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저는 자살에 대한 견해는 조금 다릅니다. 자신의 삶을 끝낼 수 있는 선택은 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에게만 있다는 생각이라서요. 그렇기 때문에 살인이 가장 흉악한 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자살은 명예로운 최후의 하나로 인정됐었고요
인류의 죽음에 대한 관점에서 자살은 기록교가 포교 된 이후에 터부 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혹한 환경에서 끝내 싸워 살아가는 이도 있습니다. 충분히 존중받고 존경스러운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살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병마와 싸우다 고통에 굴복하기 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자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도 있습니다. 수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한 예도 있죠.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는 선장도 있습니다. 군사기밀을 지키기 위해 서류를 들고 폭사한 경우도 있죠
개개의 사정을 감안해야지 자살 그 자체를 죄악으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최악의 자살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활고 비관으로 자녀를 동반한 부모의 자살입니다. 전 이것을 부모에 의한 자녀 존속 살해라고 봅니다.
옳으신 말씀 같습니다. 회귀물을 많이 읽었는데... 대부분이 죽음, 자살 등을 키워드로 회귀를 하더라구요. (양자이동캡슐을 이용하는 분도 계십니다만...)
자살로 내몰릴 정도로 극한의 어려움을 겪어서 주인공이 자살을 선택했다... 라는 것은 회귀를 해서 새로운 삶을 선택해서도 결론은 똑같은 자살이 아닐까합니다. 왜냐면, 자살을 선택한 순간에 이미 마음이 나약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위기의 상황을 정말 간단히 넘기면서 만사가 잘 풀려지는 식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위기의 상황에 직면해서 또다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몰리다가 또 자살을 선택하는건 정말 아니라는걸 깨닫고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그런 글이 보고 싶었습니다;;(읭? 느닷없이 희망사항?)
인생이 괴로워서 자살한다는 것은 정말 심각하게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모르셔서 하는 말인거 같습니다. 그렇죠. 어렵게 사시는 분들은 오히려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십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들이시죠. 반면에 인생을 쉽게 사는 사람들은 조금만 인생이 어려워지더라도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약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자살을 하기보다는 현실의 벽에 맞서 싸우는 글을 원합니다.
창작자 입장에서 소재를 제한함은 자충수일수도 있습니다. 사회고발적인 면이나 리얼리즘에서는 더더욱요. 도가니에서 현실과 소설은 넘사벽의 차이가 있는데, 그런 의미를 본다면 글에서 아름다운 소재만 담을 수는 없는 거죠. 다만 사건 진행방식(본문에서 자살을 뚜렷하게 미화한다던가....)에서 그러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만 해당작인 변XX강XXX에서는 그런 것도 아니었고... 또 '죽느니 그냥 살지' 라는 식으로 자살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은 사회심리학 면에서는 권장되지 않는 방법이고요.
아, 물론 툭하면 뛰어내리기 바쁜 클리쎄는 좀 그렇고 해당작이 재미를 위해서 개연성을 과하게 망가뜨린 감은 있습니다만... 창작에서 특정 소재는 등장하지 말아야 한다... 검열이 아닐까요.
흠... 솔직히 이런 이의제기를 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해당 소재를 내가 너무 속 좁게 보는건 아닐까, 소설로 읽고 가볍게 넘기면 되는데 내가 그걸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건 아닌가. 단지 내가 해당 소재를 좋지않게 봐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음...
그렇네요, 이 글은 주장이라기보다는 의견으로 봐주세요.
'이런 소재를 싫어하는 독자도 있다.' 정도로요.
솔직히 샘나기도 해서 그래요.
정말 아둥바둥 사는데, 소설에서는 죽고나서 새로운 기회를 얻으니까요;
대리만족을 넘어서는 이입질투라고 해야될까요;
만약, 주인공이 적을 죽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자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생에 미련을 버리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회귀라니요? 그런데 잘 살아질까요? 저 같으면 당장에 부모님 뵐 용기도 나지 않을거 같습니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기 때문에 완전한 허구는 아니죠.
저는 자살을 소재로 선택하시더라도 그 자살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조금더 극적으로 잘 만들어 주시길 바란다는 겁니다. 자살을 선택하고 회귀를 한 뒤에 엄청난 후회를 하는 모습이라던가 하는거 말이에요.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중의 하나겠죠. 작가분들도 신중히 사용하셔야하고, 독자도 분별력있게 받아드려야죠. 표현방법, 소설의 설정정도로 이해하면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실과 혼동하면 안되니까요. 전반적으로 무분별한 또는 가벼운 사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희극만큼 비극도 좋아하니 너무 강압적인건 좋지 않다 봅니다.
별개의 이야기로, 최악의 선택, 이기주의행위라는건 외부에서 보는 시선입니다. 본인이 아닌이상에 옆에서 보는건 한정적입니다. 그런상황이라면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자신은 그러지 않을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모르는겁니다. 쉽게 판단할거는 아닙니다.
일종의 눈가리개죠. 시작과 동시에 달리기 시작합니다. 시야는 한정적이고 점점 좁아지게 됩니다. 중요한거는 아주작은 변화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래야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줄수도 있습니다. 관심이 어렵다 할수 있지만, 그냥 그 사람에 대한 생각입니다. 의도치않는 순간의 손내밈과 말과 글들이 그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당사자에 대해 비난하거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가볍게 인사하는게 더 큰 도움일수 있습니다.
반대의견을 충분히 펼쳐주세요.
자살은 죄가 맞습니다. 단, 그 책임도 이유도 모두 혼자 묻어버리기때문에 주위에서 다르게 따로 벌 할 수 없을뿐입니다.
주위에서 조금 더 손을 뻗었으면 됐을테고, 조금 더 관심을 주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살아보지... 라는 말도 이기적인 시선일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떠했던간에, 스스로 목숨을 놓은 사람을 탓할 수 없듯, 그 사람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어서도 안됩니다.
하나의 생명을 잃고, 주위에 슬픔만 남긴 잘못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말로도 포장이 되지 않고, 포장해서도 안됩니다.
안락사도 선택적인 자살로 범주로 놓고 본다면...
그 선택을 탓할수는 없죠, 그 영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살이 옹호되는건 아닙니다. 그와 같은 환경, 이유가 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요.
부끄럽지만 저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어요.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를 기억해보면 정말 부끄럽지만, 그때에 가진 생각은 하나뿐입니다.
[전부다 포기한다.] 이것 뿐이에요. 그 이상은 없어요.
그 후로도 정말 많이 힘들었구요. 내가 없는 세상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세상은 이전과 같을 뿐이에요. 내가 없어진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물론 이유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유가 저를 변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는건 그쪽입니다.
삶은 반드시 한번입니다. 그 이상도 없고, 그 이하도 없어요.
그렇기때문에 회귀나 환생이란 소재가 먹히는 겁니다.
그야말로 판타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니까요.
자살 그 자체를 옹호해서는 안되는데, 그것을 이유로 새 삶을 받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런 소설들때문에, 영화에서 쓰인 소재때문에 자살을 옹호하시는건가요?
그렇다면 그야말로 자살->회귀를 소재로 쓴 문화창작자들의 잘못입니다.
지금 이와 같은 이유때문에 자살을 소재로 회귀하는걸 반대하는겁니다.
현명한 독자들은 소설을 소설로만 받아들이고, '자살->회귀'는 소설 속 이야기로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이입을 해버리는 독자들은
'자살해서 회귀하고 더 잘됐네? 그럼 자살 나쁘지 않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으니까 괜찮지. 납득할 수 있어. 있을수 있는 일이야.' 라고 생각해버리니까요.
모든 독자가 '자살은 안되지만, 이 이야기는 소설일뿐이야.' 라고 받아들이면 문제없습니다.
그 소재를 받아들이고 자살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위험성때문입니다.
저는 자살을 겪진 않았습니다만... 제 친구 중에 자살을 시도한 애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죽지는 않았지만 그 때 후유증같은게 남아 있다고 느낀다더군요. 그 때 느낌이 \'나 혼자 동떨어진것 같았다\'. 자기자신만 보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하네요... 그 친구가 한 말이니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겟지만 자살은 정말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요즘 회귀물을 보면 자살>>>>회귀=성공이라는 공식이 존재하더군요. 물론 재미로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재미로만 봐야합니다. 자살후 회귀. 어? 성공했네. 뭐야 ㅋㅋㅋ 자살 개이득 이런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되죠. 이런 얘기하다가 뜬금포같지만 자살은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의 죄뿐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겁니다.
인생 두번있다는 헛된 희망을 불어 넣는 대표적인게 종교죠.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면서 죽으면 끝인데. 저는 자살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옛날 노예들에게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쫌만 힘들어도 다 자살하면 노예제는 진작에 없어졌을것입니다. 모두 종교같은 사기들이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열심히 노동력과 인생을 주인을 위해 바치게 했죠.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니 악덕 업주와 국가가 남아있는것입니다. 앞으로의 종교는 자살을 권장하는게 현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살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주인공의 한을 대변하는 결정적 한방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이정표이기도 하니까요.
스피드한 전개에 걸맞는 좋은 장치인 셈이죠.
그러다 보니, 엄청 우려먹게 됩니다. 덕분에 자살에 내성이 생긴 독자들은 "또 자살이네? 이유가 너무 식상해, 고작 이런 이유로 자살을 해?"
이런 반응까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은 독자들의 자살이 유행으로 번지자 금서로 지정되기 까지 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르소설의 비현실성이나 작가의 가벼운 필력 덕분에 독자분들중에 자살한 분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죠.
위험성은 분명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 해서는 안됩니다.
자살을 소재로 반드시 해야 한다면, 그것 밖에는 도저히 답이 안떠오른다면, 쓰셔야죠.
다만, 그럴 일은 없지만.. 너무 현실감 있게는 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자살소설 보고 사람 죽었다는 말 잘못 돌면, 작가 한두명 피해보고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한국법상 자살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자살을 할때 혼자 스스로 아무도 없는곳에서 조용히 죽는 사람은 진짜 드물죠.
대부분 자살을 할때 주변을 정리하면서 "내가 이렇게 서운하여 떠난다"라는 "날 잡아줘"라는 메세지를 남기죠. 그리고 사람이 많은 건물 옥상이나 차량이 많이 지나가는 다리위라던가 누군가 신경을 써주면 말릴수 있는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합니다.
이는 스스로 죽고 싶을만큼 어려운 환경과 처지를 넓게 알리고 싶은 마음과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갈등한다는 증거입니다.
진실로 자살하는 사람은 아무말도 안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속 깊은곳 또는 바다속에 조용히 들어갑니다.
자살이 나쁜게 맞지만, 그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살은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세상이 싫어서 떠나가는것입니다.
--한때 자살을 시도했던 어떤 사람의 기록중에서 ---제 경험담이기도 하네요.
결론, 자살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뭐 소재의 다양성은 인정합니다
다만 사회통념상 터부시되는 소재의 경우 조심해서 사용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 → 환생 → 성공의 플롯으로 충분히 좋은 교훈(재미)을 주는 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만 이런 스토리가 유행이 되어 너도나도 자살을 소재로 삼다보면 아무래도 은연중 독자의 인식에 자살 = 성공의 공식으로 잘못 각인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과거 퓨전물들의 경우 사고사의 형태로 이계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소재가 진부해지다보니 자살로 넘어가는 형태도 종종 보이고 회귀물도 그렇구요
뭐 가려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성인이긴 한데 장르소설의 경우 독자층이 미성년도 있다보니..
참고로 사후세계를 언급하는 종교조차 자살은 죄악시 여기고 있지요
우리나라 사회가 많이 삐뚤어졌죠. 어떤 나라는 각계층간 신뢰도가 굉장히 높은 곳도 있던데. 몇몇 소수들이 자기들만 잘살아보련다 하고. 세금정책을 손봐놓으니..그외의 대다수는 서로 경쟁을 해야 굶어 죽지 않고..각계층간 신뢰도는 바닥울기고....
이러니 다같이 잘살아보자고... 자살이란 단어와 방법을 언론매채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하는 사회가 있고..
길바닥에 나앉아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도..나와 내가족의 생존을 위해..무시하고. 오히려 신경쓰는 사람이 바보라 보는 시선도 많겠죠. 문제의 해결책중 하책은 님이나 주변인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관련정책을 만들거나.. 운영자가 되어 특정소재 금지하는 법이고..
중책은 해외에서 연구된 심리학 자료를 근거로 화제거리를 만들어 관련정책을 만드는 거고.
상책은 세상을 바꿀수 있도록... 세금으로 월급주는 세금 일꾼을 잘 뽑겠끔 잘 알리는거죠.. 세금 일꾼이라 함은.. 대통령 국회의원 등등. 상전을 뽑는게 아닌 .. 제대로 밥값해왔던 일꾼을 뽑아야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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