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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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랫글에 댓글로 제가 예전에 쓰던 소설들이 라노벨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였지요. 그렇다고 장르소설이 곧 킬링타임이란 말은 아니지만요. 지금 쓰는 소설이 킬링타임 용이란 말도 물론 아니구요. 라노벨 자체에 '라이트'란 말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지요. 애정이 부족하면 곧 킬링타임이 되는 것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연재하다가 중단할 정도로 사전에 노력이 부족하면 그게 곧 라노벨이 된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지금 연재하는 소설을 킬링타임이라 부를 정도로 제 소설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지도 않지요. 요즘엔 글 한편 쓰는데 책을 최소 50권 이상 읽어보는데다 글쓰다가 꿈꾸면서까지도, 꿈속에서도 소설의 전개 및 구성을 검토하는 중이니까요.
오버라고 봅니다.
킬링타임이 시간만 때운다는 의미가 있는 것은 맞지만, 시간을 때우는 것 역시 사람들이 찾는 컨텐츠임은 분명하죠. 클래식 음악의 예를 들 수 있겠네요. 글쓴대로라면 그런 음악은 기본적으로 교훈이나 의미를 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나 가사가 있는 일부 음악을 제외하면) 아무 의미도 못 찾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백년씩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 '무의미'한 시간을 통해 뭔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킬링타임용 소설, 영화, 드라마도 다 마찬가지죠. 큰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걸 소비하는 동안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시름을 잊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재충전의 기회가 되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돈을 쓸 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쓰죠. 비는 시간을 꼭 자기계발을 하거나 '건설적'인 방법으로 소모해야만 가치있게 보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음악에서 교훈이나 의미를 찾지 않는다는 점이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다수의 음악들에 ‘제목’이 있고 작곡가가 담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라도 음과 음의 배치를 통해 청중이 듣고 느끼는 바가 있지요.
무의미하다니요? 제대로 감상하려면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것이 음악입니다.
물론 가볍게 듣고 넘기는 음악도 있을 것이고, 가볍게 ‘소비하기 좋은’ 어떤 컨텐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의 한 부분이 소비하기 좋다는 것으로만 고정되거나 그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에 치명적으로 막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은 보통 무슨무슨 장단조 몇번... 이렇게 되죠 :)
작곡가가 분명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고요.
당연히 '제대로' 감상을 하려면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지만, 본문을 쓴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그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감상을 할 경우에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음악이 되는 것이고요.
그리고 '제대로' 감상을 한다는 것도 우스운게, 본래 작곡가가 사망한지 몇백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떤 것이 제대로 감상을 하는 것일까요? 연주한 악단이 원곡에 충실한지를 따지는 것도 재미고 어떤 식으로 재해석했는지 보는 것도 재미지만 그게 '제대로' 감상을 하고 작곡가의 '의미'를 따라가는 것일까요?
사람마다 당연히 그 음악을 다르게 듣고, 다르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의 취향이 있다고 해도 되겠지요.
저도 음악이나 영화, 책의 의미를 저자나 작곡가, 감독이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도한 것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담는 것을 포기하거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것을 염려할지언정 그것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길 바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댓글을 달다 보니 이 글 본연의 목적과는 좀 빗나가는 것 같군요.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현재의 장르소설을 킬링타임용으로만 받아들이는 독자가 많은 듯 하고, 작가들 또한 킬링타임용으로 많이 생각하고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현실일테니까요. 하지만 장르소설 전체의 미래를 위해 이런 추세에 대해 걱정하고 작가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본문이 오버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이해를 잘 못하시네요.
나에겐 취미생활인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킬링타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 취미생활이 게임이라고 했을 때, 제겐 하나의 취미지만 다른 사람, 특히 제 와이프에겐 정말로 킬링 타임이죠.
장르소설도 마찬가지고요. 문학고전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장르소설을 읽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킬링타임에 불과할 뿐입니다.
바꿔말하면, '킬링타임용'이라고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건 단순히 남들이 내 취미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는 얘기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죠.
사람들이 킬링타임이라 말하는 소설들은 대부분 대리만족에 치중한 말 그대로 킬링타임식의 소설들 뿐입니다. 안목을 떠나서 강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삼처사첩 거느리고 왕 먹고 땅 먹고 이런 식의 글들을 킬링타임이라 하는 데 여기서 무슨 독자의 안목이 필요한겁니까?
정 그런 소설들의 작가의 메세지를 말하라고 하면 대리만족 많이 느끼세요~ 이거 뿐일겁니다. 킬링타임 소설이란 결국 그런거죠. 진정 메세지가 담겨있고 교훈이 담겨있는, 그리고 그런 요소들을 좋은 필력으로 잘 버무린 소설들은 말 했듯 수작 명작으로 치부하지 결코 킬링타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논지 자체가 잘 못됬어요. 좋은 글을 킬링타임이라고 말하는 독자를 까는 글이라면 몰라도 모든 글에 그걸 적용시키며 그것을 킬링타임이라 말하는 독자들을 까다뇨?
말씀하신 의미는 이해하겠는데
킬링타임이라는 단어 자체에 좀 오버하시는 느낌도 있습니다.
킬링타임이란느 의미가 엔띠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극단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엔띠님의 킬링타임과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킬링타임의 의미는 조금 다르고, 그 다름이 사용상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쓰고 있다는건 문제라는데 동의합니다.
작가는 아무리 사소한 작품이더라도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책임질 자세로 써야 하겠지요.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장르문학이 영국의 판타지처럼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겠죠.
음, 킬링타임이 시간 죽이기라곤 하나 시간죽이면서 무리없이 빠져드는 가벼운 소설이라고도 합니다.
쓰레기 글,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은 킬링타임이라고 표현하지 않죠. 그냥 쓰레기책이라 부르지.
어려운 내용없이 편하게 만화책 읽듯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글을 킬링타임 소설이라 합니다.
실상 독자를 한권 책속에 빠져들게 글쓰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든 일입니다.(내용, 설정, 문법, 전부 떠나서)
문학적, 글의 내용, 표현방법, 교훈 등을 가득 넣은 책은 문학적 가치가 있는 글이라 할 수 있지만
킬링타임이라 불린 소설책에는 문학적인 가치는 적으나 문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재미성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만화책처럼요. 그걸 거부하시고 소설은 소설답게! 라고 생각하신다면 조금 더 장르문학에 대해 고민하셔야할 문제라고 보겠습니다.
문학적 가치없는 양산형 책을 그래서 킬링타임 소설이라 부릅니다. 그 양산형에 대해 비판하기 이전에 양산형을 써보고 성공하신 뒤,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보셔야 문학적 책이 어떠한 것인가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르문학을 일반문학처럼 생각하시면 성공하기 무척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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