는 자신의 다리를 조금 벌려 남자의 종아리에 닿도록 했다. 

상대가 분명히 느낄 수 있도록 과감하고 적극적인.

여자가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내지르는 신음 이전에, 그것을 갈구하는 목젖의 꿀렁거림과 마른 침을 삼키는 것과 같은 정자의 행동이었다. 

종아리 근육에 전해지는 정자의 스타킹 감촉을 놓지지 않고 알아차린 남자는 그의 잘 발달된 종아리의 비복근에 힘을 주어 정자가 그 리듬과 감촉을 즐길 수 있게 했다.  

군육을 풀었다 조였다 할 때, 근육의 움직임이 정자의 하반신에 잘 전달되도록 했다. 리듬감을 잃지 않은 채. 

 ‘헉, 이넘이 제법이네. 아... 좋아. 그래 리듬감을 살려... 데스파시또... 그래....’

남자와 닿아있는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을 주어 남자의 다리를 밀어붙였다. 

남자가 다리에 힘을 빼면 정자의 오른쪽 다리는 벌어질대로 벌어져 꽃잎이 다 벌어지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게 힘을 주고 있자 허벅지 안쪽이 뻐근해지더니 질의 입구 어딘가에서 울컥, 하는 느낌이 왔다.

그 순간 정자의 긴 주름치마의 오른쪽에 붙어있던 지퍼가 스스르 열렸다. 

남자의 손길이 맨살에 닿는 느낌이 들더니 무언가가 쑤욱, 하고 치마 안으로 들어왔다. 

“허억!” 음악만 없었으면 주위의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신음이 새어나왔다. 정자의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 나쁜 놈, 그래 헤집어. 네 놈 하고 싶은대로 헤집어 벌려. 그래 그곳이야. 난 음핵은 싫어 너무 간사스러운 기분은 싫어. 그래 안쪽이야. 이넘아, 부풀어오른 그곳을... 아... 그래, 나 하는 거야, 정말 하는 거야... 허... 억!’

“사모님,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설운도 차례 아직 멀었죠.”

슬그머니 남자의 손이 빠져나가자 정자는 자신의 숨을 못쉬게 목을 감고 있던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스르르 도망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운했다.

 ‘나쁜 놈. 죽여버릴 거야.’

“어? 김 과장 왔네. 재밌는데. 김용임 씨 노래 잘하네.”
“네, 행사장 정리하는라 늦었습니다. 이젠 저 자유예요. 절 맘껏 이용해주세요. 하하...”

왼쪽에는 김 과장, 오른쪽에는 낯선 놈, 정자에게 오늘밤은 혹시 계 탄 날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아래로 잔잔하게 온 여운이 몇 번이던가. 하지만 큰 것이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직 멀었다. 여기서, 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정자는 큰 것을 하고 싶었다.

‘아... 미치겠다. 벗고 싶어...’

김 과장의 우람한 덩치가 의자에 풀썩하고 앉자 그에게서 예의 그 민트향이 정자의 콧속으로 깊게 스며들었다. 

톡톡 세포를 깨우는 그 향이 정자의 의식 아래 깊이 숨겨진 원시의 감성으로 자신을 몰아갔다. 

임자도 없고 주인도 없었던 시절, 마냥 남자들과 어울렸던 그 시절의 잠재 속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아... 두 남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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