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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ark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기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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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ark
작품등록일 :
2020.01.20 17:59
최근연재일 :
2020.01.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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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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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쪽

그네

DUMMY

그네




-1-


“와아 다들 오래간만이다.”

“그러게, 이렇게 다 모인 건 졸업하고 처음인가?”


속속 들어 모이기 시작하는 친구들.


“야, 야. 벌써 먹지마!”

“아, 알았어.”


졸업한지 벌써 4년, 조금 나이를 먹었을지라도 변하지 않은 친구들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면, 벌써 4회, 그리고 처음으로 전원참석! 청서고교 문예부 동창회 시작합니다!”


원호가 술집을 가득 메우는 소리를 내질렀다. 큰 소리에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손님, 너무 큰 소리는...”

“아, 네 죄송합니다. 말릴게요.”


여자아이들이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자 그제서야 아쉬운 듯이 원호는 자리에 앉았다.


“일년에 한 번씩 모이는데 이번에 첫 출석하는 애들은 너무 매정한거 아냐?”

“야, 야. 나도 바빴어. 재수에 군대에. 그나마 재수로 끝내고 전역했으니 온거야.”


이번에야 처음 출석한 석규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세림이는 고등학교때랑 많이 변했는데? 그땐...”

“어허, 그때 얘기는 하지마.”


석규의 장난어린 말에 연수가 말을 끊었다. 나도 고등학교때의 세림이의 모습을 기억하지만, 고등학교때는 뚱뚱하다고 놀림도 은근히 받을 정도였지만, 졸업이후에 1년만의 모임에서 늘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났을때에는 모두가 놀랐지만.


“됐어, 그때 뚱뚱했던게 사라지는것도 아니고.”


세림이 씩 웃으며 말했다.


구김살 없어진 세림의 웃음은, 고등학교 때엔 문예부 동아리실이 아닌곳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결혼 언제하냐?”

“응?”


지호가 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아니 아직도 사귀고 있는건 맞지만 결혼은 아직...”


대답을 하며 슬쩍 나희의 눈치를 보았다. 방금 대답에 약간 실망한 눈치.


“생각을... 안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조금 이르니까. 최소한 대학교는 졸업해야지.”

“응, 그러네.”


그래도 대답이 어느정도 만족 했는지 나희의 살짝 치켜올라간 눈꼬리가 내려갔다.


“오~ 망설임 없는대답. 내 남친이 니 반만 해줬으면 좋겠다 야.”


연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 남친 아직도 사귀는거야?”“아니, 이번엔 다른사람.”


다예가 연수에게 물었지만 연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전에 사귀던 애는 집착이 너무 심해서...”


더 들어봐야 연수가 스트레스를 푸는 말일게 뻔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헤에, 그러면 너는 공무원 준비 하는거야?”

“뭐, 그렇지. 어차피 내 성적에 마땅히 갈만한 대학도 없었고.”


원호와 이야기하던 지호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성휘야 너는 졸업하면 뭐할거야?”

“글쎄, 아무래도 전공찾아가야지 않을까 싶긴한데.”

“그러면 성휘는 디자인쪽으로 가는건가.”

“뭐, 그렇지.”


지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잠깐 들었는데 공무원 준비하면 대학은 안간거야?”

“어, 아예 원서도 안냈어.”


지호가 맥주를 한잔 쭉 들이키고 말했다.


“나는 성적도 별로 안 좋았고 뭐. 집에서도 그딴 대학 갈거면 군대나 가라그래서 일찍 군대 갔다온거니까.”

“그래..”


지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간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멤버들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때 만든 문예부의 동급생 친구들이지만, 고등학교때에는 분위기가 약간 달랐었다.


사실상 문예부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원호, 언제나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석규, 이미 처음 문예부를 만들 때부터 있었던 나와 문예부에 들어와 나와 사귄 나희, 왈가닥이였지만 인기가 많았던 연수, 외모가 많이 바뀌었지만 조용하고 착실한 세림이, 활달하고 연수와 계속 붙어다녔던 다예, 마지막으로.. 지호.


“무슨생각해?”

“아, 응, 아니. 옛날생각이 좀나서.”

“와하하하하, 야 성휘 옛날생각 한단다. 크하하하.”

“진짜? 아하하하하하하!”


다들 떠들썩하게 웃는 가운데 머릿속만은 혼란해졌다.


지호.


지호가 이런 성격이었나..?


지호는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알아주는 문제아였다. 소위 말하는 ‘일찐’. 거기다 아버지는 중견기업의 사장님이고 어머님은 대학교 교수라서 학교도 지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2학년때 문예부를 원호와 연수, 내가 만들면서 연수를 꼬시려고 했는지 지호가 문예부에 들어왔었다. 고등학교 당시엔 사고를 안치려고 했는지, 아니면 당시 유단자였던 내가 싫었는지 졸업때까지는 나를 약간씩 피해왔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의 기억에 지호가 현재와 같을지 몰라도 내 기억에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마치, 이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듯이.



“자, 거의 다 먹은 것 같은데 2차로 옮길까?”

“어디로 가지? 또 술?”

“클럽가자 클럽!”노래방가자!“


자리를 정리하려던 원호에게 이런저런 요구가 나왔다.


“클럽은 안돼.”


나희가 나지막히 말했다.


“아, 남치니랑 같이온분이 클럽은 안된다고 합니다.”

“우우.. 둘이 집에가라”


원호와 연수가 사이좋게 장난을 쳤다.


“자, 그러면 노래방갈까?”

“에이, 그러면 나희랑 석규는 아무것도 안하고 박수만 칠거아냐.”

“그러면 어쩌지?”


순간적으로 의견이 정지되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럼 학교 가볼래?”

“학교?”


어색한 침묵을 깨고 지호가 말했다.


“오, 좋다. 어차피 멀지도 않고.”

“그래, 근처에 편의점도 있을 테니 학교구경하면서 한잔씩 더 하자.”


지호의 의견에 다들 동의하고 주섬주섬 짐을 모았다.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총무로 계산을 마친 나희에게 외투를 입혀주었다.


“응?”


나희와도 둘이 술을 꽤 마셔봤지만, 나희는 술이 약한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희가 살짝 떨고있는게 느껴졌다.


“왜그래? 취했어?”

“어? 응.. 아냐.”


날이 춥긴했지만, 따듯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나희의 손을 잡고 주머니에 넣었다.


“좀 낫지?”

“응.”


그제야 떨림이 조금 멎었지만, 손끝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야, 저거봐 쟤내 유난떠는거 봐바.”

“으에에 꼴불견이야.”

“흥, 억울하면 니네도 애인이랑 하면되지.”


아니나 다를가 나오자마자 원호와 연수가 놀리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맞받아쳤다.


“흥이다.”


연수가 혀를 쏙 내밀고는 세림이와 다예의 팔짱을 끼고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자애들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앞서나갔고, 나희와 나는 조금 뒤에 떨어져서 손을 꼭 잡은채로 걸었다.





-2-


“와, 변한게 없네?”


토요일, 밤 10시가 넘은 학교는 불이 모두 꺼지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방이 어둑했지만 달빛이 밝아서 사위는 모두 구분이 되었다.


“아냐, 놀이터 다시 생겼다.”


원호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 진짜네. 저거 우리 졸업하고 허물지 않았나?”

“그러네. 고등학교에 그네가 뭐냐고 다 없앴었잖아.”


연수가 놀이터쪽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야, 이거 오랜만이다.”


지호가 미소를 지으며 따라나섰다.


“헉.”

“괜찮아?”


나희가 발을 헛디뎠는지 한쪽 무릎이 푹 꺽였다.


“으..으응..”


나희가 부축을 받아서 일어났다.


“우리도 가보자.”


아이들과 전부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로 이동했다. 놀이터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꾸며진 구조물에 매달린 긴 그네 세 개와, 고등학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미끄럼틀, 그리고 심지어 다 낡아서 아무도 안탔던 시소마저도 돌아와 있었다.


“와, 정말 오랜만이네.”


세림이 가장 오른쪽에 있는 그네를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말했다.


세림이는 고등학교때는 뚱뚱한 편이여서, 학급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정도가 심한편은 아니였지만 친구가 없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기에, 점심시간의 대부분을 그네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중학교 동창이였던 연수가 문예부에 초대하기 전까지 세림에게 학교는 친구가 없는 외로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 그렇네.”


연수도 옛 생각이 났는지 세림이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추억은 추억이고, 여기면 뭐좀 먹을수 있겠는데?”

“그러게?”


원호가 놀이터 뒤편의 정자에 앉으며 말했다. 다예도 걷느라 지쳤는지 쪼르르 가서 앉았다.


“뭐 좀 사올까?”


지호도 정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술이랑 과자라도 좀 사오자.”

“나는 아이스크림 먹을래.”

“이추위에?”

“그럼 누가 사러 갈래?”


나희가 총무였기 때문에 나도 나희를 보았지만, 나희의 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희에게 카드를 달라고 했다.


“내가 갈게. 나희야 모임 카드 줘.”

“응.”

“혼자가기엔 많을 것 같고 한명 더 가자.”


연수가 옆에서 말했다.


“그럼 내가 갈게,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세림이 그네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그럼 둘이 갔다와.”

“나희가 질투하겠다.”

“아냐.”


다예의 말에 나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럼 갔다올게.”


세림이와 함께 뒷문으로 나와서 조금 걸으니 길목 아래에 편의점이 보였다.


“요샌 편의점이 가까워서 편하네.”

“그러게, 학생때는 편의점도 멀어서 고생이었는데.”


세림이와 단둘이 무언가를 해본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성휘야.”

“응?”

“나희랑 잘 지내지?”


세림이 뜻 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으응. 뭐 별일없지 우리는.”

“다행이네.”


세림이 뭔지 잘 모를 대답을 했다.


“결혼... 할거야?”

“응..?”


세림이 또 뜻밖의 말을 꺼냈다.


“세림아, 너.”

“대답해.”


처음보는 세림이의 단호한 표정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들은 생각은 세림이 나에게 관심이 있었나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가 가는 길에 따라 나온것도 그렇고, 이런 질문을 해오는것도 그랬다. 그리고 곧이어 든 생각은 무언가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게 관심이 있었다면 굳이 결혼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다.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텐데 이 질문은 이상했다.


“나희가 거절하지 않으면, 졸업하고 청혼할거야.”


고민 끝에 나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생각을 말했다. 군대를 전역하며 계속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다. 나희는 벌써 졸업이다. 나는 전역하고 2년을 더 공부해야했다. 그리고 앞으로 2년뒤를 생각해봤을 때, 나희는 사회에, 나는 졸업하고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면 지금까지보다 더 만나기 힘들어 질 수도 있고, 군대까지 기다려준 나희를 절대 놓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면 됐어.”

“왜 이런걸 물어보는거야?”

“아냐. 니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니까 신경꺼.”


세림의 말투가 다시 평소처럼 부드럽게 돌아왔다.


약간 어색했지만, 다시 평소로 돌아온 세림이와 이런저런 안주와 술을 사고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둘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 다들 어디갔어?”


학교 놀이터에는 석규와 다예 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원호랑 연수는 담배피러 갔고, 나희랑 지호는 화장실.”

“화장실 열려있어?”

“원호가 먼저 갔다온거 보고 갔을걸?”

“그래?”


곧 돌아오겠지 싶어서 넷이서 자리를 깔았다.


“성휘는 담배 안피나보네?”

“응? 나는 안피지.”

“군대가서 배워오는 사람 많다던데.”


다예가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요새는 담배도 잘 안피게 되어서. 석규도 안피는거아냐?”

“아, 나는 끊은거야.”

“끊었어?”

“응. 아는 사람이 싫어해서.”


석규가 차분하게 말했다.


“오, 뭐야 짝사랑?”

“아냐,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하고 특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응? 벌써왔네?”


이야기 하는 사이에 연수와 원호가 돌아왔다.


“야 석규는 담배 끊었대.”

“와, 대단하다.”


연수가 억지말투로 말했다.


“연수는 담배 안피지 않았었나?”

“예전 남자친구가 피워서 어쩌다 배웠어.”

“그래 나랑 둘이 볼 때도 담배 때매 왔다갔다 한다니까.”


연수의 말에 다예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화장실 간 애들만 없나?”

“그러네. 먼저 먹고있지 뭐.”


원호가 맥주캔을 따며 말했다.

다들 별 생각없이 맥주를 들고 건배했다. 오랜만에 학교. 그리운 냄새가 물씬 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있던 거의 그대로 되살아난 놀이터도 우리를 반기는 기분이 들었다.





-3-


“어? 시간 꽤 되지 않았어?”


나희와 지호가 화장실에 간지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나와 세림이는 음식을 사오느라 언제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지만 아이들의 분위기는 시간이 꽤 흘렀다는걸 확신하게 해주었다.


“얼마나 되었는데?”

“나희는 이십분정도? 지호는 십분?”


다예의 말에 머릿속에 걱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나희는 몸이 안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대신 편의점에 다녀온건데 화장실에서 쓰러지진 않았나 하는 안 좋은 생각이 들어왔다.


“이십분이면 좀 많이 된거같은데..”

“여자는 원래 오래걸려.”

“그래도 나희는 이렇게 오래 안걸리는데...”


내 걱정에 연수와 원호가 걱정말라고 토닥여줬지만 안좋은생각은 끊임없이 떠올랐다. 5분, 10분정도가 지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되겠어.”


물밀 듯이 떠오르는 걱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왜그래?”

“나희 몸이 별로 안좋아보였거든. 아까 휘청거리기도 하고. 찾아보고 올게.”

“다 같이 찾아보자 그럼. 화장실일수 있으니까 여자애들하고 같이가보자.”


내 말에 원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여섯이 모두 일어서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은 잠겨있었지만 다행이 옆문이 열려있어서 학교로 들어갈수 있었다. 곧바로 1층 여자화장실에 여자아이들이 가보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통 1층으로 갈텐데 어떻게 된거지?”

“우선 찢어져서 찾아보자. 나랑 연수랑 갈게.”


원호도 걱정이 되는지 남자한명, 여자한명으로 조를 짰다.


“그럼 내가 석규랑 갈게.”


세림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규도 문제가 있는걸 확신했는지 조용히 세림이를 따라갔다.


“그러면 내가 원호랑 별동에 가볼게.”

“그럼 우리는 밖에를 찾아볼게.”


연수랑 세림이 각각 위치를 잡고 밖으로 나섰다. 나와 다예만이 남았지만, 대화보다는 위로 올라가는 생각만 들어왔다.


“여기도 없어?”

“응. 어디간거지..”


3층까지 올라와서 교사용, 학생용 화장실을 모두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이 이상했다.


“4층이 마지막이니까 일단 올라가보자.”

“그래.”


다예가 내 어깨를 톡톡치며 말했다. 연수와 많이 다니기에 따로 많이 이야기 해 본적은 없지만, 다예는 항상 연수를 제어할 정도로 차분하고 배려심이 깊은 아이였다.


“먼저 들어가볼게.”


다예가 아래층처럼 4층의 여자화장실에 먼저 들어섰다.


“...헉!”


다예가 들어서고나서 잠시 뒤 화장실 안쪽에서 다예의 놀란소리가 들렸다. 깜짝놀란 나도 곧이어 화장실에 들어섰지만, 나는 눈의 의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암흑속의 화장실 안에는 다예가 떨어뜨린 핸드폰 손전등이 하나로 엉킨 두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의 두 사람.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열정적으로 서로의 입술을 훑는 두 사람.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건 나희였다. 거의 넋이 나간표정의 나희의 외투는 화장실 한 켠에 널부러져 있었고, 윗옷은 겉옷과 속옷까지 위로 올라가 나희의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아래옷은 올라가있는 치마와 내려가 있는 팬티, 그리고 있어선 안 될 곳에서 해선 안될 행위를 하는 손-


그 순간 내 의식은 반쯤 끊어졌다.


“이 새끼가!”


정신을 차렸을때는 바지와 속옷을 벗고 바닥에 널부러져서 피를 뱉어내는 지호와, 재빨리 나희의 옷을 입히고있는 다예, 그리고 아직도 넋이 나간 듯이 허공을 응시하고 누워있는 나희의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헉!”


내 소리에 곧바로 뛰어올라왔는지 원호가 곧바로 들이닥쳤지만, 안의 모습에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다.


“잠깐 나가!”


다예가 소리치자 그제야 원호가 고개를 돌리고 문밖으로 잠시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하아.. 하아.. 찾았어? 왜 근데 밖에-”


연수가 들어왔다.


“이게 무슨... 너 이 미친새끼..”


연수가 곧바로 상황이 파악된건지 욕지기를 내뱉었다. 연수의 욕지기에 정신을 차렸는지 지호는 속옷과 바지를 올리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이어,


“무슨일이야?”


석규와 세림이 도착했고, 원호가 막았는지 세림이만 들어왔다. 세림이는 놀란 눈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예에게 가서 나희의 옷을 입히는 것을 도왔다.


“됐어. 이제 불 켜도 될거같아.”


다예의 말에 연수가 화장실의 벽면을 더듬어 불을 켰다. 순간적으로 눈이 부셨지만, 곧바로 적응되고 이번엔 립스틱으로 범벅이 된 지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옅은 핑크색의, 내가 나희에게 선물로 사주었던 ‘스위트 러브 핑크’색의 립스틱은,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입술에 덧발라져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


불이 켜지자 나희의 정신이 들어왔는지 허공이 아니라 주변을 보고 사시나무 떨 듯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나와 지호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아.. 아아... 미..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곧이어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아아, 사람이란 이런 것인가.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작년, 나와 나희는 드라마를 보다가 바람을 피는 것에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둘 다 외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그때 나희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바람을 피워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막상 그 때가 되면 어떨까?”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나는 아직도 나희를 사랑하고 지금 내 눈앞의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나희를 믿을 수 있을까? 지금 저 눈물도 진심이 아니라,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눈물이라면....


“이 미친새끼가 뭐하는거야!”


불이 켜지고 어느새 들어온 원호가 소리를 질렀다. 석규도 들어왔지만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친 모양이었다.


“큭큭.. 큭큭큭... 뭐하냐고?”


그 순간 지호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 광기가 서린듯한 웃음에 모두가 말묻을 닫았다.


“내가 오늘 이런짓을 한 이유.”


지호가 천천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니, 내가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동창회에 오늘 출석한 이유.”


지호가 웃음을 멈추고 냉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가 이런 문예부 같은 애들 장난같은 동아리에 들어간이유. 모두 같아.”


지호의 말에 세림이와 연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희의 얼굴에 절망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아.. 안돼.. 안돼.... 제발..”

“시끄러. 니가 뺏어간 내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서야. 성휘야.”


지호가 똑바로 날 가리키고 말했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


잠시간의 정적을 찢으며 나희가 소리쳤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나희는 다시 넋이 나간 듯이 안된다는 말만 되뇌이고 있었다. 연수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희를 달랬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 안했어? 나 같은 양아치가, 문예부에 들어가서 조용히 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안 갔으면서 그동안 얼굴도 안 비치던 동창회에 나온게?”


지호가 나희의 상태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로 말을 이었다.


“이나희. 이 계집애는 내꺼야. 내 물건이라고.”


지호의 말에 머릿속이 빙빙돌며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당장 저 입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꾹꾹눌렀다.


“아냐, 네 물건이 아냐.”

“응? 네가 뭘 알아 서연수.”


지호가 무언가 더 말하려는 찰나 연수가 말을 끊었다.


“잘 알지. 소원은 이미 깨졌어. 최지호. 이미 나희는 네 물건이 아냐.”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연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4-


“미안해. 고등학교때 이미 말했어야 되는데.”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연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희는 아직도 넋이 나간채로 안돼 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성휘야. 너 나희가 어디중학교 출신인줄 알고 있어?”

“어...? 아, 응. 상서중학교를 나왔지.”


연수가 나에게 물었다. 나희와는 고등학교때부터 만나왔기 때문에 중학교 때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말하지 않았고, 나희도 중학교때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다.


“최지호 저녀석도 상서중학교 출신이야.”


연수가 약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상서중학교를 나와서 잘 알고있어. 나희와 최지호는 중학교 이학년때부터 삼학년때까지 일년정도를 사귀었어.”


머리를 망치로 맞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나희가 나와 만나온 세월은? 나와 만난 건 단지 전 남친과 피하기위해? 그렇다고 해도 이미 헤어진 후인데 이제와서 이렇게 되는겄은...


“어디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우선 상서중학교의 위치부터 이야기 해야할거야.”


연수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무슨 상관...”

“우선 들어. 저녀석에게 듣는거보다 나한테 듣는게 너한테도 좋을거야.”


연수가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상서중학교는 여기 청서고등학교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그래서 청서고등학교 놀이터에 오기 매우 쉬운 위치에 있었지.”

“... 그런데?”

“알다시피 나희는 이미 중학교때부터 인기가 엄청났어.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예뻤고, 나희와 같은반인 적이 없는데도 나희가 고백받는 장면만 몇 번이나 봐왔어.”


연희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지호 저새끼도 똑같았지, 그리고 나희는 거절했어.”

“그치만, 둘이 사귀었다는건...”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어느순간부터 둘이 사귄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어. 나희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정사실로 굳혀졌지.”


내 질문이 마치 없는 것처럼 연희가 말을 이었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 나희는 줄기차게 고백받고 호감을 표하는 남자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어도 거절했는데, 저런 양아치새끼랑 사귄다는게?”


그렇다, 그건 이상했다. 나희와 꽤 오래 사귀어왔지만 지호는 도저히 나희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거기서 등장하는게 아까 놀이터에 있던 ‘그네’야. 그중에서도 가장 오른쪽 그네.”

“시발, 거기까지 알고있었냐?”


연수의 이야기에 지호가 내뱉듯이 말했다.


“그네?”“그래. 그 그네의 본질을 알고있는 사람은 몇 없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말해주는건...”

“‘소원그네’ 그렇게 불러.”


연수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세림이 끼어들었다.


“세림아?”

“그네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해줄게.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으니까.”


세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저 그네는 앉아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줘.”

“뭐?”


말도안되는 이야기에 머리가 혼란스러워 졌지만, 세림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지니처럼 뚝딱 소원을 이뤄주는게 아니야. 그네에 앉아서 계속해서 오랜시간 소원을 집중해서 빌면, 결과적으로 그 일이 일어나.”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점심시간마다 그네에 앉아서 빌었던게 뭐였을 것 같아?”


세림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날 배신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였어. 그렇게 반년을 빌고나자, 연수가 나한테 말을 걸어주었고 일 년이 될 때 너희가 있는 문예부에 초대받았어.”

“연수가 너에게 그 사실을 들었구나.”

“그래. 세림이가 문예부에서 어느 날 나한테 말했어. 이런게 과연 진짜 친구냐고 말야. 그리고 소원과 상관없이 우리는 친구라고 했고. 저런새끼가 끼어있을줄은 몰랐지만.”


연수가 세림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건가. 지호가 그 그네를 가지고 나희와 사귀었어도 헤어지고나서의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을텐데.


“나희와 사귄건 문제가 아니야. 최지호 저건.. 아니 저 쓰레기는 나희와 사귀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게 아니야.”

“뭐?”


세림이 내 마음이라도 읽은것처럼 말을 이었다.


“너 시발 그걸 어떻게?”

“저 쓰레기는 나희를 ‘가지고 싶다’ 고 빌었어. ‘물건’으로써 말이야.”

“뭐?”


이번엔 진짜로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였나. 지호가 나희를 자신의 ‘물건’이라고 말한겄이.


“저새끼는 애초에 나희의 마음이 목적이 아니라 몸이 목적이었던거야. 그것도 중학교때.”

“서세림 니년이 어떻게 그걸 알고있지?”


연수의 말에 아랑곳 않고 지호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그 그네에 앉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해?”


세림이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우리오빠도 청서고등학교 출신이야. 그리고 중학교때 내가 저녁도시락을 가져다주다 널 봤어. 그때 너인지도 몰랐지만.”


세림이 말을 이었다.


“네가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해. ‘이나희를 내 물건으로’ 라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지.”


세림의 말에 지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이내 얼굴색이 돌아오며 지호가 말했다.


“큭큭... 그럼 알겠구만. 내 소원은 이뤄졌어. 이나희 저년은 내 ‘물건’이라고.”


지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만약 말이 사실이라면, 나희는 자기의 의지도 없이 지호의 말에 따르는 인형이나 다름이 없다는건가...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니, 소원은 깨졌어.”


세림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 개소리마. 그럼 이나희는 왜 내말을 듣지?”“잘 생각해봐 쓰레기야. 왜 고등학교에 와서 나희는 성휘랑 사귀었을까?”

“그건...”


세림이 말문이 막힌 지호를 냅두고 나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희야. 나 기억나?”

“돼... 안돼... 아... 세.. 세림...?”

“그래, 나야.”


나희가 정신이 들었는지 세림이를 알아보았다.


“중학교 2학년때 우리 같은 반 이었지. 그때 반에서 유일하게 나한테 잘해준건 너뿐이었는데...”


세림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일학기때 빌었던 소원은 친구를 만드는게 아니라 나희를 돌려놓는거였어. 내가 빈 소원은 ‘나희가 그 쓰레기에게서 해방되길’ 이였고. 세달 걸렸지.”


세림의 말에 지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그럼 어째서 저.. 저년이 내 말을 들은거지?”

“소원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으니까.”


세림의 말이 끝나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갑자기 정적을 찢고 지호가 말을 꺼냈다.


“하.. 하지만 난 요 몇 일간 다시 소원을 빌었어. 이나희를 다시 내 물건으로 돌려달라는 소원을!”

“하, 구차하구나. 이미 저 그네는 소원을 빌 수 없어.”


세림이 가차없이 말했다.


“네가 문예부에 들어온날. 이학년 시월이였나. 그때쯤 나는 연수에게 소원그네에 대해 말했어. 이상하다고.”

“이상해?”

“나는 일학년 이학기때부터 친구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은 이학년 사월에 이뤄졌어. 문예부에 초대되며. 그이후로는 나는 다른 소원들만 빌어 왔는데 뜬금없이 네가 추가 된 거야.”

“그래. 나도 세림이한테 그 말을 듣기 전까진 반신반의했지만, 그러려니 했어.”


연수가 말을 받았다.


“그리고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된 세림이가 빌었던 소원이 뭘 거같아?”

“서.. 설마...”

“난 성휘랑 나희를 사귀게 해달라고 빌었어. 그렇게 하면 네가 나희를 포기할 줄 알았으니까.”


다시한번 머리가 멍해졌다. 나희와 내가 사귀게 된게 세림이 소원을 빌어서라고.. 대체 왜...\


“왜.. 왜 나였어? 다른 아이들도 많았을텐데.”

“이 멍청아.”


내 질문에 연수가 말을 끊었다.


“말해도 돼.”


세림이 눈을 살짝 감고 말했다.


“왜 너였겠어. 세림이가 가장 믿는 남자는 너였으니까. 세림이가 문예부 활동 이후에 계속 빌었던 소원은 너와 친해지는거였어. 심지어 사귀는 건 빌지도 않았어.”

“그땐... 내가 너무 초라했으니까.”

“그.. 그럼...”

“그래. 세림이는 널 좋아했기 때문에 가장 좋아했던 친구인 나희와 널 이어준거야.”


머리가 멍해졌다. 세림이가 지금까지 문예부에서 활동적이고 활달했던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친구로서 신경쓰이고 걱정해주었던 고등학교 생활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동안 연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너와 나희가 사귀고 난 뒤에도 둘이 행복하길 계속 빌었어 세림이는...”


연수의 말이 끝나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 그래서! 그래서 소원그네가 소원을 못 빌게 된 게 무슨 의미야! 지금얘긴 아무상관이 없잖아!”


지호가 발악하듯 말했다.


“내 마지막소원은...”


세림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내 마지막 소원은 ‘이 그네가 더 이상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으면’ 이였어.”

“뭐...뭐?!”


세림의 말에 지호의 표정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난 나희를 돌려놓고 성휘와 연결해줬지만, 그럼에도 너는 나희 곁을 알짱거렸어. 삼학년 여름방학 때, 어떻게해도 널 나희에게서 떨어뜨려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


세림이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널 나희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소원을 빌어도 네가 졸업 후 이 그네에 앉을수도 있잖아? 그래서 나는 소원그네를 없애기로 생각한거야. 그리고 반년동안 빈 소원덕에 이제 그네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알지? 소원을 아직 빌수 없는지?”


지호의 마지막 발악에 세림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세림의 표정과 눈동자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보였다. 고등학교 문예부 2년간 나를 봐왔던 그녀의 눈을. 그 눈은 친구를 보는 눈이 아니였다. 그것을 넘어-


“성휘야. 아까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지?”

“아, 나희와 결혼 할거냐고.. 했던..?”

“그래.”


세림이 살짝웃었다.


“나는 아까 그 그네가 돌아오자마자 거기에 앉아서 십분정도 소원을 빌었어.”

“엇!?”

“십분정도면 이뤄주는 소원은 거의 없겠지만. 내 소원은 작은 소원이였거든. 내 소원은...”


세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 것 같았다. 세림이는 그 소원을 알아보기 위해 나와 동행 했었다는 것을.


“내 소원은 ‘성휘가 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길’ 이었어. 그러나 성휘는 결혼 하겠다고 대답했지.”


세림의 말에 나희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소원그네가 소원을 들어주는데 아무리 오래 걸린다고해도 이 정도는 십분이면 이뤄져. 그러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어.”

“그.. 그런...!”

“결국 네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거야. 쓰레기야.”


세림의 말이 끝나자 지호가 무너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소.. 소원그네가.. 소원을 이뤄주지 않는다고...?”


그리고 연이어 나희가 입을 열었다.


“나.. 나희 너도 소원그네를 알고있어?”


내 질문에 나희가 잠깐 나를 봤지만 눈길을 곧바로 피하고 세림을 쳐다보았다.


“세.. 세림아.. 어.. 언제부터 소원그네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어... 나.. 나도 정확한건 몰라. 소원은 삼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빌었어. 졸업때까지. 그.. 사이쯤에 정지하지 않았을까?”


나희의 질문에 세림이 당황하며 말했다.


“나.. 나희야 너도 소원그네를 알았다고?”


연수가 말했다.


“내.. 내 소원.. 내소원은.. 아.... 아아....”


나희는 연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러나 나희의 말은 소원그네를 알고 있다는 대답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원호가 나지막히 말했다.


“내가 언젠가 말한 적 있지?”


원호의 말에 연수가 고개를 돌렸다.


“우린 서로 절대 배신하지 않는 친구가 되자고. 그런데....”


원호가 말을 끝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 할래, 성휘야.”


석규가 나에게 물었다. 그제야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소원그네고 뭐고 간에 우선 현실은 나희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신고 할 거냐? 어차피 아버지빽으로 나올테지만.”


석규의 말에 지호가 비아냥 거렸다.


“아니. 네 말대로 어차피 네 아버지빽으로 나올테지. 그리고 더 이상 네놈 낯짝은 보고싶지 않아.”


내 말에 원호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떨궜다.


“지호야. 아니 널 친구라고 할 수도 없겠구나. 최지호씨. 이제 우리 모임에 나오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원호가 나지막히 읖조렸다.


“하, 이런 거지같은 모임 다신 안-”

“그리고.”


지호의 말을 연수가 잘랐다.


“다신 나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그땐...”

“그땐?”


지호가 비아냥거렸다.


“내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예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나희, 아니 우리 근처에 다시 나타나면 내가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한이 있어도 널 망가뜨릴거야.”


다예의 말에 지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이건 좀 이상했다. 다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아.. 알겠다.”


지호는 모든 걸 포기한 듯이 알았다고 말하고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나섰다. 지호가 사라지고 시간이 꽤 흘러서 우리도 몸을 추스린채로 나왔고, 나희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119에 연락해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충격으로 남았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원이 모였던 문예부 동창회는 끝이 났다.




-5-


“네? 그게 무슨...?”

“환자가 정신적으로 많이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현재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추가적인 충격을 받기 쉬우니 정신적으로 위협이 될 만한 언행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의사가 말을 흐렸다.


“이건.. 환자 측 남자친구십니까?”

“네.”

“음.. 보호자라고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뭐죠?”

“전신 MRI 검사결과... 환자는 현재 불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네?”


의사가 나를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정확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자궁과 난소쪽에 문제가 있습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을텐데 너무 늦어진 상태라 불임판정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 그럴수가....”

“그러니 정신적인 치료가 완료되면 꼭 검사를 받아보세요.”


의사가 차트와 몇 가지 서명을 요하는 서류를 내밀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그 일 이후로 다시 한 번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학교 화장실에서 쓰러지기 직전 나희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소원... 내 소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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